제 30화
검으로 바치는 경애 (5)
검의 경애.
검은 타인을 해치는 무기이자, 자신을 방어하는 도구다.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인 셈이다.
검의 경애는 그런 방어조차 내려놓겠다, 더 나아가서는 그대에게 나의 삶조차도 내어줄 수 있다는, 극한의 경탄이다.
검의 경애를 받는 이들은 꽤 많았다. 황제. 장군. 귀족. 영웅.
일곱 영웅을 제외하고, 이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검의 경애는 현 황제인 요안니스 2세가 매형이자 당시 제국군 총사령관이던 니키 브리엔으로부터 받은 검의 경애다.
안나는 요안니스의 누나였고, 정당한 황위 계승자였다. 요안니스를 감금하고 안나의 제안에 따라 니키 브리엔이 공동 황위에 올라도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니키는 그러지 않았다.
친위대원들과 함께 제국검을 빼어들고 요안니스의 처소에 다다른 제국군 총사령관은, 돌바닥에 검을 내리꽂고 검의 경애를 보냈다. 자기 처남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제국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안나의 남동생이던 요안니스 콤모두스는 '요안니스 2세'가 되었다. 그의 명령은 '내란 주동자'를 체포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니키 브리엔은 그렇게 했다. 빈 검집을 들고, 자기 아내에게로 돌아가, 따뜻한 포옹과 길고 긴 입맞춤으로.
하지만 그런 극적인 검의 경애조차도, 일곱 영웅이 받은 찬사에 비하면 모자르다.
* * * * *
일곱 용사의 석상은 공원 한 가운데 들판에 세워져 있다.
석상은 거대했고, 온갖 귀금속과 보석, 성스러운 불로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오로지 영웅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조각가들은 자신들이 뭘 드러내고,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인은 순결의 성기사 윌리엄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전신 갑주 위에, 자비기사단 상징이 그려진 튜닉을 걸치고, 양손 망치를 짚고 근엄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투구는 벗고 있었지만, 머리에 얹힌 빛나는 가시관은 그가 왜 성기사인지 드러내 주는 장치였다.
석상들은 완만한 들판에 세워졌는데, 발치에는 무수한 검이 박혀 있다.
제국검, 이교도의 곡도, 동부와 남부 왕국의 레이피어, 단검, 부러진 검, 심지어 할버드와 창, 도끼, 깃대, 스태프까지.
땅에 박힌 지 10년도 더 된 것들이지만 여전히 날은 시퍼렇다. 누가 특별히 관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병장기들은 스스로 성스러운 불을 낼 줄 알았다.
석상 가까이에 갔던 카인은 부러진 나무 장대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그러면서도 그을림 하나 없이 불순물만을 태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은 있는가? 기적은 실존하는가? 의문 품는 자가 있다면, 검의 경애 공원으로 올지어다. 보라. 의심을 버려라.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라.’
석상 주변에서, 사람들은 엎드려 절을 하고 무릎 꿇은 채 기도를 올렸다. 울부짖는 사람, 흐느끼는 사람, 제 옷을 찢어발기는 사람부터 허공에 금화를 뿌리는 사람까지 제각각이다.
하지만 누구도 남을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있는 이들은 심장을 물고 늘어지는 죄의식을 달래며 먼먼 길을 온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짊어진 고통과 괴로움이 너무나 컸기에, 그 한을 내려놓는 것만도 버거웠다.
그저 모두가 집단 독백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위안을 얻었다. 그들이 원했던 건 들어줄 귀가 아니라, 마음 터놓고 마음껏 떠들 장소였기 때문이다.
혼자 외로운 방이 아니라 탁 트인 하늘, 굳건한 땅, 마왕을 물리친 일곱 용사와, 성화와 기적과 현장이라는 성스러운 장소에서 내뱉는 독백.
오로지 그 말을 하기 위해, 이들은 이 먼 곳에서 왔다. 세상의 구석에서 몰려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여정에, 이 중얼거림에는 의미가 생긴다. 의미가 깃든 중얼거림은 신성하고도 경건한 자기 고백이 된다.
카인과 릴리는 그 열광의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었다.
도시락을 나눠 먹는 가족들, 잠시 숨을 가다듬는 순례자들, 울다 지쳐 꾸벅꾸벅 주는 신심 깊은 자로 가득한, 넓고 영광스러운 성지에서.
작은 미소조차 짓지 않는 이들은 오로지 그들뿐이었다.
웃을 수가 없었다. 턱 걸리는 것 없이 행복할 수 없었다. 순수한 환희는 다시 느낄 수 없다.
알아버리고 나면, 몰랐던 것처럼 살 수는 없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모르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덧없는 기만일 뿐이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릴리의 어투도 축 가라앉아 있었다.
“나도.”
쿡, 하는 웃음소리. 카인은 릴리를 바라보았다. 희미하게나마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릴리의 손이 자꾸만 어깨와 목을 매만지는 건 신경 쓰였다. 혀의 덩굴에 당한 이후로, 릴리는 습관처럼 그곳을 자꾸 닦아내었다.
카인은 한마디 할까, 하다가. 잔소리로 들릴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 자기 심정을 털어놓았다.
“저기 서 있는 동상은 분명 세상의 영웅인데. 우리가 봤던, 그것은…아니. 그 괴물 같은 모습 이전에도, 하스펠 신부가 말했던 모습으로는…순결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잖아.
그런데 저 앞에서 울고 웃고 자기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지. 우리가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이미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카인과 릴리가 본 것만으로도. 이 성지를 갈라놓기에는 충분하다. 하스펠 신부가 묻어 놓은 비밀까지 드러난다면, 저 무수한 사람들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릴리도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가만히 어깨를 기대어 왔다. 카인은 어쩐지 그 몸짓이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얇은 가지에 잠시 쉬어 가는 새…
‘아니다.’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성지에서조차 자신을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무언가에라도 기대고 싶어서다.'
숨을 크게 쉬고, 생각을 몰아낸다.
이건 잡념이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잠시 후에 이단심문관 하인리히를 만나야 한다. 하스펠 신부가 추천한 사람이라고는 해도, 그건 하스펠의 관점이지 카인의 관점은 아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판단력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감정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카인은 그 말을 두 번, 세 번 되새겼다.
그래서, 나직하면서도 가녀린 릴리의 말을 꽤 의연하게 들어줄 수 있었다.
“처음 보안국에 왔을 땐 그저 막연히, 뭔가 좋은 일을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둠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그런 유치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그게 이런 식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나 깊고 넓은 줄은 몰랐고. 저 자신조차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에는 두려움마저 생깁니다.”
릴리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몰랐어.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
“무엇입니까?”
“별로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텐데.”
“듣고 싶습니다.”
“이게 끝이 아닐 거라는 거.”
릴리는 침묵했다. 카인은 일곱 동상을 바라보며 독백했다. 저 앞에서 우짖는 사람들처럼, 그러나 훨씬 조용히. 릴리에게만 은밀히 들리도록.
“끝이 아닐 거야. 알면 알수록,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아름답다고, 이상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점차 조금씩 깨져나가더라고. 와. 이 지경이었는데도 용케 굴러왔구나…하는 정도까지 가게 될 거야.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어. 멈춰서도 안 돼.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누가 알려 들지 않는 것조차 파헤쳐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릴리의 손이 더듬거리며, 카인의 손을 찾았다. 카인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방황하던 손길이 안심하며 고요히 숨을 죽인다.
“그래도 뭔가. 더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그런 생각 하면서 여기까지 왔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허공을 달리고 있구나. 싶더라고.”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더라.’
생각나는 때가 너무 많았다. 암살자들과 목숨 걸고 다투었을 때. 이슬비 맞으며 골목에 잠복했을 때. 잔뜩 두들겨 맞고 도랑에 내던져진 채, 내려다보며 비웃는 듯한 하늘과 눈싸움을 했을 때…
그때 수 없이 했던 말을 카인은 주워섬겼다.
“난 뭐 하고 있지? 난 내 인생 갈아가면서 여기 있는데. 왜, 세상은 바뀌지를 않지. 내가 하는 일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싶은 생각.”
열 호흡 정도의 침묵.
릴리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손을 뒤집어 카인의 손에 깍지를 꼈다. 손바닥을 포옹하듯이. 손을 끌어안듯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깊이 닿고 싶다는 듯이.
“저. 이런 말은 주제넘다 생각하지만…”
“뭔데?”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 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카인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릴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바라보면 넘어가 버릴 것 같아서. 열꽃에 타들어 갈 것만 같아서.
“그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동료를 지켜준다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눈치 없게도 바람이 불었다.
거센 바람은 아니었지만, 꽃잎을 날리게 하고 향을 멀리 피워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다. 눈에 뭐가 들어간 척을 하면서, 눈을 깜빡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럴싸한 농담을 떠올리기도 쉽다는 것.
“꼭 버네이스 국장님처럼 말하네.”
손을 뺀 릴리가 카인의 손등을 살짝 꼬집었다.
“좀 미워지려고 합니다.”
“농담 아냐. 그거 국장님이 되게 자주 했던 말이야. ‘야, 이놈들아!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 가족끼리는 싸울 수도 있고 물어 뜯기도 하고 뒤통수도 때리지만, 그래도 좋든 싫든 가족이라고!’ 입버릇처럼 그러셨어.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하셨고. 나하고 농담하는 거 봤잖아. 나 신입 때, 직접 교육받았거든.”
“정말입니까?” 릴리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글쎄. 신입사원들 쫙 섰는데, 나를 보더니 ‘거 새끼 되게 버릇없게 생겼네. 일로 와, 자식아.’ 하면서 데려가시더라고.”
“의외입니다. 욕만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솔직히.”
“정 많은 분이야.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뵘하고 봄하고도 가족처럼 지내자고 했던 것도 국장님에게 받은 교육 탓도 좀 있었어.
아, 참. 블룀베르크 쌍둥이 상회, 뵘하고 봄이 세운 거다? 나중에 쓸 일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고 있어.”
“네?” 릴리는 정말 깜짝 놀란 듯했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그리고 아까 그 수도승한테 했던 이야기. 그거 진짜 벌이고 있는 사업이야. 보안국이 운영하는 회사여서 그렇지, 일 하나는 확실히 잘해. 그렇게 벌이는 사업들이 좀 있어. 안 그러면 어디서 돈을 구하겠어?”
“와. 그러면 이 옷도 그런…”
릴리는 화려한 옷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아마 남부 지부 쪽에서 하는 사업일걸. 옷감하고 보석이겠네. 내가 너무 나쁘게만 이야기하긴 했는데, 알아가는 게 꼭 다 우울하고 슬프진 않아. 가끔은 재미있고 놀랄 만한 작은 것들도 보이면 있더라고. 하긴 그런 거라도 없으면…”
‘오래 못 가지.’ 카인은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오래 못 가는 건 바로 자기 자신 아니던가.
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또 꺼내기는 싫었다. 꼴이 우스워지는 데다, 릴리를 슬프게 하는 말이니까.
“일어나자. 시간 되었네.”
두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릴리는 카인의 팔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이제 그들은, 위로와 위안을 받고 공원을 떠나는 그런 부부처럼 보였다.
“저. 방금 든 생각인데.”
“응.”
“슬프고 아픈 기억을 지울 수 없다면…”
“응.”
“좋은 것을 덧입히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는,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직 안 늦었을 수도…있지 않겠습니까? 교수님 말씀처럼 아직, 행복을 붙잡을 기회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카인은 대답 대신 땅을 바라보았다. 잡았다가 놓쳤었노라고, 그래서 다시 잡을 용기도 힘도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릴리의 목소리가 다시 축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오해다. 릴리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바로 잡아야 한다.
“아냐.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하지만 나는 너무 멀리 온 것 같아.’라는 말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카인은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람에게 의미가 되어 줄 수 없었다는 것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이 떠나버린 자리에 남겨진 의미의 서러움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했다.
- 도망쳐, 카이로스.
이번만큼은 그림자의 말이 솔깃했다. 그래서 카인은 다시 말을 돌렸다.
“큼. 그 옷. 잘 어울린다. 예쁘네.”
“예쁘…!”
릴리는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별것 아니라는 듯, 큼, 하며 턱을 살짝 들었다. 어깨도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당. 당연한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 저도 나름 꾸미면 예쁜 여자입니다.”
다섯 걸음도 지나지 않아 뻔뻔함은 쭈그러들었다.
“저. 그런데. 저 좀 뚱뚱해 보이지 않습니까? 어깨는 너무 넓어 보이고, 덩치는 너무 커서 둔해 보인다던가. 사실 이런 화려한 옷은 처음 입는 데다가 좀 부담스러워서…”
하긴. 기사단 생활 중엔 이런 옷을 입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카데미 다닐 때는 당연히 이런 사치스러운 옷은 못 입었을 것이고, 보안국에서는 칙칙한 옷만 입고 다녔을 테다.
“응? 전혀. 키라는 건 숨기려야 숨겨지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 그냥 지금처럼 확 드러내는 편이 더 낫지. 구김 없이 화려하고 당당해서 더 멋있는데.”
릴리는 금발 머리를 귀 옆으로 연신 쓸어 넘겼다. 희고 길며 가느다란 목과 어깨가 드러났다. 자꾸 문질러서 발갛게 부르튼 면도 보였다. 카인은 속이 상했다.
“그건 그렇고. 붉은 천에 노란 금실 자수도 잘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상처가 윤기 나는 금발 머리에 가려진다. 카인은 일부러 밝게 웃었다.
“그래? 사실 생각도 못 한 조합이었는데.”
“네. 이대로 높은 탑 꼭대기 감옥에 가둬버리고 싶습니다.”
카인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지나가는 사람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대화 같았으리라.
“…왜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이 나오냐?”
“저 혼자만 보고 싶으니까요.”
“농담 그렇게 진지하게 하면 안 웃겨.”
“웃으시라고 한 말 아니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니까요.”
등줄기가 오싹해져서 카인은 앞으로 휙휙 걸어 나갔다.
릴리는 입매를 일그러뜨렸지만 찍어 누르기에는 너무나 환한 미소였다.
* * * * *
두 사람은 종교재판소 건물에 들어섰다.
무기는 모두 반납해야 했고, 거기에 복장 검사까지 있었다. 옷 안에 무기를 숨기고 들어오는 자객 때문이라고 했다. 카인과 릴리는 무기를 미리 두고 왔기에 별 탈이 없었다.
다만 지팡이는 영 애매했던지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발목을 삐어서 불편하다는 설명에 '절대 무기로 써서는 안 된다' 는 사전 안내를 받는 것으로 넘어갔다.
안내소의 탁발 수도승은 지나치리만큼 제대로 일해주었고, 덕분에 카인과 릴리는 방청석의 맨 앞줄 복도쪽에 자리하게 되었다.
수석 재판관과 서기, 경비대, 붉은 로브를 걸친 이단심문관들, 그리고 원고와 피고가 입장했다.
길고 복잡한 인사와 쌍두독수리에 바치는 기도문을 읊은 후에 서기가 원고와 피고에 대해 설명했다.
원고석에 자리한 이는 인상이 날카로운 남자였다. 길고 긴 호칭이 이어졌는데, 결론은 영지는 없어도 부유한 백작이라는 소리였다.
그 옆에는 백작을 좌우로 조금 길게 늘여 놓은 것 같은 사제가 한 명 자리했는데, 백작의 이복동생이라고 했다.
피고석에 자리한 이는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였다. 아직 젊고 매력적이었지만 눈가에 주름이 언뜻 보이는, 그러나 당당한 사람이었으며, 백작의 형수였다.
그러니까 백작은 자기 형수를 손수 마녀라고 고발한 셈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니키 브리엔의 검의 경애 내용은, 별도 공지로 올린 안나 콤모두스 외전에 자세히 나옵니다. 물론 필수로 읽지 않으셔도 본문 이해에는 무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