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화
순결의 몰락에 대한 보고서 (8)
오트란토 봉쇄수도원의 예배당은 넓은 편이다. 하지만 모든 방문객을 다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도 사람 수만 따지면 소도시 주말 미사 정도의 인파다.
봉쇄수도원 수사들, 50명도 넘는 환자, 환자당 두 명씩 배치된 간호 인력, 자비기사단에 이단심문소 소속 성직자들, 카인과 릴리까지.
짧은 논의 끝에 자리 재배열이 이루어졌다. 이단심문관 하스펠 신부는 미사를 집전해야 하니 제단에 위치했다. 환자들의 침상과 간호 인력들은 예배당 중심부에, 좌측과 우측에는 이단심문소 종자들과 자비기사단 기사들이 위치했다.
카인과 릴리, 기사단 고위층과 봉쇄수도원 수사들은 출구 쪽, 자비기사단 수습 기사들과 종자들은 예배당 바깥에 소대별로 집결해 질서정연하게 앉았다.
그런데도 미사가 계속 지연된 이유는 바로톨로메오 원장 수사의 항의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예배당에 무기를 들고 들어오는 건, 신에 대한 예의도 존중도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구마 의식도 아니고 축복 의식인데 무기를 들 이유가 뭐요, 도대체!”
하스펠 신부가 무기와 장비에도 축복을 내리겠노라고 마지못해 대답한 다음에야 소동이 가라앉았다. 그 때문에, 미사는 정오쯤에야 시작되었다.
시작은 반주 없는 성가였다.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했던가. 봉쇄수도원 수사들은 악기 없이도 화음을 맞추는 법을 알았고, 소리치지 않고서도 음을 크게 내는 법을 안다.
아랫배에서부터 끌어 올린 소리를, 다른 이들의 허밍에 맞춘다. 30명이 부르든, 40명이 부르든 한 사람이 부르는 것만 같다.
하나가 된 성가가 수도원의 돌벽에 닿았다. 새벽 동틀 무렵 밤을 새운 파수꾼이 눈을 비비듯, 깨어난 돌벽이 수도사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돌은 치밀하고, 단단하지만, 단순하다. 한 번 마음 열기는 어려워도, 일단 마음 얻는 법을 안다면 제 안을 적 갈라 열어 보이는 것이 돌이다.
그 순간만큼은, 육신에 갇힌 영혼마저도 위안받는 듯했다. 사람이지만 더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뭉개지고 망가진 것들도 눈물을 흘렸으니까.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순결의 성기사마저도 침묵했다.
물론 그것이 몸에 새겨진 관성 때문인지 아니면 수천 년을 넘게 이어져 온 굳은 믿음이 윌리엄 대주교를 위로한 것인지는 신만이 알리라.
다음으로 이단심문관 하스펠 신부의 강론이 이어졌다. 카인은 하스펠 신부가 맑고 굵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놀라워했다.
마차에서 소곤거렸을 때는 세상 그런 음모가가 없었는데, 지금 그는 판사에게 호소하는 변호인의 톤과 열의 가득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교수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삶과 죽음의 예언자께서 가르치실 때, 두 여인도 그곳에 있었다.
멜리사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실비아는 예언자의 앞자리에 앉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멜리사가 예언자에게 물었다. ‘실비아에게 뭐라고 해야겠습니다. 저와 다른 일꾼들은 잠시 쉴 시간도 없이 일하였는데,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보면서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예언자께서 말씀하셨다. ‘멜리사야. 멜리사야. 네가 네 몫을 다 한 것처럼, 실비아도 제 몫을 다 하였다. 각자 자기가 가져가고 싶은 몫을 가져갔는데, 왜 네가 화를 내느냐?’
후대의 신학자들은, 예언자께서 실비아를 예뻐하셨고 멜리사는 홀대하였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 대목을 ‘질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보다 도전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지만, 바로 그다음에 ‘하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다’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자식은 귀하지만, 어떤 자식은 다른 자식보다도 더 귀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귀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부모마다 다릅니다. 어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일부러 모질게 대합니다. 비뚤어지는 것을 두려워서입니다. 어떤 부모는 더 많은 것을 안겨줍니다. 애정에 대한 표현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한 자녀는 가만히 앉혀만 놓고, 다른 자녀는 바쁘게 일을 시켰다고 하여, 앞의 자녀는 더 아끼고 두 번째 자녀는 부려먹었다는 식의 해석은 편협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 입장을 떠나, 손님 입장에서 본다면 또 달라집니다. 손님이 왔는데, 어떤 자식은 가만히 앉아서 멀뚱멀뚱 보기만 하고, 다른 자식은 바쁘게 움직이며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내온다고 생각해 봅시다. 손님 입장에서야 두 번째 자식이 더 예뻐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이런 예도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부모가 자식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데, 한 명은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다른 자식은 자꾸 뭐를 내온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마무리 못한 일을 해야 한다며 자꾸 바쁘게 움직인다고 칩시다.
부모의 입장에서 첫 번째 자식이 더 서운하겠습니까? 아니면 두 번째 자식이 더 서운하겠습니까?
우리가 삶과 죽음의 예언자 입장이라 본다면, 내가 이렇게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내 말을 들어주는 제자가 예쁘겠습니까, 아니면 청소한다, 자리를 안내한다, 손님을 맞이한다며 자꾸 왔다 갔다 하는 제자가 예쁘겠습니까?
물론 두 가지 모두 필요한 일이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기록한 이는, 멜리사와 실비아의 행동이 누가 시켜서 한 일인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적지는 않았습니다. 앞뒤 정황을 따져 본다면, 자발적으로 한 것이 더 맞아 보입니다.
즉, 멜리사는 앞장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편을 ‘골랐고’ 실비아는 귀한 말을 듣는 것을 ‘골랐다’라고 보는 게 더 어울립니다. 예언자께서는 ‘각자 자기가 가져가고 싶은 것을 가져갔는데.’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본다면 멜리사의 행동은 모순적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나서서 손님을 맞이해 놓고는, 가만히 있는 실비아에게 불만을 품으면서도, 정작 화는 실비아가 아니라 예언자에게 털어놓습니다.
저는, 여기서 멜리사가 두 가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질투이며, 하나는 기만입니다.
질투는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멜리사는 실비아를 질투했으니까요. ‘내가 일하고 있는 동안 저 아이는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라는 것은 질투입니다.
얼마나 편협합니까?
멜리사는 손님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손님이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접대를 받는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멜리사는 예언자를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그런 존중받을 위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멜리사의 질투는, ‘자신과 같은 처지면서 자기와 같이 행동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더 귀염을 받은’ 실비아에게 향합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 시키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멜리사 자신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굳이’ 실비아를 지목하여, 자신과 그녀를 스스로 견주고 자신을 다치게 하였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멜리사 자신이 실비아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의 앞에 앉아 그의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실비아가 마치 ‘자기 몫을 빼앗아 간 것처럼’ 질투합니다.
질투가 죄인 이유는 단순히 시기심 때문만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건드리고 찌르고, 자극하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자해 행위나 마찬가지니까요.
여기에서 기만의 죄가 생깁니다.
기만이 무엇입니까. 속이는 것입니다. 진짜 의도는 그것이 아닌데, 겉으로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기만입니다.
그녀가 정말로 원했던 건 '실비아처럼' 예언자 앞에 앉아 그의 말을 듣는 것이었을겁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말을 듣는 것을 부러워했는지, 아니면 그저 그의 앞에 가까이 있고 싶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녀의 눈에 실비아는 예언자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보였을 겁니다.
그러니까 실비아처럼 행동하면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걸, 멜리사도 분명히 알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했지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정작, 멜리사는 사랑받는 법을 알면서도 엉뚱한 짓을 합니다.
손님을 접대하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듭니다. 예언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그 방법에 대해 알면서도 몸은 이상한 곳에 가 있는 셈이죠.
이것이 멜리사의 두 번째 죄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만. 자기 자신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 그런데도 끝까지 자신의 소망을 정직하게 밝히는 대신, 가리고, 감추고, 숨기며, 타인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것.
그녀가 정말로 손님에게 봉사하는 것이 즐거움이라 여겼다면, 실비아를 질투하지 않았을 겁니다. 되려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만족했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멜리사로 하여금 질투와 기만의 죄를 지어,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을 상처입히고 괴롭게 하였을까요?
형제 여러분. 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신성한 책의 구절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왜 사람은 사랑받을 수 있는 길에서 벗어나 황무지를 떠돌며 괴로워하는 것일까요? 무엇이 그를 길에서 몰아낼까요? 사람은 왜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할까요?”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이 저마다 침묵의 독방에 들어가 앉은 탓이다. 고위 이단심문관은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 분 정도는 햇살마저도 숨을 죽인 듯했다.
카인은 고개를 숙인 채, 하스펠 신부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지루하고 지루한 강론이었는데 자꾸만 마음에서 뭔가가 걸리적거렸다. 왼쪽 옆구리의 칼집이 무거웠고, 의자에 기대어 둔 지팡이가 짐스러웠다.
헐벗은 릴리의 등이 떠올랐다. 오래된 흉터와 상처로 할퀴어진 등이었다. 릴리는, 굳이 그 상처를 숨기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달빛 아래 드러냈었다.
감싸 안아 달라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달빛 아래 숨길 것이 없다는 당당함이었을까. 달빛에 젖어 반짝거리는 그 고난의 상처는, 지금도 릴리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니다. 카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릴리는 자신과 다르다. 릴리였다면 카인 자신처럼 칼을 뽑지 않고 지팡이를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팡이는 마음대로 휘둘러도 누가 덜 죽는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들먹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 또, 도망치는구나.
카인이 놀라 흠칫했다. 발치 아래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속삭였다.
- 네가 정말 자신에게 묻고 싶어 하는 건 그게 아니었잖아. 너 자신에 대한 질문인데, 릴리 이야기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말해 봐. 카이로스. 너는 왜 길에서 벗어났어?
카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에서 눈을 떼었다. 카인의 당황하는지 모르는지, 릴리가 팔을 살짝 대었다. 온기가 전해지자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렸다. 하지만 그림자는 집요했다.
- 거짓말쟁이. 비겁자. 기만자. 넌 행복해질 수 있었어. 너는 그 방법을 알았잖아. 넌 그 모든 걸 내팽개쳤어. 안 그래?
그림자는 회색이었다. 빛에 닿아 사라지지도 않았고 어둠에 녹아 흐르지도 않았다. 그저 그것은 그늘진 곳에서 조소했다.
- 그 이유를 나는 알아. 너도 사실은 알고 있지. 다만 넌 비겁한 놈이라서 그걸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용기도 없고, 마음에 떠올리기조차 두려워해. 그러니 내가 대신 말할게. 네가 불행한 이유는…
“일어서십시오.”
하스펠 신부가 선언했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일어섰다. 릴리가 카인의 팔을 붙들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나지막한 목소리. 카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몸을 떨고 계셨습니다.”
다시,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릴리가 실망하며 앞을 바라보려는 찰나, 카인이 이쪽 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릴리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카인이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을 살짝 꾸물거리며 문양을 그렸다.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그러니까 기습해야 하거나 공격받고 있을 때 보안국 요원끼리 나누는 비밀 암호다.
‘경계.’
미사는 이제 정화의 의식으로 넘어갔다. 큰 행사에 가기 전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축복받기 위해 영혼을 깔끔하게 정돈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종들이 접시에 약품을 덜어 넣었다. 뼛가루를 섞어 구운 흰 접시로, 뜨거운 열에도 제법 잘 버텨낸다. 다음으로 축복받을 이들의 신체 부위를 조금 넣는데, 머리카락 한 가닥이나 깔끔하게 자른 손톱과 발톱 조각이면 충분하다.
불을 대기가 무섭게 접시가 불타올랐다. 정향과 계피, 후추와 유황 냄새가 풍기더니,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꺼졌다. 남은 것은 하얀 잿가루뿐이다.
봉쇄수도원의 수사들과 이단심문소의 시종들이 환자들의 머리맡에 섰다. 윌리엄 대주교 쪽에는 하스펠 신부가 섰다. 손끝에 잿가루를 바른 다음 하스펠이 기도를 올렸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돌아갑니다. 죄 역시도 그렇습니다. 죄가 사람 안에 고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죽었으되 살았고 살았으되 죽은 신의 날갯짓으로 그대를 정결히 하리다.”
정오의 태양이 수도원의 유리 천장 너머에서 빛을 보내 주었다. 윌리엄 대주교가 부모를 알아본 갓난아기처럼 해맑게 웃었다.
첫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머리맡에 선 자들이 각자의 손가락에 재를 묻혔다.
두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하스펠 신부를 시작으로 모든 이들이 환자의 이마와 머리에 재를 발라 주었다. 죄가 이미 씻겨나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맑고도 맑은 영혼이라는 뜻이다.
예배당 안이 밝아졌다.
높은 바위산 분지에 지어진 수도원. 시간은 정오. 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수도원이나 예배당보다 하늘에 더 가까운 것만은 사실이다. 화사한 빛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아플 정도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