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화
희망퇴직 (3)
시장은 투덜거리면서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다.
옷단 사이에 가축 내장을 집어넣었다. 지나치게 채워 넣으면 옷 사이로 흐를 터이니 조금 여유를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윽고 상의와 하의에 속이 충분히 채워졌다.
마지막으로 카인이 돼지 방광을 꺼냈다. 내용물을 집어넣고 끄트머리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상의 윗단에 얹어 놓자 그럭저럭 사람 머리 크기는 되었다.
머리에 아교를 바르고, 괴츠의 잘려 나간 머리와 수염을 이어 붙였다. 나무 형틀에도 아교를 바르고 머리와 상하의를 부착한 다음 쇠사슬을 채웠다.
상하의의 헐렁한 이음새와 손과 발 부분에 피에 젖은 자루를 씌우는 것으로 끝이 났다.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 문제가 있었지만, 밧줄로 단단히 결박하자 그럴싸했다.
“그냥 나무 인형으로 해도 되지 않았겠소?”
“사람 모양 나무 인형이 흔합니까.”
카인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가서 병사 여섯 명 불러주십시오. 호송 마차 시청 밖에 대기시키시고요.”
이번에도 시장은 시키는 대로 했다.
긴장한 표정의 병사 여섯이 냉큼 달려왔다. 이윽고 그들은 머리와 수염이 박박 잘린 괴츠와, 바닥에 나뒹굴며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여섯 분. 축하합니다.”
병사들이 영문 모른 채 카인을 바라보았다.
“이 덩어리 호송 마차에 실으시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엑센부르크로 달리세요. 사흘 밤낮으로 달리면 갈 수 있으니까.
왜 왔냐고 하면 제국 보안대 카인 요원 이름 대십시오. 충고하겠는데,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괴츠 부하 놈들 표적이니까, 살고 싶으면 빨리 달리셔야 할 겁니다.”
“예…?”
병사들은 어이없어했다. 카인은 시장을 바라보았다. 시장이 호통을 내질렀다.
“당장 해! 봉급 까기 전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병사들이 뛰쳐나갔다.
세 시간 후, 여객용 짐마차 한 대가 유유히 시청을 빠져나왔다. 제국 보안대 문양이 박힌 마차는 여전히 시청 뒷마당에 방치된 채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 짐마차는 제국 수도에 다다랐다.
* * * * *
국가를 막론하고 ‘정보 수집 기관’이라 하면 음침함과 비밀주의, 어두운 고문실과 고도로 훈련된 비밀 요원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제국 보안대 본청 건물을 보고 놀라곤 한다. 뒤편은 널찍한 정원이고, 앞은 번화가에 시장까지 있으니까. 심지어 일 층 건물은 자유로이 방문과 탐방도 가능하다.
물론 ‘제국 보안대’라고 하면 모두가 몸을 떨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과거,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제국과 공화국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 그리고 극적인 휴전 끝에, 세력을 불려가던 북부의 마왕과 생사를 건 혈전을 벌이던 시절 말이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보안국장 버네이스는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 시절 보안대 건물은 여기보다 좀 더 은밀한 곳에 있었다.
부하들에게 욕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발길질과 매질을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죄다 잘린 죄인에게서 술 냄새가 풍기고, 신입 수습 요원의 몸에서는 구린내가 풍기며, 선임자라는 놈은 자꾸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와중이라고 해도.
“죄인 괴츠 폰 베어링겐, 대령했습니다.”
카인이 힘겹게 경례했다. 좌우로 도열한 요원들과 경비대원들이 킥킥거렸다. 버네이스가 화를 누르며 물었다.
“술은 왜 먹였냐.”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요.”
“너는 왜 먹었냐?”
“머리가 아파서요.”
“나도 마셔야겠다.”
버네이스가 한탄했다. 히죽거리는 요원들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 당장 처넣어! 뭣들 하고 있냐! 시간이 남아돌아?”
요원들이 괴츠를 붙들었다. 버네이스 국장이 카인을 바라보았다.
“너. 내 방으로 따라와.”
뒤쪽의 여기사에게도 소리를 질렀다.
“넌 씻고 쉬어!”
“예? 이거 불공평한데요.”
카인이 항의했다.
“저도 씻고 쉬고 싶다고요.”
“너랑 쟤랑 같냐!”
“이거 차별 아닙니까?”
“차별 안 하게 생겼냐!”
여기사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꾀죄죄한 얼굴에 핏발 선 눈,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악취. 여기사의 부모가 알았다면 당장 버네이스의 목을 자르려 들었을 터다.
“국장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닥치고 씻어!”
버네이스가 고함을 질러댔는데도 여기사는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카인이 손을 내저었다.
“국장님 말씀하시잖니.”
“알겠습니다.”
여기사가 휙, 몸을 돌렸다. 보안국장은 그제야 여기사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았다.
“야. 설마 쟤도…”
“봐주세요. 쟤도 마셨어요.”
정말 그런 듯했다. 여기사가 다섯 걸음을 걷고 옆으로 픽, 쓰러졌으니까.
“드르릉…”
“돌아버리겠네.”
* * * * *
고함을 바락바락 지르긴 했어도 버네이스는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카인에게 의자에 앉을 기회를 줬으니까.
“이거 뭔지 아냐?”
물론 모질지 않다 뿐이지 화가 안 난건 아니다. 버네이스는 편지 더미를 가리켰다.
“모르겠는데요.”
“항의서. 고소 고발장. 해명 요구 편지야. 대체 막시부르크에서 뭔 짓을 하고 다닌 거냐?”
카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버네이스는 이를 갈았다.
“좋아. 너도 피곤하겠지만 나도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순서대로 하자. 시장한테 노역은 왜 시켰어? 막시부르크 호송 마차는 왜 부숴 먹었냐?”
마지막은 카인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호송마차가 박살났답니까?”
“부순 네가 알지 내가 알겠냐?”
“제가 안 부쉈는데요. 막시부르크 호송 경비병들이 놓고 도망갔나 보죠. 혹시 경비병 중 누군가 죽었습니까?”
“안 죽었어. 날강도 괴츠 부하들이 습격하자마자 무기고 투구고 다 내버리고 도망갔단다. 그러니까 무슨 일 있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봐. 괴츠놈 인형까지 만들어 미끼로 쓴 이유는 뭐고, 보안국 마차는 왜 막시부르크에 두고 왔는지를.”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카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날강도 기사 괴츠를 잡은 이야기. 보복을 두려워한 시장이 빨리 치워주기를 바란 이야기. 부득이하게 가짜 고기 인형을 미끼삼아 먼저 보내고, 짐마차로 갈아탄 다음 셋이서 오붓하게 돌아온 이야기.
“너. 너 이 새끼…”
버네이스가 오른손으로는 목덜미를 잡고 왼손으로는 편지 더미를 뒤적거렸다.
“대도시에서 왜 요금 청구서를 보냈나 했더니…도시마다 마차하고 말을 죄다 바꿔가며 왔냐? 심지어 대여한 것도 아니고 ‘구매’까지 해 가면서?”
“수도보다 저렴하던데요.” 카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대여는 기록이 남잖아요. 구매는 안 남죠.”
“구매 기록을 안 남기겠다는 새끼가 청구를 죄다 ‘제국 보안국’ 앞으로 달아 놨어?”
“현금이 없는 걸 어찌합니까.”
“술은? 그것도 설마…”
“하스부르크에서 마차 사니까 얹어주던데요. 괴츠놈도 힘들어하고, 숫돌이도 되게 피곤해하고, 저는 목이 마르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버네이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숫돌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내가 인마…!”
“아. 그러면 백혈기사단국 서열 2위 계승자님이라고 불러야 맞습니까?”
“개국공신 가문이 뉘 집 개 이름이냐?”
“‘보안국은 기수뿐이다. 귀족도 평민도 없다 .’이건 황명 아닙니까?”
“그러면 최소한 릴리 요원이라고 부를 수는 있잖으냐!”
버네이스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카인, 인마. 내가 너한테 많은 걸 바라냐? 품위. 제발, 품위! 품위만 좀 지켜달라고 내가 대체 몆 번을 이야기했냐?”
“국장님.” 카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시겠지만 전 배운 거 없고 무식한 시골 깡촌놈이라서, 그런 거 모릅니다. 운 좋게 시험 붙어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우리 아름답고 지혜롭고 용맹한 릴리 요원님 돌보미 노릇에, 다른 부서 놈들처럼 우아한 검술로 제국의 공적들 딱딱 때려잡고, 멋지게 호송해서 데려오는 거. 그거 다 못 한다고요.”
“위엄이라는 게 안 서잖냐.” 이제 버네이스의 말은 타이르는 것처럼 들렸다.
“위엄이라고요?” 카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자신도 많이 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제가 막시부르크에서 보고 겪은 게 뭔지 아십니까? 막시부르크 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일 년 동안, 수도 밖을 반나절 거리만 벗어나도! 아무도 제국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황실도 두려워하지 않고 법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요!
저 날강도 괴츠 같은 놈이 결투법 악용해서 사람들 등쳐먹었어도 잘나신 선제후들께서는 입도 벙긋 안 해요! 성? 세상에, 저런 새끼도 자기 성이 있습니다! 해자에다가 도개교까지 갖추고 있고요!”
“너 말조심해. 선 넘지 말아.” 버네이스가 눈을 번득였다. 하지만 카인은 더 가기로 결정했다.
“선이요? 선을 말씀하십니까? 시골 촌구석 놈들도 수도 보안국보다 동네 시정잡배 깡패놈을 더 두려워하는데, 대체 무슨 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괴츠가 좀 큰 놈이긴 했지만, 비슷한 놈이 제국에 열 명도 더 넘습니다! 조무래기 깡패 기사 놈들 합치면 백 명도 넘고요! 그때마다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너 같은 놈들이 길거리에서 나뒹구는 거 아니야, 새끼야! 질서 잡으라고! 그걸 아는 새끼가 괴츠놈한테 독주나 처먹기고 여기까지 데려왔어?”
“안 그랬으면 릴리하고 전 죽었습니다!”
“그만하자. 그만.” 버네이스가 혀를 찼다. “너. 씻고 쳐 자. 그리고 내일 와서 시말서 제출해.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국장 앞에서까지…”
규칙은 규칙이다. 이런 불손은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역시 버네이스는 모질지는 못했다. 내심 카인을 너무 몰아붙인 건 아닌가 후회중이었다.
사실 괴츠 체포는 모든 요원이 꺼려했던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그는 무공 훈장도 받은 제국 기사. 보안국이라 해도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면 그를 체포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거기에 괴츠는 도둑이다. 그리고 보안국의 요원들은, 눈앞의 개망나니를 빼면 모두 크고 작은 귀족 가문 자제들이다. 그 말은, 신분이 노출되면 그들의 영토가 참담한 보복을 당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괴츠의 도둑 떼는 백 명도 안 될지라도, 날강도 기사들이 어떠한 연합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보안국이 무리하면서까지 이들의 야합을 ‘국가 내란’으로 규정한 근거이기도 하다.
똑똑.
노크 소리에 국장의 상념이 끊겼다.
“뭐야.”
부관이 들어왔다. 얼굴이 확 굳어 있었다. 보안국 요원치고 표정 관리 못 하는 사람 없기에, 그러한 표정은 예사롭지 않은 신호였다.
“급한 서신입니다.”
당연히 서신은 뜯어져 있었다. 보안국에 오는 모든 편지는 안전 검열을 거친다. 보름에 한 번 꼴로 개봉선을 따라 뱀독을 바른 면도칼이 숨겨진 편지가 배달되는 와중이니 당연한 조처다.
“뭔데.”
“괴츠 폰 베어링겐에 대한 탄원서가 도착했답니다. 서명한 귀족만 백 명이 넘습니다.”
“미친 새끼들.”
버네이스가 손을 내저었다. 나가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부관은 나가지 않았다.
“더 있습니다. 법무 대신께서…”
“제발.”
“물증이 없으면 풀어주랍니다. 즉시.”
“물증은 없어도 증언은 확보했다고 해. 날강도 기사들에게 당한 도시들만 열 개가 넘어가잖아. 그 도시에서 확실한 피해에 대한 보고를…”
“그게 탄원서 내용입니다.” 부관이 이를 악물었다. 카인의 술이 확 깨었다.
“자기들이 피해를 본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의견 차이가 있었답니다. 자기들은 괴츠를 수장으로 한 기사단에 일정한 투자 명목으로 합법적 지불을 한 것이지 ‘날강도’ 처럼 돈 뜯긴 게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버네이스가 책상을 짚었다.
“그 말은, 그러니까…”
“저희는 괴츠를 붙잡아 놓을 명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막시부르크는?”
“시장도 탄원서에 서명했습니다. 서신까지 보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얼마나 더 있냐?”
“무슨 말씀이신지…”
버네이스가 책상 아래 숨겨둔 술병을 꺼냈다. 포장을 벗겨내고 한 모금 들이켰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개 같은 소식이 얼마나 더 있냐고.”
“하나 남았습니다.”
“뭔데.”
부관이 입술을 깨물었다.
“괴츠 폰 베어링겐이 보안국을 고소하겠답니다. 불법 감금 혐의로요. 특히 카인 요원에게는 별도로.”
“그 새끼 대가리 지금이라도 깨부술 수 없을까?”
버네이스가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카인 요원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훑었다.
“버네이스 이로워치 보안국장님.”
“소름 돋아, 인마. 누가 그렇게 부르래? 새삼스럽게…”
한 모금을 더 마시려던 버네이스의 손이 멈췄다. 카인의 얼굴은 묘하게 평온해 보였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뭘 그만둬.”
“보안국 그만둔다고요. 저 더는 못 해 먹겠습니다.”
잠시 후, 보안국장실 앞을 지나가던 요원들은 놀라 도망쳐야 했다. 국장실 안에서 온갖 집기가 다 튀어나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