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몰락 보고서-2화 (3/47)

제 2화

희망퇴직 (2)

막시부르크 시청.

막시부르크는 별 볼 일 없는 도시다. 중심 교역로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는 데다 연평균 물품 거래량도 보잘것없다.

그나마 막시부르크가 상업 도시로 분류되는 이유는, 막시 주 전체에서 평지라고는 이곳밖에 없어서였다. 나머지는 산과 숲과 늪 아니면 분지에 계곡이니, 넓은 도로는 고사하고 사람 여럿 모여 살기조차 어려웠다.

국경지대라면 차라리 투자라도 많이 받았을 것을, 이곳은 제국 중심부와 국경지 사이의 애매한 유휴지대다. 제대로 훈련된 경비병은 고사하고 유치장조차 부실하다는 의미다.

성인 남자가 살짝만 힘을 주면 박살 날 문은 둘째치더라도, 안에 가득 쌓인 잡동사니는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을 노릇이었다.

결국 지팡이 사내는 시장을 돌아보았다. 시장이 이를 부딪치며 덜덜 떨고 있어서 두 번, 세 번 말해야 했다.

“잡동사니 다 치우시고. 문은 대충 잠그십시오. 병사들 시켜서 안에 든 거 다 빼라고 해요.”

법적으로만 따지면 제국 보안국은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지팡이 사내가 막시부르크 경비병의 지휘권을 인수하여도 문제는 없다는 의미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간 혹독한 항의와 비판에 시달릴 것이다. 언제든 황위에 오르고 싶어 하는 선제후들, 공작들, 기사 공국의 수장들로부터 말이다.

지팡이 사내도 그런 사정은 다 알고 있었지만, 시장이 애처로울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니 별도리가 없었다.

“저, 저, 기사가 풀려나면 어떻게 합니까…? 저 밧줄이 괴츠 경을 얼마나 오래 결박할 수…”

괴츠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결박당해 있었다. 머리를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혹이 주렁주렁했다. 깨어나기만 하면 발광을 해대니 어쩔 수가 없었다.

“범법자에게 경, 이라는 호칭은 안 붙이셔도 됩니다. 저자는 제국의 배신자이니 즉결 처형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그 말에 경비병들이 화들짝 놀라 지팡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애처롭기까지 하다. 시장은 톡 건드리면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저기. 나으리…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되도록 조용한 곳에서…”

지팡이 사내는 고개를 내젓고 싶었다. 대신 목을 틔웠다.

“그러면 저기 시청 밖에 ‘숫돌이’ 좀 불러주십시오.”

“어,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장의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숫돌이라니. 사냥개라도 데려온 것일까? 다행히 지팡이 사내는 정정해주었다.

“아. 어, 죄송합니다. 음, 그…저와 같이 온 요원을 불러주십시오. 제가 불렀다고 하면 올 겁니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숫돌이인가. 시장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명령받고 나간 경비병이, 꺽다리 여자를 데려왔다.

지팡이 사내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다. 얼굴은 더 작았으며, 사내의 허리 부근에 엉덩이가 올 정도로 다리가 길었다. 금발 머리카락은, 바짝 틀어 묶기는 했지만 풀어 헤친다면 꽤 아름다울법 하다.

“부르셨습니까.”

목소리는 놀랄 만큼 가녀렸다. 그제야 시장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몸에 비해 얼굴이 어렸다. 볼살이 통통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칼 있지?”

“있습니다.”

“저놈 어깨에 칼 얹고 있다가 발광하면 한 번 경고하고, 그래도 발광하면 그냥 목을 쳐버려.”

“알겠습니다.”

군인보다도 딱딱한 목소리. 이것 역시 부조화였다. 목소리는 완전히 소녀인데, 말투는 신참 군인의 그것이다.

다리만큼이나 길쭉한 팔이, 보통 제국검보다도 훨씬 얇으면서도 섬뜩한 날을 품은 검을 빼 들었다. 스릉,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시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으로 긴 다리 여자와 지팡이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내는 친절하게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 * * * *

사내는 차를 거절했다. 시장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불난 집에 양동이로 물 뿌리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목이 탔는지 연신 캑캑거렸다.

“괴츠 폰 베어링겐 경을 체포해 주신 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지팡이 사내는 ‘경’ 자를 빼라는 지적을 또 하지는 않았다. 꽥 소리 한 번만 지르면 시장은 놀라 기절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즉결 처형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저 반역자 놈 하기에 달렸죠.”

“저. 저기. 나으리…”

“카인.”

“네?”

“그냥 카인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보안국 요원들은 고유 별명을 쓰거든요. 그러니 그냥 카인 씨, 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시장은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하긴 막시부르크는 왜소하다. 말이 좋아 시장이지, 막시 주를 벗어나면 거기가 어디냐, 공화국에 붙어 있는 도시냐는 힐난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리라.

그러니 막시부르크에서 평생을 살아온 시장이 수도에나 있는 보안국 사정에 어두운 건 당연하다.

그러나 시장은 막시부르크를 사랑했다. 농부가 제 땅 밖의 일은 몰라도, 울타리 안의 일에 대해선 개미굴 위치까지 다 아는 것처럼 말이다.

“처형하신다면 막시부르크 경계 밖의 공도에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카인은 시장을 바라보았다. 시장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왜요. 저 날강도 부하들이 쳐들어오기라도 할까 봐 그러십니까?”

“당연하죠. 이미 전적이 화려하잖습니까.”

괴츠는 자신만의 성이 따로 있다. 작은 성이지만 해자도 있고 교두보도 있는, 있을 건 다 있는 성이다.

부하들은 줄잡아 오십 명은 넘고 백 명은 안 넘는다고 했다. 문제는 놈의 거점이 대체 어디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괴츠 패거리는 일정한 거점이 있으니 언제든 원할 때마다 군소 영지를 마음껏 괴롭힐 수 있다.

“그래서요?”

“그러니 압송할 거면 빨리 해 주십시오. 처형할 거면 시 밖에서.”

“시장님.” 카인이 손끝을 모았다.

“두 가지 모두 어렵습니다. 첫 번째. 저는 병사가 없습니다. 데려온 건 저 숫…수습 요원 한 명뿐이죠. 보셨겠지만 사람 구실 하려면 좀 부족합니다. 저하고 저 친구 두 명이 괴츠의 부하를 죄다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저는 적어도 막시부르크에 호송 마차 한 대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기록에도 분명히 나와 있고요. 그런데 호송 마차라고 있는 걸 보니 세 살짜리 어린애도 열고 나올 정도로 허술하더군요.”

막시부르크 시장은 그저 끙, 하며 앓는 소리만 내었다. 카인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가 방안을 제시하죠. 첫 번째는 여기에서 즉결 처형을 하고 목을 내 거는 겁니다.”

“말도 안!” 시장은 카인의 눈치를 보고 말을 굽혔다. “됩니다.”

물론 카인은 긍정으로 듣지 않았다.

“좋습니다. 두 번째. 서신을 띄우죠. 가까운 제국 헌병단에 부탁해 호송을 의뢰하는 겁니다. 제 계산으로는 적어도 일주일 정도 저 지하 감옥에 썩고 있으면 와서 데려올 것 같은데요.”

“그건 더더욱 안 됩니다, 안 되고말고요!”

시장은 결국 꽥 소리를 질렀다.

“괴츠의 부하 놈들이 여기를 당장 쳐들어올 겁니다! 물론 두건을 쓰고 오겠죠. 에부르크, 로파부르크, 드버부르크! 세 도시가 어떻게 박살 났는지 나도 들었단 말입니다! 막시부르크를 그 꼬락서니가 되게 둘 수는 없어요!”

카인은 시장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시장도 그 눈빛의 의미는 읽어내었다. ‘그러면 뭘 어쩌라고?’

“괴츠 경을 데리고 나가주십시오. 지금 당장이라도 말입니다.”

“그렇게나 두렵습니까?”

시장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요원님.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황제에 대한 불충으로 들으셔도 할 말 없습니다만, 저 수도의 휘황찬란한 권력보다, 괴츠 경의 부하들이 한밤중에 들이닥쳐 불을 지를 일이 더 두렵습니다. 파괴는 한순간이지만, 법과 정의는 수도에나 있지 않습니까.”

시장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카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눈썹을 꿈틀거리지도 않았고 ‘감히 그런 망발을!’이라며 일어서지도 않았다.

대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뭐지? 짜증? 괴로움? 피로감?’ 자기 아들뻘이나 될까 싶은 젊은이의 표정인데도 읽기가 어려웠다.

“알겠습니다.”

카인이 의자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내리쳤다.

“저놈을 당장 치워드리죠.”

“정말이십니까?”

“정말입니다. 대신에 반나절 정도 준비를 좀 해야 합니다. 협조를 좀 해 주셔야겠는데요.”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이 훌륭한 보안국 요원이 요청하는 건 뭐든 다 들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요청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 기억하셨습니까?”

“당연, 당연하죠.”

“그러면 유치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실례하지요.”

카인이 일어서서 방문을 열고 나갔다. 시장은 잊어버리기 전에 그의 요청을 재빨리 철필로 눌러 적었다.

열린 방문을 희미하게 바라보다가, 시장은 한시름을 돌렸다. 비서관을 부르기 전에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한숨 돌릴 여유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대체 뭐야, 저 놈?’

요청 사항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그 말을 하던 카인 요원의 표정은 더 기이했다.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어진 시장이 종을 울렸다.

언제나처럼 비서관이 들어왔다. 묘하게 우울한 얼굴의 늙은 비서관이다. 문득, 시장은 비서관의 얼굴이 카인의 표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짙은 권태감이었다.

* * * * *

도시 사람들 모두가 괴츠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증오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다행스럽게도 푸줏간 주인들도 있었다.

“요청하신 물건들입니다.”

푸줏간의 일꾼들이 큼지막한 자루를 내려놓았다. 자루는 이미 불그죽죽하게 젖어 있었고 철벅거리기까지 했다. 바닥면에서 진득한 피가 흘러나왔다. 일꾼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다음으로 찾아온 이들은 대장장이들이었다.

“가져왔습니다. 부족하시면 말씀해 주시죠.”

나무 양동이 하나에는 아교가, 다른 양동이에는 옷과 밧줄이 놓여 있었다. 아교는 양이 많았다.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긴 한데.”

“도움 되는 일이라면 뭐든 드리겠습니다.”

카인은 기쁘게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넓은 판자가 들어왔다. 보통 판자와 다른 게 있다면, 손목과 발목에 채울 수 있는 구속구가 달렸다는 점이다. 사슬로 연결되어 있어 키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을 듯했다.

“좋습니다. 시장님? 유치장을 비워 주시겠습니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경비병과 일꾼들이 유치장 밖으로 나갔다. 시장도 따라나서려 했다.

“시장님은 계셔야죠.”

“…꼭 그래야 합니까?”

“싫으시면 할 수 없고요.”

시장은 이를 갈면서도 낡아빠진 나무 의자에 앉았다. 카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숫돌아.”

그때까지도 충실한 여기사는 괴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어떻게 경고했는지, 괴츠는 눈을 부라리면서도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

“말씀하십시오.”

“칼 집어넣어. 가위하고 면도칼 가져왔으니까, 저놈 머리털하고 수염 다 밀어버려.”

‘숫돌’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군소리 없이 칼을 집어넣고 가위와 면도칼을 집어 들었다. 괴츠는 반항하려 했지만, 카인이 지팡이를 쓱 들어 올리자 침묵했다.

“시행합니다.”

딱딱한 말투와 달리 손놀림은 서툴기 그지없었다. 가위는 잘 들지 않았고, 괴츠의 머리는 잡초처럼 잘려 나갔다. 잡초를 날 빠진 가위로 자르는 것처럼. 괴츠의 눈이 타올랐지만,

“우리 숫돌이가 남자 머리하고 수염은 처음 자르거든? 너 잘못 움직였다간 머리 가죽이나 혈관 나간다?”

라는 경고에 찔끔하며 눈을 감았다.

“저. 요원님?”

“예.”

“저분의 요원 명은 숫돌입니까?”

숫돌은 표정 한 번 변하지 않았다. 카인은 무슨 미친 소리 하느냐는 투로 시장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니죠. 별명입니다.”

“그러면 저분은…”

“아셔서 좋은 것 없을걸요.”

“그러면 저분은 뭐라고 불러야…”

“왜 굳이 부르려 하십니까?"

시장은 찔끔하며 여기사의 눈치를 보았다.

앳된 얼굴의 기사는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이윽고 면도와 이발이 끝났다.

“고생했다.”

여기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닙니다.”

“계속 감시해.”

“알겠습니다.”

아까와 똑같이 기계적으로 여기사는 칼을 빼 들었다. 카인은 팔을 걷어붙였다. 시장이 다시금 멍청한 눈으로 제국 요원을 바라보았다.

“저와 일 하나 같이 하시죠. 시장님.”

“어. 뭡니까?”

“이거요.”

시골이나 다름없는 도시 막시부르크의 시장다웠다. 카인이 자루를 열자 돼지와 소의 내장과 잡고기 부위가 그대로 드러났어도, 시장은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으니까.

“숫돌아. 역하냐?”

“아닙니다!”

“토할 것 같으면 말해라.”

“알겠습니다!”

괴츠가 찔끔거렸다. 여기사는 분명 냄새에 괴로워하고 있었는데도 우렁차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 때문에 칼끝이 목을 슬쩍슬쩍 베는 것만 같았다.

카인은 대장장이들이 건네준 옷을 끄집어냈다. 옷소매와 바짓단 끄트머리를 여러 번 꼰 다음, 밧줄로 단단히 동여매었다.

“뭘 하시려는 거요?”

“저하고 소시지 하나 만드시죠. 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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