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저, 적에게 사로잡히셨습니다.”
“아,”
샤론 군주가 쓰러졌다.
“군주님!”
깜짝 놀란 나는, 샤론 군주를 부축했다.
“으응···”
다행히 의식은 있는 듯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식에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군주님, 괜찮으십니까!”
“······”
“뭣들 하느냐! 어서 군주님을 방으로 모시지 않고!”
위로그 총관의 고함에, 시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녀들이 군주를 업고는 방으로 사라졌다.
“전령은 들어라!”
“예, 총관님!”
“자세히 말해보아라!”
“예, 상황을 말씀드리면···”
전령이 당시의 상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전령의 말은 이랬다.
로도스에서 출발한 지 불과 3일 만에, 마몬족과 맞닥뜨렸다고 한다.
북방의 영토가 아니었다.
북쪽 보호막을 통과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몬족이 군대를 이끌고, 요격하러 나온 것이다.
3일째 저녁, 마몬족과 로도스군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의 결과, 로도스군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마몬족 수십만 마리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줄행랑친 것이다.
이에 총사령관 다비온이 놈들을 쫓을 것을 명했다.
로도스군은 혼신의 힘을 다해, 놈들을 쫓았다.
그러다 절규의 언덕에 다다랐을 때쯤이었다.
다비온 경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다비온 경께서 적들의 함정을 단번에 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절규의 언덕을 돌아가는 우회 전략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섯 개의 길을 모두 막은 후, 적군을 압박하는 전술이었습니다. 단 한 개의 퇴로만 열어두신 겁니다.”
다비온 경의 작전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고립무원에 빠진 마몬족은 동요했고,
퇴로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호리병 같은 길목에 적들이 꽉 들어찼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미 앞, 뒤로 나눠진 로도스군은, 양 사이드에서 치기 시작했다.
적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륙당했다.
로도스군의 대승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
뭔가가 나타났다.
- 우우우우우우우~
눈물이 날 정도로 구슬프고 처량한 마수의 울음소리였다.
마족과 마수의 혼혈이며, 무라칸의 권속인 화이트 울프였다.
***
“악마와의 전쟁 중에 마족이 출현한다고?”
위로그 총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기본적으로 악마와 마족은 서로를 경원시했다.
고로, 서로의 일에 간섭하거나 개입하는 일이 지극히 드물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마몬족은 이미 화이트 울프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마족이 악마를 지배한다니, 쉽게 납득이 안되는군.”
“그건 저도···”
“계속 말하라.”
“네, 총관님. 화이트 울프가 나타났지만, 우리 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다비온 경이 적군 깊숙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니 왜!”
“뭔가를 보고는 굉장히 흥분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저도 잘,”
“흠,”
“다비온 경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수뇌부가 그분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함정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뇌부까지 전멸하자, 지휘부가 공백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희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1 단장님이 저를 전령으로 보내셨는데··· 제가 출발할 때쯤, 우리 군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습니다.”
“크윽,”
위로드 총관이 침음을 삼켰다.
다비온 경과 수뇌부가 무너지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비온 경이 대체 무엇 때문에 흥분하셨을까요.”
“글쎄, 다비온 경을 흔들리게 할 정도라면··· 설마,”
위로그 총관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잠시 후, 위로그 총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얘기를 모두 들은 나는,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출격하겠습니다.”
“나도 가겠네.”
“총관님께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병력을 모아주십시오.”
“하지만, 자네 혼자서···”
손을 들어, 위로그 총관을 말을 막았다.
“아직 말씀을 안 드렸군요. 저는 밤이 되면 더욱 강해집니다.”
“허허~ 하긴 자네라면···”
위로그 총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즉시, 제7 기사단을 소집했다.
디폴트 기사장을 비롯한 기사단 전원이 달려 나왔다.
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적과 싸우지 않는다. 너희들의 목표는 뿔뿔이 흩어진 아군을 추스르는 일이다. 알겠나!”
“예, 단장님!!!”
절규의 언덕으로 공간을 개방했다.
내가 들어가자, 제7 기사단이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
새카만 밤하늘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둠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대낮처럼 환히 보였다.
이러한 능력은 그림자 병력도 마찬가지였다.
◈ 그림자 군왕 : 그림자 군왕(5), 그림자 대공(25), 그림자 공작(3/125), 그림자 후작(100/625).
발타제를 비롯한 고위급 병력만 소환했다.
그런 후, 바닥을 박차고 하늘 높이 비상했다.
끝도 없이 높이 높이 치솟았다.
지상이 한눈에 보이자,
체공 상태에 머물렀다.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는 로도스군이 포착되었다.
크게 보아, 10여 개의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지상으로 내려갔다.
(그림자 군왕은 들어라.)
(예, 주인님!!!)
(위험에 처한 로도스군을 구하라. 그리고 흩어진 로도스군을 모두 이곳에 집결시켜라.)
(예!!!)
그림자 병력이 다섯으로 나뉘어 흩어졌다.
“디폴트 기사장.”
“예, 백작님.”
“흩어진 병력이 곧, 이곳으로 모일 거다. 너는 이곳에 남아, 모든 병력을 수습하라.”
“예.”
“그리고 언제든 출전할 수 있게 진용을 갖춰라.”
“예, 알겠습니다.”
대충 지시가 끝나자 주위를 살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로도스군을 향해 순간 이동했다.
***
갑자기 나타난 화이트 울프와의 전투.
다비온 경은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바로 하이퍼 스피릿 울트라였다.
“덤벼라!”
다비온 경의 신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10m 크기로 거대화되었다.
강력한 힘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바닥을 박찼다.
그렇게 화이트 울프와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쾅! 쾅! 쾅! 쾅! 쾅!...
“죽어라!”
다비온 경이 화이트 울프를 압도하고 있을 때였다.
- 우우우우우우우~
멀리서 또 다른 울프가 나타났다.
“사령관님, 피하셔야 합니다.”
부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상대 중이던 화이트 울프를 처리할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화이트 울프의 모습이 변화더니,
드래고니안이 되었다.
3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다비온 경은 그녀를 본 순간,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마치 천만 볼트의 뇌전에 직격당하는듯한 충격이었다.
“사령관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부관이 소리쳤지만,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사령관님!”
“퇴, 퇴각하라.”
그가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때, 여성이 도망쳤다.
대 여섯 마리의 화이트 울프가 달려오는 곳으로 말이다.
다비온 경은 뭐에 홀린 듯 그녀를 쫓아갔다.
- 크르릉~
대 여섯 마리의 화이트 울프와 정면에서 마주쳤다.
부관은 어쩔 수 없이, 다비온 경을 남겨둔 채 퇴각해야만 했다.
이미 화이트 울프뿐만 아니라,
수많은 마몬족들에게 포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비온 경은 그렇게 놈들에게 붙잡혔다.
***
“허억! 허억! 허억!”
고통스러웠다.
시뻘건 채찍이 몸에 닿을 때마다 살갗이 쭉쭉~ 벗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다녀왔어요.”
“아이쿠, 어서 오렴 우리 공주님~”
“아빠, 이건 뭐예요?”
“케이크란다.”
“케이크?”
“우리 공주님 생일날 먹는 요리지요.”
“생일요? 생일이 뭐예요?”
“우리 공주님, 태어나신 날이죠.”
참으로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다.
“아리온, 이쪽으로 오세요. 아빠 귀찮게 하면 못써요.”
“힝~ 아리온은 궁금한 게 많아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과 눈앞의 여성이 겹쳐졌다.
다비온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참담함에 몸서리쳤다.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 촤아악~
채찍이 살갗을 찢었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고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비가 주르륵~ 내리는 날, 악마들이 성에 침범했어. 악마들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을 것 같아?”
채찍질하던 여성이 자신의 옷을 훌러덩 벗었다.
알몸의 상태가 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죽었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엄마와 오빠 그리고 언니들까지··· 가족들이 눈앞에 산 채로 씹어 먹혔어. 공포스러웠지만, 난 그때도 당신만을 믿었어.”
여성이 다가오더니 고개 숙인 다비온 경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 구해주세요. 제발, 아리온을 버리지 마세요. 흥! 그러다 결국, 다 죽어버렸지. 우리 가족은,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그토록 애원했지만··· 결국, 다 죽었다고···”
여성이 다비온 경의 머리채를 잡더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똑똑히 봐, 다비온! 내 몸을 똑똑히 보라고!”
여성의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 되어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처참할 지경이었다.
“악마들이 내 배를 가르고 내장을 씹어먹었어, 나는 그때도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빌었지. 아빠가 구해줄 거라고, 아빠가 반드시 구해줄 거라고··· 내 몸에 그려진 흉측한 상처들? 이건 당신 짓이야. 바로, 당신 짓이라고!”
여성이 다비온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다비온의 얼굴이 곤죽이 되었다.
“쉽게는 안 죽여. 내가 겪은 고통? 아니, 우리 가족이 겪은 고통의 만 분의 일이라도 겪게 해줄 거야. 다비온, 당신은 혼자서라도 우릴 구하러 왔어야 했어. 당신의 그 알량한 충성심 때문에, 우린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 했으니까.”
여성이 다비온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참을 입 맞추던 그녀가 다비온 경의 입술을 통째로 뜯어냈다.
엄청난 고통이 휘몰아쳤지만, 다비온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것 역시 자신이 응당 겪어야 할 고통이라 여겼다.
“오, 다비온~ 날 죽음에서 구해준 무라칸님께, 당신의 영혼까지 끄집어내서 바칠게요. 그러니 이제부터 기대하세요.”
여성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토록 용맹하던 로도스 왕국의 100만 대군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모두 멈춰라~~~~~”
미친 듯이 도망치는 그들의 앞에서 고함을 질렀다.
고함 소리는 세상이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공포에 질려있던 로도스군을 일깨울 만큼 강력한 소리였다.
“사령관, 태리 백작이다! 이제부터 내가 함께할 것이다!”
태리 백작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로도스군의 발길이 뚝! 멈췄다.
로서와 테사다르 그리고 12군단장을 물리친 전쟁의 용사.
악명 높은 베스 제국을 몰락시킨 불멸의 전사.
수천이 넘는 프로미아인들을 해방시킨 자유의 투사.
로도스 왕국의 수호 기사이기도 한 불세출의 영웅.
“태리···”
“태리!”
“태리!!!”
“태리!!!”
“태리!!!”
누군가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 연호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급기야, 이곳에 있던 모든 로도스군이 함께 외쳤다.
나는 그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내가 그들을 믿고 있는 것만큼, 그들도 날 믿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