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를 꼽으라면 누구나 다 1악, 카오스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비견될 수 있는 헌터를 꼽으라면 누구나 다 육명왕을 꼽을 것이다.
7년 전 실종된 신화 클랜의 창절을 제하고, 현재 육명왕에 오른 인물은 볼케이노였다.
볼케이노 정태진.
5대 원소 중 불의 헌터로.
불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빌런 단체의 수장이었다.
1악과 마감청 청장, 그리고 사방신 길드장을 제하면, 우리나라에서 그랜드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사실, 그랜드라는 어마무시한 강자들은 현세에서 잘 활동하지 않았다.
과거, 그랜드를 달성한 카오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
- 그랜드는 모든 헌터들의 정점이다.
- 그랜드에 오른 자는 선악을 떠나, 그랜드라는 압도적인 등급을 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카오스가 한 말이 맞았다.
그 후 그랜드에 오른 마감청 청장이 그랬고, 사방신 길드장이 그랬다.
그들은 오로지 그랜드를 넘기 위해 수련할 뿐이었다.
그래서 1악과 육명왕은 현세에서 항상 열외로 취급되었다.
어차피 마주칠 일도 없거니와, 살아생전 S 급 게이트에 들어갈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로, 현세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는 마스터 등급의 헌터들이었다.
***
호사가들이 마스터 등급의 헌터들로 순위를 매겼다.
그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100인을 뽑아. 각 조직마다 최강의 8인을 선발했다.
여기서, 굳이 8인을 뽑은 이유는 카오스의 제자가 여덟 명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8귀.
그래서 각 조직마다 8인을 뽑은 것이다.
1악에 8귀가 있다면, 마감청에 8군이 있었고, 청룡에 8용이 있었다.
그리고 백호에 8범, 주작에 8봉, 현무에 8갑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48진이라 칭했다.
***
1악, 6왕, 48진.
이들 중에서 48진은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실세들이었다.
곽철용은 48진 8군에 속한 인물로, 마감청 감찰부장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48진을 떠나, 마감청 감찰부장의 자리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막강한 자리.
그런 그에게 이틀 전, 특급 기밀이 입수되었다.
아주 극비로.
대한민국에 새로운 패스파인더가 출현했다는 기밀이었다.
깜짝 놀란 그는 그 즉시 패스파인더에 관한 모든 정보를 통제했다.
만에 하나라도 사방신 길드나 다른 클랜에 정보가 샌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패스파인더와 함께했다는 팀을 불러 특별 조치를 취했다.
특별 조치라는 것이 말만 그렇지, 별로 특별한 조치는 아니었다.
감찰부장 직속 권한으로 호텔 하나를 잡은 뒤, 그곳에서 호캉스를 즐기게 해주는 조치였다.
물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일절 금지되었다.
당연히, 통화나 SNS도 금지였다.
팀의 리더가 김상헌이라고 했던가.
불과 하루 만에 호캉스를 끝내달라며 아우성쳤다.
지겹고 무료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지금 그들을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이번 일을 누구보다도 빨리 끝내고 싶은 건 곽철용 자신이었다.
마감청 청장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패스파인더가 나타났다고요?”
“예, 청장님.”
“곽 부장.”
“예.”
“패스파인더를 스카우트하는 일은 우리 마감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일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모, 모든 것이라면….”
“그만큼이나 많은 노력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소리지요.”
“아.”
“나는 곽 부장만 믿겠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꼭! 패스파인더를 영입해 오세요.”
“….”
“왜 대답이 없습니까?”
“그게…….”
“걱정 마세요. 내, 곽 부장에게 전권을 드리리다.”
“처, 청장님. 굳이, 그렇게까지.”
“아닙니다. 아니에요. 사양치 마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허허허~ 괜찮대도요. 절대, 부담 갖지 마세요. 부담 가지시라고 전권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아니, 그게….”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꼭! 패스파인더를 영입하라는, 이 늙은이의 작은 소망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아니.”
“그러니 절대! 부담 갖지 마세요. 저는 그저, 우리 곽 부장만 꽉! 믿고 있겠습니다. 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는 마감청 청장.
당황스럽게도 ‘반드시!’와 ‘꼭!’을 유달리 강조했다.
이로써, 패스파인더에 관한 모든 권한이 자신에게 일임되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마감청 청장은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청룡 아카데미의 대선배. 게다가 가디언 시절, 직속상관이기도 했다.
그런 청장의 배려를 차마 거절치 못한 게 오늘의 1패랄까.
덕분에 죽을 맛이었다.
말이 전권이지, 마감청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마감청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가 권력 기관.
재벌의 지원을 받고 있는 사방신 길드와는 차원이 달랐다.
예산의 한계가 명확한 것이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본래 마감청에도 패스파인더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은퇴 아닌 은퇴를 했을 뿐이다.
패스파인더가 없는 마감청은 앙꼬 없는 찐빵.
속 빈 강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패스파인더가 더욱 빛이 났다.
이태민.
이틀 전, 혜성처럼 등장한 패스파인더였다.
***
S급 게이트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마도 문명에 관한 비밀이었다.
마도 문명의 비밀 중에는 행성 파괴와 관련된 비밀도 있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중요했다.
디멘션이 마도 문명의 열쇠라면.
패스파인더는 마도 문명의 지도였다.
***
이태민에 관한 정보들을 아주 세세히 살폈다.
그의 인생을 논하자면, 정말 볼품없었다.
애초에 자신처럼 엘리트로 인정받아 승승장구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실력만 보면 마감청 하급 정도랄까.
더욱이 그는 뭔가 모르게 수상쩍었다.
‘누구냐, 넌.’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셋.
아카데미를 졸업한 뉴비다.
그런 뉴비가 덜컥 클랜부터 창설한다.
클랜 창설.
아주 드물긴 해도, 그렇게 스폐셜한 일은 아니었다.
클랜이야 대한민국 헌터라면 누구나 다 창설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클랜 창설 과정이 누가 봐도 석연찮다는 것이다.
만배상사라는 마석 업체의 퇴역 헌터들을 동원했는데….
여기서 의문.
그는 왜 싸우지도 못할 퇴역 헌터들을 동원한 것일까?
무명 클랜에 소속된 헌터는 다섯.
퇴역 헌터들을 제하면, 이태민이 유일한 헌터다.
이태민 혼자서 게이트에서 사냥한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소리다.
그는 검기도 사용 못 하는 최하급 헌터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누군가 그를 대신해서 게이트에서 사냥한다는 것이다.
무명 클랜의 게이트 성적은 최상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점수였다.
누굴까.
누가 이태민을 돕고 있는 것일까.
이태민이 패스파인더란 사실을 알고, 그를 영입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거라면?
뭔가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퍼즐이 착! 착! 착!
아귀가 딱! 딱! 딱!
들어맞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말 누군가 이태민을 돕고 있는 거라면, 그자를 반드시 막아야 했다.
- 띠리링~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강 실장입니다.”
때마침 강 실장이 찾아왔다.
안 그래도 지금 강 실장을 부르려던 참이었다.
“들여보내.”
“네.”
잠시 후, 안경을 착용한 30대 초반의 사내가 부장실로 들어왔다.
“그래, 어떻게 됐나?”
강 실장은 오늘 이태민을 만나러 갔었다.
곽철용은 지금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강 실장이 이태민과의 대화를 전했다.
이태민은 정식 계약보다 프리랜서 계약을 원했다.
그 대신, 매월 1일.
자신과 계약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다.
곽철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히 본청과 계약한다고 한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의문도 있었다.
“프리랜서라니. 아니, 왜? 2급 공무원이면 차관급 대우인데. 설마, 사방신 길드에서 수작을….”
“저도 그 점 때문에 몇 번이고 확인해 봤습니다만.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닌 것 같으면 안 돼. 무조건 아니어야 해.”
“다시 한번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강 비서의 말에 곽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한 계약은 아니었지만, 우선권도 상관없었다.
S급 게이트를 매달 하나씩만 소멸시켜도 충분한 성과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요구는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강 실장이 상세 조건을 설명했다.
첫째, 자신의 클랜을 D등급에서 S등급으로 상향시켜줄 것.
둘째, 세금을 100% 감면해 줄 것.
셋째, 히든 무기와 히든 슈트를 무상으로 제공해 줄 것.
넷째, S급 게이트 입장 시 매회 1억을 몸값으로 지불해 줄 것.
그 외, 유물과 마정석 등 부산물 분배도 따로 명시해 줄 것.
첫 번째 조건인 클랜 등급 상향은 어렵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오직 마감청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급 헌터 주제에 클랜 상향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역시.”
이태민 주위에 누군가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부장님. 아무래도 이 대표가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잉?”
강 실장의 뜬금없는 말에, 곽철용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 혼자서 게이트 클리어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무슨…. 이 대표 혼자서 말인가?”
“예. 저도 긴가민가해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 후 보고드리는 겁니다.”
“…말도 안 돼. 그는 검기도 쓰지 못하는 자일세.”
“확실합니다.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강 실장 말에 곽철용이 깜짝 놀랐다.
이태민이 실력을 숨기고 있다니.
믿기 힘든 일이나, 그가 거짓을 말할 리 없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이태민 주위에 실력자가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이태민 스스로가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등급 상향이 필요했던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