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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인류 최강-4화 (4/110)

4화

잠시 후, 푸닥거리를 마친 최태식 교관이 수업을 시작했다.

“게이트 내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물과 마수들뿐만이 아니다. 빌런들의 공격에도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수업은 다들 알다시피 대인전이다. 지금부터 각자 자신에게 맞는 장비를 선택하도록.”

진열된 장비함에서 우린 각자 원하는 장비들을 선택했다.

“한 놈, 두 놈,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칠득이, 팔득이, 구공탄, 십장생… 어라? 왜 한 놈이 비냐?”

“….”

교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카데미 내에서 개인 간 싸움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장! 왜 대답이 없어!”

“조… 조태진이는 양호실 갔습니다.”

“누구 맘대로 양호실 가!”

“그게….”

“신경식! 너 조장이 돼가지고 애들 관리 이따구로 할래!”

신경식이 깨지자 조금 미안해진 난, 교관에게 이실직고 말하기로 했다.

“싸웠습니다.”

“뭐?”

“조태진이랑 싸웠습니다.”

“지금 싸웠다고 했냐?”

“예, 제가 한 대 때렸습니다.”

“오호~ 이 새끼 봐라.”

교관이 다가왔다.

“이태민~”

“예.”

“조용하던 놈이 갑자기 왜? 니가 조태진을 왜 때려?”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큭… 먼저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몇 대 때렸어?”

“한 대 때렸습니다.”

“한 대 때렸어?”

“예.”

“한 대만 때렸는데 양호실까지 갔다고?”

“예, 한 대만 때렸습니다.”

“큭… 이 새끼 봐라. 그 말을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해. 몇 대 때렸어?”

“딱 한 대 때렸습니다.”

“이 새끼가. 어이~ 조장!”

“예!”

“이 새끼, 몇 대 때렸어?”

“…한 대… 때렸습니다.”

“진짜? 치고받고 싸운 게 아니고?”

“예.”

“흠. 그러니까 겨우 한 대 맞고 양호실까지 갔다는 거네. 이런 썩을, 조장!”

“예.”

“조태진이 그 새끼, 다음 시간에 나한테 죽었다고 전해! 알았어!”

“예.”

“그리고 이태민, 아카데미 내에서 개인 간 싸움은 금한다. 어쨌든, 학칙을 어겼으니 일주일 동안 훈련실 청소다.”

“예, 알겠습니다.”

“가서 무기 골라.”

교관과 대화하는 바람에 남은 무기가 창 한 자루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창을 선택해야 했다.

“뭣들 해! 준비됐으면 빨랑빨랑 자세 안 잡고!”

교관의 말에, 우린 재빨리 대인전 자세를 잡았다.

“이 새끼가. 감히 날 물 먹여?”

“씨발아, 내가 청소하라고 했지.”

“야 이 반푼이 새끼야. 뒤질래?”

“조태진이를 때렸다고? 하, 이 종만한 새끼가.”

“빵셔들, 죽고 싶어 환장했지?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라.”

“훈련 시간만 끝나봐. 아주 파묻어 버릴 테니까.”

자세를 잡고 있으니, 주변이 어느새 정성재 패거리들로 가득 찼다.

“대인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백이다. 다른 말로 하면 투지. 투지에서 지고 들어가면 그 전투는 할 필요가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아카데미 동료가 아니다. 니눔 새끼들이 죽여야 할 적일 뿐이다. 그러니 원수처럼 노려봐라. 죽일 듯이 노려보란 말이다!”

“전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공이다. 적이다 싶으면 가차 없이 죽여라. 잠시라도 망설이는 순간, 니눔 새끼들 목숨이 날아갈 것이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럼, 지금부터 대인전을 시작하겠다. 정영미!”

“네!”

“누구든 좋다. 영미에게 도전할 사람, 손들어라.”

올해 18세인 정영미는 2년을 월반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몇 없는 특수 능력 보유자로, 그중에서도 꽤 희귀한 은신 능력 보유자였다.

대인전 특화 캐릭.

그래서 항상 길드의 러브콜 0순위로 거론되었다.

이런 정영미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건 죽고 싶어 환장했다는 소리였다.

“아무도 없어? 왜 손을 안 들어!”

“….”

“어쭈~ 이것들 봐라? 진짜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냔 말이야!”

“….”

“에라이~ 새끼들아. 다들 고추 떼라. 니눔 새끼들도 사내새끼냐.”

“….”

석 달 전, 정영미랑 붙었다가 마지막으로 한 명이 실려 나간 후, 그 누구도 영미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교관의 도발은 우릴 자극하기 위한 수단일 뿐, 무조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했다.

괜히 발끈해서 넘어간다면 또다시 구급차에 실려 갈 수 있었다.

“어휴~ 이 븅신 새끼들. 내가 이런 것들을 믿고 가르치다니. 나가 죽어, 새끼들아!”

“…제가 하겠습니다.”

손을 번쩍 들자, 최태식 교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동기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벙찐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정성재 패거리들은 낄낄거리며 비웃기까지 했다.

“하, 그거 웃기려고 하는 소리냐?”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널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난 검기도 쓰지 못하는 반푼이 따윌 도와줄 생각이 없어. 그 말인즉슨, 니가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소리다.”

“저도 상관없습니다.”

“호오~ 목숨을 걸겠다?”

“대인전이니까요.”

“진심인가 보네. 꼴에 영미랑 싸울 생각을 하다니. 제법 기특하다만.”

“….”

“영미야~ 너는 어떠냐? 제법 씩씩한 놈인데 조금 봐주면서 하는 건?”

“상대가 누구든 대인전에서 최선을 다하라. 교관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하하하~ 영미가 최선을 다하겠다는데?”

“저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큭, 그렇다면야. 니가 격투 실력만 믿고 까부나 본데. 좋다. 대신 하나만 명심해라. 니가 목숨을 구걸한다든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다면, 그 즉시 아카데미에서 퇴출할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명예롭게 싸워라.”

“당연한 말씀입니다.”

“좋다.”

교관의 승낙이 떨어지자, 난 지체 없이 정영미 앞으로 다가갔다.

쌍단검을 사용하는 정영미.

그녀의 단검술은 이미 매섭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소문엔, 은신 말고도 뱅가드급의 무기술까지 익히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내가 마주 서자, 정영미의 단검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솟구쳤다.

검기였다.

과거의 나는 천재적인 격투 재능을 가지고도 검기 앞에만 서면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검기가 덧씌워진 무기와 일반 무기가 부딪친다면 두 동강이 나거나 파괴될 것이 분명했기에 무척이나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려 엘리트를 넘어선 압도적인 신체 능력.

그런 신체 능력과 격투 재능이 합쳐지니 두 눈에 선명히 보이는 것이다.

검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비껴치거나 흘려보내기만 해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난 왜 검기를 받아치거나 막으려고만 했을까.’

증명할 것이다.

아니, 증명해 보일 것이다.

검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검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시작!”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정영미가 짓쳐들었다.

화려하고도 매서운 단검술.

그야말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닌다.

허공에 새파란 검기가 난무하고.

그물망처럼 내 몸을 조여 온다.

하지만 거기까지.

촘촘한 그물은 빠져나가면 그뿐,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상대보다 한걸음 빠른 속도.

이 정도 속도라면 정영미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곧이어 허점들이 보였다.

최소한 두 번. 아니, 세 번까지도 연이어 반격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하지만, 나는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내 무기는 기다란 창.

창과 단검의 싸움은 거리 싸움이다.

나보다 못한 상대와 싸우면서 기교까지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다.

창은 기본적으로 찌르는 무기.

정영미가 다가오면 하단을 찔러 공격한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뒤로 물러서면 상단을 공격, 운 좋게 회피하면 이번엔 중단을 찌르면 된다.

‘제법.’

공격을 모두 피한 그녀가 사이드로 파고들었다.

‘재밌네.’

몸을 틀어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다가오면 하단, 물러서면 상단, 회피하면 중단을 공격한다.

반복된 내 패턴에 버티지 못한 그녀가 멀찍이 물러난다.

화가 잔뜩 난 모습.

그녀가 전력으로 검기를 뽑기 시작했다.

‘방심하다 놀란 토끼 같군.’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서자, 새파란 검기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어딜.’

검기를 비껴치며 파고들었다.

단검과 창대가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하니 그녀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

당황한 그녀가 난도질하듯 단검을 마구 휘두른다.

소위 말하는 마구잡이식 공격.

검식과 검로가 없는 변칙 공격이다.

이럴 때는 다시 하단을 공격하면 그만.

‘늦어.’

크게 놀란 그녀가 뒤로 물러선다.

‘늦다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코앞까지 훌쩍 다가선 상태.

그녀가 반사적으로 단검을 휘둘렀지만 가볍게 몸을 숙인 후 180도 회전.

핑그르르~ 돌며 무방비 상태인 그녀의 뒤를 점한다.

‘늦다고 했잖아.’

화들짝 놀란 그녀가 재빨리 몸을 돌리려 했지만, 발의 중심축을 걸어 살짝 넘어뜨렸다.

“악!”

그야말로 화룡점정.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찍었다.

독기가 잔뜩 오른 그녀.

허나, 이미 창날은 그녀의 목젖에 닿아 있었다.

“아….”

그녀는 특수 능력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나 같은 반푼이를 상대하면서 전력을 다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왜, 닭똥 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지….

‘뭐야, 괜히 이기고도 미안하네.’

나는 황급히 창을 거뒀다.

‘분위기가 왜 이래.’

주위를 둘러보니, 훈련실 분위기가 마치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있었다.

바늘이라도 떨어지면 소리가 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

“흠, 흠.”

이 묘한 분위기를 연신 헛기침하며 최태식 교관이 깨버렸다.

필사적으로 분위기를 반전하려는 듯 보였지만, 그 역시 당황한 모습.

왜 안 그럴까.

검기가 덧씌워진 무기와 일반 무기의 차이는 총과 칼처럼 명확했다.

총을 든 사람과 칼을 든 사람이 싸우면 십중십은 총을 든 사람이 이기는 것이 상식.

그런데 칼이 이겼다.

충분한 거리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검기와 부딪치고도 창대가 잘리지 않는 건 누가 뭐라 해도 고난이도 기술.

일개 베테랑 따위가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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