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70화 (170/190)

제170화

“요상한 일이요?”

인호가 흥미롭다는 듯 땡초를 바라본다.

“나 이사한 건 알지?”

“당연하죠. 집들이는 못 갔지만 내가 괘종시계도 사줬잖아요.”

상당히 고가의 괘종시계를 이사 선물로 사주었다.

“그래. 덕분에 내가 밤마다 깜짝깜짝 놀라. 아무튼 이사 간 집이 좀 이상해.”

“어떻게요?”

땡초는 용인에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나이가 들며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이 좋다며 이사한 것이다.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니었는지, 정원을 관리해주고 집 청소 등을 해 주는 사람은 따로 쓰고 있었다.

“나한테 몇 가지 습관이 있어.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에 꼭 우유 한 잔씩 마시거든. 물론 아침은 거르는 편이고. 의사가 그게 좋데.”

“나쁜 짓은 다 하던 사람이 자기 몸은 끔찍이 챙긴다니까.”

“원래 그런 거야. 영화 보면 악당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잖아.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나쁜 짓도 건강해야 잘할 수 있는 거거든.”

“그래서 이상한 일이 뭔데요?”

땡초가 술을 한 잔 마신다.

“며칠 전이었어. 한 일주일쯤 됐나? 그날도 일어나서 우유 한 잔 마시려고 컵에 따랐지. 우유를 막 마시려는데 땅콩이 전화를 한 거야.”

땅콩은 땡초의 심복으로 그가 소유하는 업소들 전체를 관리하는 동생이다.

“노블레스 건물에서 불이 났다는 거야. 큰불은 아닌데 그래도 한 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면서 말이지. 그래서 대충 씻고 집에서 나왔다. 일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갔거든. 그런데 탁자 위에 올려 둔 우유가 없는 거야. 정확히는 빈 잔만 남아 있었어.”

“청소하시는 분이 치웠나 보죠.”

땡초가 고개를 흔든다.

“그날은 아주머니 쉬는 날이었어. 문은 전부 잘 잠겨 있었고.”

땡초가 사는 곳은 단독주택들이 모여 소규모 타운을 이룬 곳이기에 보안이 철저했다.

“고양이라도 한 마리 숨어든 것 아니에요?”

“내가 바보냐? 그런 것도 구분 못 할 것 같아? 진짜 딱 우유만 없어진 거야.”

인호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땡초를 바라본다.

“그 전날 술 드셨어요?”

“술이야 매일 마시지. 아니. 설마 내가 술이 덜 깨서 착각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거죠. 아니면 말고요.”

“진지하게 말하는데 계속 장난으로 받아들일래?”

인호가 웃으며 술잔을 비운다.

“혹시나 싶어서 한 번 더 우유를 따라 두고 나갔어. 당연히 아주머니에게는 우유 치우지 말라고 하고.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갔는데-.”

“우유가 또 없어졌어요?”

땡초가 떨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이상하긴 하네요.”

확실히 이상하다.

초자연적인 존재.

즉, 망령들. 그들 중 음식을 탐하는 이들도 많다. 뚱보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음식이 사라지지 않는다.

망령들은 음식에 담긴 기운을 먹는 것이지 음식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간혹 실제로 망령들이 음식을 먹기도 한다.

‘묘하게 비슷하네.’

인호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일단 형이 의심하는 것처럼 망령과 관련이 되어있다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두 가지나 돼?”

“하나는 형이 산 집이 귀신터인 경우.”

“귀신이 꼬인다는 그곳.”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제 형도 제법이네요. 맞아요. 귀신터에 있는 망령들은 기운이 세거든요. 그게 아니라면 형 집에 아주 강한 힘을 가진 망령이 있을 수 있어요. 먹을 걸 좋아하는 망령이겠죠.”

땡초가 몸을 부르르 떤다.

“인호야. 나 어떻게 하냐? 또 나한테 악령 달라붙은 거야?”

“그렇지는 않아요. 그랬다면 내가 바로 알아봤지. 일단 형한테서 망령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요.”

땡초가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토해낸다.

“확실하진 않지만 조금 전 언급한 두 경우 중 하나일 확률이 높아요. 둘 다일 수도 있고.”

귀신터에 기운이 강한 망령이 있는 경우다.

“아마도 지박령일 테고.”

집 안에서만 일을 벌이는 것을 보면 높은 확률로 집에 들러붙어 있는 지박령일 것이다.

“가자.”

“갑자기 어딜 가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땡초를 보며 인호가 묻는다.

“망령이라며? 가서 빨리 쫓아내 줘. 너도 알잖아. 나 그런 것 엄청 무서워해.”

“아휴, 이렇게 겁 많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나쁜 짓은 다하고 살았데?”

“그거하고 이거하고 같냐? 아무튼 빨리 가자.”

“됐고. 다시 앉아요. 마시던 술은 마시고 가야지. 이거 비싼 술이잖아요.”

“내가 더 좋은 술 줄게. 일단 가자고.”

“일단 앉아 보라니까.”

땡초가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 앉는다.

“형이 죽겠다는데 너무 태평한 것 아니냐?”

“그럴만하니까 그런 거죠.”

인호가 땡초의 잔을 채워준다.

“혹시 수호천사라고 알아요?”

“수호천사? 사람 지켜주는 천사야?”

“네. 그 수호천사를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수호귀守護鬼가 돼요. 간혹 사람들 중 강력한 기운을 지닌 악령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요.”

“너 같은 사람?”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 다른 경우에요. 그 사람에게 강한 기운을 지닌 수호귀가 붙은 경우에요. 당연히 그 사람은 자기에게 망령이 붙은 줄 모르죠.”

“그게 가능해?”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호귀들이 꼭 사람에게만 붙는 것은 아니에요. 건물에도 붙고, 집에도 붙고, 물건에도 붙죠.”

“우리 집에 있는 망령이 수호귀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만약 그렇다면 쫓아내는 게 아니라 상전으로 모셔야죠. 그 망령 덕분에 웬만한 잡귀들은 집 근처에 얼씬도 못 할 테니까요.”

“그러면 좋기는 한데 영 찝찝해서.”

“좋게 생각해야죠. 형처럼 악령 무서워하는 사람한테는 딱 어울리는 망령이라니까? 음식을 실제로 먹을 정도의 기운을 지닌 망령이면 어지간한 악령들은 근처에도 못 오지.”

“정말?”

땡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니 일단 쫓아낼 생각하기보다 어떤 망령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해요. 형도 알죠? 우리 사무실에 망령들 있는 것.”

“알지.”

사기꾼, 영감, 똥보의 존재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존재 여부는 알고 있다.

“그렇게 도움 되는 망령들도 많아요.”

“가자.”

땡초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또 어딜 가요?”

“가서 확인하자고. 좋은 망령인지, 나쁜 악령인지.”

인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소파에서 엉덩이를 뗀다.

“술이나 마저 마시고 가자니까. 아참, 가기 전에 마트에 좀 들러요.”

* * *

“으아-. 분위기 끝장나네.”

이혜수가 질린다는 듯 몸을 움츠린다. 송창민과 함께 산장 후원에 나왔다.

“이런 곳에 노천 온천이 어울리긴 하는 거야?”

- 이 산장터가 조선 시대에 유명한 양반이 병에 걸려 요양을 왔던 곳이에요. 그래서 여긴 대단하진 않지만 온천도 있죠. 후원에 히노끼탕도 있으니 온천도 즐기고 그래요.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주변을 빙 두르고 있어 누군가 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창민아. 우리 온천욕 할까?”

“아니. 절대 안 해.”

이혜수는 히노끼탕을 보고 있지만 송창민의 시선은 다른 곳에 고정되어 있다. 히노끼탕 반대편에 있는 불쑥 튀어나와 있는 물체.

“우물 보는 거야? 저기서도 심령사진 찍혔지?”

“응. 맞아.”

이곳에 오기 전 보았던 심령사진에 배경이 되는 우물이다.

“이따 저기서도 사진 찍어줘.”

“넌 어떻게 된 애가 겁이 이렇게 없냐?”

“나 겁 많아. 엄청 많아. 그런데 괜찮아.”

송창민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바라보자 이혜수가 그에게 팔짱을 낀다.

“니가 있잖아.”

“응?”

“니가 나 지켜 줄 거잖아. 기억 안 나? 나한테 처음 고백할 때 평생 나 지켜준다고 했잖아. 설마 정말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기억나.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고.”

“그래. 그러면 됐어. 니가 옆에 있는데 내가 왜 겁을 내. 그러지 말고 우리 빨리 온천욕 하자. 여기 다녀간 사람들 후기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온천만큼은 진짜라고 했잖아.”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탕을 가득 채운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

“으으, 좋다. 이러고 있으니까 전에 일본에 온천 여행 갔을 때 생각난다 그치? 그때 참 좋았는데.”

“그러게.”

“여기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어떤 부분에서?”

“내가 신기가 있고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 뭔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까 방에서 오프닝할 때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도 들었거든.”

송창민이 흠칫한다. 자신 역시 똑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던가?

입 밖으로 꺼내면 더 무서울 것 같아 말을 돌렸다.

“내가 보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니야?”

“내가 니 눈빛하고 다른 눈빛도 구분 못 할까? 너가 5백 미터 밖에서 날 쳐다봐도 난 다 알 수가 있네요.”

“웃기고 있네.”

송창민이 피식 웃는다.

고개를 뒤로 한 채 온천수의 뜨거움을 즐기고 있을 때 이혜수가 의아한 듯 말한다.

“해 뜰 무렵이라고 하지 않았나?”

“응? 뭐가?”

“안개.”

송창민이 주변을 살핀다. 이혜수의 말대로 희미하지만 안개가 끼고 있다.

“온천수에서 나온 김인가?”

“설마…….”

이혜수가 송창민의 옆으로 와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산속 노천 온천, 그리고 주변의 안개. 너무 운치 있지 않아?”

“그, 그래.”

대답과는 달리 송창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상하게 한쪽으로 시선이 가는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희미한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우물이 있었다.

* * *

“그런 걸 누가 먹는다고 바리바리 산 거야?”

땡초가 커다란 봉지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인호에게 묻는다.

“과자, 사탕, 껌은 이해가 되는데 양갱은 뭐냐? 이런 것 좋아했어?”

인호가 산 것은 그런 주전부리뿐이 아니었다. 신선한 고기, 과일 등의 다양한 먹거리를 샀다.

“처음 만나는 데 뭘 좋아할지 모르잖아요.”

“응? 누가 뭘 좋아해?”

인호가 턱으로 땡초의 집을 가리킨다. 그제야 인호가 먹거리를 산 이유를 짐작한 땡초가 흠칫 몸을 떨었다.

“처음 만날 때 차라도 한 잔 마시며 대화하면 분위기 빨리 풀리잖아요. 그래서 준비한 거예요. 아주머니는 퇴근하셨죠?”

“진즉에 퇴근했지.”

“들어가요.”

“그래. 들어가.”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땡초를 바라본다.

“여기 형 집이거든요? 내가 여길 어떻게 연다고 내 뒤에 서 있는 건데요.”

“아, 그렇지. 내 집이지.”

땡초가 주뼛거리며 문 앞으로 가 번호를 누른다.

삐리릭-

문이 열리자 땡초는 냉큼 인호의 뒤로 도망친다. 집 안으로 들어간 인호가 감탄을 토해낸다.

“우와. 집 좋네. 이 회장님 집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요.”

“서울에서 땅값 가장 비싼 곳에 있는 집하고 비교하는 거냐? 남들 들으면 욕해. 빨리 들어가기나 해.”

인호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살핀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땡초가 깜짝 놀라 인호의 뒤에 선다.

“버, 벌써 나왔어? 어, 어디 있는데?”

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씨익 웃으며 말한다.

“형 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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