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인호는 이민정이 찾은 귀곡산장이라는 곳에서 찍은 심령사진들을 보는 중이다.
“신기하죠? 이거 보세요. 완전 신기해요. 얼핏 보면 커튼 같은데 사람의 형태가 다 있어요. 여기 보면 얼굴도 선명하고. 물론 뚫어져라 봐야 하지만요.”
이민정의 말대로 사진 속에는 망령이 찍혀 있었다.
“항상 궁금한 게 있었거든요. 망령들이 상당히 많잖아요. 그런데 어떤 망령은 사진에 찍히고, 또 다른 망령은 안 찍히는 거예요?”
“예전에 갔던 성한 정신병원 기억 나?”
“당연하죠. 아-, 귀신터? 귀곡산장이 귀신터라는 뜻인가요?”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그럴 확률이 높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 네 말대로 망령들은 어디에나 있어. 하지만 아무 망령이나 사진에 찍히지는 않지. 흔히들 말하는 심령사진이 찍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야. 첫 번째, 성한 정신병원과 같이 영적 기운이 강한 귀신터인 경우. 그 경우에는 망령들이 터의 영향을 받아 매우 강해지거든. 사진에 나오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외국의 유명한 심령 스폿에 그런 사진들이 많이 촬영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잠시 말을 멈춘 인호가 손가락을 두 개를 폈다.
“두 번째 경우는 그냥 거기 머무는 망령의 기운이 아주 강한 거야. 흐음-. 사진을 보니 적어도 셋 이상의 망령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묘한 일이야. 보통 강한 기운을 가진 망령들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거든.”
“왜 그런데요?”
“산적을 예로 들어보자. 강한 힘을 지닌 산적 세 명이 있어. 과연 그들이 협력해서 사람들 털어 똑같이 분배할까? 아니면 따로따로 독립해 각자 산적질을 할까?”
“당연히 혼자 다 해먹으려고 하겠죠.”
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망령들도 마찬가지야. 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으면 어디 가서 왕 노릇하려고 하지 저런 외진 곳에 처박혀 있는 산장에 셋이나 모여 있다고?”
인호가 휴대폰 속 심령사진을 천천히 살핀다.
“특이한 점이 있네.”
“뭐가요?”
“넌 이 사진들 보며 느껴지는 것 없었어?”
“전혀요.”
“흐음-.”
인호가 이민정을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인다. 약간의 아쉬움, 그리고 그것보다는 더 큰 안도감이 느껴진다.
이민정은 어린 시절부터 귀문이 열려 있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망령들을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귀문이 열린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그 넓이가 상당했다. 그렇기에 인호가 황동호에게 부적을 부탁한 것이다.
그런 이민정이 이제는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심령사진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황동호의 부적을 오래 붙이고 다닌 영향이리라.
“소장님은 뭐가 느껴지는데요?”
“약간의 분노, 그것보다 조금 큰 슬픔. 그리고 절대적인…….”
인호가 산장 후원 우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함께 찍힌 망령을 보며 중얼거린다.
“두려움.”
* * *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떨어지는 가을 낙엽에도 바짝 얼어버리는 쫄보 중 최강 쫄보 쫄미니입니다.”
이혜수가 침대에 앉아 오프닝 멘트를 시작한다. 송창민이 좋다며 엄지를 펴준다. 창을 통해 흘러드는 빛이 부서지며 이혜수의 모습이 사뭇 신비로워 보였다.
“오늘은 아주 유명한 곳에 왔어요. 혹시 귀곡산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본래는 태평 산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귀곡산장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곳이죠.”
이혜수는 송창민과 상의해서 만든 대본을 읽는다.
‘역시 소질이 있어.’
이혜수는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가 스트리머의 길에 들어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송창민의 권유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야 특이한 컨셉에 맞는 컨텐츠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무언갈 찾아 방송하게 된다면 제대로 터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송창민은 이혜수를 담고 있는 카메라를 주시한다. 혹시라도 표정이 이상하게 나오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영상을 촬영한 후 편집을 할 테지만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편이 좋다.
카메라를 보던 송창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이혜수의 등 뒤로 보이는 배경이 굉장히 익숙하다.
‘그거구나.’
귀곡산장을 찾기 위해 괴담 카페 등을 전전했다. 신기한 곳을 발견하면 그것이 사실인지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조사도 철저히 했다. 귀곡산장을 발견했을 때 그와 관련된 심령사진들도 대부분 보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금 카메라에 담긴 이혜수의 모습은 송창민이 보았던 심령사진 중 한 장와 구도가 완벽하게 같다. 송창민이 이혜수의 등 뒤쪽에 시선을 준다.
‘아마 저쯤이었지?’
조금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레이스가 과도하게 달린 하얀 커튼. 송창민이 본 심령사진 중 한 장이 바로 저 커튼 앞에 누군가 서 있던 사진이었다.
갑자기 오싹한 기분에 송창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을 껌뻑이며 화면을 다시 본다. 분명히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화면 속에는 이혜수 혼자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돌려 커튼을 바라본다. 커튼은 그저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기분 탓이겠지.’
이혜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비장하게 말한다.
“이 쫄미니가 귀곡산장의 비밀을 샅샅이 파헤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휴우-.”
이혜수가 숨을 토해내며 송창민을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오프닝이 어땠냐고 묻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최고였어.”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뭐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
갑작스러운 이혜수의 사과에 송창민이 당황한다. 그 사과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 안 하기로 했잖아.”
“아니야.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창민이 너 이런 것 싫어하잖아.”
이런 것.
송창민은 귀신 이야기를 유난히 싫어했다. 공포 영화는 당연히 못 본다. 그런 그가 이런 요상한 컨텐츠를 촬영하는 이유는 그저 이혜수 때문이었다.
이혜수 역시 겁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겁이 많은 데도 공포 영화를 즐겨보곤 했다.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결국 영화를 끝까지 보는 그런 타입인 것이다.
고스트 스폿과 관련된 컨텐츠로 스트리밍을 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혜수였다.
“그런데 뭔가 느껴지는 거야?”
“조금 전-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귀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 저기지?”
이혜수가 커튼을 가리키자 송창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혜수가 냉큼 일어나 커튼 옆으로 가 선다. 조금씩 자리를 이동하더니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이혜수가 포즈를 잡았다.
“나 사진 찍어줘. 이렇게 찍으면 귀신하고 나란히 찍히겠지?”
“혜수야?”
“아, 괜찮아. 이곳에 진짜 귀신이 있다고 치자고. 그 귀신이 산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그런 귀신이겠어? 그랬으면 이곳에 먼저 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멀쩡하겠니?”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상하게 찝찝하다.
“어서.”
이혜수가 다시 말하자 송창민이 카메라를 꺼냈다.
“나 어때? 예뻐?”
“항상 최고지.”
“이런 포즈가 좋을까? 아니면 이렇게?”
마치 옆에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양팔을 벌려 끌어 안는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팔을 수평으로 뻗어 어깨동무를 하는 포즈를 하기도 한다. 송창민은 그런 이혜수를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을 찍고 나서 침대에 앉아 물을 마실 때였다.
똑- 똑-
“안에 계시죠?”
사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사장님.”
“식사 준비됐습니다.”
“식사 부탁드린 적 없는데요.”
송창민이 문을 열며 말한다.
“하하, 비용에 모두 포함되는 거예요. 여기까지 세 시간 넘게 걸려서 오셨잖아요. 그 사이에 휴게소도 없고. 그래서 전 항상 손님이 오면 식사 먼저 준비해요. 과하지 않고 적당한 정도로 준비했으니 1층으로 내려와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곧 내려갈게요.”
송창민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이혜수가 먼저 대답한다. 사장이 떠나가 이혜수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사실 나 배 많이 고프거든. 가자.”
“에이, 모르겠다. 가자.”
* * *
사장의 말대로 식사는 과하지 않은 정도다. 산장의 텃밭에서 키운 여러 채소들로 만든 각종 무침들과 장아찌, 김치 등이 전부였다.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콩밥을 보며 이혜수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다지 차린 게 없어서 미안해요. 대신 저녁에는 내가 정말 근사한 바비큐 파티하게 해 줄게요.”
“아니에요.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요. 저하고 창민이 둘 다 이런 반찬들 좋아해요. 그치 창민아?”
“어, 그래.”
사장이 맛있게 먹으라며 자리를 비켜주자 이혜수가 수저를 놀리기 시작한다.
“우와-, 이 나물 엄청 맛있어. 먹어봐. 사장님이 직접 산에서 캐고, 밭에서 심은 거니 농약도 안 쳤을 거 아니야?”
이혜수는 밥그릇에 나물을 얹어 한 숟갈 크게 떠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밥을 먹는 이혜수를 보며 송창민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너처럼 먹을 것 좋아하는 애가 어떻게 그 몸매를 유지하는지 모르겠다.”
이혜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두 손으로 가슴 아래를 받치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 친다.
“특정 부위로만 살이 가거든.”
“이런 미친-.”
송창민이 뭐라고 말을 하려 할 때 이혜수가 송창민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며 묻는다.
“그래서 좋아? 안 좋아?”
“조, 좋지.”
* * *
“사랑하는 내 동생 인호야. 요즘 형이 많이 서운하다.”
“뭐가 또 그리 서운해요?”
“우리 동생은 뭔 공사가 그리 다 망했는지 얼굴 한 번 보기 힘드냐?”
“공사가 다 망해요? 아-, 공사다망이요. 웃으라고 한 말이죠?”
땡초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아니면 말고요. 왜 얼굴 보기 힘드냐고요? 공사가 다 망해서요.”
“이상하게 놀리는 것 같네.”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보다 형이 더 바빴잖아요. 가게 두 개 동시에 오픈한다고 정신없는 것 같더만.”
“내가 좀 바쁘긴 했지. 여기 어떠냐? 인테리어 죽이지?”
인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내는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있다. 장식 되어 있는 둥근 기둥들은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옮겨놓은 듯했다.
“방 하나 인테리어 하는데 든 돈이 얼마인지 알면 넌 정말 깜짝 놀랄 거다.”
“네 주변에 돈 많으신 분들이 조금 있어서 이제 웬만해서는 돈 때문에 안 놀라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두 분은 잘 계시고?”
“형이 회장님들 안부는 왜 물어요?”
땡초가 씨익 웃는다.
“대한민국 인맥 사회 아니냐. 내 인맥이 니 인맥되는 거고, 또 니 인맥이 내 인맥 되는 거지.”
땡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정재훈도 가끔 범인을 잡기 위해 땡초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으니. 범죄자의 습성은 범죄자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법이라나.
“그런데 공사 다 망한 동생은 왜 불렀어요?”
땡초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민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요즘 내 주변에 요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