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35화 (135/190)

제135화

“현직 검사에게 그런 것을 물으시니 많이 당황스럽네요.”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인호가 정재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게 검사님 신조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일단 가해자 학생부터 이야기해보죠. 평소 그런 인성을 가진 학생이 운동부가 아닌 일반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았을 리 없을 겁니다. 최근 학교폭력의 처벌이 많이 강화되었으니, 학교폭력에 대한 증거를 찾으세요. 예전이라면 보복성 괴롭힘을 무서워해서 피해자 학생들이 입을 닫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조언 감사합니다.”

인호는 정재훈과 잠시 더 대화를 나눈 후 그의 사무실을 나선다.

“소장님.”

유 형사가 인호를 따라 나온다.

“어, 왜? 할 말 있어?”

“검사님과 대화 나누시는 동안 제가 그 문호영이라는 학생 아버지에 대해 조금 알아봤습니다.”

“그래?”

돌아가려는 자신을 불러 세웠다는 의미는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 사람 제법 유명한 사람이네요.”

“좋은 쪽으로? 아니면 나쁜 쪽으로?”

“나쁜 쪽으로요. 화성 건설이라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인데요. 말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관련 부서 공무원들에게 뇌물 주고, 접대하고 아무튼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아무튼 최근에도 그런 식으로 관급 공사를 수주받았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유 형사 말은 내가 혼내줘도 괜찮은 그런 사람이라는 말이네?”

인호의 말을 들은 유 형사가 빙긋 웃는다.

“조금 더 파 볼까요?”

“아니야. 그런 쪽에 더 특화된 친구가 있어. 고마워. 다음에 같이 소주 한잔하자고.”

* * *

“정 감독. 잠시 나 좀 보지.”

“네, 교감 선생님.”

정창수는 평소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교감이 갑자기 자신을 불러서 의아했지만, 곧 그의 뒤를 따른다. 교감은 정창수를 교사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커피 한 잔 하겠나?”

“네. 감사합니다.”

커피 두 잔을 타 한 잔을 정창수에게 건넨 교감이 의자에 앉으며 휴대폰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둔다.

“정 감독. 요즘 많이 바쁘지?”

“네. 시합이 코앞이라서요. 하하,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사람이 여자 끼고 술 마실 시간은 있었나 보네. 이거 자네 맞지?”

교감이 휴대폰을 조작해 탁자 위에 놓는다.

-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 더러운 일을 파헤치는 인성미화원입니다. 오늘 역시 아주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건으로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잡설은 집어치우고 바로 영상 보시도록 하죠. 아-, 영상 시작하기에 앞서 시청하시는 분들이 눈이 썩고,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교감 선생님 이게 뭔가요?”

“일단 보지.”

정찬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휴대폰의 미튜브 영상을 지켜본다.

- 여기가 어디냐? 논현동에서도 비싸기로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최고급 주점입니다. 하루 밤 주대가 기본 3백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고급 주점 안에 마주 앉은 두 남자. 딱 봐도 검은 기운이 풀풀 풍기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오늘 영상의 주인공인 두 남자의 정체는 바로…….

정창수가 이를 꽉 깨문다.

주점의 실내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불과 며칠 전에 축구부원의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신 곳이 분명하다.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영상 속 남자 중 한 명은 자신이었다.

- 땡땡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과 축구부원의 아버지입니다. 뭐, 두 사람이 같이 술 마실 수 있습니다. 원래 친구였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절대 그런 정상적이고, 건전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리가 없겠지요?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들어보시겠습니다.

- 감독님 우리 삐익-가 이번에 선발로 출전할 수 있을까요?

- 아시겠지만 삐익- 포지션 경쟁이 아주 심합니다. 학교에 미드필더 포지션인 아이들이 많거든요.

- 제가 시계를 하나 샀는데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말입니다.

- 안에 영수증 들어있습니다. 현금으로 샀고요. 마음에 안 드시면 일주일 내로만 가져가면 환불이 된다고 하네요.”

- 어쩌다 마음에 안 드는 시계를 사셨는지. 제가 시계를 잘 모르지만 아버님 성의를 봐서 잘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테이블 아래로 시계가 들어있는 쇼핑백을 건네받는 장면이 보인다.

“정 감독. 보기보다 아주 뻔뻔합니다? 어떻게 뇌물로 받은 시계를 차고 학교에 올 수 있는 겁니까?”

정창수가 황급히 왼쪽 팔을 테이블 아래로 내린다. 백화점에 환불하기 전에 한 번 착용해 본 것이다.

“이, 이거 저 아닙니다.”

“정 감독. 이 영상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정말 아닙니다.”

“영상 올린 미튜버가 교장 선생님께 원본 파일 보냈습니다. 이래도 계속 발뺌하실래요?”

“…….”

교감이 한심하다는 듯 정창수를 바라본다.

“이성근 감독 죽은 후 축구부 성적이 계속 떨어져도 별말 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감독 체제로 바뀌는 과도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건 뭐 돈 처먹고 실력도 없는 녀석들을 주전으로 삼았네요?”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계속 거짓말할 생각이세요? 이미 당신이 누구에게 얼마나 받아먹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축구판에 얼씬거릴 생각하지 말고 성실하게 사세요.”

멍하니 앉아 있는 정창수의 어깨를 교감이 두드린다.

“그런데 콩밥은 좋아하나 모르겠네요.”

휴게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형사 두 명이 들이닥친다.

* * *

늦은 밤.

친구들과 술을 마신 문호영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제법 많은 양의 술을 마셔 조금 비틀댄다.

“아씨. 뭐야?”

누군가와 몸이 부딪친 문호영이 버럭 화낸다. 그는 부딪친 상대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린다.

“문정고? 아, 씨발. 너 누구냐? 나 누군지 알지?”

“좆까. 병신아.”

체격이 작은 상대가 욕을 하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잽싸게 도망친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은 문호영이 이를 악물고 상대의 뒤를 쫓았다.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까지 들어간다. 상대를 쫓아 한참이나 달리던 문호영이 자리에 멈춰 숨을 골랐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몸 상태가 평상시와 달랐다.

“하아-. 십새끼. 누군지 몰라도 내일 학교 가면 뒈졌어.”

그때였다.

“뒈지는 건 너지. 씨발놈아.”

“어떤 개새끼야.”

문호영이 몸을 휙 돌리다 흠칫 몸을 떤다. 몽둥이로 무장한 다섯 명이 서 있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문정고 다니는 새끼들이 지금 나한테 이런다고? 내가 누군지 몰라?”

다섯 명 모두 문정고 교복을 입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국제 해커 가면인 어나니머스 가면이었다.

문호영은 가면을 쓴 이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반대편에는 열 명에 가까운 문정고 교복 학생들이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래? 너희들 이러는 거 범죄야!”

“킥킥. 미친 새끼. 범죄? 지금까지 니가 학교에서 한 모든 일들이 다 범죄야. 알아? 싸움 못 한다고 셔틀 만들고, 집 못 산다고 무시하고. 아-! 너보다 축구 잘한다고 진철이 다리도 작살 냈잖아.”

“내, 내가 언제!”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말 안 듣는다고 축구부실로 불러서 벽에 세워 놓고 공 차서 맞추고, 후배들 시켜서 구타하고. 너는 사람도 아니야.”

가면을 쓴 학생들이 점점 거리를 좁혀온다.

“씨발.”

문호영이 빽 소리를 치며 포위를 뚫으려 했다.

빠각-

“악-!”

문호영이 짧은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다리와 등에 몽둥이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러고도 너희들이 멀쩡할 것 같아? 내가 아버지한테 말해서 다 감빵 쳐 넣을 거야.”

“크크크. 감빵? 좋지. 니가 매일 하던 말이 뭐야? 증거 있냐? 증거가 없으면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아. 이 골목 어디에도 CCTV가 없거든. 우리들이 누군지 알아? 특정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폭행당했다고 신고하면 경찰이 뭘 어쩔 건데?”

“그렇지. 이게 다 저 십새끼한테 배운 거잖아.”

가면을 쓴 학생들이 낄낄거리며 포위를 좁혀온다. 문호영은 엉덩이 걸음으로 어떻게든 도망쳐 보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몽둥이가 날아온다.

몇 차례나 몽둥이에 맞고 난 후에는 도망을 치려 시도하지 않는다.

“제발 그만 때려. 죽을 것 같아.”

문호영은 울며 용서를 빈다. 하지만 학생들은 문호영을 용서할 마음이 없는 듯하다.

“그만해.”

누군가의 말에 몽둥이를 내리치려던 학생들이 뒤로 물러선다. 한 학생이 앞으로 나선다. 그는 문호영 앞에 서서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본다.

“호영아.”

“으, 응.”

문호영은 감히 상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사람은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맞지?”

“…….”

“너 나쁜 짓 참 많이 했잖아. 그러니 벌을 받아야지.”

탁- 탁-

학생이 몽둥이로 바닥을 툭툭 때린다.

“니가 했던 가장 큰 잘못을 말해봐.”

“그건…….”

“왜?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기억나지 않아? 그래도 기억해내야 할 거야. 기억이 날 때까지 맞아야 할 테니까. 아참, 누군가 이 골목에 들어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도 돼. 골목 안 공사 중이라는 입간판을 세워뒀거든.”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러는 넌 우리들한테 왜 그랬니? 괴롭힌 애들이 몇 명 안 되면 우리들이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겠지. 하지만 넌 모를걸. 왜? 괴롭힌 애들이 너무 많거든. 그러니까 기억해내. 네가 한 가장 큰 잘못을 말이야.”

문호영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위협하듯 몽둥이로 바닥을 찍는 학생이 말한 것처럼 잘못한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빠각-

학생이 눈짓을 하자 문호영의 뒤에 서 있던 학생이 몽둥이로 등을 때린다. 문호영이 비명을 내지르자 둘러싸고 있는 학생들이 낄낄거린다.

문호영이 대답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폭행은 늘어만 간다.

“하아-. 이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말해 줄 테니 잘 들어. 네가 한 가장 큰 잘못은…….”

학생이 눈짓하자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 문호영의 어깨를 비롯한 사지를 누른다.

“우리들의 자랑을 처참하게 망가트린 거야.”

그들의 눈에서 솟구치는 분노가 가면 밖으로도 드러나고 있었다. 그 감정이 문호영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그 녀석은 돈이 없어도 당당했고 자신이 맡은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어. 우리들은 그 녀석을 보며 언제나 부러워했지. 그리고 닮고 싶어 했어. 그 녀석이 축구 시합에 나설 때면 구경을 하며 환호했지. 같은 축구부에 있는 어떤 새끼와는 다른 녀석이었거든.”

문호영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학생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한 가장 큰 잘못이 무언지 떠오른 것이다. 그의 눈을 보며 학생이 웃으며 말한다.

“기억났구나.”

학생이 몽둥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자 다른 학생들이 문호영이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제압한다. 한 학생이 수건으로 문호영의 입을 틀어막는다.

몽둥이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너도 진철이가 느꼈던 절망을 느끼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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