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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34화 (134/190)

제134화

“야! 너 지금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땡초가 깜짝 놀라 외쳤다.

하지만 인호의 시선은 여전히 땡초의 뒤에 고정되어 있었다.

“있긴 누가 있다고 그래? 그리고 뭐? 감독님?”

땡초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인호의 옆에 와 선다. 그제야 자신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호가 이런 걸로 장난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땡초였다.

분명히 저곳에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이다.

“형. 드라이브는 조금 나중에 할까?”

“그러자. 어후, 그냥 너무 놀라서 가슴 좀 진정시키고. 들어가서 술이나 빨자.”

“한 명 같이 가도 되지?”

땡초가 울상을 짓는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한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함께 가시죠.”

땡초의 가게 노블레스 안으로 들어간다.

웨이터들이 빠르게 테이블 세팅을 마친다. 땡초가 술을 따라 마시고는 어색하게 웃는다.

“감독님? 저 아시죠? 하하, 오랜만이네요.”

인호가 한심하다는 듯 땡초를 바라본다.

“아직 안 들어왔어.”

“아 씨. 진작 말을 해 줬어야지.”

“지금 들어오셨네. 형 옆에 앉으셨어.”

“어머, 씨발 깜짝이야.”

땡초가 벌떡 일어나 옆으로 도망친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성근입니다.”

“이성근 감독님이셨군요.”

땡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가 아는 감독의 이름이 맞았다.

“이승의 연이 끝났으면 가야 할 곳으로 가셔야지 왜 진철 학생을 따라다니시는 겁니까?”

인호의 맞은편.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40대 중반의 남자 망령이 앉아 있다. 그가 입은 트레이닝복 왼쪽 가슴에는 ‘문정고’라고 적혀 있다.

“그게…… 진철이가 좀 안돼 보여서요.”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망령, 이성근이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진철이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렵습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 혼자서 진철이하고 동생까지 키우시거든요. 재능은 정말 최고인데 집안 형편 때문에 운동에 전념하지 못해요. 그나마 제가 살아 있을 때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장학금을 조금 마련해 주었는데 저 죽고 나서 그마저도 끊겼습니다.”

인호가 쓰게 웃으며 술을 마신다.

“새로 온 감독이라는 놈이 아주 나쁜 놈입니다. 축구부원 부모들에게 돈을 받습니다. 돈을 많이 주면 실력이 모자라도 주전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후보 명단에서도 빼 버립니다. 제가 죽고 진철이가 그렇게 됐죠. 감독이라는 놈이 아이들의 실력보다 집에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은 넓고 쓰레기들은 많지요.”

“감독이라는 놈이 그러니 밑에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이전부터 진철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문호영이라는 놈인데 진철이하고 포지션이 겹쳐요. 스트라이커죠. 실력이 모자라니 매번 진철이에게 밀려 후보 신세였는데. 제가 죽은 후 감독이 바뀌고 그 녀석이 주전이 되었습니다. 그 녀석 집이 좀 잘 살거든요. 그런데 돈으로 주전을 따내고 끝냈으면 되는데 아주 몹쓸 짓을 했어요.”

“혹시 진철 학생이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까?”

이성근이 고개를 끄덕인다.

“연습 경기를 하다 진철이에게 태클을 걸었어요. 공이 아닌 정확히 발목을 노리고 말이죠. 스트라이커고 원래 수비하러 내려오지도 않던 녀석이었습니다. 그냥 진철이가 싫었던 겁니다. 그때 진철이 인대가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넘어지면서 무릎도 상했고요.”

“고칠 수 없는 겁니까?”

“고칠 수 있죠. 물론 국내에서는 힘들 겁니다. 그만큼 심하게 다쳤거든요. 문제는 진철이네 집안 형편으로는 치료가 힘들다는 겁니다.”

“결국 돈이 문제네요.”

“그렇죠. 진철이가 축구부 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도, 다친 후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도 모두 돈 때문이죠.”

“지금이라도 수술을 하면 완치가 되는 겁니까?”

이성근이 고개를 끄덕인다.

“미국이나 영국이라면 가능하죠.”

“다행이네요.”

“네?”

인호가 웃으며 말한다.

“돈은 많은데 쓸 곳이 없는 사람이 있거든요.”

* * *

“그런 문제라면 나와 상의해야지.”

이철호가 회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인호가 그의 잔을 채워준다.

“크으, 좋다.”

이철호가 소주를 마시고 행복한 듯 미소 짓는다.

“다른 사람들하고 좋은 술집에서 비싼 술 마시는 것보다 이렇게 너하고 막회에 소주 마시는 게 더 좋다. 참, 맛나.”

“하하. 많이 드세요. 오랜만에 제가 사는 거니까.”

“그러려고 점심도 안 먹었다.”

이철호가 회를 초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미국이나 영국에 잘 아는 의사라도 있으세요?”

이철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우리 대은 그룹에 축구팀하고 야구팀이 있다. 소속 선수들이 다치면 어떻게 할 것 같냐?”

“아, 그러네요.”

“미국, 영국, 독일 병원들과 연결되어 있어. 각 병원마다 잘 보는 부위가 다르거든. 그 학생 어디를 다쳤다고 했지?”

“발목 인대하고 무릎 쪽인가 봐요.”

“흐음, 그러면 독일이 좋겠다. 재활 치료까지 완벽하게 케어해 주거든.”

“소개 좀 해주세요.”

이철호가 인호의 잔을 채워준다.

“너도 돈 많으니 내가 돈 안 내줄 거야.”

“당연히 그래야죠.”

“그 학생 실력이 뛰어나다고?”

“네. 주위 환경 때문에 재능이 썩고 있었던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이거 보실래요?”

미튜브를 통해 최진철이 출전했던 경기 영상을 찾아 이철호에게 보여준다.

“흐음, 눈에 띄기는 하네. 알겠지만 우리 그룹 축구팀에서 유소년팀도 운영해. 치료 끝나면 그 거지 같은 학교 축구팀 때려치우고 옮기라고 해.”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이철호의 지시로 유소년팀에 들어가게 된다면 누구도 최진철을 차별하지 못할 것이다.

“오 회장님이 선물 줬다면서?”

“네. 부담 팍팍 되는 선물이었습니다.”

“하하. 그 양반이 원래 그래.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고 하지. 그 덕분에 나도 예전에 도움 많이 받았고.”

이철호 본인도 오형민의 눈에 들었다는 뜻이다.

“나도 선물 하나 해줄까?”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회장님은 존재 자체만으로 제게 선물입니다. 그간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내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하하하! 말을 참 이쁘게 한단 말이지. 캬하, 오늘 소주가 참 달다. 한잔하자.”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시다 이철호가 인호에게 묻는다.

“인호야. 그 학생 괴롭혔다는 녀석하고 돈 좋아하는 나쁜 감독이란 놈 혼내줄 거지?”

“그러려고요.”

이철호가 씨익 웃는다.

“이럴 때는 참 네가 부럽다.”

“무슨 말씀이세요?”

“내 위치에 있으면 주변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거든. 화가 나면 욕도 하고 화도 내고 그래야 하는데 주위의 눈 때문에 그러지도 못해. 혼꾸녕 내주고 싶은 놈이 나라고 해서 없을까? 오히려 많지. 하지만 그러지도 못해. 그래서 네가 부러워. 나쁜 놈들 혼내주고, 억울한 사람 한 풀어주고.”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정말 욕 들어요.”

“하하. 너 말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 아무튼 혼낼 거면 아주 제대로 내줘라.”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는 인호를 보며 이철호가 큰 소리로 웃는다.

* * *

“감독님. 한잔하시죠.”

“하하, 아버님도 드십시오.”

“저야 뭐 언제든 마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이들 가르친다고 좋아하는 술도 잘 못 드시는데 이럴 때라도 많이 드셔야죠.”

문정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정창수는 부원의 아버지가 권하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신다. 그의 옆에는 이십 대 초반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감독님. 조금 있으면 시합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번 시합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장 선생님 관심도 크시고요. 대학팀하고 프로팀 스카우트들도 많이 올 겁니다.”

“우리 원규가 이번에 선발로 출전할 수 있을까요?”

남자의 은근한 물음에 정창수가 술잔을 내려두고 진지한 투로 말한다.

“아시겠지만 원규 포지션 경쟁이 아주 심합니다. 학교에 미드필더 포지션인 아이들이 많거든요.”

“잘 알죠.”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원규 실력이 나쁘지 않기는 하지만 원규와 경쟁하는 다른 아이들도 참 열심히 하거든요. 감독 입장에서 어떤 아이를 주전으로 넣어야 할지…….”

“저 이거-.”

남자가 테이블 아래로 무언갈 정창수에게 건넨다. 정창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것을 받는다. 작은 가방에 들어있는 네모난 물건이다.

“제가 시계를 하나 샀는데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말입니다. 혹시 감독님 취향에 맞을까 해서 가지고 와 봤습니다.”

“시계요?”

정창수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남자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안에 영수증 들어있습니다. 현금으로 샀고요. 마음에 안 드시면 일주일 내로만 가져가면 환불이 된다고 하네요.”

“아-, 그래요? 어쩌다 마음에 안 드는 시계를 사셨는지. 제가 시계를 잘 모르지만 아버님 성의를 봐서 잘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주시면 제가 고맙죠.”

정창수의 옆에 앉은 여자가 잔을 채워준다.

“하하, 좋네. 좋아.”

정창수가 웃으며 술을 마신다. 그러는 동안 옆에 앉은 여자가 입구 쪽을 바라본다. 높지 않은 탁자 위에 여자가 가져온 가방이 놓여 있었다.

여자는 소파에 놓은 자신의 휴대폰을 정창수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슬며시 옮겨 놓는다.

* * *

“일단 이건 제3자가 본인 동의 없이 녹화 및 녹취한 것이라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없습니다.”

정재훈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실망한 것 같지는 않다. 검사, 경찰과 함께 몇 번 같이 일을 하며 그 정도는 인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신분을 밝히지 않은 정의로운 미튜버가 이것들을 공론화시킬 수는 있겠죠.”

“그렇죠.”

정재훈이 피식 웃는다.

“다음 문제로는 문호영이라는 학생이 같은 축구부에 속해 있는 최진철에게 고의로 상해를 입혔다는 것도 입증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흔히들 반칙도 게임의 한 부분이라고 말을 한다. 팀의 승리를 위해 위기의 순간을 반칙으로 잘라내는 것은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같은 축구부에 속한 부원들의 증언이나 정황적인 증거를 확인하면 작은 희망이라도 생기겠지만 인호 씨 말대로라면 축구부 내에서 그 학생 편을 들어주거나 변호해 줄 친구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벌하실 생각이십니까? 개인적인 바람으로 인호 씨가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검사님. 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것 잘 아시잖아요.”

“잘 알죠. 인호 씨 본인 한정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엮이면 달라지지 않습니까. 특히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엮여 있다면 더더욱 말이죠.”

인호가 정재훈에게 묻는다.

“그래서 검사님을 찾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어떻게 합법적으로 혼내 줄 방법이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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