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87화 (87/190)

제87화

모텔 복도에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뚱보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무섭게 앉아서 졸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저기요. 일어나 보세요.”

“끄응, 뭐야?”

“저 카운터 보는 사람인데요. 차 번호가 4776 맞으시죠? 까만 그랜져.”

“맞는데 왜?”

“아씨. 술에 떡이 된 어떤 미친놈이 벽돌로 차 앞 유리를 부숴 놨어요.”

남자가 벌떡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아, 씨발. 어떤 미친 새끼야!”

남자와 뚱보가 엘리베이터를 타자 계단에서 인호가 올라온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뚱보는 인호를 향해 엄지를 세운다. 인호는 남자가 지키던 문 앞에 가서 선다.

똑- 똑-

노크하고 잠시 후 안에서 ‘누구세요’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기로 한 사람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임만덕의 얼굴이 보인다. 인호가 안으로 들어가자 임만덕이 바깥 상황을 살핀 후 재빨리 문을 닫는다.

“조금 전에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던데요.”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의자에 앉자 임만덕이 모텔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꺼내준다.

“이제 이야기해 볼까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전부요.”

인호의 말에 임만덕이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감는다.

“이미 알고 오셨겠지만 전 사기나 치고 다니던 나쁜 놈이었습니다. 몇 달 전에도 사기를 쳤죠. 그런데 일이 잘못 풀렸어요. 스폰을 해준 깡패 놈들한테 칼을 맞았죠.”

칼을 맞은 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저승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지옥을 경험한 후 다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이상한 힘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의 몸에서 이상한 빛이 보이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밝은 빛이, 또 어떤 사람은 어둡고 위험해 보이는 빛이 보였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에게서 어두운 빛이 보였군요.”

“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사람들이 저와 함께 사기 치고 다니던 세훈이하고 현교였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칼침을 놓은 깡패들도 있었고요. 그들 몸에서 나는 빛은 정말 새까맸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제가 가진 능력에 대해 깨닫게 되었죠.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습니다.”

무엇을 후회하는지 알 것 같다.

박세훈, 전현교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과 얻은 능력에 대해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으리라.

“사기꾼들답게 제 경험과 능력으로 사기 칠 생각 먼저 하더군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환생교입니다. 목적은 순진한 사람들 꼬드겨서 돈 뜯어내는 것이었지만 제 나름대로 목표가 있었습니다.”

“죄가 많은 이들을 골라 세례를 한 겁니까?”

“네. 자기 잘못을 깨달아야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할 테니까요. 효과도 있었습니다. 제게 세례를 받은 신도들이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삶을 살았으니까요.”

임만덕이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런 거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겠죠.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을 뿐.”

“맞습니다. 세례를 받은 몇몇 신도가 큰돈을 헌금했습니다. 그전에도 알게 모르게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하고 있었는데 자발적으로 큰돈을 바치는 신도들이 그들의 욕망에 불을 지펴버린 거죠.”

그때였다.

쾅- 쾅-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인호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임만덕이 문 쪽으로 걸어갈 때 인호는 신발을 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무슨 일입니까?”

임만덕이 문을 열고 묻는다. 조금 전 뚱보와 함께 내려갔던 남자와 또 다른 남자가 서 있다.

“누가 들어오고 그런 것 아니죠?”

“누가요?”

“거봐. 내가 모텔 입구에 있었다니까. 아무도 안 들어갔어.”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잖아.”

남자가 안을 힐끔 바라본 후 문을 닫는다. 밖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분명 차 유리가 깨졌다고 했다니까. 내려가니까 갑자기 없어졌어.

- 꿈꾼 거야.

- 아니라고. 진짜 미치겠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임만덕이 귀신이라는 말에 화장실을 힐끔 바라본다. 예배를 드릴 때 인호 뒤에 서 있던 귀신이 떠오른 까닭이다.

“갔습니다.”

인호가 밖으로 나온다.

“최근 동료분…… 죄송해요. 임만덕 씨 이용해서 돈 벌 궁리로 눈이 빨개진 놈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신고되었어요.”

“형사십니까?”

“그건 아닌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공무원이긴 해요. 혹시 그들의 범죄 행위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나요? 증거가 될만한 것들이나.”

임만덕이 고개를 흔든다.

“부끄럽지만 사기전과 5범입니다. 증거 같은 것 만들어 두고 싶었죠. 그런데 그 녀석들이 저한테는 휴대폰도 안 줍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빠져나가려 할까 봐. 신고 들어왔다면 협박, 폭행 같은 거겠죠?”

“그렇죠.”

“그 녀석들 꿈쩍도 안 할 겁니다. 저희 같은 사기꾼들이 가장 잘하는 게 검은돈에 흔적 남기지 않는 겁니다. 강요받아 낸 헌금은 이미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을 겁니다. 협박, 폭행은 그들이 부리는 깡패 녀석들 중 한 명 던져주겠죠. 전과 없는 어린 깡패들은 빵에 들어가도 금방 나오거든요.”

“혹시 뭔가 들은 것은 없으세요?”

“없습…… 아, 하나 있네요.”

“그게 뭐죠?”

임만덕이 생수로 입을 축인다.

“돈이 아주 많은 할머니 한 분이 계세요. 재산 물려줄 자식도 없는 분이죠. 그놈들이 딱 좋아하는 사냥감이죠. 그런데 헌금하라고 꼬드겨도 잘 넘어오지 않았나 봐요. 세훈이가 술에 취해서 현교에게 그러더군요.”

갈증이 나는지 남은 물을 모두 마신 후 말한다.

“그 할머니 유언장을 수정하자고.”

“그 할머니가 누굽니까?”

* * *

정미옥은 앞에 앉아 입에 침을 튀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박세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신도님. 이 기사 보세요.”

박세훈이 휴대폰을 앞으로 내민다.

“요즘 자선 단체들 비리가 아주 많습니다. 기부금으로 사리사욕 채우고 온갖 나쁜 짓들 다 합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 도와주라고 기부하면 그 돈으로 별의별 짓을 다 한다니까요.”

“몇 번을 말했고 다시 말하지만 내 재산은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어요.”

“아, 정말 답답하네요.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도님의 많은 재산을 보면 그것들 눈이 안 돌아갈까요? 신도님의 고귀한 뜻이 그대로 전해질까요?”

정미옥은 박세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도님께서는 그렇게 변하지 않을 자신 있으시고요?”

“물론이죠. 모두 교주님과 환생교 신도들을 위해 사용할 겁니다.”

“교주님과 신도들이라…….”

정미옥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호호 불어 마신다.

“사도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죠?”

“당연하죠. 유명한 빨간치…… 아니, 부동산 투자자 아니십니까.”

“빨간치마 맞아요. 복부인도 맞고. 젊은 시절 하지 말아야 할 짓 참 많이 했어요.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죠. 사람들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주가 좋은 땅을 보고 돈을 버는 재주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주는 따로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박세훈이 말을 하지 않자 정미옥이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한다.

“사람 보는 눈. 내가 재산으로 산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눈 때문이에요. 자랑은 아닌데 처음 만나는 사람도 말 몇 마디 섞어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보여요. 그런 내 눈에 사도님은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요?”

“하, 하하. 저야 뭐 환생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실된 사도 아니겠습니까?”

정미옥이 빙긋 웃는다.

“견물생심이라고 하셨죠? 참 좋은 말이에요. 보통 사람은 백만 원만 봐도 욕심이 생겨요. 그런데 수천억을 본 사람은 어떨까요?”

“전, 아니 환생교는 다릅니다.”

정미옥이 박세훈 옆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에게 시선을 옮긴다.

“윤 변.”

“네, 여사님.”

“윤 변이 여기 온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그것 맞겠지?”

“…….”

정미옥이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가져온 거 꺼내 봐.”

“여, 여사님.”

“일단 봐야 뭐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아니야.”

변호사가 박세훈의 눈치를 살핀다. 박세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방에서 파일철을 꺼내 정미옥 앞에 내려놓는다. 파일철을 여니 ‘유언장’이라고 적힌 종이가 보인다.

“흐음-. 장황하게 쓰여 있는데 결국 내 모든 재산을 환생교에 기부한다는 내용이네요.”

“하하,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전 그러겠다고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사도님은 벌써 제가 승낙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런 뜻이 아니라…….”

“괜찮아요. 이 유언장에 서명해 드릴게요.”

“정말이십니까?”

박세훈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린다.

“단!”

박세훈이 어서 말하라는 듯 정미옥을 바라본다.

“한 가지 조건만 추가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서명해 드리죠.”

“어떤 조건입니까?”

“내 재산을 사용할 때 내가 정한 사람의 승인을 받아야 해요. 그럴 수 있어요?”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곧 올 거예요.”

박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는다.

“혹시 저희 신도입니까?”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수도 있죠. 환생교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거든요.”

“하하, 그렇습니까? 대답은 그분이 오신 후에 드려도 되겠죠?”

“편하실 대로 하세요.”

잠시 후 중년인이 들어와 고개를 숙인다.

“손님 오셨습니다.”

“모셔요.”

중년인이 나가고 한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를 본 박세훈이 고개를 갸웃한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그것도 최근에 말이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옆에 앉은 변호사의 얼굴은 파랗다 못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사도님. 내가 말한 그분이에요. 소개는 직접 하시겠어요?”

“그렇게 하죠.”

남자가 정미옥 옆에 앉으며 명함 한 장을 꺼내 박세훈 앞에 내민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5부 부장검사 정재훈이라고 합니다.”

“거, 검사.”

박세훈은 어째서 정재훈이 낯이 익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최근 한국을 들썩이게 만든 큼직한 사건들을 모두 해결한 사람이 바로 눈앞의 정재훈 부장검사였다.

“일단 빠질 사람은 빠지죠.”

정재훈이 정미옥 앞에 놓인 유언장을 들고는 변호사를 바라본다.

“사문서위조네요. 반론 있으십니까?”

“어, 없습니다.”

“나가시면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 있을 겁니다.”

변호사가 몸을 휘청이며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제가 여기 왜 왔는지 아시죠?”

“그, 글쎄요. 검사님처럼 바쁘신 분이 왜 오셨을까요?”

정재훈이 씨익 웃는다.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요? 머리 굴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잖아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죠? 이미 받은 돈이야 세탁 끝났을 테고. 협박, 폭행이야 다른 놈 하나 던져주면 되고. 사실 헌금 강요 같은 것은 녹음파일이 있다고 해도 증거로 세우기 쪼-금 부족하고?”

“하하. 뭐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데 검사님 말씀이 틀린 것도 아니죠.”

박세훈의 표정이 조금은 편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정재훈의 표정은 차갑게 식는다.

“박세훈.”

“네.”

정재훈의 차가운 음성에 박세훈이 흠칫한다.

“내가 존댓말 따박따박 해주니까 좋지?”

“아, 아닙니다.”

“내가 말한 것처럼 그런 일로는 널 잡아넣기 힘들지. 그런데 과연 나한테 그것들밖에 없을까?”

박세훈이 이를 꽉 깨문다.

“살인교사했더라.”

“제가 언제…….”

“증인 확보해 놨으니 니가 언제 그랬냐는 둥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전에 저질렀던 사기죄도 남은 것 있고. 이번에는 사문서위조도 했고. 그래도 아직 사람 안 죽인 건 잘했다.”

정재훈이 유언장 파일로 박세훈의 어깨를 툭친다.

“너 같은 놈 먹이는데 국민들 세금 사용하는 게 아깝거든. 그런데 어쩌겠어. 내가 더 열심히 일해서 진급하면 월급도 많아지고 세금도 많이 내야지. 기대해도 좋아. 이번에는 조금 길게 들어가 있어야 할 거야.”

밖에서 유 형사가 들어와 박세훈에게 수갑을 채운다. 유 형사가 박세훈을 데리고 갈 때 정재훈이 말한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 전현교하고 깡패 새끼들도 곧 너 따라서 갈 테니까.”

* * *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임만덕이 모인 수많은 신도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다. 신도들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임만덕은 그들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왔다.

임만덕은 기다리고 있는 인호에게 다가간다.

“예배 끝났습니다.”

인호가 품속에서 작은 호리병 하나를 꺼내 건네준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호는 모텔에서 임만덕에게 호리병을 주었었다. 하지만 임만덕은 기억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신도들과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임만덕이 호리병의 뚜껑을 연다.

그의 몸에서 희미하지만 푸른 기운이 흘러나와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인호가 멍하니 가만히 있는 임만덕의 손에서 호리병을 받아 뚜껑을 닫는다.

“이거 드세요.”

금박에 쌓인 환약을 임만덕 입에 넣는다.

“앞으로 건강하게 쭉 사실 텐데. 제발 사기는 치지 말고 사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