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운전을 해 사무실로 돌아오며 임만덕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 형제님. 혹시 무속인이세요?
“크크, 무속인? 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세례를 하겠다며 머리에 손을 대었을 때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익숙한 듯하지만 많이 낯선 그런 기운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기운은 인호 자신의 기운과 아주 조금은 닮아 있었다.
결국 세례는 실패로 돌아갔다. 임만덕은 인호에게 무속인이냐고 물으며 다시 세례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의 기운은 인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단순한 사기꾼은 아니란 말이지?”
차를 주차한 후 사무실로 올라간다.
“야! 여기가 니들 놀이터야? 왜 다 여기 모여 있는 거야?”
화염병을 비롯한 집의 지박령들이 모조리 사무실에 내려와 있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거리가 멀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한 층 아래였기에 언제든 내려올 수 있었다.
“너무 빡빡하게 그러지 마라. 그동안 집에만 갇혀 있어서 많이 답답하기도 했고 사람이 그립기도 해서 그러지.”
“니가 사람이냐?”
“맞네. 나 사람 아니지.”
인호의 말에 넥타이가 낄낄대며 웃는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니들은 도대체 뭘 걸고 고스톱을 치는 거냐?”
사기꾼을 비롯한 망령들은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그냥 재미로 치는 거지 뭐.”
“그거 참 재미있겠네.”
그가 피식 웃으며 집으로 올라가려 할 때였다.
“어-, 인호 왔냐?”
“영감님은 다 늦은 시간에 어디 다녀오세요?”
“나? 그냥 요 앞 마실 다녀왔지. 집에 올라가려고?”
“네.”
“인호야. 얼마 전에 니가 도와줬던 그 도박쟁이 있잖아.”
유민성과 유설아의 아버지 유재성을 말하는 듯하다.
“네. 그 사람은 왜요?”
“조기 앞에 천당김밥있잖아. 거기서 애들하고 밥 먹고 있더라.”
“천당김밥이요?”
사무실을 나선 인호가 집으로 올라갈까 하다가 오랜만에 남매들 얼굴이나 볼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천당김밥은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영감의 말대로 유재성과 두 남매가 밥을 먹고 있었다.
“저 녀석 돈까스 사랑은 여전하네.”
유설아가 돈까스를 큼직하게 썰어 입으로 가져가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
“오랜만이네요.”
인호가 들어서며 인사를 건네자 유재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안녕하세요. 식사하러 오셨어요?”
“아니요. 제 사무실이 바로 조 앞이에요. 지나가면서 보이길래 인사나 하려고 들어왔죠. 설아는 여전히 돈까스 좋아하네?”
“네.”
부끄러움이 많이 없어졌는지 인호와 눈을 맞추며 대답한다.
“민성이도 잘 지내고 있지?”
“네, 아저씨.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아참, 일은 구하셨어요?”
유재성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러면 지금은 뭘 하세요?”
“직업소개소 나가고 있습니다.”
일용직으로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뛰고 있는 것 같다.
“몸 쓰는 일을 안 해봐서 그런지 많이 힘드네요. 그래도 금방 적응되겠죠.”
유설아는 아버지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 하지만 유민성은 표정이 살짝 굳어있었다.
“재성 씨.”
“네?”
“건물 관리 한번 해 보실래요?”
“건물 관리요?”
“네. 작은 건물이라 뭐 대단히 할 건 없어요. 세입자들 고충 좀 들어주시고 가끔 건물 주변 정리만 해주시면 되는데.”
“제가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누군 처음부터 다 잘하나요. 하면서 배우는 거죠.”
“매번 이렇게 신세를 지니까 죄송해서 그러죠.”
“괜찮아요. 이 정도가 무슨 신세에요. 어차피 사람 구했어야 하거든요.”
건물주 할아버지가 있을 때는 그분이 알아서 다 해주었지만, 인호가 건물주가 된 이상 사람을 구해야 하긴 했다.
인호는 돈까스를 맛있게 먹고 있는 유설아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묻는다.
“아직 거기 사시죠?”
“네. 전에 주신 돈으로 언덕 아래 월세라도 얻을까 했는데 혹시 몰라 돈을 아껴야 할 것 같아서요.”
“건물에 남는 방이 있는데 그거 쓰셔도 돼요. 사무실로 쓰던 공간인데 가벽 설치하면 방 두 개에 작은 거실 정도 사이즈는 충분히 될 거예요.”
유재성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 민성이 학교 때문에 안 되겠구나. 전학하는 것이 좀 번거롭죠? 친구들하고 헤어져야 하고.”
“저 친구 없어요.”
유민성이 인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한다.
“어, 그래?”
아무래도 이 녀석은 커서 사회생활을 아주 잘할 것 같았다.
“반지하에 계속 살면 아이들 건강에도 별로 안 좋을 테니 이 기회에 이사하시죠. 민성이도 괜찮다고 하고.”
“이 근처면 월세도 비쌀 텐데.”
“안 비싸요. 제 건물이거든요. 월급에서 조금 차감하면 돼요.”
“정말 감사합니다. 후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재성 씨 때문이 아니에요. 이 녀석들 때문이지.”
인호의 시선을 받은 남매가 환하게 웃는다.
* * *
“위층 남는 사무실에 누구 들어와요?”
“응. 내가 아는 사람이 이사 올 거야.”
“사무실로 쓰는 게 아니에요?”
“주거용으로 사용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 그 집 아이들이 엄청 귀엽거든.”
“정말요?”
사무실로 쓰던 곳이기에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가정집으로 개조하고 있다. 가벽을 설치해 방 두 개와 작은 거실, 주방까지 만들 것이다. 화장실은 원래 있었기에 샤워기만 설치할 예정이었다.
“정 검사님한테 전화 왔었어요. 조금 이따 오신다고요.”
“그래?”
양반이 되기는 글렀는지 이민정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정재훈과 유 형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인호 씨. 좋은 아침이에요.”
“식사는 하셨어요?”
“네, 유 형사님과 먹고 오는 길입니다. 인호 씨는요?”
“전 원래 아침을 잘 안 먹어요.”
이민정이 커피를 타온다.
“항상 고마워요. 민정 씨.”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부장이 들어온다.
“부장님도 오셨네요.”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건가요? 저 불청객이에요?”
“그럴 리가요.”
부장의 뒤에는 뚱보가 서 있었다.
사기꾼과 영감이 안 보인다 했더니 부장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급하게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 저 먼저 말할게요. 정 검사님 그래도 되죠?”
“네, 그렇게 하세요.”
부장이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투로 말한다.
“인호 씨. 아무래도 큰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짐작되는 일이 있다.
“생자가 저승에라도 간 겁니까?”
“알고 있었네요?”
“알고만 있었게요. 그 사람 직접 만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요? 이야기가 편하겠네요. 인호 씨. 이거 받으세요.”
부장이 탁자 위에 두 가지 물건을 내려놓는다.
작은 호리병 하나와 금박에 쌓여있는 둥근 물체다. 부장이 호리병을 가리킨다.
“임만덕이 얻은 힘과 기억을 회수할 때 사용하면 돼요. 그리고 이 환약은 임만덕에게 줄 보상이에요.”
“보상까지 줍니까?”
“어찌 되었든 우리들 실수니까요. 그 환약을 복용하게 되면 죽는 날까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할 거예요.”
“제가 먹으면 안 되겠죠?”
“임만덕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먹으면 그냥 쓴 약일 뿐이에요.”
인호가 인상을 구기며 말한다.
“아니. 정작 고생하는 건 전데 왜 저는 왜 아무것도 안 주는데요?”
부장이 생긋 웃으며 말한다.
“살려는 드리고 있잖아요.”
“하, 하하. 농담이시죠?”
“진담인데요? 인호 씨 본인이 잘 알 텐데?”
“됐습니다. 줘도 안 받아요.”
“인호 씨 삐쳤네. 그쵸?”
“제가 앱니까? 이런 일로 삐치고 그러게.”
부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선다.
“기다려 봐요. 아주 큰 선물 준비하고 있으니.”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이제 제가 말할 차례인가요? 드디어 환생교 불법 행위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인호가 의아한 듯 정재훈을 바라본다.
“조금 전 부장님 말씀 들으셨죠?”
“네. 저 아직 귀 잘 들립니다.”
“임만덕 그 사람 사기 치는 것 아니에요. 실제로 저승 문턱도 넘었고 이상한 능력도 얻었어요.”
“이야기 듣고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하지만 불법 행위의 정황이 포착된 것은 임만덕이 아니라 그 주변입니다. 아니, 어쩌면 임만덕도 한패일지 모르죠.”
정재훈이 유 형사를 바라본다.
“헌금을 강요한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신고했네요. 한 사람은 그 과정에서 협박과 폭행도 있었고요. 신고된 것이 두 건이니 감춰진 것은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심각한 범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이비 종교 관련된 범죄가 헌금 강요, 협박, 폭력 정도로 끝난 적이 없거든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더 큰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네요.”
“그렇죠.”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언제나 그랬듯. 공무원분들은 공무원분들대로, 전 저대로 따로 움직이는 걸로 하시죠.”
* * *
환생교 서울 지단.
주차를 하고 내린 인호가 주변을 살핀다. 논산 본단과 마찬가지로 지단의 입구에도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어두운 곳에 앉아 몸을 숨긴다.
신도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주차장이 차들로 거의 가득 찰 때 즈음 검은 세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온다.
차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세 명이 내린다. 그중 한 명이 뒷문을 열어주자 임만덕이 내린다.
인호가 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어라? 보호가 아니라 감시 분위긴데?”
임만덕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남자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임만덕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라면 주변을 살펴야 할 텐데 그들의 시선은 주변이 아닌 임만덕에게 향해 있었다.
누가 봐도 감시를 당하는 것이다.
임만덕과 남자들이 사라지자 인호가 몸을 일으켜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다.
안은 이미 많은 신도들로 들어차 있었다. 앞쪽부터 자리를 채웠기에 인호는 뒤쪽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배가 시작되었다.
“우리들이 죄를 뉘우쳐야 하는 이유는…….”
전직 사기꾼이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지옥에 다녀온 후 새사람이 되어서인지 몰라도 임만덕은 말을 참 잘했다. 신도들은 임만덕이 말을 할 때마다 두 손을 모으며 탄성을 토해낸다.
임만덕의 설교는 인호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잘못을 뉘우치고 선행을 쌓으면…….”
하지만 임만덕이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있었다.
아무리 선행을 쌓는다고 해도 지은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지만 선행의 무게가 ‘1’이라면 죄의 무게는 ‘100’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지은 죄의 백 배에 해당하는 선행을 쌓아도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죽은 후 저승에 갔을 때 치러야 할 죗값이 조금은 가벼워질지 모르지만 흔히 말하는 천국, 극락에는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설교가 끝나고 참회의 기도 시간이 되었다.
신도들은 기도를 하며 임만덕이 자신에게 세례를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신도들 사이를 돌며 세례를 내리던 임만덕이 멀리 뒤쪽에 앉아 있는 인호와 눈이 마주친다.
인호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시선을 외면한다. 그는 크게 한 바퀴를 돌아 인호가 있는 쪽으로 이동한다.
“형제님. 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임만덕이 인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인호의 눈에 푸른빛이 어린다. 인호의 머리에 닿은 손에 푸른빛이 어리자 임만덕이 놀란다.
하지만 이내 정면을 보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기도를 한다.
인호의 뒤, 임만덕의 정면에 서 있는 사기꾼이 입에 검지를 붙이고 있었다.
“감시받고 있으면 큰 소리로 ‘지은 죄가 너무 크다’라고 말하세요.”
“형제님은 지은 죄가 너무 큽니다!”
임만덕이 사기꾼이 시키는 대로 한다. 인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나중에 찾아가도 되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크게 말해 주세요.”
“형제님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좋아요. 우리들이 알아서 찾아갈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기도를 마친 임만덕이 떠나간다.
인호가 고개를 돌려 사기꾼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내가 지은 죄가 너무 크다. 이제 정말 잘할게.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