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남매는 깜깜한 숲속을 지나고 있었어요. 동생 그레텔이 오빠 헨델에게 말했어요. ‘오빠. 너무 무서워’. 헨델은 동생을 꼭 끌어 안아주었어요. 그리고 앞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기만 넘으면 집이 있을 거야’.”
이불 속에서 고개만 쏙 내민 여자아이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에 푹 빠져있었다.
* * *
“오빠. 나 너무 무서워.”
소년은 어린 여동생을 꼭 끌어안는다. 주위는 온통 어둠뿐이다. 그 역시 무서웠지만 그런 내색을 하면 동생이 더 무서워할 것 같아 꾹 참았다.
“연희야. 저기, 저기만 넘으면 집이 있을 거야.”
“정말?”
“응. 오빠가 전에 저 너머에 집이 있는 걸 봤어.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소년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소년은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인지 계속 뒤를 확인했다.
“오빠. 나 배고파.”
소년 역시 배가 고팠다.
“그 집에 가면 먹을 게 있을 거야. 연희야 조금만 참자. 응, 알겠지?”
“알았어, 오빠.”
소년은 동생의 손을 꼭 잡는다. 동생의 손에서 전해지는 체온에 소년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 * *
“어둠 속을 헤매던 남매는 외딴 숲속에서 집을 발견했어요. 그 집은 과자, 초콜릿, 젤리. 온통 맛있는 것들로 지어진 집이었어요.”
“우와-, 좋겠다. 나도, 나도.”
어머니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우리 딸 이런 집 사줘야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 * *
어둠 속 멀리 보이는 희미한 빛을 보는 순간 소년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동생 역시 빛을 보았는지 환하게 웃으며 잡은 오빠의 손을 흔들었다.
“정말 집이 있네.”
“오빠가 그랬잖아. 집이 있다고.”
소년은 동생과 함께 빛을 향해 걸어갔다. 친구들과 놀다 멀리까지 왔을 때 이 집이 있는 것을 봐두었다.
하지만 집이 있는 것만 알 뿐 누가 사는지는 잘 몰랐다.
소년은 마음속으로 제발 저 집의 주인이 착한 사람이길 빌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빛은 선명하게 보인다. 망망대해 속 등대처럼 그 빛은 남매를 인도하고 있었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소년이 용기 내 큰 소리로 말한다.
“아무도 없어요?”
다시 외칠 때 문이 삐걱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온다.
* * *
“과자와 초콜릿으로 만든 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어요. 할머니가 ‘어서 오너라’하며 남매를 반겨주었어요.”
“휴우-. 다행이다. 헨델과 그레텔은 착한 할머니를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음 얘기는 내일 듣자.”
“싫어, 싫어.”
“한 번에 다 들으면 다음에 들을 이야기가 없잖아. 나머지는 엄마가 내일 읽어 줄게. 엄마 일가면 우리 딸 혼자서 잘 놀 수 있지?”
“응.”
“노래도 하고 거울도 보면서 놀고 있으면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올게.”
* * *
빵- 빵-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뒤에서 크락션 소리가 들렸다.
빨간색 경차가 인호의 차 뒤에 주차하고 있었다.
이내 차 문이 열리고 이민정이 내렸다.
“거 주차 좀 똑바로 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제가 아주 급한 일이 있는데 그것만 처리하고 주차 다시 할게요.”
“이거보다 뭐가 더 급해요?”
“괘씸한 부하직원한테 법인 차 열쇠 좀 뺐고 올게요.”
이민정이 재빨리 걸음을 옮긴다.
“부지런한 직원은 먼저 가서 사무실 문 열어 놓겠습니다.”
인호가 피식 웃는다.
경차를 장기 리스해 주었더니 입이 귀에 가 걸렸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진즉 해줄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무실로 올라가니 이민정이 커피를 타서 인호 앞에 내려놓는다.
“회의 준비 끝났습니다. 소장님.”
“제발 평소에도 그렇게 해라.”
소파에는 뚱보와 망령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다.
“빨리 회의 시작하자고.”
사기꾼이 방정맞게 외친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인호가 입을 뗀다.
“좋아. 회의 시작하자. 오늘의 안건은 백억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거다.”
“당연히 사…….”
“기각.”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사기꾼을 인호가 한심스럽다는 듯 바라본다.
“사무실 옮기자는 말 하려고 했잖아.”
“내가 귀신이 아니라 니가 귀신이다. 어떻게 알었어?”
“돈 생길 때마다 사무실 옮기자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걸 모르면 바보 아니냐? 아무튼 사무실은 절대 안 옮겨.”
선대 때부터 대물림되는 사무실이다. 아버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곳을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집이라도 옮기자.”
“집이라.”
이사하고 싶은 생각은 인호도 가끔 들었다. 높은 언덕배기이기도 하거니와 사무실과 너무 멀었다.
하지만 집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위패들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인호야.”
“네, 영감님.”
“네가 왜 이사를 꺼리는 줄 알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말씀해 보세요.”
“이 건물을 사 버리는 거야.”
“대박-! 영감님 천잰 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대요?”
사기꾼이 침을 튀겨가며 말한다.
“이 건물이요?”
“그래. 지은 지도 오래되었고 골목 깊숙한 곳에 있어서 가격이 그렇게 비쌀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건물주 나이가 많잖아. 재산 물려줄 자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영감의 말대로 이 건물의 주인은 나이가 아주 많다.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에게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3층 회사 계약 기간 거의 끝나갈걸. 그 회사하고 재계약하지 말고 거길 집으로 꾸미면 되잖아.”
아주 끌리는 제안이었다.
“우와, 우리 소장님 갓물주되는 거예요?”
“김칫국 마시지 마라.”
본래는 박주완에게 말해 광혜원에 일정 금액을 기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 후원이 많이 늘었다며 박주완이 사양했다.
지난번에 많은 지원을 받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평생 큰돈을 써 본 적 없기에 백억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와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굳이 이런 회의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인호야. 남는 돈으로 1층에 식당 하나 차리면 안 되나?”
“갑자기?”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뚱보를 바라본다.
“니가 식당 경영에 대해 잘 모르는 것 알아. 그런데 요즘은 가게만 열어 두고 전문 조리사 써서 식당 운영하는 곳 많거든. 식당 차리면 고정적인 수입도 생기고 좋잖아.”
“이런 경우를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고 하지.”
“아니거든.”
뚱보가 사기꾼을 쏘아본다.
“하긴. 식당 차리면 최고의 손님이 니가 되겠네. 그냥 손님도 아니고 공짜 손님.”
“식재료 중 절반은 저 돼지가 먹을걸?”
“우쒸. 아니거든. 나 요즘 많이 안 먹거든.”
“안 먹는 거냐? 못 먹는 거지. 저승사자 박봉으로 참 힘들겠어.”
계속되는 사기꾼의 도발에 뚱보가 ‘우쒸’거리며 거칠게 숨을 토해낸다.
“적당히 해라. 쟤가 띄엄띄엄 보여도 저승사자거든. 어디서 망령이 저승사자한테 그러냐.”
“맞아. 사기꾼 너 계속 그러면 확 저승으로 끌고 가 버린다.”
장난기 가득하던 사기꾼의 표정일 확 바뀐다.
“그게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소리냐?”
“뭐, 왜?”
“내 사정 뻔히 아는 놈이 그런 농담을 하냐?”
“…….”
뚱보가 사기꾼의 시선을 외면한다.
“미안.”
뚱보가 사과했지만 사기꾼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미안하다잖아.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남들 일에 오지랖 넓게 끼어들지 말고 니 문제나 해결해. 여전히 소식 없고?”
“쉽게 알 수 있었으면 지금까지 이러고 있겠냐?”
사기꾼이 평소답지 않게 인호에게도 쏘아붙인다.
“하여튼 밴댕이 소갈딱지. 지가 남 괴롭힐 때는 괜찮고 남들은 지한테 조금만 실수해도 안 되지. 완전 내로남불이야.”
사기꾼이 고개를 획 돌린다.
“일단 건물을 매입하는 문제는 건물주 영감님하고 상의해 보는 걸로. 이만 회의 끝!”
“식당은?”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는 뚱보에게 인호가 환한 미소를 지어준다.
“응. 안 해.”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정재훈과 유 형사, 그리고 박경수였다.
박경수는 도깨비 사건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그의 특별한 능력을 높이 산 정재훈이 여러 방면으로 손을 써서 처벌받지 않게 빼돌려 둔 상태였다.
지금은 특별 수사관 신분이 되었다. 도깨비 사건 이후 기본적인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떠났었다.
“교육은 끝났나 보네.”
“네.”
박경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박경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인호는 어려워했다. 그가 자신의 누나에게 한 일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죽은 누나를 저승에도 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데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셨습니까?”
이민정이 차를 내오자 인호가 정재훈에게 묻는다.
“실종 사건 때문입니다.”
“실종 사건이요? 검사님이 맡기에는 조금 약하지 않나요?”
말은 그렇게 해도 실종 사건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사건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중앙지검 특수 5부에서 맡을 정도냐 하면 또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최근 정재훈의 주가는 최고였다.
뱀파이어 사건, 주식 작전 사건, 중국 범죄조직 일제 소탕, 마지막으로 유니콘 그룹 사건까지 해결해 내며 부장 검사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곧 차장 검사로 승진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인호는 정재훈이 실종 사건을 맡았다는 것에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실종 사건. 확실히 특수 5부가 맡기에는 약하죠. 하지만 실종자의 수가 두 자릿수로 바뀌고, 그 실종자들이 연쇄살인으로 연결된다면?”
“충분하네요.”
연쇄살인이라면 체급이 확 달라진다.
최근 싸이코패스니 쏘시오패스니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다루다 보니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어디에서 연쇄살인마가 등장했다고 하면 몇 날 며칠 동안 뉴스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기 마련이었다.
“연쇄살인 확실한 겁니까?”
“지금부터 조사해 봐야죠. 지역은 공주와 논산 지역이에요.”
정재훈이 갈증이 나는지 커피로 입을 축인다.
“최근 공주, 논산 일대에서 실종 신고가 열네 건이나 들어왔어요. 실종 대상자는 어린아이와 여자입니다.”
만약 정말 연쇄살인이라면 범인은 자신이 제압하기 편한 아이나 여자들을 상대로 정하는 것이리라.
“부여에도 두 건의 실종 신고가 있었지만 동종 사건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연쇄살인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성화산이라는 곳에서 사체가 발견됐어요. 비가 와서 지반이 무너졌는데 커다란 봉지가 나왔어요. 거기에 잘린 팔다리가 나왔습니다.”
“팔다리만요?”
정재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연쇄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으셨죠? 봉지에서 나온 것은 팔 두 개, 다리 두 개인데 네 개가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실종자들의 DNA와 일치했고요?”
정재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답답한 신음을 토해낸다. 정재훈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체가 유기된 주변에서 망령을 찾아봐 달라는 것이리라.
하지만 사체가 유기된 곳에 망령이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망령이 저승에 가지 않고 남아 있다면 살해당한 장소에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네요.”
인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