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인호가 몸을 움직이는 순간 상대가 즉시 반응한다. 어느새 그의 양손에 누런 종이가 한 장씩 들려있다.
부적이다.
사르륵-
남자의 손에 들린 부적에서 불길이 솟구친다. 남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손을 털어낸다. 그의 손 정도의 크기였던 불이 삽시간에 덩치를 불린다.
사람 머리통 두 개를 합친 정도의 불덩이가 인호를 향해 밀려온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었다.
오히려 느리기에 더욱 위협적이다. 저 불덩이는 인호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궤적이 달라질 테니까.
“자신만만하길래 대단한 줄 알았잖아.”
인호의 입매가 뒤틀리며 움직임이 빨라진다. 두 다리가 지면을 박차고 상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인호를 향해 밀려오던 불덩이의 속도가 빨라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이런 것쯤!”
인호가 먼저 다가 온 불덩이를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파앙- 사르륵-
인호의 주먹과 충돌한 불덩이가 작은 불꽃이 되어 사그라들었다. 남은 불덩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덩이를 모두 소멸시킨 인호가 씨익 웃는다.
“토룡 형님의 화염술법에 비교하면 성냥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토룡!”
상대가 토룡이라는 이름에 반응한다.
“토룡 형님을 아나 보네?”
“알다마다!”
어찌나 이를 꽉 깨물었는지 이빨 갈리는 소리가 인호에게까지 들렸다.
“몇 년 전인가 형님이 백두산에 있는 도문을 박살 내고 왔다고 하더니 혹시 그곳 소속인가?”
“백두산이 아니라 장백산이다! 나는 장백도문 출신 운성이라고 한다.”
“아-! 그래.”
토룡이라는 도호(도사들을 부르는 이름)를 사용하는 한국의 도사.
자신의 도호를 지렁이라는 의미를 지닌 토룡이라고 지은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괴팍한지 알 수 있었다.
황동호.
토룡이라는 도호를 가지고 활동하는 그는 한국뿐 아니라 도문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최근 십 년 사이에 중국에 세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중국의 이름 높은 도문들을 박살 내고 다녔다.
자신을 운성이라 밝힌 상대가 속한 장백 도문 역시 중국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 도문이었다.
그런 도문이 황동호 한 사람에게 박살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러게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자꾸 건드려? 형님이 사람이 좋아서 그 정도로 끝난 거야. 나 같았으면 잡초 한 뿌리 남기지 않았을 테니까.”
황동호가 중국에 가서 도문을 부수고 다니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들이 먼저 황동호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도문의 본류라는 자부심을 가진 중국 도문이 황동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력이 높은 황동호를 회유했다. 중국으로 귀화하라는 것이다. 황동호는 당연히 거부했고 그때부터 중국 도문들의 황동호 괴롭히기가 시작되었다.
참고, 참고, 참다 결국 폭발한 황동호가 중국을 찾게 된 것이다.
“토룡을 아는 놈이라고?”
운성이 부적을 꺼낸다. 부적을 끼운 손가락을 비비니 이내 부적이 사라진다. 운성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두 눈을 스윽 문지른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겠지만 인호는 분명히 볼 수 있다. 운성의 두 눈에 푸른 기운이 깃든다.
운성이 또 다른 부적을 꺼낸다.
“견명과 강체술법인가?”
견명술법과 강체술법.
견명술법은 눈을 밝게 해 주는 술법이고, 강체술법은 신체를 강화하는 술법이었다.
“흥! 토룡을 아는 녀석이라면 술법에 정통하겠지.”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육박전이라고? 좋아. 아주 탁월한 선택이야.”
파앙-
인호가 지면을 박차자 단숨에 운성과의 거리를 좁힌다. 인호의 주먹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린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야.”
텅-
팔의 바깥쪽으로 인호의 주먹을 막은 운성이 주르륵 밀려난다. 인호가 운성을 따라잡으며 말한다.
“알아서 장점을 포기해준다면 오히려 고맙지.”
공중으로 몸을 띄운 인호가 몸을 회전시키며 발을 수직으로 내리꽂는다.
이번에도 운성은 인호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았다.
운성과의 거리를 좁힌 인호의 주먹과 발길질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전문 격투가들의 공격보다 빠른 공격이다. 놀랍게도 운성은 그런 공격들을 모조리 막거나 피하고 있었다.
“견명술법이 좋긴 좋아.”
견명술법으로 밝아진 눈으로 인호의 공격을 보고 막아 내는 것이었다.
“견명의 단점이 뭔지 아나?”
“무슨 헛소리를…… 커헉!”
빠각-
운성의 몸이 지면에서 떠 뒤쪽으로 붕 날아간다. 인호가 바로 운성을 쫓는다.
인호는 운성의 몸이 떨어져 내리기 전에 발차기를 한다.
운성은 어떻게든 몸을 틀어 피해 보려 한다. 하지만 인호의 손이 그런 운성의 옷깃을 틀어쥐며 움직임을 제한한다.
빡-
운성의 등에 인호의 발차기가 정통으로 꽂힌다.
“견명의 단점은 아주 단순해. 눈이 밝아지기는 하지만 단지 그뿐이라는 거야. 평생 몸을 쓰는 일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네가 눈이 밝아졌다고 해서 격투술의 대가가 되는 건 아니거든.”
퍼억-
“크아아악-!”
운성의 얼굴이 휙하고 반대로 돌아간다. 허공에 솟구치는 핏물과 그사이에 섞여 있는 이빨 몇 개.
“아무리 견명이 대단하다 해도 전문적인 싸움꾼의 변칙적인 공격까지 모조리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물론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인호가 아는 토룡 황동호는 격투술에도 일가를 이뤘다. 그가 강체술법을 사용하면 아무리 인호라 해도 섣불리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운성은 그렇지 못하다. 황동호에게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일 뿐이다.
“후우-.”
인호가 목을 좌우로 비틀며 벽에 기대 쓰러져 있는 운성에게 다가선다.
인호가 거리를 좁히자 운성은 어떻게든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나 지금 굉장히 화가 나거든?”
“크아악.”
인호가 운성의 손을 밟고 그대로 비틀어 버린다.
“너 때문에 소멸하게 된 왕초 할배는 나한테 아주 특별한 분이야.”
으득-
결국 운성의 손 뼈가 으스러져 버린다.
비명을 내지르는 운성을 내려다보며 인호가 씹어 삼키듯 말한다.
“그래서 빌고 빌었다. 제발 강한 놈이어야 한다고 말이야. 너무 약한 놈한테 왕초 할배가 당했으면 너무 허무하지 않겠냐? 그래서!”
“으아악-!”
운성의 반대편 손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지금 너무 허무해. 그리고 너무 화가 나. 너 같은 버러지 때문에 왕초 할배가!”
인호가 입술을 질겅거린다.
“하, 하하.”
인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돌아가서 전해. 머지 않아 찾아가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토룡 형님은 사람이 여려서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나는 달라.”
운성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죽일 듯 인호를 쏘아본다.
“도를 닦아야 할 도사들이 범죄조직을 비호해 나쁜 짓을 일삼았으니 변명의 여지는 없을 거야.”
인호가 몸을 돌린다.
“꺼져.”
* * *
“모두 대기합니다.”
정재훈 검사가 인이어에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저 쓰레기 같은 새끼들 모조리 쳐 죽이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범죄 현장을 덮쳐야 합니다.”
정재훈의 말에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이 몸을 들썩이고 있던 형사들이 잠잠해진다.
진실교와 관련된 중국 범죄조직을 조사하며 그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들을 알게 된 정재훈과 형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대포폰과 차명 계좌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들 중 아이들 장난 같은 수준이었다.
인신매매, 장기밀매, 마약밀수까지. 그들은 최악의 범죄에는 모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노숙자로 잠입해 있던 형사가 중국 조직의 아지트에 들어가서 범죄 행위가 확인되면 작전이 개시될 것이다.
“인호 씨?”
중국 조직 아지트 건물을 주시하던 정재훈의 눈에 인호가 들어온다. 인호는 근처의 편의점에서 탄산음료를 하나 사 마신다.
“각자 총기 점검합시다. 이번 작전에 한해서 총기 발포는 각자의 재량에 맡깁니다. 위험하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쏘세요. 저런 쓰레기들 잡겠다고 내 사람 다치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 라저.
- 라저.
여기저기 몸을 숨기고 있는 형사들의 대답을 들으며 정재훈 역시 품속의 권총을 꺼내 확인한다. 이번 작전에 한 해 지급받은 권총이다.
정재훈은 창가에 올려 둔 네모난 기계장치를 수시로 확인했다.
녹색의 불이 들어와 있는 기계장치. 저 녹색의 불이 붉은색으로 바뀌면 작전이 시작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이 커진다.
차지도 않은 시계의 초침이 들려오는 것 같다.
5분가량이 흘렀을 때였다.
틱-
녹색불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작전 개시합니다.”
짧게 말한 정재훈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크흐-.”
탄산음료가 갈증을 달래준다.
“후우-.”
인호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하늘을 바라본다. 왕초 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미안해요, 할배. 할배 그렇게 만든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인호가 피식 웃는다.
“요즘 저 위쪽에 계신 분한테 단단히 찍혀서요. 대신 할배가 당한 것보다 이자 몇 배 더 쳐서 돌려줄게요.”
운성을 압도했고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했지만, 반쯤은 허세였다.
운성을 빠르게 제압하기 위해 무리하게 힘을 사용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온몸이 삐걱거리네.”
남은 음료수를 비우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때였다.
“시작이네.”
주변의 분위기가 바뀐다. 골목, 편의점, 주변의 노점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인호가 근처의 건물 2층에 시선을 둔다. 조금 전까지 창가에 서 있던 정재훈이 보이지 않는다.
인호가 천천히 걸음을 뗀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곳으로 향했다.
“인호 씨.”
뒤쪽에서 정재훈의 음성이 들려온다. 인호는 정재훈을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정재훈이 인호를 앞지르며 작게 말한다.
“진입!”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앙’하는 소음이 들렸다. 빨라지던 걸음이 이내 뜀박질로 바뀐다.
앞에 서 있던 정재훈 역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인호는 여전히 걷고 있다. 조금 전보다 조금 빠른 걸음이라지만 아직은 여유가 보인다.
“어떻게 됐어?”
사기꾼이 다가오며 묻는다.
“사지절단.”
“호오-. 쎄게 나갔네?”
팔다리를 자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료시설에서 치료받는다해도 평생 두 발로 걷거나 젓가락질은 하지 못할 것이다.
“확 죽여버리지 그랬어?”
영감이 툴툴거린다.
왕초 할배와 유난히 친했던 영감이었다. 왕초 할배가 떠난 후 가장 분노했던 것 역시 영감이었다.
“죽이고? 나는 지옥 가고요?”
“끄응-.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
“아직 안 끝났어요. 알잖아요. 나 뒤끝 장난 아닌 거.”
영감이 씨익 웃는다.
“그렇지. 우리 인호 뒤끝이 아주아주 더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