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인호가 서울역 지하도를 걸어가고 있다.
“없어. 그날 이후로 안 온다고 하더라.”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다.
도망친 노숙자가 서울역으로 돌아와 진실교의 실체를 밝혔으니 다시 올 리가 없었다.
“쉽게 돈 벌던 녀석들이라 분명히 다른 곳에서 똑같은 짓거리 하고 있을 거야.”
영감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근처에 노숙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또 있나요?”
“흐음, 글쎄. 역마다 조금씩 있는 걸로 아는데 서울역만큼 많이 모이는 곳은 없지.”
“아-! 거기가 있었네.”
사기꾼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한다.
“어딘데?”
“용산 텐트촌.”
“아-!”
영감도 아는 곳인 듯하다.
“용산 이천고가교 아래 노숙자들 텐트촌이 있거든. 거기 모르긴 해도 수십 명은 모여 살고 있을걸.”
“그래?”
차를 주차한 후 내린 인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와 오물들로 악취가 진동했다. 길을 중심으로 허름한 텐트, 천막들이 지어져 있었다.
낮이라서 그런지 이곳에 사는 이들이 많이 보이진 않는다.
텐트촌의 규모를 보니 사기꾼의 말대로 제법 많은 노숙자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위치를 확인한 후 식사를 하고 해가 지고 나서야 다시 돌아왔다. 차에 탄 채로 주변을 살핀다. 해가 지니 노숙자들이 하나둘 텐트촌으로 모여든다.
저마다 손에 가방이나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가로등이 들어오자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파티를 시작한다. 소주와 이런저런 안줏거리를 꺼낸다.
“여기로 올까?”
“모르지. 오길 바랄 뿐이지.”
“내가 잠깐 나가서 망령들 좀 만나고 올까?”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기꾼과 영감이 사라진다. 인호는 술을 마시는 노숙자들을 바라본다.
어쩔 수 없이 밑바닥까지 떨어져 노숙자가 된 이들도 있지만, 저 생활이 좋아서 머무는 이들도 있었다.
가만히 노숙자들을 보고 있으니 왕초 할배가 떠오른다.
- 인호야. 하늘이 사람에게 재주를 주었을 때는 모두 쓰임새가 있기 마련이야. 네가 나를 볼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지.
“할배. 그 재주 때문에 너무 힘드네요.”
나갔던 사기꾼과 영감이 돌아왔다.
“인호야. 제대로 온 것 같아. 며칠 전부터 진실교인지는 몰라도 이상한 종교 단체에서 와서 먹을 것도 주고 그런다더라.”
인호가 이를 꽉 깨문다.
진실교가 서울역을 떠나 찾기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찾을 수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서 정재훈에게 전화를 걸고 이곳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렇다고 해서 정재훈이 당장 경찰들을 이끌고 이곳을 덮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철저히 조사해 불법에 관련된 증거를 찾은 후에야 움직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열 시를 넘어 열한 시가 다 되어 간다. 갑자기 주변이 환해진다. 자동차 라이트 빛 때문이었다.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 두 대가 차례로 다가와 멈춘다.
차에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내린다.
여자 셋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남자였다. 인호는 남자들을 살핀다.
그중 몇 명의 덩치가 상당히 컸다. 말썽이 생기면 무력을 담당하는 이들로 보였다.
남자들이 승합차에서 이것저것 꺼낸다. 그들이 나타나자 술을 마시던 노숙자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인호가 창문을 조금 내린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세상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 왔어요.”
“진실교.”
인호가 작게 중얼거린다.
“좋은 말씀 전하기 전에 준비한 음식을 나눠 드릴게요.”
노숙자들이 줄을 서 진실교가 나눠주는 음식을 받아 간다. 배식이 끝나자 여자 한 명이 앞으로 나선다.
“이 세상은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차 있어요. 우리는 거짓 속에 숨은 진실을 찾아야 해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그분께 다가갈 수 있어요.”
진실교 사람들은 한 시간가량 텐트촌에 머물다 물건들을 싣고 돌아갔다.
“아직은 신뢰를 주는 단계인가 보네.”
인호가 차에 시동을 건다.
진실교의 차량을 추적할 때였다.
* * *
인천 차이나타운.
인호가 길가에 차를 주차한 후 내려서 진실교 차량들이 들어간 건물을 확인했다. 아무런 간판도 없는 3층 건물이었다.
인호는 건물의 주소를 정재훈에게 보내준다.
“바로 들어갈 거야?”
“아니.”
인호가 몸을 돌린다.
“아직은 아니야.”
“내가 안에 들어가서 한 번 살펴볼까?”
“왕초 할배 어떻게 됐는지 뻔히 봐놓고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사기꾼이 흠칫 몸을 떤다.
마음 같아서는 인호도 당장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안에서 아무런 범죄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왕초 할배를 그렇게 만든 놈이 없다면?
괜히 상대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꼴이 될 것이다.
인호가 건물을 보며 중얼거린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곧 좋은 날이 있겠지.”
* * *
“진실교. 흔히 알려진 여러 종교의 교리를 뒤섞고 거기에 살을 조금 붙인 곳이에요. 아직까지는 딱히 범죄 행위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 형사가 조사한 진실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형사 한 명이 텐트촌 주민으로 위장해 잠입해 있습니다.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정재훈이 유 형사의 말을 받는다.
“텐트촌에서는 성과가 없었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는 건진 것이 있습니다. 진실교의 근거지에 형사들이 잠복 중입니다. 중국인 몇 명이 건물에 드나들더군요. 사진 보시죠.”
유 형사가 빔 프로젝트를 조작한다.
얼굴의 절반을 수염이 뒤덮고 있는 험악한 인상의 남자 사진이다.
“이름은 위청. 중국 연변 출신의 조선족입니다. 위청은 연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폭력 조직 황방의 행동대장입니다. 다음은 이락형. 같은 연변 출신으로 위청의 부하죠. 그리고 이자는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침한 인상의 남자 사진이 보인다.
“황방의 새로운 조직원인 것 같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정재훈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잇는다.
“위청과 이락형은 3년 전 마약밀매와 장기밀매의 혐의로 수배가 내려졌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곧바로 중국으로 도주했습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범인이 자수하면서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자수한 놈이 저 위청이라는 놈 부하겠네요?”
“맞습니다.”
“위청이라는 놈이 수괴인 것이 뻔한데 조무래기 잡아넣고 수사종결 했단 말입니까?”
정재훈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3년 전 사회를 굉장히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입니다. 아무래도 윗분들께서 국민 여론을 의식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많나요?”
현역 검사인 정재훈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 같아 물어본다.
“많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지요. 인호 씨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법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하죠. 그것이 돈이 되었던 권력이 되었던.”
“이해했습니다.”
“서울역에서 일 때문에 몸을 사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활동할 겁니다.”
유 형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인호는 말없이 설명을 들었다. 그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나온 남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 * *
인호는 창가 자리에서 뚱보, 사기꾼, 영감과 함께 중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 창밖으로 진실교 건물이 정면으로 보인다.
- 드디어 움직였습니다. 텐트촌에서 세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서울역에서 그런 것처럼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이틀 전 텐트촌에 잠복하고 있던 형사가 알아낸 사실이다.
진실교는 텐트촌 노숙자들을 인근 모텔에 머물게 하고는 좋은 음식을 먹이고 옷을 사입혔다고 한다.
어제는 그들을 데리고 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만들었고, 모텔에서 하루를 더 머물다가 한 시간 전쯤 차를 타고 떠났다고 한다.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당연히 형사들이 추적 중하고 있었다.
- 이제 막 IC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곧 도착합니다.
정재훈의 메시지가 왔다.
정재훈은 형사들과 함께 위청의 아지트를 감시하고 있었다.
인천으로 데리고 온 노숙자들의 장기를 적출하려면 위청 패거리들과 접촉할 것이다.
위청이 노숙자들의 장기를 적출하려 할 때 정재훈이 덮칠 계획이었다.
진실교와 위청 패거리를 한꺼번에 일망타진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 집 짜장면 맛있네.”
뚱보가 새롭게 주문한 짜장면을 비비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앞에는 빈 짜장면 그릇이 네 개나 쌓여있었다.
사기꾼이 뚱보의 볼을 폭폭 찌른다.
“저승사자님. 품위를 지키셔야지.”
뚱보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짜장면을 폭풍 흡입한다.
“안 뺏어 먹어. 그러니까 천천히 먹어.”
“금방 도착한다며? 그전에 많이 먹어둬야지.”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여긴 평일인데도 사람이 참 많다.”
영감이 창밖을 보며 말한다.
“인천에서 유명한 곳이잖아요.”
인호 역시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보이고 연인들도 보인다. 모두가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 사람은 들은 근처에 산 사람 배 갈라서 장기 빼 가는 놈들이 있는 걸 알까?”
“그러면 여길 오겠어요?”
길을 걷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인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갑자기 왜 그래?”
영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인호가 밖으로 달려 나간다.
“우이씨!”
짜장면을 다 먹고 또 주문을 하려던 뚱보가 화를 내며 인호의 뒤를 쫓는다.
* * *
인호가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왜 그러는데?”
사기꾼이 인호의 옆에 붙으며 묻는다.
인호는 아무런 말 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다. 인호의 눈은 10미터 정도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누군데?”
그때 걸어가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사기꾼과 영감이 흠칫 몸을 떨었다.
남자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더니 곧바로 우측 골목으로 들어간다. 인호가 달리며 말한다.
“영감님, 사기꾼. 돌아가.”
골목으로 들어가니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是谁?”
누구냐?
“那个重要吗?”
그게 중요해?
인호가 중국어로 대답한다.
“호오-, 우리 말을 잘하는군. 중국인이라고 해도 믿겠어.”
남자가 인호를 살핀다.
“이상한 기운을 지니고 있군. 흐음, 처음 겪는 기운이야.”
“넌 도문에 있는 사람인가?”
“도문도 알고 있어?”
도문이란 도사들이 속해 있는 집단을 말한다.
“궁금한 것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그것도 죽은 자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사람이 내게 궁금한 것이 있다? 내가 왜 네 궁금증을 풀어줘야지?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말해봐.”
“최근에 서울역에 갔던 적 있지?”
남자가 씨익 웃는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있구나. 경찰인가?”
인호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그런 기운을 품은 자가 경찰일 리 없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서울역에 있던 망령들을 해친 것도 넌가?”
“죽은 자라면 응당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하거늘 이승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나는 잘못을 바로잡은 것뿐이야.”
말이야 바른말이었지만, 한낱 도사 따위에게 그럴 자격이 주어졌을 리가 없었다.
“그건 저승사자들이 할 일이다. 넌 망령들을 소멸시켰지.”
“혹시 나이 든 망령 때문에 그러나?”
인호가 말없이 남자를 바라본다.
“그 망령이 그러더군. 자기 복수를 해 줄 사람이 찾아올 거라고.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 알겠군. 그 망령과 친분이 있나?”
남자가 어깨를 으쓱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지. 그래서 뭘 어쩌려는 것인가?”
인호가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한다.
“너도 그렇게 만들어 주려고.”
“응? 하-, 하하하하하!”
남자가 크게 웃는다.
한참을 웃던 남자가 인호를 보며 말한다.
“그럴 능력은 되고?”
“이제부터 확인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