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양평 경찰서 강력반.
“커피 한잔 드세요.”
최철주가 자판기 커피 한잔을 내려놓는다.
“원래 이렇게 한가해요?”
강력반 내부는 굉장히 조용했다.
“그래 보이죠? 저도 강남서 있다 여기 처음 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소장님도 아시겠지만 강남서는 장난 아니잖아요.”
“그러게요.”
“바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지금처럼 한산해요. 뭐, 경찰서야 한산하면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정말 사건 해결된 거예요?”
인호가 대답을 하지 않고 커피를 마신다.
그때 바깥쪽이 소란스러워지며 문이 열렸다.
“왜 그래요?”
“우리들이 뭐 잘못 했다고 그래요?”
“술 마시고 담배 피운 게 큰 죄에요?”
최철주가 인호에게 묻는다.
“저 녀석들은 왜 잡아 오라고 하신 거예요?”
어제 성한 정신병원에 있던 고등학생 다섯 명이 형사들과 함께 들어왔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최 형사님. 저 녀석들 한 놈씩 취조실에 좀 넣어 주실래요?”
인호가 먼저 취조실 안에 들어가 앉는다. 잠시 후, 학생들 중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온다. 취조실이 신기한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앉아.”
“아저씨도 형사예요?”
“아니.”
“그런데 왜 거기 앉아 있어요?”
“나는 외부 자문이야.”
“자문이요?”
“그런 게 있다. 일단 앉아. 몇 가지 질문을 할 텐데 성실하게 대답만 해 주면 돼.”
학생이 앉는다.
인호는 그런 학생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학생은 인호의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5분가량 지난 후 인호가 말한다.
“죄책감이라는 단어의 뜻 알지?”
“제가 바본지 아세요?”
“뭔데?”
“죄를 짓고 잘못한 것을 느끼는 거요.”
“잘 알고 있네.”
인호가 학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데 너는 왜 죄책감을 안 느끼니?”
“네? 제가요? 왜요?”
“세 달 전. 비가 많이 오던 날. 대학생 커플이 등산을 하려고 용문산에 왔어. 산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지. 비 피할 곳을 찾다 우연히 오래전에 폐쇄된 정신병원을 발견했지.”
학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안에 들어갔어. 그런데 선객이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지.”
인호가 차가운 음성으로 묻는다.
“왜 그랬어?”
* * *
취조실에서 네 명의 학생들을 차례로 만났다. 이제 한 명의 학생만 남았다.
취조실 문이 열리고 학생이 들어온다. 앉으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의자에 앉는다.
“왜 불렀는데요?”
불만이 가득한 음성이다. 눈빛만 보면 당장이라도 인호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니가 쟤들 대장이구나.”
“네? 아-, 내가 학교 짱이예요.”
“짱? 짱 좋지. 이름이 뭐냐?”
“한명태요.”
“명태. 이름 때문에 놀림 많이 받았겠다. 어렸을 때부터 이름이 별명이었지?”
“그런 새끼들 다 내 손에 반 죽었죠. 그리고 학교 졸업하면 개명할 거예요.”
인호가 깍지를 낀 손에 턱을 올리며 한명태에게 묻는다.
“명태야. 시계 좋아 보인다. 선물 받은 거야?”
“시계 볼 줄 아시네요. 제가 산 거예요.”
“그게 굉장히 비싼 시계인데 돈이 어디서 난 거야?”
“그걸 내가 왜 얘기 해야 하는데요? 용돈 모아서 샀어요.”
“집이 엄청 잘 사나 보네. 용돈을 모아서 3천만 원이 넘는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살 정도면.”
한명태가 책상 위에 올리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린다.
인호가 휴대폰을 꺼내 조작한 후 한명태에게 보여준다.
“아는 사람이야?”
중년 남자의 사진이다.
한명태가 고개를 흔든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잠시지만 한명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인호는 정확히 보았다. 인호가 사진을 확대해서 한 부분을 보여준다.
“어라? 이 아저씨 차고 있는 시계가 네 시계와 똑같네?”
“아, 몰라요. 왜 그러는데요? 아저씨 형사 아니라면서요?”
“맞아. 형사 아니야. 그래도 이 이야기는 해 줄게. 롤렉스 서브마리너는 구입한 사람의 이름 이니셜을 시계 내부에 새겨주거든. 네가 직접 산 거라면 뒷판 뚜껑 안쪽에 H.M.T.라고 새겨져 있겠네. 맞지?”
“…….”
인호가 휴대폰을 살짝 흔든다.
“조금 전 본 아저씨 이름이 이성주야.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지?”
한명태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린다.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한다. 한명태의 떨림이 커진다.
인호는 그런 한명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 씨발. 내가 안 죽였어요. 재성이. 그래, 재성이가 죽였어요. 나는 그냥 돈만 뺏으려고 했다니까요.”
* * *
성한 정신병원에서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골짜기.
노란 폴리스 라인이 보이고 수많은 경찰들이 주위를 통제하고 있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도 보였다. 그들이 든 카메라는 연신 후레쉬를 터트리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외침이 들려오고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그들 사이에는 수갑을 찬 다섯 명의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후우-. 세상 참 무서워요. 고등학생들이…….”
최철주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씁쓸하게 말한다.
“처음 대학생 커플은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하네요. 저 녀석들 모두 술에 잔뜩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커플 중 남자가 교복을 입고 술에 취해 있는 녀석들에게 잔소리를 했나 봐요.”
술에 취해 사람을 죽인 고등학생들은 서로 비밀을 지킬 것을 다짐한 후 커플의 시체를 이곳에 묻었다.
그날 이후 성한 정신병원은 녀석들의 아지트이자 비밀의 성지 같은 곳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공인중개사라는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몰래 숨어 그 남자를 지켜보던 녀석들이 돈이 많을 것 같은 남자의 행색을 보고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스트리머들이 촬영 갔을 때 하필이면 저 녀석들이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었나 봐요.”
“소장님은 그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귀신들이 말해 줬거든요.”
“귀신이요?”
최철주가 몸을 부르르 떤다.
인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 우리들은 그냥 여기서 살 뿐이에요. 가끔 여기 오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쫓아내기는 해요. 하지만 정말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요.
- 저 학생들이 여길 아지트로 삼았어요. 애들이니 우리들도 건들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죠. 그런데 저것들이 사람을 죽였어요.
- 다른 사람이 또 왔어요. 그래서 그 녀석들이 보기 전에 겁을 줘서 쫓아냈어요.
- 두 번째 죽은 사람은 낮에 왔어요. 그래서 우리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망령들은 오히려 고등학생들에게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아 왔다.
“거기가 정말 귀신터인지가 맞는 건가요?”
“네. 맞아요. 지금도 거기 귀신 많아요. 그러니까 담력 시험하겠다고 가거나 하지 마세요.”
“절대 안 가죠. 그런데 그게 진짭니까?”
“네?”
“롤렉스 시계 말입니다. 정말 비싼 명품 시계는 사는 사람 이니셜도 새겨줍니까?”
“하, 하하.”
인호가 어색하게 웃는 것을 본 최철주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사람 이름 이성재가 아니라 박상면입니다.”
“박상면이요?”
“두 번째로 죽은 공인중개사요.”
“아-.”
취조실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했던 지어냈던 말을 떠올리며 인호가 웃는다. 인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최철주에게 묻는다.
“쟤들은 어떻게 되나요?”
“처음 대학생 커플만이라면 정상 참작이 될 수 있어요. 술을 마셨고, 학생이라는 신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 번이 아니잖아요. 판결이 굉장히 무겁게 나올 거예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인호가 몸을 돌린다.
저승사자와 함께 걸어가는 여섯 망자가 보인다.
“하-, 이쪽 저승사자는 조금 특이하네.”
관광 가이드라도 되는 것처럼 작은 깃발을 들고 망자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인호와 눈이 마주친 저승사자가 어색하게 웃는다.
인호는 뒤를 따라가는 망자들을 바라본다.
만약 인호가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저들 역시 용문산에 묶여 사는 지박령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사건도 해결되었으니 전 서울로 돌아가겠습니다.”
* * *
“우리만 빼고 놀러 가고 말이야.”
“놀러 가? 돈 벌러 갔다 왔다.”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발끈한다.
“그러는 너야말로 뚱보를 데리고 장례식장을 왜 가? 오랜만에 맛있는 제삿밥 좀 먹겠다고 온 망령들한테 그게 할 짓이냐?”
“나도 안 데리고 가려고 했지. 그런데 알잖아. 이 돼지가 먹는데 빠질 리가 없잖아.”
인호가 바라보자 뚱보가 딴청을 피운다.
“제발 좀 저승사자라는 신분을 자각 좀 하라고.”
창밖을 바라보던 영감이 묻는다.
“갔던 일은 잘 해결하고 온 거냐?”
“네. 해결은 했는데 조금, 아니 많이 씁쓸하네요.”
“무슨 일인데 그래?”
인호가 양평에서 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세상이 점점 무서워진다. 우리 때는 학생들은 정말 공부만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사기꾼 된 거냐?”
“인호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머리 나쁘면 사기도 못 쳐요. 알아?”
“잘났다.”
문이 열리며 이민정이 들어온다.
“맛있는 족발이 왔어요.”
이민정은 양손 가득 족발을 들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족발을 이렇게 많이 샀어?”
“양평 의뢰 해결하고 돈 많이 받았거든요.”
“고작해야 백만 원 받았겠지. 그래도 우리 인호가 통장에 돈 좀 있다고 씀씀이가 커졌어.”
사기꾼의 말에 족발을 세팅하던 이민정이 웃으며 말한다.
“백만 원 아니고 천만 원이에요.”
“경찰이었다며? 요즘 형사들 수사비가 많이 나오나?”
이민정이 피식 웃는다.
인호의 말을 최철주가 오해해 의뢰금이 오른 것이다.
“세팅 끝! 먹죠.”
족발 네 개 중 두 개를 뚱보 앞에 두고 인호와 이민정이 하나, 영감과 사기꾼이 하나를 차지한다.
“돈도 많은데 좀 좋은 술 마시면 안 되냐? 일품 소주 좋더만.”
“일품 소주는 개뿔. 나는 이게 제일 맛있다.”
영감과 사기꾼 앞에 술잔을 내려두고 소주를 채워준다.
“오랜만에 짠할까?”
사기꾼이 잔을 내민다.
인호가 잔을 든다. 잔이 부딪치기 전 인호의 눈이 파랗게 빛난다.
챙-
“이런데 쓰라고 하늘이 준 힘이 아닌데 말이지.”
소주를 삼킨 후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그나저나 요즘 사무실에 손님 많이 오네. 이제 네 운이 트이려나 보다.”
“그래봐야 바빠지기만 하지.”
소주 한 잔을 더 마신다.
탁-
소주병으로 살금살금 기어 오는 이민정의 못된 손을 응징한 인호가 그녀의 앞에 쿨피스를 내려놓는다.
“이거나 마셔라.”
“그래. 민정이 넌 그거나 마셔.”
“사기꾼 아저씨까지 그러기에요?”
“응, 그러기야. 니가 전에 어땠는지…….”
드르륵- 드르륵-
상 위에 올려둔 인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