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35화 (35/190)

제35화

“으으-, 완전 으스스한데요. 낮인데도 이 정도면 밤에 오면 대박이겠어요.”

“특히 너 같은 사람은 더 대박이겠지.”

이민정은 선천적으로 귀문이 열려있어 인호처럼 망령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호는 망령을 본 이후 상황에 맞는 조치를 할 수 있고 이민정을 못 한다는 것이다.

“소장님!”

성한 정신병원 정문 앞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최철주 형사가 다가온다.

“빨리 오셨네요.”

“일이니까요.”

“들어가시죠.”

정원을 가로질러 가니 병원 건물 앞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양평 경찰서에 속한 형사들일 것이다.

“반장님. 제가 말씀드렸던 그분이세요.”

“안녕하세요. 정인호라고 합니다.”

“아, 네. 강력1반장 송영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여기 그게 있을까요?”

차마 경찰 신분으로 망령, 귀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는 듯하다.

“확인해 봐야죠. 저와 함께 안에 들어가는 분은 한 분으로 하시죠.”

“한꺼번에 많이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니요. 한 분이면 됩니다. 기왕이면 예전에 인연이 있던 최 형사님이 함께 가시죠.”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인호와 이민정, 그리고 최철주로 결정되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인호가 주위를 살핀다.

“후우-.”

길게 숨을 토해낸 최철주가 묻는다.

“소장님. 여기 정말 귀신이 있나요?”

“최 형사님. 혹시 귀신터라고 들어보셨어요?”

“귀신터요? 처음 듣는데요.”

“외국에서는 심령스폿이라고 부릅니다. 영혼이 자꾸 꼬이는 장소를 그렇게 부르죠.”

별다른 이유 없이 주인이 자주 바뀌는 가게,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는 곳, 귀신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

귀신터란 말 그대로 귀신들이 꼬이는 장소를 의미한다.

“여기가 그 귀신터인지 하는 곳입니까?”

“확인을 해 봐야 알겠지만 맞는 것 같네요.”

영력이 아주 강하게 느껴진다.

동영상에서 다수의 망령을 본 것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귀신이 엄청 많은 겁니까?”

“일단 하나는 아니겠죠. 사고가 난 곳이 2층이었죠? 그곳으로 가 보죠.”

인호가 성큼성큼 걸어간다. 최철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 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때 이민정이 최철주를 보며 피식 웃고는 인호를 따라간다.

“에라이! 씨…… 소장님, 같이 가요.”

* * *

2층의 마지막 방 앞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라인 안쪽에 부서진 카메라가 뒹굴고 있다. 라인을 위로 들고 안으로 들어간 인호가 주변을 살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으음’하고 신음을 토해내기도 한다.

“저, 저-.”

“네?”

이민정이 말을 더듬는 최철주를 바라본다.

“방금 소장님 눈이 파랗게 빛난 거 맞습니까?”

“맞아요.”

이민정이 환하게 웃는다.

“우리 소장님 평범하신 분 아니라는 것 아시잖아요.”

“아, 그렇죠. 저-, 혹시 지금 이 근처에 귀신이 있나요?”

“없어요.”

“정말입니까?”

“네.”

“휴우-. 그런데 어떻게 아시죠?”

이민정이 어깨를 으쓱한다.

“저도 귀신 보거든요.”

최철주가 깜짝 놀라며 한걸음 물러선다. 이민정이 웃으며 설명해준다.

“우리 소장님이 조금 쎄요.”

“쎄요?”

“네. 그래서 웬만한 귀신들은 소장님이 오시면 도망치죠.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예요.”

“귀신도 없다면서 소장님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곳에 남은 기운을 느끼시는 거죠.”

최철주가 모르겠다는 듯 이민정을 바라본다.

“형사님이 사건 현장에 가시면 뭐 하시죠?”

“범행 증거 찾죠.”

“맞아요. 소장님도 귀신들이 남긴 흔적을 찾고 있어요. 귀신들이 삿된 기운을 사용하면 그 흔적이 남게 되거든요.”

인호가 몸을 돌린다.

“가시죠.”

“어딜 가죠?”

“밖으로 나가자고요.”

“벌써 끝난 겁니까?”

“네. 망령들이 모두 숨었네요. 다시 와 봐야겠어요.”

인호가 걸음을 옮기자 최철주가 바로 따라붙는다.

“저, 소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소장님은 망령이라고 부르시잖아요? 귀신하고 망령의 차이점이 뭡니까?”

“똑같은 거예요. 사전적 의미만 봐도 그래요.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넋이고 망령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니까요. 제가 망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귀신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서예요.”

“아, 그러시구나.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언제 다시 오실 생각이세요?”

인호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한다.

“밤이요.”

“꿀꺽-, 바, 밤이요?”

“네. 낮에는 망령들이 약해요. 그러니 제가 오자마자 숨어버리죠. 밤이 되면 조금 달라질 거예요.”

건물 밖으로 나오니 들어갈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야, 이 녀석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학생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말이야. 니들은 전부 부모님 부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이 순경. 이 녀석들 모조리 끌고 가.”

교복을 입은 다섯 명의 남학생들이 꾸중을 듣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최철주와 함께 사무실에 왔던 안민수 형사에게 물었다.

“주민들이 신고를 했는데 저 녀석들이 평소에 여길 아지트 삼아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랬나 봐요.”

요즘 고등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일은 아주 흔하다.

“짜식들. 아주 무서운 곳을 아지트로 사용했네요.”

인호가 말을 하며 고등학생들을 바라본다.

“어쭈.”

인호와 눈이 마주친 고등학생들이 인상을 구기며 위협을 하듯 눈을 부라린다.

“소장님. 요즘 고등학생들 무서워요.”

“하하. 그렇죠. 애들이 무섭죠.”

인호가 고등학생들 중 한 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확히는 학생의 팔목을 보고 있었다.

그때 송영길 반장이 크게 외친다.

“빨리 끌고 가지 뭐 하고 있어?”

경찰들이 고등학생들을 끌고 간다.

인호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상하게 조금 전 마주친 눈빛이 머릿속에 남았다.

* * *

성산 정신병원이 있는 용문산 인근 모텔.

인호가 모텔을 나선다. 입에 핫바를 물고 오던 이민정이 인호를 보고 달려온다.

“소장님. 어디 가세요?”

“할 일도 없고 해서 소주나 한잔할까 하고.”

“저도 같이 가요.”

“싫다.”

“왜요!”

“너도 양심이 있으면 왜냐고 말하면 안 되지. 너 전에 회식할 때 소주 두 잔 마시고 어땠는지 기억 안 나?”

“안 나는데요.”

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든다.

“당연히 기억 안 나겠지. 그때 너는 내가 아는 이민정이 아니었으니까.”

갑자기 웃다가, 울고.

또 울다가 깔깔대며 웃고.

마지막에는 인호에게 ‘야! 니가 소장이면 다냐!’라고 화를 내다 소파에 쓰러져 그대로 정신을 잃는 바람에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얼마나 생고생을 했는지.

“넌 절대 술 마시지 마.”

“나 술 엄청 잘 마시거든요.”

“누가 그래?”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 내가 제일 잘 마시거든요.”

인호가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뗀다.

이민정이 다가와 인호와 팔짱을 끼며 씨익 웃는다.

“술 안 마실게요. 이 시간에 모텔 들어가서 뭐 해요? 안주만 먹을게요.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언제는 허락받고 뭐 했냐?”

모텔 근처의 막창집에 이민정과 함께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는데 그중 세 개의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막창 3인분하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준비해 줄게요.”

“소주 먼저 주시겠어요?”

“알겠어요.”

아주머니가 소주와 밑반찬을 가져다준다.

“우와-, 파김치 엄청 맛있을 거 같아요. 이모, 밥도 한 공기 주세요.”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이민정을 바라본다.

“너 나하고 같이 저녁 먹었잖아.”

“맞죠.”

“조금 전에 핫바도 먹었잖아.”

“그런데요?”

“그런데 밥을 또 먹는다고?”

이민정이 파김치를 손으로 가리킨다.

“딱 봐요. 빨갛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파김치잖아요.”

그 부분은 인호도 동의한다.

“이런 파김치를 두고 밥을 먹지 않는 것은 파김치에 대한 모독이에요.”

“도대체 그건 어느 나라 논리냐?”

“이민정 공화국이요.”

“하, 하하.”

인호가 어이가 없어 웃자 이민정이 잔에 소주를 따라준다.

“한잔하세요.”

“캬, 좋네.”

소주 한 잔을 마신 후 파김치를 먹는다.

파김치는 이민정의 기대만큼이나 맛있었다.

곧 막창이 나오고 불판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한 잔, 두 잔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계란찜을 가져다준다.

“이 동네 분 아니죠?”

“아, 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이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이 동네가 딱히 볼 게 있는 동네가 아니라 놀러 오는 외지 사람이 없거든요. 요즘 동네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도 하고.”

“어수선해요?”

아주머니가 주위를 살피며 작은 음성으로 말한다.

“세 달 전쯤인가 용문산으로 등산하겠다고 온 두 사람이 실종됐거든.”

인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젊은 커플이었는데 밥 먹고 산에 올라간다고 바로 나섰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 가고 얼마 안 있어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거예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엄청났지. 그래서 기억해요. 그리고 두 달인가 지났을 때 또 한 사람이 실종됐어요. 부동산에서 나왔다나 뭐라나. 그리고 이번에 또 사람들이 실종됐다잖아요.”

“동네 분위기 어수선할 만하네요.”

“가뜩이나 장사도 잘 안 되는데 가끔 용문산 오가는 등산객들도 뚝 끊겨 버렸어요. 힘들어 죽겠어요.”

아주머니가 돌아가고 인호는 막창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다.

“소장님. 먼저 실종된 사람하고 이번에 실종된 사람이 연관되어 있을까요?”

“내가 형사냐? 그걸 어떻게 알아?”

“혹시 소장님이라면 뭐 아는 게 있나 물어본 거죠. 아까 그 정신병원 분위기도 그렇고 계속해서 사람들도 실종된다고 하니 오싹한데요.”

인호가 잔을 비우고는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잠시 바라본다.

* * *

자정이 얼마 안 남은 시간.

인호가 모텔을 나선다.

“넌 왜 나와?”

“저도 같이 가야죠.”

“거기가 어디라고 네가 가. 그냥 쉬고 있어.”

“에이, 그러면 안 되죠. 홈즈 옆에는 왓슨이 있고 베트맨 옆에는 로빈이 있잖아요.”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혹시 알아요. 제가 도움이 될지.”

“그래. 가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대신 가서 소리 지르거나 하면 안 된다.”

“넵! 망령들 자극하지 말라는 말이잖아요.”

“잘 아네.”

차를 몰아 성한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밤에 오니 더 오싹한데요.”

정문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희미한 달빛에 비쳐 괴기스럽게 보였다.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입구에 섰다.

“느껴져?”

“네. 상당한데요.”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가 곧장 2층으로 향한다.

스트리머들이 비명을 지른 마지막 방에 도착한 인호가 주위를 둘러본다.

“숨어 봐야 다 보이니까 헛심 쓰지 말고 튀어나와라.”

인호가 말을 하자 이곳저곳에서 망령들이 튀어나온다. 벽을 뚫고 나오고 천장을 뚫고 나오기도 한다. 인호는 망령들을 차례로 살핀다.

“악령은 없는 것 같네요.”

이민정의 말대로 모습을 드러낸 망령들 중 악령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게 전부야?”

인호의 물음에 젊은 남자 망령이 대표로 말한다.

“몇 명 더 있는데요.”

“그 녀석들도 불러.”

남자 망령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망령들과 함께 나타났다. 함께 온 망령들 중에도 악령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혹시 너희들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실종된 것과 연관 있나?”

“아니에요.”

“무슨 소리를 해요.”

“우리 아니에요.”

망령들이 단체로 발끈한다.

“정말이야?”

“매일 거짓말하고 사기 치는 망령만 만나 보셨나. 왜 이리 말을 못 믿어요.”

문득 사기꾼이 떠오른다.

인호가 망령들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희들이 아니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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