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18세 봄(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용병 길드는 의뢰 받을 때는 의뢰를 낸 사람이 돈을 내고, 의뢰가 완료되면 용병들이 받는 의뢰비에서 일정 금액을 받는다.
‘어차피 상인 조합은 여기서 장사할 게 아니라면 굳이 가입할 필요는 없지.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가입하는 걸로 하고.’
가끔 볼 일이 있으면 제르넨에 간다.
그때 등록해 놓으면 될 것이다.
“여행?”
“어.”
“어디로?”
일리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들을 쳐다 보았다.
“어, 아직 정한 것은 아니고. 제르넨 말고 다른 도시를 둘러보고 싶어서.”
“다른 도시...”
“가족이 전부 가는 건 어떨까?”
존슨이 제안해 보았지만 일리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두려워하고 있다.
그녀와 가족이 함께 가는 것도 두렵고, 존슨 혼자 보내는 것은 더 두렵다.
그게 일리나의 솔직한 속내인 것 같았다.
그래서 잠깐 얘기하다가 포기했다.
일리나가 저토록 두려워하는데 굳이 우겨가면서 갈 일은 아니다.
나중에 사냥 한다는 핑계로 여러 날 집을 비우면서 그때가도 그만이다.
굳이 두려워하는 사람을 끌고 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은 당분간 보류.
언젠가부터, 아마 존 포우가 죽고 한참 지난 후부터일 것이다.
존슨은 때때로 말을 타고 다녔다.
시골에서 말 타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여태 존슨은 말을 끌고 다니거나 마차를 달아매고 다녔다.
그러던 존슨이 헤나와 줄라탄 부부에게 말을 구해주면서 자신도 말을 하나 더 구하더니 그때부터 그 말을 열심히 타고 다녔다.
심지어는 제르넨에 가서 안장까지 구입을 해왔다.
말 등에 담요를 덮고 그 위에 가죽으로 만든 안장을 얹은 후 고정시킨 다음 태연하게 타고 다녔다.
말을 타는 일이야 그리 드물거나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존슨이 그러는 것이 낯설었을 뿐이다.
존슨은 일하러 갈 때 마차를 끌고 가면서도 말을 탄 채로 마차를 끄는 말의 고삐를 쥐고 다니기도 했다.
마치 말을 타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이제는 자연스러워져서 존슨이 말을 타고 벌판을 달려도 다들 그런가보다 할뿐이다.
그러면서 제르넨을 수시로 오가게 되었다.
제르넨을 오가는 길에 있는 마을들에서는 마치 존슨이 하롯마을 공식 심부름꾼이나 파발 취급을 했다.
그래서 존슨이 오면 서슴없이 문을 열어주고, 하룻밤 머물기를 청해도 선선히 허락해주었다.
물론 존슨이 말 타고 제르넨에 갈 때에는 촌장이나 자경단에 얘기를 해둔다.
윗사람 성질 건드려서 좋을 일은 없으니까.
그것 말고 몰래 갈 때는 굳이 말하지 않지만.
그걸 볼 때마다 촌장은 속으로 ‘저놈이 제르넨에는 왜 자꾸 가지? 저번에 말한 것처럼 그리로 이주하려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존슨이 뭐라 말을 하면 몹시 신경이 쓰인다.
‘늙어서 그런 걸까? 이제 촌장은 그만 두어야 하나? 로트가 아직은 좀 모자라는데...’
아들의 말이나 행동을 생각해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원래 부모 눈에는 자식이 다 어려 보이고 어설퍼 보이는 법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저 새끼, 제르넨으로 가면 골치 아픈데...’
존슨만이 문제가 아니다.
헤나와 줄라탄도 흔들릴 수도 있다.
‘아직 데이지가 결혼하지 않았으니 금방은 못 움직이겠지만...그 놈은 도시 여자들을 보았으니 눈이 높아져서 이 마을 여자들이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 허긴, 마땅한 여자애가 없기는 하지. 미망인이랑 결혼하려 하지는 않겠지. 일리나가 워낙 이뻐서 어지간한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 헤나나 데이지도 예쁘고. 제티놈도 나중에 문제되는 거 아냐?’
남의 집 혼사 문제까지도 신경이 쓰였다.
‘에잉! 괜히 그놈이 제르넨 얘기는 해가지고서! 설마 말도 없이 훌쩍 가버리지는 않겠지?’
나이를 먹으면서 걱정이 많아져서 그런 것인데 촌장으로서는 마을 걱정거리 중의 하나였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 존슨은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마을 일이라고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자경단 훈련 말고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제티는 아직 자경단에 속할 나이가 아니니 가장 속편한 놈이다.
집에서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 외에는 요크에게 활 쏘는 거 배우는 것 말고는 꼭 해야 할 일은 없다.
존슨은 마법이 있다.
‘영원이 끝나지 않을 공부’쯤 되는 학문이고 기술이고 능력이다.
평생을 하고도 모자라 죽어서도 하겠다고 리치가 되려 한다고 하지 않던가?
리치가 되어 영원히 그 공부와 연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겠다!
이런 의미인 걸까?
존슨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실 존슨의 마법실력은 엉터리다.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체계적이질 않다.
그저 되는대로, 급한 대로, 순서 없이 마구 배운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마법이지만 존슨이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면서도 어떤 것은 꽤나 실력이 있어야만 펼칠 수 있는 마법을 익히고 있기도 하다.
마법의 발현 역시 교과서 격인 마법서에 있는 것만 익힌 것은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익히면서 이렇게 하는게 좋을까, 저런 것은 어떨까 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기묘한 방식을 가미한 것도 많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것은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
뜻밖에 효율이 더 좋은 것도 있고.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 큭큭.’
본인 생각에도 그래서인지 괜히 웃음이 나곤 한다.
그런 효과가 생길 것을 기대해서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노름과 비슷해. 결국은 손해야.’
결과를 놓고 생각해보면 그의 판단이 맞다.
노력한 것에 비해서는 그 효과는 사실 미미하다.
즉 어쩌다 본전 찾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성공한 것만을 놓고 득의양양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시간과 노력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을 생각한다면 손해다.
‘악착같이, 죽어라 달려든 것이 아니니 다행이긴 하지.’
존슨에게 있어서 마법이란 결국 그런 수준의 기술인 것이다.
있으면 되게 편하고 좋은, 그렇지만 없더라도 굳이 아쉽지 않은, 그런 정도.
있으면 당연히 좋다.
도움이 된다.
편해진다.
안전해진다.
그렇지만 없다고 당장 죽을 것 같으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마법이 없더라도 그럭저럭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생활의 여기저기에 마법의 힘을 쓰지만 그건 마법을 숙련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
시간을 절약해주고, 기술적인 격차를 줄여주는 것.
시간을 투입하고 기초기술에 조금 더 노력을 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
‘아마 그건 내가 마법 실력이 낮아서 그럴 거야.’
존슨도 그런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꽤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고.
최근에는 정령과 계약을 하게 되면서 정령 마법이라고도 말하는 정령력을 이용한 이능을 사용하는데에도 신경을 썼다.
여하튼 마법은 시간 때우기 용의 시시한 그런 것은 아니다.
존슨은 그 비슷한 용도로 접하고 있는 면도 있지만.
답답하고 따분한 시골 생활을 이겨내는 한 방편으로도 마법이 유용하다.
특히 겨울에는 오후 5~6시 사이면 해가 저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치우면 늦어봐야 7~8시.
존슨은 가족을 일찍 재우고 다음날 새벽까지 마법 수련에 몰두한다.
최근 보석, 사금 같은 것들을 수월하게 획득하게 되면서 마법 연구에 더 빠져들고 있었다.
마법 실험에서 보석과 은과 금의 존재는 거의 필수적인 재료들이다.
존슨은 약초, 몬스터의 마정, 자연적으로 취득한 하급의 마나석 같은 것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금, 보석 등을 합쳐 이런저런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괴상한 재료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진짜 마녀나 마술사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무슨 특이한 박쥐의 날개에 달린 손가락이라거나 특정 올빼미의 눈알이라거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약초의 뿌리 같은 것들.
유심히 살펴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하고 정 어쩔 수 없는 것은 나중에라도 구하면 그만.
제르넨에서는 마법 상점을 보지 못했다.
변경의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라지만 마법 상점은 보이지 않는다.
있지만 감춰져 있어서 존슨이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잡화점을 뒤지는 중인데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라도 대도시에 가봐야 하는데...다음 가을에 수확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 출발해서 겨우 내내 대도시를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말았다.
아주 목매달고 임하는 것이 아니니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그래, 꼭 실험이나 연구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그건 디테일을 살리는 것 뿐이고. 실제는 내 손으로 팍팍 써보는 거 아니겠어?’
존슨은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진즉에 마음먹었다.
다시 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초여름에 보리를 낼 때가 되면 세금을 걷어가던 작년 봄의 영주 관리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기사와 관리와 병사들이 몇 번 와서 난리를 피우고는 끝이었다.
소문에는 베버릭 마을과 렌즈모리아 마을에선 난리가 났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있다.
존슨은 모르는 척, 태연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 후에도 영주의 관리와 기사와 병사들은 꾸준히 세금을 걷으러 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태연하게.
‘절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지 않겠지.’
존슨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봄에도 역시 죽는 소리를 해가면서 제대로 보리농사를 짓지 못했다고 엄살을 떨었다.
그러면서 영주의 관리에게 숫염소의 목줄을 쥐어 주었다.
촌장도 와서 도와준다.
촌장에게는 미리 올 봄에 낳은 숫염소 한 마리를 건네주었다.
농토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은 한 번 올랐던 것을 기준으로 조금 깎아주거나 비슷하게 거둔다.
매년 그렇게 두 번씩 봄가을로 염소나 송아지를 촌장에게 넘겨주면 그가 와서 적극적으로 말려준다.
과부댁 큰아들, 아버지를 몬스터에 잃은 불쌍한 가족 등의 이유다.
그게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의 도움을 받아 세금징수원에게도 염소 고삐를 쥐어주면서 세금을 깎는 것이다.
즉 염소 한 마리로 보리 20자루 정도거나, 통밀 십여 자루를 절약하는 것이다.
염소 한마리라고 해봐야 보리 두 자루 정도의 가치일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염소는 꽤 키우는 중이다.
이번에도 며칠을 난리를 피운 영주의 관리 일행이 마을을 떠났다.
그동안 예전과 다르게 기사와 병사들은 탐문을 했다.
혹시 낯선 사람이 오가는 것을 본 적은 없는지, 몬스터의 동향은 어떤지, 산적들을 본 적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산적이나 몬스터를 토발 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묻기는 왜 묻는 건데?’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놈들이야 마법아티팩트를 찾기 위해서라지만 하는 짓이 얄밉고 괘씸한 것이다.
그건 기분이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여전히 굽실거리거나 뺨을 맞거나 놀림을 당한다.
하지만 끽소리도 하지 못하는게 이런 시골 농부들이다.
이번에도 마을 사람 누군가는 욕을 먹고 뺨을 맞았으며 발길질 당했다.
그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다.
때로는 죽이는 경우도 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그런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영주도 없는 영지.
있긴 하지만 수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는 관리들과 기사들이 영주나 다름없다.
영주가 있어도 얼굴도 모르는 촌의 농부들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자기가 거느린 기사나 관리의 편이 되어줄게 뻔하다.
그러니 억울해도 참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