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17세 겨울(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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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애들을 통해서 알아봐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두고 사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강한 증오심이 느껴지니 불안하다.
두 번째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 보거나.
세 번째는 촌장이나 유지 등을 통해 화해를 해보거나.
마지막이 존슨이 오래 고민한 선제적 방어나 공세적 방어라고 부르는 방법.
그것 역시 그 안에서 몇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적당히 손을 봐주거나, 기를 꺾어 두거나, 아예 망하게 만들거나, 그도 아니면 에거시 가족에게 한 것처럼 씨를 말려 버리거나.
‘그런데 꼭 죽일 필요까지 있나?’
이런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어설프게 손댔다가 더 큰 원한을 사는 수도 있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존슨답지 않게 오래도록 고민하고 궁리하고 망설이게 된 것이다.
‘아예 이 마을을 떠날 생각이라면 굳이 이런 위험한 짓을 할 필요는 없지. 그렇지만 그럴 수 없잖아?’
일리나로서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쉽게 떠날 수 없다.
헤나는 혼인을 했고, 데이지도 곧 혼인을 할 것이다.
제티 역시 조금 더 자란다면 결혼을 하겠지.
존슨은 전혀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에 노인인 장진오가 들어 있으니 썩 마음이 내키는 것이 아니다.
묘한 상황 때문에 어리버리하다가 시기를 놓친 것도 있다.
너무 애들 같아서 망설였고, 그러다 보니 적당한, 괜찮은 여자들은 다들 일찍 결혼을 했다.
이제는 미혼이라도 약혼을 한 상태거나 뭔가 문제가 있거나.
존슨 본인도 썩 안 내켜하기도 했다.
‘나 혼자 떠나도 되겠지만...’
보통의 젊은이라면 다 버리고 떠날 생각도 할 것이다.
만일 아직도 존 포우가 살아 있었다면 존슨 역시 벌써 마을을 떠났을 것이다.
일리나야 자기 남편이니 알아서 살았을테고.
데이지도 일리나의 딸이기도 하니 결혼을 하긴 했을 것이다.
그저 자기 한 몸 훌훌 떠나도 그만이었다.
하필 그때 존 포우가 죽었다.
존 포우가 죽고나니 딱히 마을을 떠나야 할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정리하고, 가족들 좀 돌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이제라도 떠날까?’
이런 마음이 있다가도 케머시 잔튼 같은 놈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저런 새끼들이 눈알을 번뜩거리는데 그냥 두고 떠나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은 뻔하다.
존슨이 끝가지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장진오는 오랫동안 가정과 회사를 책임지던 사람이다.
그 책임감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버리자!’
결국 결심을 굳혔다.
케머시 잔튼이 대놓고 존슨에게 해코지를 한 것은 아니다.
아직은!
그렇지만 잠재적인 위험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 뒷통수를 때리면 치명적일 수 있다.
오히려 지금처럼 드러난 원한 관계가 없을 때 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래야 의심을 덜 받을테니까.
존슨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케머시 잔튼 하나만 어찌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놈이 여태 그 가족에게 존슨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말하고 세뇌시켰을지 알 수 없다.
그 아들 조니 잔튼 역시 존슨을 볼 때 원한에 가득 찬 눈으로 본다.
‘누가 누굴 노려보는 거야, 도대체가! 억울하고 분해도 내가 더 하지, 제놈이 날 괴롭히고, 욕해놓고 왜 눈깔을 저렇게 뜨고 쳐다보는 거지?’
오해일 수도 있겠다.
존슨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매가 그래서, 원래 표정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의 표정과 존슨이나 존슨 가족을 볼 때의 표정과 눈매가 180도 다르다.
‘되도록 피를 흘리지 말아야지.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그래서 일부러 목재를 다듬는 일이 급한데도 사냥을 한다고 하루를 쉬기도 했다.
‘어차피 대낮에 일 저지를 건 아니긴 하지만.’
아직 투명 마법 같은 건 쓸 줄 모른다.
대신 몸을 가볍게 하거나 힘을 좀 강하게 하거나 하는 등의 마법은 가능하다.
‘아무래도 마법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지. 적절하게 마법을 사용하면 아무 흔적없이 완벽하게 마칠 수 있을거야.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필요할만한 여러가지를 준비해둔다.
대단하게 특별한 것들은 아니다.
2~3미터 정도의 로프들, 바인드 마법을 더 쉽게 펼치기 위해서다.
원래는 로프 없이 마법으로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로프를 미리 준비해놓으면 훨씬 쉽고 빠르고 강하게 마법이 펼쳐진다.
로프가 살아 있는 생물인 것처럼 날아가 감긴다.
감기는 것도 마법으로 미리 조종을 해두면 아예 매듭까지 딱 지어놓을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마법을 간소화하거나 미리 준비해놓은 재료를 이용하면 빠르고 정확하고 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순서는...이렇게 하면 될테고. 그렇게 하려면 완드도 몇 개 더 필요하고. 완드의 사용 순서는 이런 식으로 하면서 혹시 문제가 발생하면 이렇게 써도 되겠지. 생길만한 문제는 뭐가 있을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럴 땐 아예 이 마법을 확 써버리면?’
치밀하게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준비했다.
케머시 잔튼의 가족은 수가 많다.
존슨은 그 중에서 최소 둘에서 최대 다섯까지 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케머시와 조니 이렇게 둘이거나, 케머시 잔튼과 그 아내, 조니, 조니의 형 도슨, 도슨의 처 에일렌.
도슨의 처 에일렌도 원래부터 존 포우를 괴롭히고 욕을 해대며 사이가 아주 나쁜 제스퍼 오닐의 딸이다.
‘제스퍼 오닐까지 처리해야 할까?’
이런 고민도 해봤다.
그러나 제스퍼 오닐은 존 포우가 죽은 후로 몇 번 스쳐지나가듯 보기는 했지만 딱히 노려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친한 척도 안 했지만.
‘좋아. 두 부자거나 다섯 식구거나.’
도슨도 그리 착한 놈은 아니다.
존슨 입장에선 오히려 나쁜 놈에 가깝다.
줄라탄과도 사이가 안 좋다.
대놓고 싸우는 사이는 아니지만 좋은 사이는 절대로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 죽여 없애는 것이 꼭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늘 불안감을 갖고 살 수는 없잖아? 화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복잡한 방법으로 케머시 잔튼의 일가를 망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너무 어려운 방법이다.
많은 마을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하는데 그게 쉬울 리가 없다.
에거시의 경우는 그 자신이 감춘 비밀이 있었기 때문에 마을 거주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케머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신중하게 해야 해. 실패하거나 들통 나면 여기서 살기 어렵지. 살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먹고, 죽을 수도 있고.’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처럼 캄캄한 날이었다.
대낮부터 짙은 구름이 아주 낮게 깔려 있었다.
두껍고 검은 구름이 가득했다.
바람도 살살 불면서 아주 추웠다.
‘원래 눈 오는 날은 바람도 안부는 거 아냐?’
속으로만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눈 오는 날은 거지가 빨래하는 날이란 소리도 있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눈 오는 날은 푸근하다고 했다.
여기는 좀 다르다.
‘뭐, 지구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니까 그렇겠지.’
존슨은 평소와 똑같이 문단속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가족들도 다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누었던 존슨은 금방 일어났다.
일리나의 침실로 들어가 마법으로 잠을 재웠다.
데이지와 제티까지 다 잠재운 후에 집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바람이 불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을과 살짝 떨어진 위치로 봐서 누군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
아주 주의 깊게 살핀 후 주방이 있는 뒤쪽 문을 열고 재빨리 집을 나섰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지 않는다.
바람만 분다.
마을로 향하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
이런 날에는 그저 따뜻한 집안에서 버텨야 한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그리 생각한다.
주당들이나 술 마시러 가거나 노름꾼이나 노름하러 움직인다면 모르겠지만.
존슨은 자기 자신에게 몇 가지 마법을 걸었다.
키가 커보이게 했다.
존슨의 키도 작은 편은 아니다.
아직 자라는 중이기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크다.
그런데 더 크게 보이도록 했다.
실제 더 큰 것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체구도 키웠다.
머리카락도 까만색으로 보이도록 했다.
얼굴에도 수염이 가득하게 보이도록 했다.
코도 엄청 크게 보이도록 했다.
이렇게만 해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상태에서 로브를 걸쳐 몸을 가리고 두건을 눌러 썼다.
케머시 잔튼의 집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살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전혀 없다.
어느 농가나 그렇듯이 단층의 집.
통나무와 진흙으로 지어진 집이다.
문틈으로 완드의 날카로운 끝을 집어넣었다.
“슬립!”
슬립 마법을 걸고 집 뒤편, 주방쪽 문을 열었다.
당연히 문은 잠겨 있었지만 존슨이 알고 있는 하급 마법에 LOCK/UNLOCK 마법이 있다.
즉 마법으로 문을 잠그는 마법과, 마법으로 잠근 것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잠긴 것도 풀어 주는 마법이다.
못질해놓은 것이 아니니 당연히 금방 열린다.
얼른 들어가 문을 안에서 잠겄다.
잠시 가만히 기다렸다.
내부의 온도와 맞추고 난 후 천천히 움직였다.
방문마다 멈춰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두 명, 한 명, 두 명...세 명? 세 명이라니?’
그러고 생각하니 도슨에게 갓난아기가 있었다.
‘젠장...아기라니...’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언제까지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들고, 망설였으며 갈등을 느꼈다.
‘쳇, 에거시 일가에도 어린아이들도 있었어. 어른만 있었던 것 아니잖아? 그들은 되고, 얘는 안 될 이유가 있나? 거기는 멀리서 독구름으로 했고, 여기서는 직접 손을 써서? 여기도 독구름으로 할 수도 있잖아? 방법의 차이일 뿐이지 죽는 건 어차피 마찬가지잖아? 그렇다면...’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믿어주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정체를 모른다면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는 알 수 없다.
‘으으...좀 끔찍하기는 하지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이게 좋은 거야. 범인을...사람이 아닌 존재로 떠미는 거지. 그래도 일단 먼저 죽이면 안될까?’
죽으면 피가 솟구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냥 잠깐 질질 흐르다 멈춘다고 했던가?
확실하지 않다.
이제 와서 어디서 테스트 해볼 수도 없고.
‘테스트, 까짓 것 한 번 해보지.’
존슨은 한 사람의 숨소리만 들린 방문을 열었다.
‘잔뜩 괴롭히다가 죽여야 하는 거 아닐까? 그동안 마음고생 시킨 거 생각하면 그냥 죽이는 건 너무 자비로운 일인데...’
그런 생각도 했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몬스터를 죽일 때도 단 칼에 죽여준다.
인간과 사이가 극도로 나쁜 몬스터라고 해서 굳이 괴롭히지는 않는다.
괴롭힌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