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17세 겨울(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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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몸집이 작은 멧돼지 중의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존슨이 숨어 있는 곳 가까이로 다가왔다.
배가 고팠을까?
땅바닥을 주둥이로 파헤치며 뭔가를 정신없이 쩝쩝거리며 먹는 것 같았다.
다른 놈들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그놈들도 각자 흩어져 뭔가를 뒤지는 것 같았다.
시위를 당겼다.
부러질 것처럼 한껏 휘어진 활의 시위를 놓았다.
바람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멧돼지의 눈알에 정확하게 화살이 꽂혔다.
“꾸웨에에에엑!”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한 방에 절명하지 않은 것이다.
저런 덩치가 그럴리는 없겠지만.
다음 화살이 금방 날아갔지만 배에 맞았다.
세 번 째 화살은 목에 맞았지만 그래도 죽지 않았다.
다른 멧돼지들이 달려왔지만 존슨은 운 좋게도 몸을 잘 감추고 있었다.
존슨은 높은 나무 위에 있었고 돼지들은 밑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더 이상 길게 끌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동전주머니 안에서 강철로 만든 창을 꺼냈다.
위에서 아래를 향해 던지는 것이니 위력은 더해지고 무게에 대한 부담은 줄었다.
오랜 연습 덕분인지 강철 창은 그대로 빨려드는 것처럼 날아갔다.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질러대는 멧돼지의 목덜미에 정확히 꽂혔다.
멧돼지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 바르르 떨었다.
다른 멧돼지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동료를 공격한 적을 찾고 있었다.
존슨은 기다렸다.
결국 죽은 멧돼지 주위를 돌던 다른 멧돼지들은 그 자리를 떠나고야 말았다.
존슨은 돼지들이 떠나고도 한참 기다렸다가 나무에서 내려갔다.
몸을 가볍게 만들고 재빨리 내려가 죽은 멧돼지를 마법동전주머니에 넣고 도로 나무 위로 재빨리 올라갔다.
곧 몇 마리의 멧돼지들이 나타나 흥분하여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존슨은 그걸 나무 위 꼭대기 근처에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활한 멧돼지 같으니라고! 멧돼지 사냥은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구나. 운이 좋았어. 강철창 같은 것을 몇 개 더 만들어야겠다.’
나무 꼭대기에서 다른 나무의 꼭대기로 몸을 날렸다.
거의 직전으로 산을 내려왔다.
집 근처에 이르러서야 마법동전주머니에서 죽은 멧돼지를 꺼냈다.
몸통에 박혀 있는 창과 화살을 빼내고 그 자리를 풀을 뭉쳐 쑤셔 박아 피를 막았다.
멧돼지를 어깨에 가로질러 멨는데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무거웠다.
‘체력이...체력이 달려...너무 무거워...’
“이게 뭐야?”
다들 놀라 뛰어 나왔다.
서둘러 멧돼지를 거꾸로 매달아 피를 빼고 가죽을 벗겼다.
아주 큰 놈이었다면 토막을 쳐서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와는 육질이 달랐다.
이쪽 세상의 돼지는 개량이 잔뜩 된 한국의 돼지와 다르다.
외모부터 멧돼지와 닮았다.
그래도 멧돼지와는 사뭇 다르다.
그날 즉석해서 굽고 찌고 삶아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남은 것은 염장을 하거나 훈제를 했다.
그 후로 더 활을 수련했다.
위력이 약한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몇 가지 기술과 마법을 접목시키려 했다.
첫 번째는 화살이 회전하며 날아가도록 하는 방법.
두 번째는 촉 부분이 몸 안에 박혔을 때 터지도록 만드는 것.
마법으로 어찌어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속에서 터지면 살에 촉 부스러기가 박혀 있을까?’
생각해 볼 문제였다.
세 번째는 한 번에 두 개 또는 세 개의 화살을 날릴 수 있는 방법.
이런 식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이나 마법을 합성시키려고 궁리를 했다.
사실은 그냥 마법으로 공격해도 그만이다.
매직미사일이라거나 매직에로우 같은 공격 마법은 사람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자꾸 어렵게 진행시킨다.
굳이 바람 마법에 화살을 얹을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그렇게 한다.
거기에 더해서 바람 마법을 쓴다면 거기에 불마법도 얹어 본다.
날아간 바람 마법에 맞은 동물의 내부에서 불마법이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려는 것.
제대로 된 스승이 없이 혼자 배우는 중이다.
그러니 말도 안되는 허튼 짓을 이리저리 제 마음대로 해보는 것이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은 많다.
존슨이 아는 마법은 그야 말로 넓은 바닷가 모래밭의 모래 한줌 정도?
존슨이 느끼기에 그러했다.
실제로 존슨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1레벨의 마법은 만 단위가 넘어간다고 했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마법의 바다는 그렇게 넓고 깊었다.
그 중에 존슨이 알고 있는 것은 겨우 서른 가지 정도.
위로 올라갈수록 마법의 수가 줄어들기는 한다.
하지만 1단계가 그렇다면 2단계 역시 만 단위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존슨이 익히고 있는 것은 겨우 십여 가지.
3단계 마법은 고작 두 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직도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마법을 전부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마법의 마스터라도 모를 것이다.
사실 멧돼지 같은 경우에 미리 준비를 해서 마법으로 공격을 했어도 될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마법을 접하고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조금 불안 했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꿈속에서 배운 기술 같은 느낌이랄까.
즉 현실세계에서 막 쓰려다가 갑자기 발동되지 않아 버벅거릴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강철창을 준비하고 활과 화살도 준비했었다.
그것 말고도 나무 위로 빠르게 도망칠 준비까지도 갖춰둔 것이다.
‘소심증이나 새가슴인가? 아니면 강박관념이나 불안증?’
어찌되었건 미리 이런저런 준비를 갖춰두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만약의 사태를 만났을 때 당황스럽지 않아 좋긴 하다.
준비하는 과정이 많이 귀찮고 복잡하지만.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존슨은 그렇게 생각하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계획은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
훨씬 편안하고 느긋한 삶을 바랬는데...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 잠깐 맨손체조를 한다.
그 후 개울의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까지 달려갔다 온다.
그런 후 창이나 검이나 궁술을 연습한다.
요크에게로 활을 배우러 가기도 한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 되면 식사를 하고 서둘러 농사 준비를 한다.
거름을 나르고 밭을 갈고 돌을 골라낸다.
망가진 울타리를 고치거나 가축을 돌본다.
각자 맡아서 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두 달려들어 도와 빨리 끝내기도 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는다.
그 때 부터는 마법을 배우고 연습하고 연구한다.
자정이 너머까지 대여섯 시간 동안 마법에만 매달린다.
존이 죽으면서 그와 관련 된 것을 싹 다 치웠다.
눈에 띄는 건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것까지도 몽땅.
일리나도 순순히 존슨의 요구에 응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다 내놓도록 했다.
그 중에서 꼭 일리나가 갖고 있어야겠다고 고집 피우는 것만 남겨두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도 남겨두었다.
그 외의 개인적인 것은 모조리 싹 태워 버렸다.
일리나의 방은 부부침실이라 이 집에서 가장 넓은 방이다.
당장은 일리나가 외로울 것이라 생각해 데이지와 함께 쓰도록 했다.
가장 작은 방을 쓰던 제티는 데이지가 쓰던 방으로 옮겼다.
매우 좋아했다.
지하 창고를 만들면서 예전부터 창고로 쓰던 곳을 개수해서 제티의 방으로 꾸며줄까도 고민했다.
어린 사내아이들은 혼자 방을 쓰고 싶어 하고, 다락방이나 옥탑방 같은 곳을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제티가 거절했다.
본인 말로는 추워서 못 견딜 것 같다고 했다.
존슨이 보기엔 무서워서 그런 것 같아 그냥 고개만 끄떡였다.
가을부터 큰 일을 하나 준비 중이었다.
존슨이 가족들에게 주는 선물.
그것은 온수실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제티가 데이지가 쓰던 방으로 이전을 했다.
제티가 사용하던 우물 방향의 작은 창고방을 개조한 것이다.
기술적으로 난관이 몇 개 있다.
그걸 마법적으로 해결하려 이리저리 오랫동안 궁리했다.
온수실 건설을 위해 부분적인 샘플을 만들어 보았다.
생각과는 달리 난관이 계속 생겨났다.
첫째는 펌프에 대한 것.
간단하게 생각한 작두 펌프였다.
장진오가 어려서 많이 보고 사용하던 것이니까.
그런데 그것부터 갖가지 장애물이 생겨났다.
파이프가 문제였다.
철이 귀한 세상.
그냥 철로만 해서는 금방 녹이 생겨날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연도금한 파이프를 썼던 것 같다.
도금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이곳 세상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렇다고 철판을 만들어 그걸 둥근 뭔가에 대고 두들겨서 파이프를 만드는 것은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 것 같다.
펌프 자체도 마찬가지다.
물을 끌어 올리는 부분은 원래 고무로 마개를 만들어야 한다.
가죽으로 해보니 되기는 하는데 냄새가 많이 난다.
나무로 만드니 계속 물속에 잠겨 있어야 해서 금방 썩거나 부스러진다.
철로는 대책도 없다.
주물로 펌프 몸체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생각해 보니 몸체는 주물이었던 것 같다.
‘맞아. 겉이 거칠고 녹슬어 있곤 했잖아?’
마법으로 싹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존슨의 마법 실력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쓸만한 마법을 알지도 못하고.
두 번째는 물을 데우는 설비.
물이야 나무통을 크게 만들어 채운다 하지만 그걸 따뜻하게 데우려면?
머리가 좀 복잡해진다.
수도 없이 많은 설계도를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 중 그럴 듯한 걸로 테스트 해보고는 실망하곤 했다.
‘이거 성공하면 보일러도 놓을 수 있겠다.’
원리만 보자면 그럴 수도 있었다.
바닥에 들어갈 동파이프가 문제겠지만.
PVC파이프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천상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구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구리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다 그걸 파이프로 만들고 정밀하게 붙여야 한다.
물이 새지 않도록.
세 번째는 보온과 방수다.
건물 자체에 보온을 위해 겉에 덕지덕지 붙이긴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방수 역시 문제 투성이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없는 세상이니까.
‘나무를 기름 먹여서...그런 식으로 방부목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네 번째는 배수다.
급수는 펌프가 완성되면 해결이 되지만 배수는 다른 문제다.
주방과 반대 방향이라 별도의 배수 시설이 필요하다.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파이프 같은 걸로 해서 땅에 묻어 멀리 빼내야 한다.
역시 철은 부식될 것이다.
하수를 구리 파이프로 빼내는 것도 너무 비싸게 먹힌다.
‘옹기?’
그것 말고도 문제는 많다.
걱정거리만 한 가득이다.
우선 당장은 계절적으로 겨울이다.
춥다.
당장 뭔가 대단한 것을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제티가 쓰던 가장 작은 방이라 뭔가를 넣어 시설하기에 좁다.
‘옆으로 붙이기도 어렵고. 밖으로 붙여서 하기에는 공사가 너무 커지고. 다른 위치의 방은 물을 공급하기가 너무 힘들어지고.’
이래저래 문제 거리였다.
이미 여름쯤부터 궁리를 하고 틈날 때마다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해결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