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군주 이성계-18화 (18/33)

018. 병신정변 (4)

“궁궐 밖에 있는 기철, 권겸의 무리들이 이곳의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잔당을 소탕하라!”

인간형으로 변신한 기갑표범 현표가 포효했다. 물론 이성계의 목소리였다.

“……”

넓은 편전 앞마당이 고요해졌다. 궁중무사들과 장수들, 기갑기사들이 놀란 눈으로 현표를 바라보았다.

‘아차! 나도 모르게……!’

이성계가 겸연쩍게 웃었다. 수많은 전투를 지휘했던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조심해야겠어. 지금 나는 직책도 계급도 없는 애송이 코르치(궁수)일 뿐이니까.’

이성계가 실수했다고 사과하려는 순간,

우오오오!!

궁중무사들과 장수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성계의 계급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고 호응해 준 것이다.

이성계가 무시무시한 기갑기 바가타르를 처리해 줬기 때문이었다. 전투 초반에 엄청난 활 실력으로 적 기갑지원병들을 ‘원샷원킬‘한 것도 이성계였다. 전투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압도적인 활약! 그러니 계급이나 지위를 떠나서 흔쾌히 호응해 준 것이다.

“기철의 잔당을 소탕하라!”

“역도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와아아아-!!”

궁중무사들과 기갑기들이 소리를 지르며 돌격했다. 원숭이 기갑기 보뇨와 쌍도끼 기갑기 수허도 동참했다.

기철과 권겸의 기갑기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우왕좌왕할 뿐!

기철, 노책과 함께 <3대 친원파>로 불리던 권겸이 제일 먼저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를 지켜라 무능한 놈들아! 특히 기갑기 네놈들! 네놈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

푸우욱!

인간형으로 변신한 현표의 거대한 손톱이 권겸의 살찐 등을 꿰뚫었다.

기이이잉-

현표가 오른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긴 강철손톱에 꿰뚤린 권겸의 시체가 허공에서 대롱거렸다.

“반역 수괴 권겸을 죽였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이성계가 소리쳤다.

쿵! 챙그랑! 터텅!

기갑기들이 무기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들어올렸다.

“기갑기사들은 기갑기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내려와라! 나머지는 두 손을 머리에 얹고 꿇어앉아라!”

이성계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자 궁궐무사들이 적병들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기본적인 눈치들은 있군. 하긴 궁궐을 지키는 정예병력이니…….’

모두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이성계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전장의 주인은 계급도 직위도 없는 22살의 시골무사, 이성계였다.

***

조금 전, 연경궁 내전.

[앗! 기철의 기갑기와 기갑표범이 돌아왔습니다!]

건덕전에 숨어서 상황을 보고하던 법사들이 외쳤다.

[이럴 수가! 기철이 죽었습니다!!]

[검은 표범은 건재합니다! 앗! 방금 인간형으로 변신했습니다!]

[표범 기갑기가 권겸을 죽였습니다!]

[아군 기갑들과 기갑표범이 적 기갑기들을 궤멸시키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적 기갑기는 8대! 아니 7대! 6대입니다!]

[승기를 잡았사옵니다! 5대, 아니 4대! 적 기갑기들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사옵니다!]

“와아아아!!”

내전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형세가 한순간에 역전되었사옵니다 전하!”

“역적 기철이 쓰러지자 전의를 상실한듯 하옵니다!”

“하아아아~!”

긴장이 풀어진 공민왕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국대장공주가 공민왕을 포근히 안아 주었다.

“신들린 활솜씨를 가졌다는 코르치, 기갑표범을 타고 기철을 쓰러뜨린 코르치가 대체 누구요?”

공민왕이 외쳤다. 그러자 대신들이 법사들과 통신을 주고받고 나서 말했다.

“다루가치 겸 천호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라 하옵니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논공행상은 아직 이르다!”

공민왕이 외쳤다.

“궁궐 밖의 부원배들을 소탕하라! 재추로부터 서리까지, 모든 문신(文臣)은 병장기를 들고 궁궐을 지켜라! 무신들과 전투병력들은 부원배들을 추포하라!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존명!”

두두두두두

금위의와 궁궐무사들, 기갑기사들이 궁궐 밖으로 뛰쳐나갔다.

개경 시내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갑기사들도 작전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약 일다경 후,

개경 시내 한복판에 있던 노책의 저택 앞 도로.

부웅- 부웅- 부우우웅-!

5장(15m) 크기의 화려한 기갑기가 철퇴를 휘두르고 있었다. <3대 부원배>중 마지막 생존자인 노책이 조종하는 기갑기였다.

콰앙!

노책의 앞에 있던 궁중기갑기가 철퇴에 맞았다. 4장(12m) 크기의 기갑기가 담장을 무너뜨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네 대의 궁중기갑기가 이미 노책을 포위하고 있었다.

“으아아 바얀테무르 개자식아! 대원제국을 배신하고 무사할 줄 아느냐?”

노책이 공민왕을 저주하며 철퇴를 휘둘렀다. 그러자 궁중기갑기들이 주춤거렸다.

“에잇! 비켜라!!”

은빛 기갑기를 타고 달려온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강중경이 외쳤다.

“북해신장(北海神將) 궁극기! 만년빙옥(萬年氷獄)!”

쩌저저저적!

노책의 기갑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뭣들 하느냐! 쳐라!”

퍼버버버벅!!

네 대의 기갑기들이 일제히 철봉을 내리쳤다. 노책이 비명을 삼키며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온몸이 얼어붙어 있어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네 대의 궁중기갑기들이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퍽! 퍼버벅! 퍼버버벅!

다시 한 번 매타작이 이어졌다. 노책의 기갑기가 쿵 소리를 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바로 그 순간,

쐐애액-!

북해신장의 거대한 검이 기갑기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까가각!

검날이 목 중간에서 멈추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노책의 기갑기가 워낙 튼튼해서였다.

끄어어억…… 끄어억…….

노책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꺽꺽거렸다. 목이 반쯤 잘린 고통을 그대로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자였다면 자비를 베풀었겠지만…….”

강중경이 검을 놓으며 말했다.

“매국노에게에게는 어림도 없지!”

꽈드드득!

강중경이 노책의 가슴 장갑을 뜯어냈다. 그러자 조종석에 앉아 괴로워하는 노책의 모습이 보였다.

북해신장이 거대한 손으로 노책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노책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으아아 살려 줘! 이보게 중경이! 얼마를 원하나? 원하는 대로 다 줄 테니 제발 살려 주게!”

뒤룩뒤룩 살찐 노책이 싹싹 빌었다. 그러자 강중경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살려 주지.”

북해신장이 노책을 휙 던졌다.

콰당탕!

“어이쿠쿠!”

노책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4장(12m)을 넘는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등급은 낮아도 각성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성들이 너를 살려 줄까?”

강중경이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노책이 고함쳤다. 그러나 노책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수백 명의 백성들이 낫과 쇠스랑, 몽둥이를 들고 노책을 둘러쌌기 때문이다.

“뭐, 뭐냐 이놈들아!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노책이 악을 썼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퍼억!

퍽!

퍼퍽! 퍽!

한맺힌 백성들의 몽둥이질 소리가 그의 비명 소리를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훗날 사관(史官)들은 노책의 최후를 이렇게 기록했다.

<강중경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노책의 집으로 가서 그를 잡아 죽이고, 시체를 북천동 길가에 버렸다.(仲卿等率兵至頙家, 捕殺之, 尸于北泉洞路上.)>

***

기철의 아들인 평장사 기유걸은 궁궐로 오다가 소식을 듣고 도망쳤다. 기철의 조카 기 올제이부카, 노책의 아들 노제, 권겸의 아들 권항, 권화상도 달아났다.

기철과 권겸, 노책은 가산을 몰수당하고 노비들을 전부 빼앗겼다. 금위군(禁衛軍)들이 노비들을 끌고 나와서 의성창, 덕천창, 유비창 등에 배속시켰다.

즉 사노비를 몰수해서 전국의 국유창고에 일꾼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기철은 전투형 기갑기를 수십 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기황후를 등에 업고 반역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기철이 죽어 버리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주인을 잃은 기철의 부하들이 바퀴벌레처럼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노책과 권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끌지 않고 기철부터 죽인 것이 정답이었던 셈이다.

혼란한 틈을 타서 불량배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개경 전체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틈타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쓰레기>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이인임의 며느리를 희롱하던 기철의 똘마니들이 그러했다.

“히히힉 우린 이제 부자다!”

세 똘마니가 신나게 도망치고 있었다. 기철의 금고에서 훔친 금두꺼비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기갑기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개경!

수십 군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개경!

사람들의 비명과 창칼 소리, 술법과 마법이 작렬하는 개경!

그런 개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달렸을까?

“헉헉 조금만 쉬었다 가자!”

“그래! 갑자기 뛰려니까 죽겠다!”

똘마니들이 길가에 주저앉아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어? 저 놈들은 뭐지?”

“몇 달 전에 봤던 오랑캐 놈들 아냐?”

“어어? 이쪽으로 오는데?”

실실 웃으며 다가오던 세 <오랑캐>가 똘마니들 앞에 멈춰 섰다. 똘마니들이 금두꺼비를 숨기며 노려보았다.

“그렇게 뛰어서 온 곳이 고작 여기냐?”

20대 초반의 오랑캐(?)가 벌레를 보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네놈! 고려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똘마니들이 소리쳤다. 그러자 젊은 오랑캐, 아니 이성계의 좌우에 있던 중년 가베치들이 똘마니들에게 걸어갔다.

“뭐뭐뭐 뭐야?”

“저리 꺼져!”

“죽고 싶어!?”

거대한 근육을 씰룩이며 걸어간 충샨과 판챠가 똘마니들을 패기 시작했다.

퍽! 퍼퍽! 퍼버버벅!

거대한 주먹이 춤을 출 때마다 피떡이 늘어났다. 세 똘마니가 눈 깜짝할 사이에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끄으윽…….”

“큭…….”

“흐흐흑…….”

충샨과 판챠가 세 개의 금두꺼비를 이성계에게 바쳤다. 그러자 이성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나씩 넣어 둬. 나 따라다니느라 고생하잖아.”

“감사합니다 공자님!”

충샨과 판챠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자, 가져라.”

툭.

이성계가 나머지 금두꺼비를 세 똘마니 앞에 던졌다. 세 똘마니가 눈알을 희번덕거리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이성계와 충샨, 판챠가 개경 시내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 거야!”

“웃기지 마!”

“죽고 싶냐?!”

“끄아아아!!”

세 똘마니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공자님! 금두꺼비는 회수할까요?”

충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이성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무슨 금두꺼비? 이거 말인가?”

이성계의 왼손에 금두꺼비가 놓여 있었다.

“어? 분명히 아까 저놈들한테…….”

“내가 준 건 그냥 돌멩이였어.”

“그렇다면 혹시…….”

“그래, 간단한 눈속임이다.”

이성계가 환술 부적을 흔들며 말했다.

등 뒤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기철의 아들 기유걸, 기 올제이부카, 노제, 권화상 등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시장바닥에서 목을 잘렸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었지만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기철의 아내는 사찰로 도망쳐서 여승이 되었다. 기철의 어린 아들 기새인도 왕흥사에 숨겨졌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모두 처형당했다.

자신감을 얻은 공민왕이 개혁조서를 반포했다.

“고려를 다시 황제국으로 되돌릴 것이오!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당당한 자주독립국으로 우뚝 설 것이오!”

이제현, 염제신, 이인임과 같은 문신들이 조정의 주류가 되었다. 그들의 상당수가 신(新)유학, 즉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들이었다.

공민왕과 신진사대부들은 정치체제와 경제정책을 전반적으로 개혁했다. 인재를 발탁하고 지방관의 비리를 근절하며, 세금을 줄이고 고리대금업자들을 규제했다.

군사제도도 개혁되었다. 군역 부과 방식을 개선하여 농민들이 권세가의 노비가 되는 것을 막았다. 둔전제를 실시하여 군량미를 확보했다.

그와 함께 몽골식 변발을 폐지하고 상투머리로 되돌아갔다. 전생에서는 공민왕이 즉위하자마자 상투머리로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는 몇 년 늦은 셈이었다.

이성계도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

얼마 후, 원나라 황궁 자정전(資政殿).

“끄흐으아아아아!!”

기황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정전 궁녀들과 환관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들과 조카들! 그놈이 다 죽였어! 바얀테무르 그놈이…… 그놈이!!!”

기황후가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절에 숨은 어린 조카까지 끌어내서 죽였다! 새인이 그 아이는 열 살도 안 되었거늘! 바얀테무르! 내 너를 결코!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흐흑…… 끄흐흐흑…….”

상호군 기세걸과 평장 기사인테무르도 함께 울었다. 기세걸과 기사인테무르는 기철의 아들이자 기유걸의 동생, 즉 기황후의 조카들이었다.

“쓸어버릴 테다! 황제께 고하여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기황후가 울부짖었다.

“수천 대의 기갑기와 백만대군을 보내서 복수할 것이다! 고려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기다려라 바얀테무르! 배신자 보타슈리 네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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