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
마이카 베르헬트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수발을 받고 효과도 없는 치료를 받고 정신을 잃었다 잡았다를 반복한다. 아마도 자신은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택 밖을 나가지 못한지 벌써 몇 년 째인지 모르겠다. 시간 감각이 무뎌진지는 벌써 오래 전이다. 언제부터였을까, 해가 뜨고 지는 걸 더는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때가.
아아… 떠올려버렸다. 그래, 그건 분명 바보 아버지가 약을 구한다고 사라진 뒤로였다. 귀중한 왕국의 보검을 들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지. 나한테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덕분에 저택에는 늘 돌아올 아버지를 붙잡기 위해 감시가 붙어있다고 한다. 알 바 아니지만.
바보 아버지. 그냥 바보도 아닌가. 빌어먹게 한심한 아버지다.
나 같은 거, 그냥 죽게 내버려두면 편했을텐데.
하지만 그 멍청한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객사라도 해버렸으면 좋겠네. 그럼 내가 죽어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다. 이러다 죽는 걸까. 드디어 죽는 걸까. 하지만 벌써 이러기도 아마 수십일. 지금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몽롱했다. 문득 시린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제 창문이 열린 걸까. 메이드를 불러 문을 닫으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게다가 메이드는 어디로 간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불러도 의미 없는 일이었네.
이러다가 감기라도 걸려서 죽어버리면, 진짜 웃기는 이야기겠다. 정체불명의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다가, 막상 죽는 건 감기에 걸려서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다. 그 바보가 들으면 기가 막혀 죽을지도 모르겠다.
목이 아파왔다. 기침이 나올 것 같은데 힘이 없어서 기침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괴롭다. 마지막 남은 육체의 힘을 모두 끌어모아 겨우겨우 마른 기침을 하나 해낸다. 괴로운 건 똑같았지만 조금 몸이 편해졌다.
“콜록.”
“좋은 밤이 아니더냐, 좋은 기침소리가 아니더냐. 살아간다는 건 참 좋은 일이 아니더냐?”
그 때 갑자기 들린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놀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내 몸은 약해져 있었다. 겨우겨우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문에는 시리도록 아린 눈동자의 소녀가 걸터앉아있었다.
당신은? 하고 누구냐고 물을 정도로, 혹은 메이드를 불러 침입자가 있다고 얘기할 정도의 힘도 없었다. 그저 이것이 꿈인가? 아니면 저 아이가 나를 데려갈 죽음의 사자인가 하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그 소녀가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는 걸 지켜보았다. 소녀는 천천히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입을 열었다.
“천사 같은 아이거라.”
아주 오래 전 자주 들었던 이야기였다. 천사 같은 아이라고. 천사 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하고 있다고.
병에 찌들어 누운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오직 아버지에게만을 제외하고.
“이것이 네 아비의 마지막이다.”
소녀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추위와 몽롱함에 정신이 어지러워 분명히 들었음에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 거기 있어요?
그리고 그 순간 소녀가 천천히 마이카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고통은 한 순간이었다. 마이카의 온 몸이 얼어붙듯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자 고통은 사라지고 추위가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 몸을 압박하던 병마의 기운이 사라지고 정신이 말끔하고 깨끗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소녀가 할 말은 하나 뿐이었다.
“당…신은?”
“나는 너의 비극을 박제하는 자, 네 노래를 귀이 담아들을 자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마이카는 곧 제어할 수 없는 수마에 빠져들었다. 물어야 하는데, 내 아버지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러나 쏟아지는 잠을 이기기에는 지나치게 몸이 약해져있었다. 시리도록 아린 눈동자의 소녀, 빙룡 네메시스는 잠시 마이카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마이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한달이 지난 후였다.
잠에서 깨어난 마이카는 곧 자신의 긴 머리카락, 아름답게 굽이 치던 백금발이 하얗게 새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운 겨울의 날씨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도, 심장이 세차게, 그러나 뜨겁지 않게 뛰고 있다는 것도 곧.
이윽고 두 발로 멀쩡히 서기 시작한 마이카를 보며 놀란 메이드가 그 소식을 알렸다. 저택의 모든 이가 아가씨가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저택을 넘어 온 나라에 퍼지기 시작했다.
~
“오야, 꽤나 난장판이구나.”
“돌아오셨습니까, 주인님.”
방에서 벨투리안을 치료하던 우트가르드가 빙룡의 등장에 하던 치료를 멈추고 인사했다. 벨투리안도 어설프게 일어서려다 빙룡의 제지에 다시 누웠다. 갑작스런 등장이었다. 방금 전까지 세미와 전투 아닌 전투를 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차마 이해가 가지 않는 타이밍이었다.
“안… 안녕하십니까.”
벨투리안이 소극적으로 인사했다. 빙룡은 누운 채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벨투리안을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야, 병아리야. 꽤나 아파보이는구나. 조금은 괜찮아도 좋거라. 네가 아파 숙인다고 할지라도 모이를 주는 이는 없을 테니.”
그러고는 빙룡은 뚜벅뚜벅 걸어와 벨투리안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한 벨투리안은 뿌리치려했지만 이내 곧 그 상대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고는 그만두었다.
소녀의 몸을 하고 있는 벨투리안이 그보다 더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한 빙룡에게 쓰다듬을 받는 모습은 꽤나 언밸런스한 모습이었다. 곧 벨투리안은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 합니다.”
“그렇게 고마워 할 것 없나니, 나는 조금 앞당겨줬을 뿐이거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벨투리안은 이 정도의 상처는 얼마 안가서 저절로 회복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빙룡에게 그러한 체질에 대해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빙룡은 정말 무엇이든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것이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인 것일까.
잠시 고민하던 벨투리안은 세미, 아니 세르미나카 휘리오비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만약 빙룡이 알고도 그를 내버려둔거라면 자신은 빙룡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빙룡님께서 계시지 않은 동안, 흑마법사 휘리오비치라는 자가 침입해왔습니다.”
“아아, 그것 말이지. 그래, 그런 일도 있었구나?”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어느쪽인지는 뻔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그가 바로 내게 어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자입니다. 그는 제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말했고 제 저주와 그것이 관련되어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저를 ‘우르테가’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그것은 용의 이름입니다. 그것도 울푸레의 딸이었던.”
벨투리안의 얘기에도 빙룡은 빙긋빙긋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 빙긋 웃는 미소가 너무나도 어색한 것이 벨투리안에게는 기분 나쁘게 다가왔다. 과연 빙룡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짐작하기에는 벨투리안의 존재가 너무 작았다.
결국 직접 벨투리안이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벨투리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결코 입에 올리기 싫은 그 질문을 올렸다.
“나는… 울푸레의 자식입니까?”
“그래, 맞거라.”
끔찍한 판결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투리안에게는 의외로 큰 충격이 없었다.
모른척 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말은 즉슨 결국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단 이야기였다. 자신이 죄악의 핏줄을 이었다는 것이, 그리고 인간조차 아니었단 것이, 자신이 알고 있었던 인생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내가 울푸레의 딸이었다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빌어먹게도, 눈물 같은 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벨투리안이 부정했다.
“저는 인간이었습니다….”
“아니다, 너는 인간이었던 적이 없거라. 단 한 순간도.”
“저는 죽은 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인간 어미는 불임이었다. 너는 버려진 알에서 태어났다.”
“빌어먹을, 나는 남자였습니다.”
“아쉽구나. 물론 너는 태어났을 때는 분명 수컷이었겠지. 그러나 네 본질의 모습을 보아라. 그것이 네 진실이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제 인생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벨투리안이 포효했다. 그 울음소리에 벨투리안이 머물고 있는 방이 잠깐 흔들렸다. 그건 결코 인간의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벨투리안은 그것에 더는 놀랄 수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병아리는… 처음 태어나서 본 이를 부모라고 인식하지. 그걸 ‘각인’이라고 부른단다.”
어쩌면 여기서 누군가가 벨투리안을 위로해주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무언가 변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빙룡은 그러한 것을 모르는 생명체였다. 빙룡에게는 그러한 개념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약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 변장이란 것을 하곤 하지. 그걸 ‘의태’라고 부른단다.”
빙룡은 말했다. 네가 그렇게 살아온 것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고, 그저 단순한 생물학적인 기제였을 뿐이라고.
거기에 무언가 뜻깊은 의미 같은 것은 없었다.
숫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벨투리안이 외쳤다.
“누구에게 살아남는단 말입니까?! 용사냥꾼인 슈라헤? 아니면 내 어미?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이요?!”
“세계다.”
벨투리안이 침묵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매일 변태를 반복하는 것이다. 세계가 눈을 감을 때 너를 숨기기 위해서. 원래 너에게 마땅히 주어줬어야 할 운명.”
죽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