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하극상 (2)
월요일 오후 6시 30분.
7시 진입이 예정된 E급 게이트 앞엔 이미 세 부류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게이트작전사령부, 한국대 헌터학과, 그리고 언론사.
군인들은 바리케이드를 친 채 게이트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고, 다수의 기자들은 태주의 첫 실전 레이드를 취재하기 위해 포토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주 귀신같이들 알고 왔네.”
간단하게 출석 체크를 하고 있던 이 교수가 취재진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분명 조교들을 통해 학생들에게만 연락을 돌렸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자신보다 먼저 현장에 나타나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건 태주가 주목받길 바라는 최 총장과 승화의 협의된 적 없는 공동 작품이었지만.
“교수님.”
늦지 않게 도착한 태주가 이 교수의 곁으로 다가가 인기척을 했다.
“어, 왔어?”
“네. 근데 손님들이 좀 많네요.”
태주의 시선이 기자들을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플래시가 터졌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러게. 어떻게들 알았는지 참.”
때아닌 플래시 세례에 눈살을 찌푸린 이 교수가 오른손으로 얼굴 앞을 가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수업에 피해를 준 것 같은 기분이 든 태주가 대신 사과의 뜻을 전했다.
“네가 뭐가 죄송해. 어차피 게이트 안까지 쫓아올 것도 아닌데.”
이 교수가 태주의 등을 토닥였다.
“아, 그리고 커피 잘 마셨어. 향이 엄청 좋던데? 컵까지 세트로 들어 있고.”
“다행이네요. 제가 커피에 대해 잘 몰라서 그냥 점원한테 추천받은 걸로 산 건데.”
오전에 직업 탐구 수업이 있던 태주는 학교에 간 김에 이 교수의 방에 들러 약속한 선물을 전달한 상태였다.
“그나저나 컨디션은 어때? 주엽이는 아주 좋아 보이던데.”
이 교수가 민주엽이 있는 곳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교수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충분히 쉬고 왔습니다.”
“잘 됐네. 떨리진 않고? 모의가 아닌 실제 던전에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태주와 달리 주엽은 3학년 때 이미 인턴십의 명목으로 E급 게이트를 경험한 상태였다.
“네. 근데 기대는 돼도 긴장이 되진 않습니다.”
물론 회귀자인 태주의 입장에선 고작 E급 게이트에서의 레이드 경험이 크나큰 변수로 작용할 리 없었지만.
“오오, 좋아. 참고로 주엽이를 이겨야 커리큘럼의 자율권을 얻게 되는 거 알지?”
출제자이자 평가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 교수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푸드 체인 테스트하고는 진행 방식이 좀 다르니까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너무 오버 페이스만 하지 말고.”
비밀 평가 점수가 50%를 차지하는 만큼 과도한 개인플레이는 경쟁자들의 미움을 살 수 있었다.
“네. 눈치껏 잘 행동하겠습니다.”
“점수를 따는 것보다 실수를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니까 무리한 시도 같은 것도 실전에선 자제하고. 알았지?”
만점으로 시작하되 실수를 할 때마다 점수가 차감되는 감점법의 경우 잘한다고 해서 점수가 회복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채점 방식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선 오히려 의욕적인 모습이 독이 될 수 있었다.
“아이고, 이거 잔소리가 너무 많았나?”
감점법에 대한 간접적인 힌트를 끝으로 긴 당부의 말을 마친 이 교수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요. 꼭 명심하겠습니다.”
대답과 달리 이미 의식하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조언의 실효성을 떠나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려는 이 교수의 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바로 그때.
- “저, 교수님, 일단 진입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조교 한 명이 다가와 현재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래? 그럼 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원 체크하고, 바로 들어가자.”
다행히 한 명의 결시자도 없이 태주를 비롯한 101명의 응시자들 모두 현장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 “네, 교수님, 그럼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 교수로부터 간이 출석부를 넘겨받은 조교가 꾸벅 인사를 건넨 뒤 게이트 쪽으로 달려갔다.
바로 그때.
- “신태주 씨!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포토라인에 가로막혀 있던 기자들 중 한 명이 오른손을 번쩍 들며 인터뷰를 시도했다.
“어쩌죠?”
기자가 아닌 이 교수와 먼저 눈을 마주친 태주가 허락을 구하듯 물었다.
“내 눈치 안 봐도 되니까 가서 몇 마디 해 주고 와. 그래야 저 양반들도 기다린 보람이 있지.”
기자들이 있는 곳을 힐끗 쳐다본 이 교수가 슬쩍 자리를 피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 교수의 양해를 얻은 태주가 기자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교수님께서 시간을 허락해 주시긴 했지만, 이제 곧 들어가 봐야 돼서 딱 세 가지 질문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들의 페이스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던 태주가 단호한 어조로 확실히 선을 그었다.
- “신태주 씨, 신입생이 아닌 4학년들과 경쟁을 해야 된다고 들었는데, 혹시 푸드 체인 테스트 때와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한 기자가 눈치 게임을 하듯 태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 번째 질문 기회를 잽싸게 낚아챘다.
“아니요. 낙관보다 더 위험한 적은 없기 때문에 늘 그렇듯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제 플레이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기자의 의도를 눈치챈 태주가 선배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까다로운 질문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 “그럼 신태주 씨, 첫 레이드의 전리품으로 무엇을 챙길 예정입니까?”
기자들 사이에서도 묘한 경쟁이 붙다 보니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되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질문이 채택되길 바라는 마음에 절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전리품이요? 글쎄요.”
던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으로는 몬스터의 몸속 어딘가에 박혀 있는 마정석과 마정석을 입수하고 남은 몬스터의 사체 일부, 그리고 던전 내벽에 광물처럼 박혀 있는 마나석과 강화석, 마지막으로 희박한 확률이지만 보스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전설 등급 이상의 아티팩트가 있었다.
물론 아티팩트의 경우 A급 이상의 게이트에서나 기대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전리품이었지만.
“교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칙적으로 시험에 사용된 던전 안에서 나온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의 소유권은 협회가 가지고 있었는데, 게이트의 등급이 낮고 부산물의 가치 또한 상품성이 적다 보니 교수의 재량으로 전리품의 획득을 허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신태주 씨, 제가 아까 4학년들 몇 명과 대화를 나눠 봤는데, 그중에서 태주 씨를 라이벌 또는 견제 대상으로 보는 인원이 적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질문의 기회를 얻은 한 기자가 자신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한 태주의 솔직한 의견을 물었다.
- “듣기론 경쟁자들의 평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데, 혹시 악의적인 혹평으로 인한 불이익이 걱정되진 않습니까? 그리고 태주 씨가 생각하는 라이벌 혹은 견제 대상은 누구입니까? 아, 참고로 ‘나 자신이다’라는 뻔한 답변은 지양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일단 질문이 하나가 아니네요?”
세 가지 질문만 허락했던 태주의 입에서 대답이 아닌 헛웃음부터 나왔다.
“우선 경계 대상이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다들 저보다 경험이 많고 배울 점 또한 많은 선배님들이시거든요.”
박성규와 장세종처럼 대놓고 검은색 별을 줄 녀석들도 존재했지만, 굳이 기자들 앞에서까지 필요 이상으로 솔직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저를 향한 혹평이 악의적인지 정당한지는 어디까지나 제 플레이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플레이가 객관적으로 미숙했다면, 악의적이라고 볼 수 없는 정당한 혹평일 테니까요.”
태주가 혹평의 원인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며, 선배들과의 경쟁으로 인한 불화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기자들의 입장에선 이슈가 될 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맥 빠지는 답변이었지만, 억측을 유발하고 싶지 않은 태주의 입장에선 확대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 현명한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는 저에게 라이벌이나 견제 대상이 있냐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엽과의 맞대결에 대해서도 말을 아낀 태주가 선배들이 있는 곳을 돌아보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쁘신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네. 꼭 좋은 성적 거두시길 바랍니다.”
- “신태주 씨, 끝나고도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질문의 개수도 좀 늘려 주시고요.”
태주와의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웠던 기자들이 격려의 말과 함께 레이드 후기에 대한 추가 인터뷰를 부탁했다.
“네. 그럼 좀 이따 뵙겠습니다.”
기자들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태주가 게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바로 그때.
“아이고, 우리 준 프로님 오셨어요?”
태주의 인터뷰 광경을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던 박성규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시비를 걸었다.
“선배들은 번호표까지 다 붙였는데,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자.”
성규가 응시자들을 식별하기 위한 커다란 스티커 두 장을 태주에게 내밀었다.
“내가 너한테 딱 맞는 번호로 대신 받아 왔으니까 앞뒤로 꼼꼼하게 붙여.”
1부터 101까지의 숫자들 중 성규가 추천한 것은 발음조차 조심스러운 28번이었다.
“이 X팔.”
스티커를 받아든 태주가 악센트를 살려 숫자를 읽었다.
“좋네요. 옷에만 그런 게 아니라, 입에도 착착 붙어서.”
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가슴 정중앙에 단단히 붙인 태주가 성규의 유치한 도발에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선배는 77이네요?”
“어. 행운의 숫자가 무려 두 개나 들어 있지.”
성규가 가슴에 부착된 스티커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아아, 난 또 선배 아이큐인 줄 알았죠.”
“뭐?! 아이큐?!”
흠잡을 것이 없는 번호라 자부하던 성규가 태주의 농담에 발끈했다.
“네. 머리만 자랐지 생각하는 수준은 그대로인 것 같아서요.”
태주가 파이어 애로우에 타 반삭을 했던 성규의 고슴도치 같은 헤어스타일을 비웃으며 말했다.
“야, 너 미쳤…….”
“이 X팔.”
“……?!”
말이 끊긴 성규가 태주의 눈빛과 발음에 흠칫 놀랐다.
“너 이번에도 번호 얘기한 거지?”
“아니요. 그냥 욕 한 건데요?”
“뭐?”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냥 스티커가 잘 안 붙어서 그런 거니까.”
가슴에 붙이고 있던 28번 스티커를 거칠게 뜯어낸 태주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근데 선배님 스티커도 잘 안 붙었네요?”
태주가 성규의 가슴팍에 멀쩡하게 붙어 있던 스티커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주었다.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