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26화 (226/242)

226. 먹이 사슬 (8)

푸드 체인 테스트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매번 그 유형을 달리했다.

5월과 11월이 다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력의 발전이 없는 한 재수가 무의미하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다.

‘레이드 대형의 유지?’

회귀 전후를 통틀어 푸드 체인 테스트는 처음인 태주 역시 첫 번째 미션부터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클래스에 적합한 전투 위치를 선점하시오.]

‘궁수에게 적합한 전투 위치라…….’

첫 번째 미션의 내용을 확인한 태주가 공대원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몇 가지 자체적인 테스트를 진행했다.

‘일단 어떤 식으로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나 한번 볼까?’

태주가 공대원들을 뒤로한 채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순식간에 간격이 벌어진 가상의 공대원들이 태주의 움직임에 반응해 황급히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래도 따라오나?’

태주가 공대원들을 완전히 따돌릴 생각으로 전력 질주를 해 보았다.

‘어?’

순간, 멀리서 뒤따라오던 공대원들이 순간 이동을 하듯 태주의 곁으로 동시에 옮겨졌다.

‘공대원들과의 간격이 일정 수준 이상 벌어지면, 이렇게 되는구나.’

앞서 출발한 녀석들을 빠르게 따라잡고 싶어 하는 태주의 입장에선 공대원들의 이동 속도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럼 굳이 느리게 갈 필요가 없겠네.’

클리어 타임의 단축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 태주가 이번엔 달리기가 아닌 점멸 스킬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지 실험해 보았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역시.’

이동 방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간격이 벌어졌을 때 발생하는 공대원들의 순간 이동 현상은 달리기 때와 동일했다.

그로부터 약 2분 후.

꾸웨엑!

- ‘그렇지!’

태주의 준비성을 지적했던 여섯 번째 응시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열심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 ‘좋아. 지금처럼만 하면 무조건 프레데……, 어?’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에 여섯 번째 응시자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 ‘어! 뭐야, 저거!’

태주의 맹추격을 목격한 여섯 번째 응시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출발한 지 고작 10분 만에 뒤를 잡힌다고? 그게 말이 돼?’

물론 태주가 자신보다 8분 늦게 출발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 큰 충격에 휩싸였겠지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먼저 갈게.”

예고대로 여섯 번째 응시자를 단숨에 따라잡은 태주가 짧은 한국어 인사를 건넨 뒤 기존의 출발 순서를 가뿐하게 뒤바꿔 버렸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

*

같은 시각, 중앙 통제실 안.

S 게이트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던 최 이사가 태주의 압도적인 진행 속도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보니까 어때. 확실히 클래스가 다르지?”

- “역시 소문대로 대단한 친구인 것 같습니다.”

태주를 회의실로 안내했던 진행 요원은 최 이사의 물음에 답하는 동안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저러다 1번까지 따라잡겠는데요?”

1번 응시자에 비해 약 45분 정도 늦게 출발한 태주였지만, 평균 2시간이 소요되는 테스트의 길이와 태주의 현재 속도를 고려해 봤을 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가정이었다.

*

*

*

잠시 후.

각 게이트의 첫 번째 응시자들이 던전의 3분의 2 지점을 통과할 무렵, 동요할 일이 거의 없던 통제실 안이 점점 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로 스타트를 끊은 태주가 결국 진행 요원의 예견대로 첫 번째 응시자를 추월한 뒤 최종 보스가 있는 곳을 향해 매서운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야, S 게이트 상황 봐봐. 완전 미쳤는데?”

- “안 그래도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

현장의 상황을 면밀히 체크하고 있던 수십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어느 순간부터 S 게이트에, 그중에서도 태주의 화면에 노골적인 관심을 쏟고 있었다.

- “다른 지원자들에 비하면, 장비도 별게 없어. 기껏해야 활이 전부지. 그것도 일반 등급으로.”

한 프로그래머가 신분 확인 절차에서 신고된 장비의 품목을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 “와아, 기자들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네.”

- “그러게. 저런 참가자에게 고작 준프로의 자격만 줄 수 있다니. 이거 내가 다 미안할 정도인데?”

아직 테스트가 진행 중이었지만, 놀랍게도 태주의 최고 레벨 등극 자체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그나저나 기록 분석표 봤어? 공대원들의 기여도가 다 합해서 10퍼센트도 채 안 돼.”

- “뭐? 10퍼센트? 그럼 솔플이나 다름없네?”

- “심지어 지금까지 노 대미지라 힐러의 도움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다른 동료들의 엄호를 받은 적도 없고.”

- “뭐야, 원래 근접전에 취약한 궁수들은 근거리 딜러들이 지켜 줘야 되는 거 아니었어?”

- “플레이어의 활약도가 90퍼센트를 넘어갔는데, 누가 누굴 지켜 줘.”

- “이야, 2등이 안쓰러워 보이는 건 또 처음이네.”

상식에서 벗어난 공격적이면서도 독립적인 플레이 스타일에 놀란 프로그래머들이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2위와의 압도적인 점수 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잠시 후.

- “일찍 탈락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 “그러게. 나만 떨어진 게 아니라 그런가?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네.”

각 게이트의 첫 번째 응시자들이 아직 테스트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대기실 안엔 이미 죽거나 기권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 “그나저나 넌 11월에 또 볼 거야?”

- “그래야지. 근데 11월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점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힘들어.”

푸드 체인 테스트의 결과는 모든 참가자가 대기실로 돌아온 이후에 발표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탈락이 결정된, 다시 말해, 자신의 점수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입장에선 더 큰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 “어? 신태주 쟤는 왜 벌써 나왔지?”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는 태주의 모습을 발견한 한 탈락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커다란 전자시계를 올려다봤다.

- “뭐야, 언론에서 그렇게 난리 치더니 고작 2시간도 못 버티고 떨어진 거야?”

- “풉! 내가 뭐랬어. 매직 아처고 뭐고 다 거품이라니까.”

- “순번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좀 실망스러운데? 솔직히 1번이 나오기엔 좀 이른 시간이잖아.”

태주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경쟁자들의 조롱

섞인 평가들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더럽게 쫑알대네.’

자신의 등장 시점을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태주가 탈락자들의 억측을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 “저기. 나 기억해?”

태주에게 따라잡힌 이후 대미지 누적의 사유로 탈락을 하게 된 S 게이트의 다섯 번째 응시자가 서툰 영어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 어.”

상대방의 뒤통수에 더 익숙한 태주가 유심히 얼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설마 죽은 거야? 아님 포기?”

“둘 다 아니야.”

- “뭐?”

다섯 번째 응시자가 태주의 대답에 두 귀를 의심했다.

지금으로선 대기실에 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단 두 가지였기 때문이다.

- “그럼 왜 여기 있어?”

“끝났으니까.”

- “……?!”

자신을 앞질러 간 태주의 이른 복귀가 내심 반가웠던 다섯 번째 응시자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진짜?”

“어. 여기 봐봐.”

태주가 자신의 접수 확인 팔찌를 들어 보였다.

마라톤을 완주한 모든 이들에게 기념 메달을 증정하듯 보스를 잡은 응시자들에겐 점수와 관계없이 클리어 도장을 찍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

접수 확인 팔찌에 찍힌 선명한 인장을 본 다섯 번째 응시자가 다른 탈락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 “야! 얘 안 죽었어!”

심판이 승자의 손을 들어주듯 팩트 체크를 마친 다섯 번째 응시자가 접수 확인 팔찌가 채워진 태주의 왼쪽 손목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 “뭐?!”

순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던 탈락자들이 태주의 주위로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 “어?! 진짜네?!”

- “말도 안 돼. 어떻게 S-7이 이 시간에.”

- “그럼 앞에 있던 6명의 응시자들을 다 앞질렀다는 거야?”

팔찌에 찍힌 번호까지 확인한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 “그냥 미쳤네. 기자들이 괜히 모인 게 아니었어.”

- “와아, 근데 저 정도면 시험을 따로 봐야 되는 거 아니야?”

- “내 말이. 진짜 어떻게 한 건지 한번 보고 싶다.”

태주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대기실의 분위기 역시 통제실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잠시 후.

태주의 등장으로 떠들썩했던 대기실 안엔 어느덧 테스트에 참가한 모든 인원이 들어차 있었다.

[“지금부터 최종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참가자 여러분께선 스크린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 “…….”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안내 방송에 응시자들의 잡담이 잦아들었다.

[“참고로 이번 테스트의 참가 인원 중 프레데터 등급을 획득한 비율은 약 9퍼센트입니다.”]

절대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매회 10퍼센트 전후의 통과자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난이도 조절에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명단은 20명씩 총점 순으로 공개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푸드 체인 테스트의 등수가 화면상에 게시됐다.

바로 그때.

- “어!”

태주의 정확한 공식 기록을 처음으로 마주한 응시자들이 2위와의 압도적인 격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등]

[신 태 주]

[S-7]

[991/1000]

[00:35:17]

[2등]

[사이토 코지]

[N-9]

[924/1000]

[01:39:56]

- “뭐? 보스를 35분 만에 잡았다고?”

- “1시간 40분도 엄청 빠른 건데, 거기서 무려 1시간이나 넘게 단축시켰어.”

타임 어택 방식에 버금가는 속도전을 펼친 결과, 역대 최단 시간 클리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 태주였다.

- “점수도 거의 만점에 가까운데?”

- “우와, 9점을 어느 포인트에서 놓친 건지 신기할 정도네.”

미션을 수행하고 몬스터를 잡아내는 과정에선 어떠한 실수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플레이의 특성상 공대원들의 기여도가 너무 낮다 보니 협력 점수의 산정 단계에서 감점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태주 씨, 진짜 축하해요.”

곁에 있던 규호가 태주의 놀라운 성과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최 이사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은 물론 매니저인 승화의 기대에도 한껏 부흥하게 된 태주가 만족스러운 성적표에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나저나 제 이름도 곧 나오겠죠? 뭔가 느낌은 나쁘지 않았는데.”

20등까지 발표된 첫 번째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발견하지 못한 규호가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바로 그때.

- “난 인정 못해!”

응시자들 중 누군가 오른손을 번쩍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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