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25화 (225/242)

225. 먹이 사슬 (7)

“당연하죠. 뭔데요?”

태주의 질문이 궁금했던 최 이사가 흔쾌히 시간을 내어 주었다.

“운명 공동체를 형성해 정의 구현을 하는 것도 좋고, 선배님의 협회장 도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쁘지만, 그로 인해 저는 무엇을 얻게 되는 거죠? 문득 기득권 세력의 축출로 국제 대회의 운영이 공정해지는 건 모두가 누리게 될 공정함이지 저만이 누릴 수 있는 이득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고작 신입생에 불과한 제가 당장 협회 쪽의 요직에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최 총장과의 거래에서도 그랬듯 경쟁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태주의 입장에선 뚜렷한 기대 수익 없이 희생만 감수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으음. 듣고 보니 고생은 후배님이 하는데, 보상의 수준은 반사적인 이득을 얻는 쪽과 별반 다를 게 없네요.”

대의에 집중한 나머지 태주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최 이사였다.

“좋아요. 그럼 원하는 걸 말해 봐요.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면 최대한 들어줄 테니.”

간과한 부분이 있음을 깔끔하게 인정한 최 이사가 태주의 니즈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이십니까?”

“당연하죠. 이번 장기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태주 씨에게 달렸는데.”

“그럼 국제헌터협회에서 발급하는 특별 여권도 가능합니까?”

최 이사가 자신을 만나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엇을 부탁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태주였다.

“네? 특별 여권이요?”

아티팩트와 같은 물질적인 보상을 예상했던 최 이사가 태주의 요구 사항에 두 귀를 의심했다.

“네.”

대한민국 여권의 위상은 이미 높은 수준이었지만, 국제 헌터 협회에서 발급하는 특별 여권은 여행 금지 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의 출입국을 무비자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체류 기간까지 제한받지 않는 그야말로 프리 패스의 결정체였다.

특히, 발급 자격과 갱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그러다 보니 특별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제헌터협회가 인정한 네임드 헌터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으음.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최 이사가 처음으로 난색을 표했다.

“특별 여권이란 게 조건만 충족한다고 해서 발급되는 게 아니거든요. 일단 프로 헌터가 아니면 적격 심사조차 통과할 수 없는 게 현실이고요.”

설령 푸드 체인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 해도 준프로에 불과할 뿐, 프로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 하지만 발급 대상과 관련해 여러 가지 예외 조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외에 해당하기만 하면 다른 조건들이 구비되지 않아도 특별 여권이 발급될 수 있다는 것도요.”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라는 칭호를 얻은 태주가 염두에 두고 있는 예외 조항은 업계의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선구자적인 인물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긴 하죠. 근데 그 예외에 속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

“네. 특히 개인이 직접 협회 측에 발급을 신청을 했을 땐 거절의 확률이 더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한 거고요.”

국경과 여권법에 구애받지 않는 초법규적인 입출국 권한이 주어지는 만큼 국제헌터협회의 임원인 최 이사처럼 검증된 인물의 추천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별 여권의 발급 방식에 대해 꽤나 자세히 알고 있네요.”

학부생이 욕심을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특별 여권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해진 최 이사였다.

“그 여권이 필요한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어요?

“선배님께서 조금 전에 그러셨죠? 저의 압도적인 행보보다 더 큰 조력은 없다고.”

“네. 그랬죠.”

“특별 여권의 발급 난이도는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한국 헌터에게 발급된 사례도 손에 꼽을 정도고요.”

“맞아요. 제가 태주 씨를 추천할 순 있어도 발급을 보장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에요. 심사관들이 저의 추천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도 있고요.”

아직 협회에 대항해 발톱을 드러낸 적은 없는 최 이사지만, 기득권 세력과는 거리가 먼 인물인 만큼 본부의 승인을 장담할 순 없었다.

“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발급이 이루어지면, 선배님께서 바라시는 압도적인 행보의 일환이 되는 거고, 발급이 거부되면, 협회가 저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태주의 계산대로라면 최 이사의 현실적인 우려와 달리 특별 여권의 신청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으음. 그렇게 생각하니 또 걱정할 게 없긴 하네요.”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던 최 이사가 태주의 의견에 수긍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일단 본부 측에 신청은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검증의 기회를 얻게 된 태주가 최 이사의 추천 약속에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요. 감사의 인사는 신청이 받아들여졌을 때 들을 게요.”

경솔함과는 거리가 먼 최 이사가 승인을 낙관하는 등의 입찬소리를 자제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밖에 뭐 다른 요구 사항은 없어요? 앞에 건 들어줬다고 보기에도 애매한 부탁이라.”

“다른 요구 사항이요? 으음. 아, 혹시 준프로의 자격으로는 피크닉 테이블에 가입할 수 없나요?”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던 태주가 미리 준비해 둔 차선책을 꺼내 들었다.

“어? 피크닉 테이블에 대해서도 알아요?”

“네. 아레나 길드의 이동규 대표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아, 이 대표요. 그럼 이 대표가 저보다 2년 후배인 것도 알고 있겠네요?”

“네. 하지만 선배님들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기 전까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드릴 방법이 없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피크닉 테이블의 가입 자격에 대해 여쭤본 것도 운명 공동체라는 말에 부합하는 유대감을 조금 더 일찍 형성하고 싶어서 그런 거고요.”

태주는 전체 회원의 명부와 프로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로그인 권한을 이용해 자신의 성장과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피크닉의 황금 인맥을 조금씩 넓혀 나갈 작정이었다.

“의도야 나쁘진 않지만, 원칙적으로 프로의 자격을 갖춘 경우에만 계정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권의 발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까지 못 들어주겠다고 하면, 최대한의 조력으로 태주 씨의 행보를 끝까지 응원하겠다고 했던 제 약속이 공염불이나 다를 바 없겠죠?”

두 가지 요청 모두 원칙대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태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한 최 이사의 입장에선 확신이 결여된 모습을 두 번 연속 보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조만간 가입 메일이 발송될 수 있게 따로 조치해 둘게요.”

피크닉 내에서의 입지마저 의심받고 싶지 않았던 최 이사가 결국 자신의 재량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태주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었다.

“아, 그 대신 제가 부탁드린 부분도 꼭 지켜 주셔야 돼요.”

“네. 쉽진 않겠지만, 2위와의 격차를 최대한 벌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태주가 최 이사의 거듭된 당부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

*

*

잠시 후.

[“이제 곧 푸드 체인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참가자 여러분께선 지금 즉시 해당 게이트로 이동해 응서 순서대로 서 주시기 바랍니다.”]

S 게이트에 도착하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

순간, 미리 도착해 있던 각국의 지원자들이 일제히 태주를 돌아봤다.

여전히 8 대 2의 비율로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물론 곁눈질을 하는 것 이외엔 어떠한 견제도 할 수 없는 녀석들을 일일이 신경 쓸 태주가 아니었지만.

- “신태주 씨?”

S 게이트 앞을 지키고 있던 진행 요원이 태주에게 다가가 신분을 확인했다.

“네.”

얼굴이 곧 명함인 태주가 접수 확인 팔찌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 “7번째 입장입니다. 자리로 이동해 주세요.”

증강 현실을 구현하기 위한 특수 고글을 건넨 진행 요원이 대기 줄을 가리켰다.

“네.”

6번째 사람의 뒤통수를 발견한 태주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더럽게 쫑알대네.’

줄을 서 있던 응시자들이 영어 또는 각자의 언어로 태주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 “맨몸으로 싸울 거야?”

바로 앞에 있던 6번째 응시자가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은 태주의 단출한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영어로 묻곤 있었지만, 모국어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상대와 눈을 마주친 태주가 짧은 영어와 함께 활을 꺼내 들었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의 선택은 예정대로 마스터 앤 피스에서 협찬을 받은 일반 등급의 레이드 보우였다.

- “와아, 대단한 능력이네.”

6번째 응시자가 태주의 인벤토리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근데 그걸로 되겠어? 적어도 이 정도 준비성은 있어야지.”

태주와 마찬가지로 궁수 클래스인 6번째 응시자가 고급 등급의 장비로 무장된 자신의 모습을 보란 듯이 자랑하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면상 좀 치워. 좀 이따 따라잡히지나 말고.”

상대방의 오지랖이 가소로웠던 태주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대답했다.

-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한국어를 모르는 6번째 응시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드바이스 해줘서 고맙다고.”

6번째 응시자의 관심이 성가셨던 태주가 영어로 적당히 둘러대며 호의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 진짜? 말의 길이가 상당히 짧아진 거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린 6번째 참가자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바로 그때.

[“10초 후 게이트가 오픈됩니다. 각 게이트의 첫 번째 응시자는 출발 위치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5, 4, 3, 2, 1. 오픈.”]

안내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굳게 닫혀 있던 S 게이트의 문이 열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해 주세요.”

약 8분 전에 출발한 6번째 참가자의 뒤를 이어 게이트 앞에 서게 된 태주가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특수 고글을 착용했다.

“네.”

별도의 통역 시스템은 구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고글에 뜨는 언어는 한국어로 설정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초반부터 좀 달려볼까?’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 “……?!”

태주가 발산하는 마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곁에 있던 진행 요원과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후순위 응시자들의 온몸에 저절로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클래스를 제외한 5인의 공대원들과 함께 미션을 완수해 주세요.]

모의 던전 안으로 발을 들이자 증강 현실로 구현된 가상의 동료들이 태주의 주위로 하나씩 소환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미션) 레이드 대형의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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