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18화 (218/242)

218. 위계질서 (5)

‘20분이라…….’

발밑에 놓인 거미 몬스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태주가 회귀 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첫발을 내디뎠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겠지?’

부스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조합을 구성할 경우 불필요한 의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10분 이내로 제작할 수 있으면서도 거미의 독니로 만든 단검보단 완성도가 높은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태주의 1차적인 목표였다.

‘일단 날카로운 것부터 확보하자.’

쇠붙이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선 몬스터의 두꺼운 가죽이나 비늘을 관통할 수 있는 대체재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단면이 예리하지 않더라도 몬스터의 이빨이나 손톱과 발톱, 나아가 머리에 난 뿔이나 몸에 난 가시처럼 끝이 뾰족한 것들은 대부분 찌르는 용도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어, 그래. 저거면 되겠네.’

부스 안을 분주하게 누비던 태주가 거대한 말벌 몬스터의 사체에서 길이 약 50센티미터의 독침을 발견했다.

쑤욱!

분리와 조립이 가능한 실습용 모형이라 별다른 수고 없이 독침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나마 거리를 벌리면서 싸우기엔 창이 낫지.’

본연의 클래스는 매직 아처였지만, 인벤토리나 화살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미션인 만큼 활대는 물론 여러 발의 화살까지 제작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정 대신 창이라는 다소 현실적인 대안을 택한 태주였다.

‘그때도 활을 만들던 애들은 거의 다 안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까.’

태주의 회귀 전 기억대로 검, 창, 활로 삼분되던 선택지 중 활을 택한 응시자들은 완성도적인 측면에서 감점을 당한 사례가 많았다.

어찌어찌 탄성이 좋은 나무에 몬스터의 힘줄을 걸어 화살을 발사하기에 적합한 장력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다양하고 섬세한 공정을 통해 활대의 내구성을 높여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급조해서 만든 활의 성능은 늘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다음엔 긴 손잡이가 필요한데.’

창의 장대는 단단하고 곧은 나뭇가지나 메뚜기나 꼽등이처럼 도약에 알맞은 뒷다리를 지닌 곤충 몬스터의 가늘고 긴 종아리 마디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5분 후.

“으음. 이 부분은 좀 더 보완할 필요성이 있겠네.”

“선배님.”

업그레이드를 마친 부스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던 성호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태주의 생각보다 이른 부름에 헛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던 바로 그때.

‘뭐야, 벌써 포기를……, 어?!’

태주의 곁에 서 있는 길이 약 3미터의 창을 본 성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 그거 뭐야.”

당황한 성호가 말까지 더듬어가며 무기의 정체를 물었다.

“아, 이거요. 창인데요?”

오른손에 쥔 창을 슬쩍 쳐다본 태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창인 건 나도 알지. 근데 신입생인 네가 그걸 어떻게 만들었냐고. 그것도 고작 5분 41초 만에.”

각성 수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경험의 차이를 통해 후배의 부족함을 일깨워 주려 했던 성호가 휴대폰에 맞춰 둔 타이머를 확인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냥 아까 보여주신 단검의 제작 과정을 응용해서 이것저것 조합을 해 봤습니다.”

“내 설명을 참고해서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냈다고?”

선배의 여유라곤 온데간데없어진 성호가 태주에게 다가가 뺏듯이 창을 가져갔다.

‘말도 안 돼.’

업그레이드된 부스 안을 둘러봤을 때보다 더 유심히 창을 살펴보던 성호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마음의 소리를 태주 몰래 삼켰다.

‘휴대성을 고려하면서도 찌르는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적당한 무게감과 적의 두꺼운 외피를 관통하고도 남을 창끝의 예리함. 거기에 거리 조절의 역할은 물론 때에 따라 투창의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과하지 않은 창의 길이까지……. 재료 간의 궁합과 창의 결합 정도 등 세부적인 완성도는 따로 체크해 봐야겠지만, 일단 외형적인 첫인상만 봤을 땐 최소 B+ 이상이다. 제작 시간만 놓고 보면 무조건 A 이상이고.’

평가를 마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크게 흠잡을 곳이 없는 결과물이었다.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어?”

의도성의 존부는 곧 배경지식에 근거해 재료를 조합하였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물론 얻어걸린 것이라 믿고 싶은 성호로선 재료의 선정 근거가 단순하고 태주의 설명 또한 부족하길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아, 의도요. 우선…….”

생존 수업을 방불케 하는 성호의 구체적인 질문에도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답변을 이어가는 태주였다.

물론 100퍼센트의 실력을 발휘했다면, 특정 몬스터의 위에서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위산을 이용해 창날에 해당하는 벌침과 장대 역할을 하는 종아리 마디의 접합부를 정교하게 다듬는다든지 창준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작은 창날을 반대편 끝에 달아 무게 중심의 불균형도 해소하고, 창날이 부러지는 경우에도 대비했겠지만.

“……그리고 창날이 너무 깊숙이 박히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창두와 창간의 이음새가 더 단단히 조여질 수 있게 도넛 모양의 석반을…….”

“그만.”

의도성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파악한 성호가 오른손을 가슴 높이까지만 들며 태주의 말을 끊었다.

“궁수답지 않게 창에 대한 이해도가 높네. 창은 주로 무투가들의 보조 무기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뭐, 몬스터의 사체에 대한 지식이나 활용법도 남다른 것 같고.”

“그냥 도서관과 인터넷에서 얻은 잡다한 지식을 조악하게 엮어본 것뿐입니다.”

겸손한 대답과 그렇지 못한 실력.

미션을 낸 쪽은 성호였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래? 대단하네. 2학년 때나 수행하는 과제를 이렇게 척척 해내고. 역시 4학년 선배들이랑 수업을 들을 만해. 근데.”

까다롭고 융통성 없는 평가 기준을 내세운다 했던 근석의 증언대로 성호는 해당 부스의 결함보다 태주가 만든 창의 결함을 더 찾고 싶은 눈치였다.

“창의 모양새를 흉내 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중요한 건 이 창이 과연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느냐의 문제지.”

완성도적인 측면을 걸고 넘어간 성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적당한 나무를 물색했다.

“물론 진짜 사체가 아닌 만큼 성질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만들었다면 최소한 창이 분리되는 일은 없겠지? 그게 아니라면 한낱 곤충의 다리만 들고 다닌 꼴이 되는 거고.”

제작에 소요된 시간이 짧을수록 견고함이 떨어질 것이라 예단한 성호가 두 손으로 자루를 단단히 움켜쥔 뒤 표적으로 삼은 나무를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뻗었다.

“흡!”

퍽!

원뿔형으로 좁아지는 뾰족한 창끝이 대못을 때려 박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목표물의 표면을 단숨에 파고들었다.

“……?!”

꽤나 단단해 보이는 녀석을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창두의 3분의 1 가량이 나무에 박히자 아차 싶은 생각마저 든 성호였다.

‘뭐야, 이거. 창의 형태가 그대로잖아?’

태주의 눈썰미와 손재주를 제 손으로 증명하는 꼴이 된 성호가 난감한 얼굴로 황급히 창을 뽑아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성능 테스트만 건너뛰는 건데.’

선배는 선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려 둔 밑그림이 헛수고보다 못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나쁘진 않네.”

본심을 숨긴 성호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주에게 창을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일단 다른 부스도 돌아봐야 되니까 여긴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창은 적당한 곳에 내려놓고.”

태주에게 20분을 허락했던 성호가 미션 시작 10분 만에 바쁜 척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나저나 인턴십을 할 곳은 정했어?”

창에 집중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던 성호가 평가와는 무관한 질문을 통해 대화의 방향을 유도했다.

“네? 아, 네.”

총평이 생략된 선배의 야박한 칭찬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태주가 손에 든 창을 바닥에 던져둔 뒤 성호의 뒤를 따랐다.

“아, 그래? 어딘데?”

굳이 인턴십에서까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성호가 다른 길드를 택할 심산으로 태주의 선택을 물었다.

가뜩이나 클래스가 겹치는 마당에 길드까지 동일할 경우 인턴십 기간 내내 비교를 당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이번에 인턴십을 지원해야 돼서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

물론 한국대 헌터학과에 재학 중인 대부분의 3, 4학년 학생들이 5대 길드를 지망하는 만큼 태주와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운 선배는 아무도 없었지만.

“아, 네. 선배님은 어디어디를 염두에 두고 계신데요?”

“나? 글쎄. 일단 5대 길드 중에 한 곳이 되겠지?”

“어? 그럼 어디가 됐든 한 번은 마주치겠네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태주의 인턴십 일정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성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으음. 제가 사실 한 곳에서 5주가 아니라 5대 길드에서 각각 한 주씩 인턴십을 진행하기로 했거든요.”

“뭐?!”

순간, 무기 제작 부스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던 성호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 섰다.

“인턴십을 다섯 곳에서 진행한다고?”

“네.”

“그걸 누가 정한 건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진행 방식에 놀란 성호가 믿을 수 없다는, 아니, 믿고 싶지 않다는 눈빛으로 따지듯이 캐물었다.

“협회장님과 총장님, 그리고 5대 길드의 대표님들께서요.”

“……?!”

태주가 5분 만에 창을 들고 나타났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성호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화려한 멤버 구성에 할 말을 잃었다.

‘말도 안 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스무 살짜리의 앞날을 위해 업계의 기둥들이 뜻을 모았다고?’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밀려든 성호가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모든 후배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결국 이 녀석에겐 예외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실력은 물론 경험에서조차 우위를 점하지 못한 성호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다섯 군데를 돌려면 정신이 없겠네. 적응할 시간도 부족하고.”

설명할 수 없는 벽을 느낀 나머지 어색한 미소밖에 지을 수 없는 성호가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네. 그래도 어딜 가나 선배님들이 계시니 외롭진 않을 것 같습니다.”

성호가 자신을 시험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태주가 태평한 웃음과 함께 눈을 마주쳤다.

‘뭐야, 이 자식, 왜 이렇게 눈에 거짓이 없어?’

말로는 겸손을 떨 수 있어도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우월감이 묻어날 수 있었지만, 성호의 부정적인 예상과 달리 태주의 눈빛과 태도에선 그 어떤 거만함과 교만함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괜한 오해를 하고 있던 건가?’

선배 대접을 받기 원하면서도 정작 선배답지 못한 행동으로 후배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던 성호가 태주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부끄러운 낯짝을 마주하던 바로 그때.

“저기, 태주야.”

다시금 걸음을 멈춘 성호가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태주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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