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레벨 테스트 (6)
“네. 주로 게이트 발생 지역의 대피 작전과 던전 브레이크에 대비한 지원 공격 등을 담당하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네. 그리고 그 ‘기타 등등’엔 각성자를 해치는 각성자인, 일명 빌런에 대한 체포권도 포함되어 있죠.”
일반적으로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은 경찰의 역할이지만, 업무의 밀접성과 사태 해결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 게이트작전사령부에서도 예외적인 빌런 체포권이 인정되고 있었다.
“손을 한번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지갑에서 꺼낸 무언가를 오른쪽 주먹 안에 움켜쥔 조 중장이 태주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손이요?”
과외비가 아님은 확신한 태주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
팔을 뻗은 조 중장이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게 단단히 말아 쥐고 있던 주먹을 태주의 손바닥 위에서 서서히 펼쳤다.
툭!
“어? 이게 뭡니까?”
손바닥 위로 떨어진 낯선 물체를 마주한 태주가 의아한 기색을 내비치며 물었다.
“지금 드린 건 게이트작전사령부의 사령관만 패용할 수 있는 정복용 직책 근무 약장입니다.”
가로 약 3.5, 세로 약 1센티미터의 약장은 흰색 바탕에 중장을 의미하는 세 개의 별이 나란히 박혀 있었는데, 다른 장성들의 별이 은색 또는 금색인 것과 달리 게이트작전사령부의 별은 붉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아버님의 약장을 왜 저한테…….”
“선물입니다.”
“네? 선물이요?”
“네. 앞으로 몸조심하시라는 의미에서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몸조심이라……. 누가 절 노리고 있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걱정의 의미를 곱씹어 보던 태주가 손바닥 위에 놓인 조 중장의 약장을 서서히 움켜쥐며 물었다.
아직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위협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자신과의 대결을 일방적으로 원하고 있는 아레나 길드 출신의 정진천이나 나리의 아버지인 윤 교도관에게 자신과의 친분을 물었다는 의문의 재소자 등 신경이 쓰이는 녀석들은 더러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야 저도 모르죠.”
다소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 대답이었지만, 사실 조 중장의 선물은 현재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예방의 차원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네? 모르신다고요?”
“네. 다만 인생을 살다 보니 사람의 질투심만큼 무서운 것도 없더군요. 그 질투심 때문에 본인의 인생까지 망치는 경우도 여럿 봤고요.”
인생의 대선배라 할 수 있는 조 중장은 태주의 승승장구가 단순한 질투심을 넘어 적대심까지 유발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경고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타인의 질투심을 경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선생님은 이미 약관의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4학년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과 인턴십에 참여할 예정이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물론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요.”
“듣고 있자니 좀 민망하네요.”
조 중장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있던 태주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하하.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도 얼굴이 화끈해지셨습니까?”
“네. 아무래도 뻔뻔함이 부족한가 봅니다.”
“뻔뻔함이 부족한 게 아니라 겸손하다는 의미겠죠. 물론 얼굴이 화끈해질 만큼 화려한 커리어가 때론 누군가의 얼굴을 시기와 질투로 달아오르게 하겠지만.”
한 번의 미끄러짐도 없이, 심지어 동기들보다 이른 진급을 통해 중장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경쟁이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아버님의 선물이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로부터 절 지켜줄 수 있다는 겁니까?”
“이미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이왕이면, 그 귀한 손을 더럽히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조 중장의 말대로 상대할 가치가 없는 녀석들에게 맞서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는 것보단 공권력의 힘을 빌려 간접적으로 처리하는 편이 태주의 입장에서도 더 효율적인 대응책이라 볼 수 있었다.
“게이트 주변엔 언제나 게이트작전사령부 소속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연락이 닿지 않을 땐 언제든 그 약장을 보여 주시면서 선생님을 해하려는 각성자에 대한 체포 요청을 하시면 됩니다. 그럼 저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그 약장이 제 명령과 같은 효과를 발휘해 선생님의 고충을 아주 신속하게 처리해 줄 테니까요.”
일종의 선(先) 조치, 후(後) 보고 시스템.
조 중장은 자신이 게이트작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있는 동안 별도의 보고 체계 없이 체포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례적인 권한을 태주에게 허락했다.
물론 그러한 특혜의 밑바탕엔 과외 선생님인 태주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아들을 한국대에 보내려는 자신의 계획 또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다소 계산적인 판단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지만.
“근데 그러다 보면 권한의 남용이 문제 되지 않을까요? 더구나 전 군인도 아닌 민간인의 신분인데.”
“아니요. 어차피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은 빌런에 대한 체포를 게이트작전사령부에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법적으로 말이죠. 다시 말해, 요청만으로는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노련한 조 중장이 태주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 리 만무했다.
“물론 요청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꼭 신속한 해결을 수반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무슨 뜻이죠? 설마 요청이 묵살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겁니까?”
회귀 전후를 통틀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이라 조 중장이 밝히는 게이트작전사령부의 현주소 하나하나가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태주였다.
“업무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기타 등등’으로 묶인 부수적인 업무에 불과하니 다른 주요 업무에 비해 인력 투입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요.”
“그럼 그 우선순위를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아버님의 약장이군요. 마치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놀이동산처럼.”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 될 수 있는 만큼 처리의 신속함을 보장받은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은 것이라 볼 수 있었다.
“혹시 거부감이 드십니까? 공권력을 이용해 누리는 특혜 같아서?”
태주의 비유를 들은 조 중장이 자신의 제안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물었다.
“참 곤란한 질문이네요. 네라고 하기엔 혼자만 정직한 척, 깨끗한 척 위선을 떠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또 아니라고 하기엔 공정성과 형평성에 무감각한 속물처럼 보일 것 같고……. 일단 아버님의 성의를 받긴 했지만, 이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고 있는 태주가 손에 쥔 약장을 들어 보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러시군요. 그럼 이번에만 대신 정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체면이라는 걸림돌이 태주의 선택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조 중장이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누리세요. 앞으로 주어질 모든 특혜와 권력을. 아주 당연하게.”
“……?!”
무난한 답변을 예상했던 태주로선 흠칫하지 않을 수 없는 직설적인 화법이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누군가 권력을 휘두르고 특혜를 누리는 것에 민감합니다. 특히 자격이 없는 자가 그럴수록 더욱 분노하고 더 큰 박탈감을 느끼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격이 없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물론 제가 보인 성의가 특혜인 것은 맞지만,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이자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일 전도유망한 청년의 안전을 위협하는 녀석을 우선적으로 제압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박탈감을 느낄 이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특혜에 대한 다수의 용인이 이루어진 것을 우린 자격이라 부르고 있고요.”
특혜를 받는 이의 마음부터 안심시키고자 했던 조 중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탓에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판으로부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태주를 대중의 관점에서 설득했다.
“자격이 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못 이기는 척 스스로를 합리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덕분에 약장을 쥐고 있는 손이 한결 떳떳해졌습니다.”
물론 인사이동이나 진급으로 인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한시적인 특혜였지만, 적어도 조 중장이 게이트작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부임하고 있는 동안엔 빌런들의 처리를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게 된 셈이었다.
‘좋은 인맥 맞네.’
섭섭지 않은 과외비와 더불어 좋은 인맥을 얻게 될 것이라 했던 정웅의 예견대로 조용욱 중장은 자신이 평범한 학부모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 획득한 물품을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조 중장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한 태주가 주먹 안에 든 약장을 안전한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하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진전 없는 실랑이를 걱정했던 조 중장이 자신의 성의를 받아준 태주의 융통성 있는 처신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던 바로 그때.
“선생님!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종류별로 다 가져와 봤어요.”
뒷문을 어깨로 밀어낸 현웅이 냉장고를 털다시피 꺼내 온 음료수들을 쟁반 가득 든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어휴, 뭘 이렇게나 많이. 아무튼 잘 마실게.”
조 중장이 시간을 벌기 위한 용도로 주문했던 음료수라 딱히 목이 마른 상황은 아니었지만, 달라진 현웅의 태도가 기특해 이온음료 한 캔을 집어 든 태주였다.
“자, 그럼 식사도 하고, 레벨 테스트도 마치셨으니 이쯤에서 그만 자리를 파하는 게 어떻습니까?”
태주를 초대한 목적을 모두 달성한 조 중장이 슬슬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네. 뭐든 아쉬울 때 헤어져야 이후에 있을 만남이 더 기다려지는 법이니까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은 태주 역시 조 중장과 같은 마음이었다.
“어? 벌써 가시게요? 온 김에 저녁까지 드시고 가세요. 갈비찜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현웅은 두 사람의 이른 귀가 움직임이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내일 아침까지 안 먹어도 될 거 같아.”
태주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완곡하게 사양했다.
“오늘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아, 그리고 현웅이 문제로 상담하실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하하. 앞으로 자주 뵙진 못하겠지만, 가끔 안부 전화는 드리겠습니다.”
면접에 준하는 첫 만남에서의 동석은 당연했지만, 일단 태주에게 자녀를 믿고 맡긴 만큼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면, 곁에서 감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게 사령관의 업무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현웅아, 이건 가면서 마실게.”
조 중장을 향한 정중한 인사와 달리 현웅에겐 음료수를 들어 보이는 것으로 끝인사를 대신했다.
“아 참, 기사님 것도 하나만.”
발걸음을 돌리려던 태주가 쟁반에 든 음료수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이야, 이 배려심. 역시 선생님은 제 롤 모델이십니다.”
태주의 작은 행동 하나마저 닮고 싶은 현웅이 김 기사의 몫까지 챙기는 자상한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따로 배웅해 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아들과 같은 인상을 받은 조 중장이 흐뭇한 얼굴로 물었다.
“요 앞인데요 뭐. 굳이 걸어갈 이유도 없고.”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우와아아아아!”
태주의 순간 이동을 실제로 목격한 건 처음인 현웅이 부스를 뛰쳐나왔을 때보다 더 큰 환호성을 지르며 요란한 끝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