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레벨 테스트 (1)
목가적인 평온함을 깨뜨린 눈치 없는 총구의 포효.
태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소음의 진원지는 별장의 뒤편이었다.
‘무슨 일이지?’
잠시 멈칫했던 태주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현관이 아닌 뒷마당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정도?
태주는 조 중장이 다소 과격한 인기척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다 판단했다.
탕!
또 한 번의 총성이 이어졌지만, 놀라는 것은 한 번으로 족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답답했던 태주가 목표 지점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으음?’
별장 뒤편에 다다른 태주의 시야에 넓은 공터와 자신을 등진 채 클레이 사격에 열중하고 있는 조 중장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귀마개를 해서 모르나?’
태주는 헤드폰처럼 생긴 사격용 귀마개를 착용한 조 중장이 차가 오는 소리를 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고!”
조 중장이 기합 소리와 같은 신호를 보내자 바닥에 설치된 방출기에서 피전(Pigeon)이라 불리는 오렌지색 접시가 포물선을 그리며 발사됐다.
팟!
표적이 공중으로 솟구치자 거총을 한 조 중장이 노련한 움직임으로 총구를 이동시켰다.
탕!
정점에 채 다다르지 못한 접시가 격발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지며 핑크색 가루를 흩날렸다.
짝! 짝! 짝!
감상은 충분히 했다고 여긴 태주가 느린 박수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어, 태주 학생.”
때아닌 박수 소리에 고개를 돌린 조 중장이 귀마개를 목에 걸치며 태주에게로 다가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태주라고 합니다.”
실물을 마주한 건 처음인 태주가 가벼운 목례로 예의를 갖췄다.
“하하하.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네요.”
역할을 다한 탄피를 뒤쪽으로 튕겨내듯이 빼낸 조 중장이 시옷(ㅅ) 자가 된 총을 한쪽 어깨에 걸치며 악수를 청했다.
“아니요. 차량을 보내주신 덕분에 아주 편하게 왔습니다.”
가볍게 손을 맞잡은 태주가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조 중장의 첫인상을 살폈다.
‘그래도 사진보단 실물이 낫네.’
기사 속에서 본 모습은 웃음기 하나 없는 근엄함 그 자체였지만, 막상 호탕하게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한결 경계심이 누그러진 태주였다.
“그나저나 별장 뒤에 클레이 사격장이 다 있네요.”
“원래 사격이 취미거든요. 접시가 터질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요.”
“글쎄요. 단순한 취미라고 하기엔 너무 수준급이시던데요?”
“네? 하하하하. 이거 빈말인 걸 알면서도 주책없이 웃게 되는군요.”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한결 화기애애하게 만든 태주가 자신을 속인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 참, 근데 말씀하신 것과 달리 별장으로 오는 동안 택시가 들어올 수 없는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하하하!”
태주의 말을 들은 조 중장이 총성만큼이나 큰 웃음소리로 의아함을 자아냈다.
조금 전, 태주의 칭찬을 받았을 때와는 분명 다른 뉘앙스의 웃음이었다.
“아이고,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해명에 앞서 대뜸 사과부터 한 조 중장이 뜻밖의 대답으로 태주의 두 귀를 의심케 했다.
“그건 그냥 해 본 소리였습니다.”
“네? 그럼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까?”
“택시처럼 모르는 차량의 내비게이션에 별장의 위치가 찍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태주 학생의 핑계를 대는 건 아니지만, 태주 학생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고요.”
“그럼 혹시 별장도 별장 나름이라 했던 말씀도…….”
“하하하. 이런 개인 사격장을 갖춘 별장이면 나름 특별한 축에 속하지 않겠습니까?”
“네, 뭐, 그렇긴 하죠.”
별장에 얽힌 허무한 진실을 알게 된 태주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덜컥!
사격장 한편에 놓인 작은 부스의 문이 열렸다.
“아, 저기 나오네. 저 녀석이 바로 제 아들 녀석입니다. 하하하하.”
태주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옆으로 비켜선 조 중장이 부스 안에 앉아 접시의 발사 버튼을 누르고 있던 자신의 아들을 흡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야 이 녀석아, 빨리 안 뛰어오고 뭐해. 선생님 기다리시게 할 거야?”
“가요!”
사춘기 소년에게서나 들을 법한 반항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 현웅이 조 중장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뛰어왔다.
“얼른 인사부터 드려. 이 아비가 아주 어렵게 모신 분이니까.”
“안녕하세요.”
아들이 태주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는 조 중장의 말과 달리 태주를 대하는 현웅의 태도는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 그래. 네가 현웅이구나?”
현웅이 발산하는 마력과 겉으로 드러난 신체 조건을 빠르게 파악한 태주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인사를 건넸다.
‘듣던 대로 고분고분하게 생긴 인상은 아니네. 체격도 또래에 비해 큰 편이고.’
순간, 수업 태도에 변화가 없거나 자신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과외 의사를 철회하겠다 했던 자신의 판단이 현명했음을 깨달은 태주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상의할 것도 있지만, 서먹할 땐 모름지기 식사를 함께해야 마음이 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제지간이 될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조 중장이 태주를 별장의 뒷문으로 정중하게 안내했다.
*
*
*
‘와아,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준비했지?’
조 중장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선 태주가 식탁 위에 차려진 산해진미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8인용 식탁의 상석을 양보한 조 중장이 태주의 오른쪽 대각선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차린 게 별로 없어서 걱정입니다.”
“아니요. 저는 손님이 더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렇게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 자, 너도 얼른 와서 앉아.”
조 중장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며 아들의 착석을 재촉했다.
“본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아침부터 준비한 겁니다. 특히 이 갈비찜이 아주 예술이니 식기 전에 드셔 보세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두 명의 가정부를 힐끗 쳐다본 조 중장이 갈비찜이 든 접시를 태주의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주며 말했다.
“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조 중장의 권유대로 갈비 한 점을 베어 문 태주가 짧은 맛 표현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
“와아, 진짜 갈비찜이 예술이네요.”
“하하하. 갈비찜은 얼마든지 있으니 사양 말고 많이 드십쇼.”
“네. 감사합니다. 근데 앞으로의 수업은 뒤뜰에 있는 사격장에서 이루어지는 겁니까? 좀 전에 보니 면적은 충분하지만, 정작 훈련에 쓸 만한 과녁은 하나도 안 보여서요.”
태주가 언급한 대로 클레이 사격장엔 이렇다 할 훈련 장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아, 과녁이요. 안 그래도 내일모레 설치할 예정이었습니다. 체력 단련을 위한 기구들을 들여놓기 위해 지하실도 싹 다 치워 놨고요.”
“아, 네. 그럼 늦어도 수업 전까진 준비될 수 있겠네요.”
“네. 다른 이유면 몰라도 교보재가 없어 수업을 미루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훈련에 필요한 장비들을 급하게 주문해 둔 조 중장이 차질 없는 준비를 약속하며 태주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저, 근데 선생님.”
왼팔을 식탁에 올린 채 깨작깨작 밥을 먹고 있던 현웅이 태주에게 처음으로 말을 붙였다.
“어. 왜?”
“혹시 강남에 있는 철인 학원이라고 아세요?”
“철인 학원? 알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헌터 입시 학원 아니야?”
“네. 저도 거기 다녀요. 각성자 판정을 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어. 어딘진 몰라도 학원에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아니요. 이왕이면, 학원에서 지겹게 배운 기본기 훈련 대신 한국대에 합격할 수 있는 족집게 과외를 해주셨으면 해서요.”
“아아, 족집게 과외.”
과외 학생의 평소 수업 태도를 알고 있는 태주가 기본기를 배제한 채 쉬운 길로만 가려는 현웅의 건방진 요구 사항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엄 교수의 직업 탐구 시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궁수에게 있어 기본기는 평생을 갈고닦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훈련 요소였기 때문이다.
“네. 이미 아빠한테 들어서 아시겠지만, 제가 또 A급 각성자거든요. 기술을 익히는 속도도 거의 스펀지 수준이고요.”
“당연히 알고 있지. 1학년 때부터 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갈수록 강사님 말씀도 잘 안 듣고, 실력도 항상 제자리걸음이라는 것까지.”
“……?!”
태주의 능청스러운 팩폭에 말문이 막힌 현웅이 마주 보고 있던 조 중장을 슬쩍 쳐다봤다.
“아니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실력이 정체된 게 아니라 전력을 다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뿐이에요.”
태주의 일침에 자존심이 상한 현웅이 표정 관리에 실패한 얼굴로 대뜸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 그래? 대단하네. 각성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고 아주 살판이 났다더니 진짜 그래도 되겠어.”
“네?”
태주의 연이은 팩폭에 두 귀를 의심한 현웅이 또 한 번 조 중장을 쳐다봤다.
“아니, 아빠! 나 없을 때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미간을 잔뜩 찌푸린 현웅이 짜증 섞인 말투로 언성을 높였다.
“왜. 내가 뭐 없는 소리 했냐?”
흥분한 현웅과 달리 조 중장의 반응은 태연하다 못해 차분했다.
태주와의 통화 당시 이미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곧 수업 방식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앞으로도 따끔한 질책과 아낌없는 지도 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더구나 조 중장은 자식의 허물을 감싸는 것보다 태주의 편을 들어 과외를 성사시키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자 자식을 위한 길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뭐?”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아버지의 냉정한 처신에 당황한 현웅의 눈빛에선 서운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기본기는 지겹게 배웠다고 했지?”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은 태주가 가소롭다는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네? 아, 네, 뭐.”
불과 1분 전에 내뱉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부정할 수 없었던 현웅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래? 그럼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레벨 테스트나 해볼까?”
실력의 객관화를 통해 기선을 제압하고 싶었던 태주가 예정에 없던 검증의 자리를 제안했다.
“네? 지금 당장이요?”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의 준비 또한 되어 있지 않았던 현웅이 갑작스러운 테스트에 난색을 표하며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댔다.
“아직 과녁도 설치되지 않았는데요?”
“과녁? 과녁이 꼭 서 있을 필요는 없잖아. 몬스터들이 무슨 허수아비도 아니고.”
흥미로운 발상이 떠오른 태주가 현웅의 핑계를 한쪽 귀로 흘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