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과외 (2)
[그분한테 네가 과외를 수락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더니 좀 전에 직접 통화를 할 수 있냐는 답장이 왔거든.]
【통화? 지금 당장?】
최소한 주말은 지나고 연락이 올 것이라 예상했던 태주가 생각보다 이른 회신에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뭐지? 자식이 고3이라 마음이 조급한가? 근데 늦둥이면 고3이 된 자식이 처음도 아닐 텐데. 어? 혹시 각성자가 된 자식은 처음인가?’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던 태주가 포털 사이트를 열어 조용욱 중장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현재까지의 흐름상 학부모와의 대면 역시 속전속결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 이왕이면 얼굴이라도 익혀두고 가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 있다. 게이트작전사령부 사령관 조용욱 중장.’
직업의 특성상 공개된 정보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기사 속에 등장한 모습은 웃음기 하나 없는 근엄함 그 자체였다.
‘우와, 역시 보통 관상이 아니네.’
[어. 너만 괜찮다고 하면 바로 연락이 갈 거야. 내가 번호를 알려 드렸거든.]
【나야 뭐 괜찮지. 근데 일요일인데도 어떻게 연락이 왔네?】
[게이트작전사령부가 원래 빡세. 365일 비상근무 체제. 너도 알다시피 게이트가 평일에만 생성되는 건 아니잖아.]
【어? 그럼 너희 아버지께서도 늘 바쁘시겠네?】
[뭐 이젠 대령 짬이라 몸이 바쁘시진 않은데, 대신 정신적으로 피곤하신가 봐. 갈수록 보고받을 것도 많고, 지시할 것도 많아져서.]
【그렇구나. 진짜 고생하시네.】
[고생이지. 근데 우리가 모르는 무슨 메리트가 있나 봐. 편한 부대로 옮길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도 굳이 게이트작전사령부에만 계신 걸 보면.]
대부분의 자녀들이 그렇듯 정웅 역시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 세세한 사정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튼 네가 오케이 했으니까 지금 통화할 수 있다고 전할게.]
【아니. 그 전에 사령관님에 대해 먼저 알고 싶은데, 혹시 아버지한테 뭐 들은 거 없어?】
태주는 통화에 앞서 인터넷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조 중장의 성향과 각종 주의 사항에 대한 조언부터 구할 작정이었다.
[사령관님? 글쎄. 내가 들은 바로는 뭐든지 확실한 걸 좋아하신다는 거랑 화통한 성격이시라는 것 정도?]
【그게 다야? 뭐 그밖에 조심해야 될 건 없고?】
[없을걸?]
나리와 달리 아버지에게 물어보는 것이 귀찮았던 정웅이 뚜렷한 확신 없이 대충 얼버무렸다.
【아, 그리고 학부모가 누군지는 계속 모른 척해야 돼? 과외를 수락했을 땐 따로 알려 주라 그랬다며.】
[이젠 아는 척해도 돼. 대신 어제가 아니라 조금 전에 알게 된 걸로.]
침묵의 실익을 따진 끝에 조 중장과의 약속을 어겼던 정웅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말을 맞춰 두었다.
【ㅇㅋ】
[그럼 통화 잘 하고, 끝나면 어떻게 됐는지 알려줘.]
【ㅇㅇ】
정웅과의 대화를 마친 태주가 인벤토리에 있던 생수 한 병을 꺼내 건조해진 목을 축였다.
아침부터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엄지만 바빴을 뿐 딱히 입을 연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오늘 당장 보자고 하진 않겠지?’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처음부터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만남은 최대한 거절할 생각이었다.
지이잉!
‘어? 왔다.’
조 중장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태주의 휴대폰에 재소자의 이름을 물어본다 했던 나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막 전화로 확인했는데, 아빠가 신경 쓰지 말래. 어차피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 놈들이라고.]
【그래? 다른 말씀은 없으시고?】
[어. 그냥 너랑 연락도 하는 사이냐면서 엄청 신기해하셨어 (놀란 이모티콘) 우리 아빠 귀엽지? ㅋㅋㅋ]
‘으음. 뭔가 숨기는 거 같긴 한데.’
딸인 나리에게조차 말을 아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윤 교도관의 대답으로 미루어보아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여긴 태주였다.
[근데 넌 이제 뭐해? 난 해장 라면 끓이고 있는데 ㅋㅋㅋ 콩나물이랑 청양고추 넣어서.]
【그래? 그럼 면발 퍼지기 전에 얼른 먹어. 난 좀 더 잘 테니까.】
재소자의 정보를 얻지 못한 태주가 언제 걸려올지 모를 조 중장과의 통화에 대비할 겸 나리와의 대화를 적당히 마무리 지었다.
[원래 퍼진 거 좋아해 ㅋㅋㅋ 그리고 답장 안 해도 되니까 얼른 자. 난 속부터 달래고 잘 테니까.]
【그래. 그럼 맛있게 먹어.】
지이잉! 지이잉!
나리에게 답장을 보내기 무섭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음. 음. 여보세요?”
잠시 목을 가다듬은 태주가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신태주 학생 휴대폰 맞나요?”]
기사에서 본 얼굴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힘 있고 중후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네.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류정웅 학생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 아이를 맡아주실 의향이 있으시다고.”]
“네. 근데 전 정작 들은 얘기가 거의 없어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순 없었습니다. 아버님에 대해서도 조금 전에 알게 됐고요.”
대화의 주도권과 결정권을 확실히 가져가고 싶었던 태주가 정웅의 입장을 고려하는 선에서 자신이 느낀 불만을 솔직하게 어필했다.
[“하하, 안 그래도 쉬는 날 불쑥 연락을 한 점에 대해 사과를 할 참이었는데, 이거 여러모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과의 뜻을 전한 조 중장이 태주의 불쾌함을 유발하게 된 이유를 하나씩 설명했다.
[“다만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동기인 류정웅 학생의 입을 빌려 과외를 제안했던 건 어디까지나 좀 더 거부감이 없는 루트를 통해 태주 학생의 수락을 이끌어 내고 싶었던 제 개인적인 바람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쁜 마음에 예의가 아닌 걸 알면서도 이렇게 태주 학생의 승낙 사실을 듣자마자 연락을 취하게 된 거고요.”]
‘내가 들은 거랑 좀 다르네.’
조 중장의 직접적인 해명에 거짓은 없어 보였지만, 정웅으로부터 이미 지위를 이용해 과외 선생을 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지 않게 주선자를 내세운 것이란 내막을 들어 알고 있는 태주였다.
“아, 네. 근데 제가 궁금한 건 사실 학부모님의 사회적 배경이 아닌 학생에 대한 정보와 과외의 세부적인 조건이라.”
물론 태주 역시 좋은 인맥을 얻기 위해 과외를 수락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대화에 임하고 있었지만.
[“아 참, 그러고 보니 정작 중요한 얘길 빼먹고 있었군요. 제 아들 녀석의 이름은 조현웅입니다. 이제 막 고3이 되었는데, 저희 다섯 식구 중 유일하게 각성자가 된 녀석이죠.”]
“아아, 조현웅이요. 고3이면 한창 정신이 없겠네요.”
정웅을 통해 과외 학생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 역시 사전에 파악해 두고 있던 태주가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조 중장의 소개에 적당히 장단을 맞췄다.
[“정신이 없긴요. 늦둥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매사에 끈기가 없고, 공부에도 영 소질이 없었는데, 오히려 각성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고 아주 살판이 났습니다.”]
태주의 말에 실소를 터뜨린 조 중장이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자녀의 부족한 면모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숨김없이 털어놨다.
‘어떤 스타일인지 대충 알겠네.’
자녀의 능력과 잠재력을 부풀리는 여느 부모들과 달리 조 중장의 솔직한 고백은 학생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 네. 그럼 명문대 진학을 노릴 정도면 초기 각성 등급도 최소한 B 이상이겠네요.”
현웅이 A급 궁수라는 것을 알고 있는 태주가 모른 척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물론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자랑을 하는 것도 민망하지만,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협회에서 측정한 결과는 A가 나왔습니다. 하하.”]
나름 객관적인 편에 속한 조 중장마저 자식의 축복과도 같은 각성 등급 앞에선 좀처럼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아, A요. 그럼 본인의 말대로 충분히 명문대에 지원할 수 있겠네요.”
자신의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높은 각성 등급이긴 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합격이나 한국대 등의 단정적인 표현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태주였다.
[“네. 하지만 워낙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녀석이라……. 그래서 태주 학생처럼 제 아들 녀석이 존경할 수 있는 롤 모델 같은 선생님을 찾고 있던 겁니다. 입시 학원이야 이미 1학년 때부터 다니고 있지만, 어떻게 된 게 갈수록 강사님 말씀도 잘 안 듣고 실력도 항상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서요.”]
“아, 네.”
‘한마디로 등급 빼곤 실력부터 멘탈까지 다 폐급이란 소리네.’
과외 학생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진단한 태주가 앞으로의 수업 양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그렇고, 전화도 좋지만, 조만간 얼굴이라도 한번 봬야 되지 않겠습니까?”]
통화만으로는 소통에 한계가 있다고 여긴 조 중장이 태주에게 적극적인 만남을 제안했다.
“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럼 언제쯤 뵐까요?”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어떻습니까? 제 아들 녀석이 아주 기대를 하고 있어서.”]
“네? 오늘 당장이요?”
예상대로 급작스러운 만남을 제안받은 태주가 촉박한 일정에 난색을 표하며 되물었다.
[“무리한 부탁인 건 알지만, 류정웅 학생에게 듣기론 내일부터 본격적인 시험 주간이라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해서요.”]
“네. 그래서 오늘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휴일이긴 하지만, 내일이 바로 전공 시험이라 연습할 시간도 필요하고요.”
상대에 대한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 판단한 태주가 합당한 이유를 들어 조 중장의 무리한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언제가 좋겠습니까?”]
지위의 특성상 자신의 의견부터 관철시키려는 성향이 있던 조 중장이 처음으로 태주의 의사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주부터 과외를 시작하는 게 아니면, 빨라도 금요일 이후에나 약속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금요일이요. 그럼 토요일에 뵙는 건 어떻습니까? 시간은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1시나 7시 무렵으로요.”]
“으음. 네. 좋습니다. 그럼 토요일 오후 1시에 뵙는 걸로 하죠.”
자신이 원하는 여유로운 날짜와 시간대로 일정을 조정한 태주가 구체적인 약속 장소를 물었다.
“그럼 어디로 찾아뵐까요?”
[“하하. 찾아오시다니요. 댁을 알려주시면 제가 그쪽으로 차를 보내겠습니다.”]
“아니요. 굳이 그러실 필요까진. 그냥 택시를 타고 가는 게 더 편합니다.”
[“하하. 택시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도요?”]
“네?”
막연하게 자택이나 식당 정도를 예상했던 태주가 조 중장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두 귀를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