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93화 (193/242)

193. 과팅 (1)

“세준이가 과팅 하나를 잡았거든.”

“아아, 그 우리 학교 조소과 애들이랑 과팅하는 거? 근데 그게 오늘이었나?”

선약의 정체를 알게 된 건우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허벅지 옆을 내리쳤다.

“안 그래도 임세준이 물어봤었거든. 태주도 있는데 같이 갈 생각 있냐고.”

“근데 왜 거절했어?”

하재룡이 승낙을 한 이후 추가된 멤버는 A급 법사 류정웅과 A급 무투가 윤철용이었다.

“네가 있으면 어차피 들러리 각이잖아.”

건우가 허벅지 옆을 내리친 손을 자신의 얼굴 앞에 아래위로 흔들어댔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실 태주의 인수다 팔로워 수와 윷튜브 구독자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데에는 배우 같은 얼굴과 모델 같은 체형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철용이랑 캐릭터가 겹치기도 하고.”

두 사람의 주 종목이 복싱과 태권도라 핵심적으로 사용하는 신체 또한 팔과 다리로 결을 달리했지만, 무투가라는 공통점만으로도 어필하는 포인트가 비슷할 것이라 판단한 건우였다.

“어? 근데 그렇게 따지면 태주랑 임세준도 같은 궁수 계열이잖아.”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대엽이 철용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니까 임세준이 생각이 없는 거지. 아마 궁수에 대해 궁금하면 태주한테만 물어볼걸? 임세준은 그냥 옆에서 ‘태주 말이 맞아’ 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역할이고.”

주선자인 세준의 말대로 인연을 만드는 자리가 아닌 가벼운 술자리 정도의 의미였지만, 과팅의 성사 여부가 태주의 참석 여부에 의해 좌우된 만큼 조소과 여학생들의 관심과 질문이 누구에게 집중될 것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근데 시험 기간인데도 과팅 같은 걸 해? 걔네들도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일 거 아니야.”

동아리 멤버들 간의 간단한 뒤풀이조차 마다했던 유리라 술이 빠질 리 없는 과팅 참석이 쉽게 이해될 리 없었다.

물론 타 학과 여학생들과의 만남이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는 것도 한몫했지만.

“얘는 원래 술 마셔도 안 취하잖아. 그깟 숙취 따위에 흔들릴 실력도 아니고.”

유리의 미묘한 감정을 알 리 없는 서윤이 술롱도르 수상자인 태주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그럼 오늘 뒤풀이는 엎어진 거야?”

S급의 자존심상 클리어의 비결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수 없었던 창민에겐 술자리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려 했던 계획이 무산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이 못 간다는데 어쩌겠어. 유리 말처럼 아직 시험 기간이기도 하고.”

피크닉의 선배들마저 실패한 가형 던전 최초 통과자인 태주를 축하하려 했다는 명분으로 양주를 오픈하려던 건우가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입맛만 다셨다.

*

*

*

약속 시간인 저녁 7시가 다 되었을 무렵.

헌터학과 소속의 과팅 멤버들이 교도소 컨셉으로 운영 중인 제일(Jail) 포차 입구에 모여 재룡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주야, 가형 던전에서 너만 살아남았다며. 난 나형에서도 막판에 죽었는데.”

같은 무투가 클래스인 건우로부터 소식을 들은 철용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가형으로 볼 걸 그랬나? 잘해 봤자 A-라 뭔가 흥이 안 나네.”

반면, 나형 던전을 클리어한 정웅은 혼잣말처럼 잘난 척을 하며 의미 없는 가정을 해보았다.

물론 가형과 달리, 나형과 다형은 매년 여러 명의 통과자를 배출하고 있었지만.

“아, 미안. 다들 일찍 왔네? 아직 7시도 안 됐는데.”

5명의 멤버들 중 마지막으로 도착한 재룡이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야, 너 의상 뭐야. 혼자만 너무 신경 쓰고 온 거 아니야?”

세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고 온 재룡에게 견제하듯이 물었다.

“어? 그냥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나온 건데?”

한껏 멋을 부리고 온 재룡이 평소와 다름이 없는 척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와아, 이 자식 이거 괜찮다고 빼더니 아주 작정을 하고 나왔네? 어떻게 된 게 죄다 명품이야.”

태주의 추천으로 합류하던 재룡의 소극적인 모습이 떠오른 세준이 재킷의 목 부분을 뒤집어 상표를 확인한 뒤 헛웃음을 지었다.

“재룡이는 원래 부자잖아. 삼강 하베스트.”

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삼강의 영향력과 규모를 알고 있는 철용이 재룡의 한정판 운동화를 부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패션도 중요하지만, 명품을 입었다고 해서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태주의 절친 자리를 놓고 재룡과 경쟁 중인 세준이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세준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철용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물었다.

“매너.”

“뭐? 매너?”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철용이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꾸미지 않은, 몸에 밴 듯한 아주 자연스러운 매너.”

“근데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 당연한 걸 아는 애가 초면에 나시를 입고 오냐?”

세준이 얇은 바람막이 점퍼 안에 딱 붙는 민소매만 입고 온 철용의 과감한 옷차림을 지적하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열이 좀 많아서 그래. 술 마시면 덥기도 하고.”

“여자애들 앞에서 몸 자랑하려고 그런 건 아니고?”

“에이, 몸 자랑은 무슨.”

세준의 합리적인 의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철용이 배꼽까지 내려가 있던 지퍼를 슬그머니 올리며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몸은 너희들도 다 좋잖아. 물론 무투가인 나만큼 웨이트를 할 일은 없겠지만.”

클래스의 특성상 체력 단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철용이 근육질 몸매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아아, 이 노출증 자식 이거 은근히 자랑질이네?”

식스 팩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체형의 세준이 철용의 탄탄한 복근을 손등으로 툭툭 두드리며 심통을 부렸다.

“뭐, 그래 봤자 여심을 사로잡을 순 없겠지만.”

“내가? 왜?”

“여자들은 너처럼 과한 근육을 안 좋아하거든.”

“야, 누가 그래. 네 전 여친이 그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발끈한 철용이 대흉근이 발달한 넓은 가슴으로 세준을 밀어내며 따지듯이 물었다.

“전 여친 자체가 없는데 무슨 소리야.”

한 발짝 밀려났던 세준이 철용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치며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뭐야, 그럼 여친도 없었던 게 지금 내 앞에서 여심을 논한 거야? 전국 체전 금메달리스트에 팬클럽까지 있었던 나를?”

주선자인 세준의 모태 솔로 사실을 알게 된 철용이 가슴까지 올렸던 지퍼를 다시 배꼽까지 내리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세준과 말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본인의 자랑은 빼먹지 않았지만.

“야, 야, 그만들 해. 사람들 쳐다본다.”

보다 못한 태주가 이마를 맞대고 있던 두 사람을 양옆으로 떼어내는 순간, 태주의 손바닥이 가슴에 닿은 철용과 세준의 몸이 뒤로 힘없이 밀려났다.

“……?!”

철용이 가슴으로 자신을 밀어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느낀 세준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

무투가로서의 자존심이 상할 만큼 손쉽게 밀려난 철용 역시 말문이 막힌 채 태주를 쳐다봤다.

“왜.”

물론 특별히 힘을 준 적이 없는 태주는 자신을 동시에 돌아본 두 사람의 놀란 표정에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어? 아, 아니야.”

찰나였지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표정 관리마저 실패한 철용이 배꼽까지 내렸던 지퍼를 알아서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태주야, 너 손으로 민 거 맞아? 난 무슨 버스에 밀리는 줄 알았어.”

지나치게 솔직한 편인 세준이 자신을 밀어낸 오른쪽 손바닥을 확인하기 위해 태주의 손목을 잡아챘다.

“야, 근데 넌 왜 똑같이 밀려 놓고 아무 말도 안 하냐?”

태주의 평범한 손바닥을 신기하다는 듯이 만지작거리던 세준이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든 철용의 위축된 모습을 수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뭐야, 너 혹시 자존심 상해서 그래? 몸 자랑은 혼자 다했는데 버틸 틈도 없이 허무하게 밀려서?”

“야, 밀리긴 누가 밀렸다고 그래. 그냥 태주가 말리니까 떨어져 준 거지.”

정곡을 찔린 철용이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반박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아, 그러셔. 근데 표정은 꼭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부정당한 느낌인데?”

제대로 꼬투리를 잡은 세준이 철용의 코앞에서 검지를 돌리며 장난스럽게 도발했다.

“아까부터 뭔 개소리야.”

세준의 검지를 옆으로 치워낸 철용이 또 한 번 이마를 맞댄 채 으르렁거렸다.

“야.”

물론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은 태주의 말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후우. 갑자기 또 더워지네.”

고분고분하게 물러난 철용이 화를 삭이듯 깊게 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지퍼를 내렸다.

“야, 너 그 지퍼 하도 올렸다 내렸다 해서 고장 나는 거 아니야?”

“야.”

“알았어. 안 할게.”

마지막까지 철용에게 깐족거리던 세준이 태주의 경고에 흠칫하며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근데 얘네들은 왜 나타날 생각을 안 하지?”

세준과 철용이 눈앞에서 싸우든 말든 딱히 관심이 없던 정웅이 안경의 브리지 부분을 검지로 밀어 올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게. 약속 시간도 벌써 5분이나 지났는데.”

재룡이 손목에 찬 하이엔드 명품 시계를 들여다보며 정웅의 말에 동조했다.

“야, 걔네들한테 따로 연락 온 거 없어?”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 정웅이 주선자인 세준에게 닦달하듯이 물었다.

“연락? 잠깐만. 으음. 아직 없는데?”

세준이 황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새롭게 도착한 것이라곤 광고 메시지 몇 개가 전부였다.

“야, 이거 멀리서 보고 그냥 돌아간 거 아니야?”

정웅과 마찬가지로 바람을 맞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철용이 5명씩 몰려다니는 여학생들을 찾아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에이, 태주 보러 오는 애들인데 설마.”

상대측 주선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세준이 태주의 얼굴을 힐끗거리며 철용의 우려를 일축했다.

“설마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재룡이 입구에서부터 지하 1층으로 이어진 가파른 계단을 돌아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에서? 우리가 여기 15분 전에 모였는데? 심지어 난 더 일찍 왔어.”

매너를 강조하며 부지런을 떤 세준의 입장에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경우의 수였다.

“네가 들어가서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봤어?”

역으로 꼬투리를 잡은 철용이 당황한 세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듯 추궁했다.

“확인은 안 했지. 근데 왔으면 왔다고 하지 않았을까?”

“걔네가 어디서 보자고 그랬는데.”

“어디서? 그냥 제일 포차에서 보자고 그러던데?”

“근데 너 왜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 난 그냥 일찍 와서 너희들 기다리고 있었지.”

“그럼 다 모였는데 왜 내려가자고 안 했어.”

“왜 안 했냐고? 너랑 싸우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왜!”

철용의 집요한 추궁에 발끈한 세준이 목소리를 높이며 3차전을 준비하던 바로 그때.

“야, 임세준, 너 안 들어오고 거기서 뭐 해.”

지하 계단에서 올라온 작업복 차림의 여학생이 목장갑을 낀 손으로 세준에게 내려오라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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