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54화 (154/242)

154. 초대 (6)

[썬더 드래곤의 힘줄로 만든 격노의 활시위]

설명 판에 적힌 장황한 명칭 속 선물의 정체는 활시위였다.

‘활시위?’

물론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유리 거치대에 널어놓듯 걸려 있다 보니 설명을 보기 전까진 쉽게 눈치챌 수 없었지만.

“이건 활시위네. 물론 섬유 따위로 만든 평범한 활시위는 아니지만.”

“네. 이름만 봐도 평범하진 않네요.”

장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희귀 등급 이하의 아티팩트와 달리 제작 주체를 알 수 없는 전설 등급 이상의 아티팩트는 신체 접촉을 통해서만 그 고유의 명칭과 등급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태주의 경우 거기에 더해 아티팩트의 세부 스펙까지 엿볼 수 있는 독보적인 어드밴티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혹시 활도 없이 활시위만 준비해서 실망한 건 아니겠지?”

“아니요. 힘줄의 촉감이 궁금해서 빨리 당겨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온전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소재의 독특함이 태주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하하하하! 정성이 전해진 것 같아 다행이군.”

태주의 반응을 본 하 대표가 흡족한 얼굴로 호탕하게 웃었다.

“근데 이런 좋은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강화석 세트 정도를 예상했던 태주에겐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보답이었다.

“하나를 주면 두 개를 얻는 것이 흔히 말하는 사업가의 수완이지만, 사업가가 아닌 아비의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기 있는 컬렉션까지 건드리게 되었단다. 재룡아.”

“네.”

흔치 않은 결정이었음을 밝힌 하 대표가 신호를 보내자 자신이 나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재룡이 활시위를 보호하고 있던 유리 덮개를 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이제부터 네 것이니 편하게 당겨보거라.”

“감사합니다.”

하 대표에 대한 인사를 잊지 않은 태주가 손바닥으로 걸치듯이 든 활시위를 쇼케이스 밖으로 조심스럽게 꺼냈다.

‘다행히 끈적이진 않네.’

굵기는 여느 활시위들처럼 가늘었지만, 엄지로 문지를 때 느껴지는 감촉이 기존에 사용했던 스트링과는 확연히 달랐다.

‘탄력도 남다르고.’

색상과 무게 등을 꼼꼼히 체크하던 태주가 이번엔 치실을 감듯 양쪽 검지를 이용해 활줄을 고정한 뒤 팽팽하게 당겨보았다.

‘근데 활시위만 있어서 그런가? 아무리 만져도 스펙이 안 뜨네.’

태주의 짐작대로 방어구나 장신구의 경우 직접 착용을 해야, 무기의 경우 공격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아티팩트의 스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있는 활에 걸어볼까?’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선물 받은 활시위를 오른쪽 어깨에 걸친 태주가 주저 없이 활을 꺼내 들었다.

“이야, 아들놈 말마따나 명함 하나 숨기는 건 일도 아니었구나.”

인벤토리 능력의 위엄을 제대로 목격한 하 대표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참고로 그건 던전 안에서 입수한 전설 등급의 활시위란다.”

하 대표가 설명을 덧붙이긴 했지만, 던전에서 채굴되는 품목들을 모아둔 전시실의 특성상 해당 장소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설 등급 이상의 아티팩트임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어떤 버프가 있으려나.’

활줄을 교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늘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발생하곤 했다.

▶ 페어링 실패.

‘으음?’

태주의 눈앞에 물리적인 결합보다 중요한 호환성 실패를 알리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아티팩트의 등급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희귀 등급의 활대에 전설 등급의 활시위를 걸어서 그렇구나.’

무기용 고급 강화석 4개를 사용해 이종도 교수의 활을 희귀 등급으로 강화시키긴 했지만, 희귀 등급에서 전설 등급으로 가기 위한 초월 강화의 경우 강화석이 아닌 전설 등급의 아티팩트를 희생해야 했기 때문에 아티팩트의 여유가 없는 태주로선 섣불리 강화를 시도할 수 없었다.

▶ 버프의 효과를 제한적으로나마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등급의 통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데?’

회귀 전, 각기 다른 장점을 지닌 부품들을 소소하게 조합해 본 적은 있었지만, 등급이 다른 구성요소 간의 결합이 버프를 제한한다는 것까지는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엔 지금처럼 버프가 많이 부착된 아티팩트가 아닌 일반 등급의 장비로만 커스터마이징 흉내를 내는 정도였지만.

▶ 단, 버프의 효과를 100%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전설] 등급의 아티팩트인 [썬더 드래곤의 뿔로 만든 전격의 활]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사용하려면 짝을 맞춰야 되는구나.’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선물을 얻게 된 태주가 활대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근데 활대는 처음부터 없었습니까?”

“아니. 사실 이건 동맹의 의미로 나누어 가진 거란다.”

“동맹이요?”

활시위만 남겨진 이유를 알게 된 태주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스트링을 원래대로 교체하며 되물었다.

“그래. 태동이 5대 길드로 발돋움하기 전, 그러니까 오 대표가 막 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동맹의 의미로 나누어 가진 아주 의미 있는 물건이지.”

‘활대는 오 대표님한테 있었구나.’

5차 각성에 성공한 S급 법사인 태동의 오승훈 대표와 태주는 적지 않은 접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태주에게 매달 100만 원이란 용돈을 입금해주는 후원자이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피크닉의 대선배이자 새터 때 받은 신성력이 깃든 행운의 목걸이를 협찬한 장본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공개적인 영입 의사와는 별개로 등급 측정 당시 느낀 태주의 무한한 잠재력에 묘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나마 아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네. 궁수 클래스가 아니니 활대에 집착할 이유도 없을 거고.’

가끔 형식적인 안부 문자를 주고받았던 터라 개인적인 만남을 유도한다 한들 크게 부자연스러울 것은 없었다.

‘조만간 있을 여름 인턴십 논의 때 접근해야겠다. 간 김에 명함의 의미도 좀 묻고.’

5대 길드 수장들과의 만남을 앞둔 태주는 오 대표에게 활대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정진천의 명함을 남기고 간 이 대표의 저의에 대해서도 알아볼 작정이었다.

“그런 의미 있는 물건을 왜 저에게…….”

수집 과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는 소유자 찾기 단계를 뛰어넘게 된 태주가 원상 복귀시킨 활을 도로 집어넣으며 말끝을 흐렸다.

“이젠 의미가 없어졌거든.”

태주의 물음에 답하는 하 대표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설마 태동과의 동맹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 획득한 물품을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활에 이어 선물 받은 활시위까지 안전하게 보관한 태주가 하 대표의 심경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신중하게 물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하면, 오 대표와의 대화도 덩달아 수월하게 진행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하 대표에게 받은 활시위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 대표, 아니, 오승훈 그 녀석이 원래 질투가 많거든.”

태주의 우려대로 하 대표의 입에선 오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부터 나왔다.

“오승훈은 태동과 삼강이 아티팩트를 나눠 가질 만큼 남다른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다른 길드의 수장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니 별반 다를 게 없는 거 같거든. 그래도 난 내 나름대로 태동을 각별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거 의외의 변수가 있었네.’

뜻밖의 걸림돌을 만난 태주는 하 대표의 고백을 통해 태동이 더 이상 삼강의 고객이 아님을 유추할 수 있었다.

“작은 오해가 서운함으로 발전된 케이스네요.”

“내가 이 대표를 대하는 모습만 봐도 알겠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들어갈 때가 많아. 물론 비굴하고 비참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때론 간, 쓸개 다 빼놓고 빌어먹는 게 자존심만 앞세워서 굶어 죽는 것보다 훨씬 숭고한 법이거든. 회사의 이익과 삼강의 식구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는 게 맞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도 맞고, 태동이라는 큰 거래처 한 곳을 잃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실리주의자인 하 대표는 자신의 경영 철학과 오 대표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과거의 처신에 대해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자, 기다리느라 배고팠을 텐데 얼른 식당으로 내려가자꾸나.”

시장은 반찬이지만, 좋지 못한 기억은 오히려 입맛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태주의 추가 질문이 이어지기 전, 노련한 화제 전환 타이밍으로 대화의 흐름을 끊어버린 하 대표였다.

“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양쪽 말을 모두 들어봐야겠지만, 그나마 희망적인 건 오 대표와 태주의 관계가 하 대표와 달리 우호적이라는 점이었다.

*

*

*

잠시 후.

“잘 먹었습니다 대표님.”

식사를 마친 태주가 구내식당을 나서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물론 하 대표의 성공 스토리를 듣느라 좀처럼 식사에 집중할 순 없었지만.

“다음번엔 더 좋은 곳에서 대접할 테니 언제든지 놀러 오너라.”

“네. 재룡이랑 꼭 다시 뵈러 오겠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 아 참, 그리고 염 기사에게 미리 일러뒀으니 목적지만 얘기하면, 집이든 약속 장소든 여기 올 때처럼 편안하게 데려다줄 거다.”

“아니요.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염 기사와의 불편했던 동행을 떠올린 태주가 하 대표의 순수한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던 바로 그때.

“그래. 사양하지 말고 타고 가 태주야.”

태주에게 진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된 재룡이 하 대표의 작은 배려를 옆에서 거들었다.

“어? 넌 같이 안 가?”

‘타고 가자’와 ‘타고 가’는 동행의 관점에서 뉘앙스를 달리 했다.

“미안. 난 아버지랑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살짝 고민이 되긴 했지만, 한편으론 혼자 타고 가는 편이 염 기사의 시선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대신 내가 주차장까지 데려다줄게.”

손님인 태주를 혼자 보내는 게 내심 미안했던 재룡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럼 부탁할게.”

재룡의 호의를 받아들인 태주가 오늘 만남의 실질적인 호스트인 하 대표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했다.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초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과분한 선물까지 주시고…….”

“하하하하! 앞으로도 이 녀석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니 너무 부담 갖진 말게.”

하 대표가 곁에 있던 재룡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아. 그게 바로 부담을 주는 거잖아요. 태주야, 더 이상한 부탁 듣기 전에 빨리 가자.”

깊은 한숨을 내쉰 재룡이 하 대표의 손을 떼어낸 뒤 엘리베이터 쪽으로 앞장섰다.

“아, 그런가? 하하하하! 아무튼 바쁠 텐데 얼른 가보게.”

아들의 예리한 지적을 웃음으로 얼버무린 하 대표가 태주의 팔뚝을 가볍게 토닥이며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

*

*

잠시 후.

“…….”

뒷좌석에 앉아 집으로 향하던 태주가 대화의 기회를 엿보며 어색한 침묵을 이어가던 바로 그때.

“저어…….”

룸미러를 힐끗거리던 염 기사가 먼저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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