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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50화 (150/242)

150. 초대 (2)

‘뭐지?’

예민한 감지 능력을 지닌 태주가 기사의 몸에서 발산되는 마력의 미세한 증폭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마력을 억제하고 있던 건가?’

심각한 부상 혹은 낮은 각성 수준으로 인해 은퇴한 것이라 짐작했던 태주의 예상과 달리 기사의 마력은 칼집 안에 든 칼처럼 그 실체를 숨기고 있었다.

‘이러니까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

물론 두 사람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눈치채지 못한 재룡의 입에선 여전히 술자리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안 그래도 허창민이 어제 동아리 면접에 간다고 그랬거든.”

B급 전사인 재룡 역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클래스별 수업이 이루어지는 직업 탐구 시간에 피크닉의 존재를 접한 상태였다.

“근데 거긴 분위기가 어때? 왠지 규율도 많고, 신고식도 엄청 빡셀 거 같은데.”

건우가 그랬듯 피크닉의 폐쇄적인 이미지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꾸 부정적인 쪽으로 유도했다.

“분위기? 별거 없어. 진짜로.”

가디언 하우스에서의 첫날밤을 떠올린 태주가 구체적인 묘사를 생략한 채 자신의 색다른 경험을 참석자들만의 비밀로 남겨두었다.

“그래? 선배들이 따로 함구령을 내린 건 아니고?”

실망스러운 답변이 돌아오자 태주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재룡이었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건데?”

재룡이 다가온 거리만큼 상체를 내뺀 태주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기괴한 의식이라도 치르고 왔을까 봐 그래?”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사실 피크닉의 정체가 궁금해서 검색을 좀 해봤거든.”

부담스럽지 않은 자세로 돌아간 재룡이 특유의 순박한 웃음과 함께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검색? 다 카더라 아니야?”

동아리의 성격이나 사회적인 영향력 정도야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지만, 엄 교수가 일러준 수준의 정보, 예를 들어, 퍼스트 에이드의 존재나 가디언 하우스의 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슬로건의 내용 등을 알아내기 위해선 좀 더 집요한 웹서핑 과정이 필요했다.

“나도 그 생각을 아주 안 한 건 아닌데, 국대라이프에 보면, 피크닉의 동방이 숲속에 있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면서 다른 학우들의 눈을 피해 음성적인 일탈을 하는 건 아니냐는 게시글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걸 믿어? 거기 원래 익명 커뮤니티잖아.”

태주가 음모론에 가까운 추측을 헛웃음으로 일축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음성적인 일탈은 전혀 없었으니까 정 그렇게 못 믿겠으면 허창민한테 한번 물어봐. 어떻게 대답하는지.”

“아, 아니야. 믿어.”

더 이상의 추궁을 단념한 재룡이 양쪽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어색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럼 넌 동아리는 피크닉 하나만 들 거야? 솔직히 거긴 지원이 아닌 차출 방식이라 딱히 좋아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

세준과 마찬가지로 태주의 심기에 민감한 재룡이라 본의 아니게 질문을 한쪽이 먼저 말을 돌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뭐, 그렇긴 한데, 어차피 다른 곳이랑 병행하다간 한쪽이 소홀해질 것 같아서.”

태주의 말대로 두 개 이상의 동아리에 가입할 경우 축제 준비나 MT 등 공통적인 일정이 서로 겹쳐 선택의 기로에 놓일 가능성이 높았다.

“으음. 듣고 보니 또 그러네.”

태주의 선택과 집중에 재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피곤할 텐데 얼른 눈 좀 붙여. 내가 도착하면 깨워줄게.”

대화가 중단된 이유를 모르는 재룡이 태주의 안락한 휴식을 위해 시트를 눕혀줬다.

물론 전방을 주시해야 할 기사의 시선은 여전히 뒷좌석에 앉은 태주에게 분산되고 있었지만.

*

*

*

잠시 후.

“감사합니다.”

삼강 하베스트 본사의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태주가 손수 문을 열어준 기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별말씀을요.”

언제 그랬냐는 듯 재룡이 보는 앞에선 다시 정중한 태도로 돌변하는 운전기사였다.

“태주야, 이쪽이야.”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들어선 덕분에 길을 안내하는 발걸음에서부터 당당함이 느껴지는 재룡이었다.

“아, 그리고 직원 식당에 가기 전에 회장실부터 들를 건데 괜찮아? 사실 아빠가 나타나면 직원들이 불편해서 밥을 못 먹거든. 한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 같은데.”

태주가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아버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재룡이 남은 점심시간을 체크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래. 그러지 뭐.”

보답의 내용이 궁금했을 뿐, 밥이 목적은 아니었던 태주가 재룡의 조심스러운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아, 진짜? 그럼 아버지한테 도착했다고 연락할게.”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재룡이 기쁜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바로 그때.

‘……?!’

왠지 모를 찝찝함에 뒤를 돌아본 태주가 차 옆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운전기사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목격했다.

‘왜 아직도 저러고 있지?’

물론 안전한 배웅을 위한 매뉴얼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의도라면 오히려 신분이 확실한 태주를 응시하는 것보다 주위를 살피는 편이 더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문이 닫힙니다.]

‘일단 기사에 대한 것부터 물어봐야겠다.’

재룡과 둘만 남겨지길 기다렸던 태주가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기사님이 끝까지 안 가고 서 계시네?”

“나랑 12년을 붙어 다녀서 습관이 되셨나 봐.”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재룡이 익숙한 광경인 양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습관?”

“어. 아까 얘기하다 만 그 생명의 위협과도 관련된 기사님의 습관.”

남다른 등하교를 했던 재룡이 나란히 선 태주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태주야, 헌터들이 착각하는 게 뭔지 알아?”

자신의 얘기를 하는 줄 알았던 재룡이 질문과 동떨어진 화두를 던지며 태주를 의아하게 했다.

“글쎄.”

대화의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던 태주가 오답 퍼레이드로 시간을 빼앗지 않게 불필요한 추측을 자제했다.

“자신들만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착각.”

“……?!”

질문에 대한 정답엔 각성자들이 가진 우월감과 선민의식에 대한 재룡의 개인적인 불만이 묻어나고 있었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아버지 곁에서 조금씩 경영 수업을 받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때려잡을 때만 목숨을 거는 게 아니구나. 남들은 취업 걱정이 없어서,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 부럽다고 하지만, 아니. 나는 아버지가 일군 것들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 뛰어들어야 돼. 물론 지금은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의 기술을 배우는 중이고.”

“참견하는 건 좋아해도 이해하는 건 싫어하는 게 인간의 습성이니까.”

처음 마주하는 재룡의 진지한 고백에 선뜻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한편으론 말 못 할 고민을 공유할 만큼 자신을 믿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에 최대한 공감하는 태도로 맞장구를 쳐주는 태주였다.

“맞아. 그리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것도 인간의 고약한 습성 중 하나지.”

안락하고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은 재룡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난 생일이 두 개야.”

“두 개? 그럼 양력, 음력?”

정확한 생일을 모른 채 보육원에서 발견된 날을 생일처럼 사용하고 있는 태주의 입장에선 기사가 운전하는 차로 등교하는 것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하나는 양력이 맞는데, 나머지 하나는 고1 때부터 챙기기 시작한 거야.”

“생일을 고1 때부터 챙겼다고?”

“어. 생일이 원래 태어난 걸 기념하는 거잖아. 근데 아버지의 기준에선 각성자 판정을 받은 날이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셨나 봐.”

“하긴, 고1 때 B급 각성이면, 그럴 만도 하시지.”

재룡에 비해 2년이나 늦은, 더구나 E급이라는 초라한 각성 등급을 받은 자신마저 안도감과 함께 벅찬 기쁨을 느꼈던 터라 조금은 유난스럽지만, 두 번째 생일로 지정할 만큼 각별하게 여겼다는 하 대표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할 순 있었다.

띵!

[문이 열립니다.]

“어, 너랑 대화를 해서 그런가? 평소엔 되게 지루했는데, 벌써 올라왔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재룡이 긴 복도를 따라 걸으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내가 태어난 날보다 각성자 판정을 받은 날이 더 기뻤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다 사업 때문에 그러신 거더라고. 너도 알지? 기업인에겐 자식이 둘인데, 하나는 후계자라고 불리는 생물학적 자식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인생을 바쳐 키운 회사 그 자체인 거.”

아버지의 사업적인 선택을 존경하고 이해할 만큼 성숙해진 재룡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섭섭한 측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는 각성자가 아니야. 물론 이미 광산업을 하고 계셨던 만큼 사업 수완은 좋으셨지만, 던전 채굴 사업에 뛰어들어서 인맥을 형성하기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계셨던 거지.”

지금이야 헌터 기반 사업의 확대로 다양한 스타트업 대표들이 각성 여부와 무관하게 업계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지만, 초창기에만 해도 1세대 혹은 1.5세대 헌터들이 장악한 이권 사업에 비각성자인 자본가가 발을 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아, 그래서 네가 각성자 판정을 받았을 때 더 기뻐하셨던 거구나. 경험상 후계자가 각성자면 사업적인 인맥을 형성하는 데도 훨씬 수월하니까.”

재룡의 부연 설명을 들은 태주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근데 꼭 그 이유만으로 기뻐하셨던 건 아니야.”

걸음을 멈춘 재룡이 갑자기 태주를 등진 채 상의를 들어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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