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초대 (1)
[왜? 별로야?]
1이 사라진 이후에도 별다른 답장이 없자 태주의 눈치를 보는 편인 재룡이 그새를 못 참고 선택지의 호불호를 체크했다.
【아니야. 좋아. 근데 갑자기 회사는 왜?】
물론 짐작이 가는 부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밥이 목적은 아닌 것 같고……. 어? 혹시 뭘 주려고 그러나?’
레이드의 기초 시간에 무려 두 번씩이나 재룡의 참여를 도와준 전력도 있었지만, 재룡 역시 은혜를 꼭 갚겠다는 말을 태주에게 남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 네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계속 안 된다고 하긴 했는데, 사실 우리 아버지가 널 좀 보고 싶어하시거든 ^^;;]
뜻밖의 초대를 계획한 호스트는 태주의 예상과 달리 재룡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날 아셔?】
[당연하지. 업계 최고의 유망주인데 ㅋ 근데 나랑 아는 건 처음 아셨대. 동기라는 건 알았지만, 꼴등으로 들어간 네가 어떻게 수석이랑 친구냐고 ㅋㅋㅋ 우리 아버지가 원래 자식에게도 객관적인 분이시거든. 완전 어이없지?]
【에이, 그냥 말로만 그러시는 거겠지.】
부모님의 얼굴도 모른 채 보육원에서 자란 터라 가족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말수가 적어지는 태주였다.
[아니야. 진짜 인증을 하라고 하셔서 네가 도와줬던 얘기도 다 하고 공대원 모임 때 찍었던 사진들까지 싹 다 보여드렸어 ㅋㅋㅋ]
【그랬더니 뭐라고 하셔?】
[그랬더니 엄청 놀라시면서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회사로 한번 초대하라고 하셨어.]
【근데 구내식당이야? ㅋ】
[ㅋㅋㅋㅋ 아니, 그건 그냥 해본 말이고, 실제론 네가 좋아하는 메뉴로 예약해두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지금 물어보는 거고.]
【좋아하는 메뉴? 글쎄. 갑자기 잡힌 약속이라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미안. 사실 이게 어젯밤에 나온 얘기라... ^^;; 아, 정 그러면 다음에 너 편한 시간에 봐도 돼.]
대접을 받는 쪽이 부담스러운 약속은 안 잡느니만 못하다고 여긴 재룡이 스케줄 조정 의사를 물었다.
【아니야. 오히려 오늘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럼 어디서 몇 시에 볼까?】
[아, 진짜? ㅋ 그럼 수업 끝나면 얘기해 안 그래도 너랑 같이 타고 오라고 오랜만에 기사님까지 붙여주셨거든 ㅋ]
회귀 전에 비하면 몰라보게 형편이 나아진 태주였지만, 임세준이나 하재룡처럼 출발선 자체가 다른 동기들의 인생이 슬쩍슬쩍 엿보일 때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헛웃음이 나오는 태주였다.
물론 지금은 소위, 금수저라 불리는 동기들이 출발선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능력을 지닌 태주와의 친분을 쌓기 위해 비위를 맞추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럼 뭐 먹을래?]
【구내식당.】
[구내식당? 진짜? 배려하느라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또 삼강의 밥을 언제 먹어 보겠어.】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메이저 채굴 회사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에 이왕이면 삼강 하베스트의 본사에서 만남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박! 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시겠는데?^^]
【그래. 그럼 수업 끝나기 한 10분 전에 미리 연락할게.】
재룡과의 점심 약속을 잡은 태주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선배와 동기들을 뒤로한 채 위장 엘리베이터 위로 올라섰다.
덜컹! 위이잉!
*
*
*
잠시 후.
콘텐츠 제작의 이해를 마친 태주가 수강생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며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지난 시간, 142만 명이었던 구독자가 무려 308만 명까지 늘어난 것도 있었지만, 두 번째 영상에서 구독자 100만을 넘긴 기념으로 받은 금색 윷놀이 말판과 10만을 넘긴 기념으로 받은 은색 윷놀이 말판을 과녁에 고정시킨 뒤 말이 이동할 수 있는 칸 전부에 정확히 화살을 꽂아 넣는 퍼포먼스로 무려 1000만 뷰 이상의 조회 수를 올렸기 때문이다.
특히, 영상 속 모습을 따라 하는 일명, 신태주 챌린지까지 생겨나게 됐는데, 이로 인해 트렌드에 민감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섭외 전화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는 태주였다.
“태주야.”
재룡이 신방과 건물을 나서는 태주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기다리느라 지루했지?”
태주가 자신을 데리러 온 재룡의 팔뚝을 가볍게 터치하며 물었다.
“아니. 이거 보느라 괜찮았어.”
벤치에서 일어난 재룡이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태주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어? 이거 내 영상이네?”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본 태주가 민망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어. 서혜린이 나온 거는 한 3번 정도 봤는데, 이번 영상은 거의 10번 이상 본 것 같아.”
묘한 중독성과 쾌감이 있다는 대중들의 반응이 재룡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좋댓구알도 다 했어. 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 설정. 아, 그리고 아까 댓글 쓸 때 보니까 유명한 사람들도 엄청 많던데? 심지어 윷튜브 본사에서도 달았어. 구독자 1000만이 넘으면 황금 윷을 주는데 그것도 뚫을 거냐고. 봐봐. 아예 사람들이 위로 올리자고 해서 베스트에 박제까지 됐어.”
영상을 멈춘 재룡이 검지로 화면을 밀어 올려 댓글 창을 확인 시켜 주었다.
“야, 배고프다. 그만 가자.”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던 태주가 재룡의 휴대폰을 옆으로 치워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차는 저기 주차장 쪽에 세워놨어.”
“잘했어.”
“태주야, 근데 너 사람들이 엄청 쳐다보는데? 혹시 윷튜브 때문에 더 많이 알아보는 건가?”
태주를 힐끗거리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목격한 재룡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쳐다보긴 무슨. 그냥 다 제 갈 길 가는 거지.”
“아니야. 뭔가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면서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니까?”
“야, 네가 그러니까 괜히 앞만 보고 가게 되잖아. 걸음걸이도 어색해진 거 같고.”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모두의 주목을 받는 기분이 어떤지 물었던 근석의 궁금증과 궤를 같이하는 질문이라 태주의 입장에선 인기를 실감하는 척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영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에에, 너무 겸손한 거 아니야? 다른 애들 같았으면, 벌써 연반인병에 걸려서 정신 못 차리고 있었을 텐데.”
“연반인? 설마 그 다른 애들에 너도 포함되는 거 아니야?”
“나? 글쎄. 뭐,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에 내가 딱 네 상황이었으면, 아버지가 진짜 말도 못 하게 좋아하셨을걸?”
재룡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씁쓸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삼강의 후계자니까 너한테 거는 기대감이 크시겠지. 그래도 잘 해낼 거야.”
태주가 재룡의 축 처진 어깨를 오른손으로 가볍게 움켜쥐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고마워 태주야. 역시 너밖에 없어.”
세준이 풍림 길드의 원활한 인재 영입을 위해 회원 수가 가장 많은 학과 동아리인 축알못을 택했듯 물려받을 가업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 재룡 역시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후계자로서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저건가?’
건물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 쪽으로 들어서자 지금 막 세차를 마치고 나온 것 같은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주야, 저 차야.”
재룡이 검지로 차가 있는 곳을 가리키자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가 정중히 인사를 건넨 뒤 뒷문을 열어주었다.
“야, 너 평소에도 저렇게 등교했냐?”
태주도 물론 기사가 손수 문을 열어주는 버스와 지하철을 애용하곤 했지만,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장면을 실제로 목격하고 나니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까진 그랬는데,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내가 싫다고 그랬어.”
“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사실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생명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등하교를 시켜주셨던 거거든.”
“생명의 위협?”
단순한 과시용이라고 넘겨짚었던 태주가 재룡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사연에 두 귀를 의심했다.
“어. 일단 가면서 얘기할까?”
먼저 차에 올라탄 재룡이 태주에게 상석을 양보하며 말했다.
“그래. 아, 감사합니다.”
문을 열어준 기사에게 먼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태주가 조수석 뒷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별말씀을요. 신태주 씨 맞으시죠? 저희 도련님과 친구분이시라니 세상 참 좁은 것 같습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절한 운전기사가 문을 닫기 전 태주에게 미소를 건네며 말했다.
“아, 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초중고 12년 동안 픽업해주신 기사님이셔. 원래 직업은 헌터셨고. 완전 특이하지?”
옆에 앉아 있던 재룡이 태주의 앞으로 상체를 들이밀며 운전기사의 범상치 않은 이력에 대해 소개했다.
“어? 진짜?”
운전기사라는 직업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명색이 헌터가 던전이 아닌 차 속에서, 그것도 12년 넘게 근속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E급 각성자였나? 아님 레이드 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었나?’
실례를 넘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재룡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어휴, 다 지나간 일입니다. 그럼 오늘도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은 기사가 재룡의 말을 자르듯 얼른 문을 닫았다.
턱!
“의외네. 저 정도 연배시면, 그래도 업계가 호황일 때 현직으로 계셨을 텐데.”
태주가 운전석으로 뛰어가는 기사를 보며 에둘러 물었다.
덜컥!
“그럼 본사로 출발하겠습니다.”
차에 올라탄 기사가 안전벨트를 매며 룸미러에 비친 태주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뭐지?’
기사와 눈이 마주친 태주가 찰나였지만, 헌터 출신이라는 것을 실감케 하는 날 선 눈빛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날 경계하는 건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전까지 보여준 사람 좋은 웃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싸늘한 시선이었다.
물론 운전석 뒤에 앉은 재룡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태주야, 내가 좀 전에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과잉보호의 이유를 밝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던 재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생명의 위협.”
“아, 맞다. 생명의 위협. 그러니까 내가 예전에 유치원 때…….”
태주의 도움으로 기억의 책갈피를 찾아낸 재룡이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리치던 바로 그때.
‘이번엔 또 뭐지?’
또다시 느껴지는 기사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에 태주가 재룡의 말을 끊었다.
“저기, 재룡아.”
“어, 왜?”
“미안한데, 도착할 때까지만 눈 좀 감고 있어도 돼? 사실 내가 새벽까지 달리느라 집에도 못 들어갔거든.”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기사의 수상쩍은 행동이 마음에 걸렸던 태주가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피곤한 척을 했다.
“새벽까지? 뭐야, 나만 빼놓고 술을 마신……. 어! 설마 피크닉 면접 끝나고 술 마셨어?”
“……?!”
순간, 재룡의 해맑은 추측을 들은 기사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