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11화 (111/242)

111. 빌런 vs 헌터 (1)

▶ [알림] 휴식을 거부하였습니다.

▶ [알림] 단, 휴식을 거부한 경우 다음 웨이포인트에 도달하기 전까지만 거부했던 휴식을 수락할 수 있습니다.

‘으음. 휴식을 거부한다고 해서 휴식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네.’

휴식에 앞서 피렐레와 게르딘에 대한 설득부터 마무리 지으려는 태주가 시스템의 추가 안내를 숙지하고 있던 바로 그때.

“지금 어딜 보는 거야?”

테테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는 태주의 눈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야. 잠깐 생각할게 좀 있어서.”

휴식을 보류한 태주가 적당히 둘러댄 뒤 대화를 이어갔다.

“일단 난 성기사들의 훈련장으로 돌아가 봐야 되니까 넌 준비가 되는 대로 늦지 않게 따라 와.”

“그래. 대신 너도 늦지 않게 설득해야 될 거야.”

서로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 두 사람이 각자의 길로 유유히 나아갔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어? 저기 오는군.”

보르가넨이 훈련장의 입구로 들어서는 태주의 모습을 제일 먼저 발견했다.

‘뭐야, 아직도 테스트 중인가?’

장비를 빌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지 피렐레는 여전히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게르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췄네.’

옷차림까지 달라진 피렐레의 손엔 법사인 보르가넨의 것과는 그 모양새가 조금 다른 사제용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제가 좀 일찍 왔나 보네요.”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태주가 보르가넨에게 말했다.

“그나마 자네 말대로 주교를 내세운 덕분에 원하는 장비를 빌릴 수 있었다고 하더군.”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귀로는 보르가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시선은 설득의 대상인 피렐레와 게르딘을 향하고 있었다.

“근데 왜 혼자 왔나?”

입구 쪽을 힐끗 쳐다본 보르가넨이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될 동료와 따로 만나기로 했다던 태주의 외로운 등장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얘기가 잘 안 풀렸나?”

“아니요. 그 친구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후발대로 올 겁니다.”

“어? 그럼 그 친구도 혹시 비테론 출신인가?”

“아니요. 출신은 모르지만, 현재는 베로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 설득할 때 애를 먹었겠군.”

“상대방의 인생이 걸린 일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허허, 그럼 이제 출발만 하면 되겠군.”

“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

“비테론에서 탈출한 생존자가 보르가넨 씨와 피렐레 사제님만 있는 건 아니죠?”

“다른 성채로 피신한 인원들까진 알 수 없네만, 일단 베로닌으로 흘러든 인원만 해도 족히 200명은 넘네.”

“200명 이상이요? 제가 듣기론 비테론에 가까워질수록 늑대 인간들의 출몰이 잦아진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생존자들이 베로닌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거죠?”

“그건 지름길 아닌 돌아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네.”

보르가넨의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럼 보르가넨 씨의 생각엔 우리가 어떤 길로 갔으면 좋겠어요?”

“허허, 그래도 가기 전에 몸은 풀어야 하지 않겠나?”

“역시 그렇겠죠?”

원하는 대답을 얻은 태주가 보르가넨의 선택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네가 내게 그러지 않았나. 이참에 누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진정한 포식자인지 한번 알아보겠다고.”

“그럼요. 이렇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히 기억하시는데.”

“허허, 이번엔 자네 덕분에 편하게 가겠군.”

이동 경로를 논의하던 두 사람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던 바로 그때.

탁! 탁! 탁! 탁!

성기사 후보생 3명이 다른 후보생 한 명을 가운데로 몰아넣은 뒤 목검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 “크윽! 항복!”

3명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던 후보생이 얼마 못 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기권을 선언했다.

“자, 지금 느낀 그 무력감을 똑똑히 기억해 두어라.”

패배한 후보생을 예리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게르딘이 정확한 평가를 위한 주의 사항을 일러준 뒤 피렐레를 돌아봤다.

“자, 그럼 시작해주시죠.”

“네.”

게르딘의 신호가 떨어지자 지팡이를 움켜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후우.”

심호흡으로 긴장감을 다스리려 했지만, 지켜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미리 말했듯이 자신 있는 버프로 두어 개만 걸어주시면 됩니다.”

“네.”

잠시 어깨를 풀어 본 피렐레가 비장한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후보생을 노려봤다.

“침착하자…….”

자기 암시를 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피렐레가 집중 공격을 당한 후보생을 향해 지팡이를 뻗으며 버프 주문을 외치기 시작했다.

“피어리스! 홀리 스트렝스! 아이언 월!”

- “……?!”

순간, 피렐레의 버프를 받은 후보생의 지친 눈이 번쩍 뜨였다.

“몸이 달라진 게 느껴지나?”

게르딘이 버프를 받은 후보생에게 물었다.

- “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누구랑 붙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 후보생이 체험 후기를 남기듯 자신이 느낀 점을 게르딘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그건 피어리스의 영향이다.”

- “그리고 따로 힘을 주진 않았지만, 온몸에 있는 근육이 동시에 팽창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검의 무게도 훨씬 가볍게 느껴졌고요.”

“홀리 스트렝스의 효과도 확실히 들어갔군. 그리고 또.”

- “어……. 죄송하지만, 그 외엔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버프를 받은 후보생이 고심 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버프 역시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들어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버프를 받은 후보생에게 다가간 게르딘이 공격을 담당했던 후보생들 중 한 명의 목검을 빼앗았다.

“특히 아이언 월처럼 방어력과 관련된 버프의 경우 공격을 받기 전까진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 바로 이렇게.”

설명을 마친 게르딘이 버프를 받은 후보생의 한쪽 어깨를 목검으로 내리쳤다

- “어!”

게르딘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후보생이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 “으악!”

물론 후보생의 우려와 달리 부러진 쪽은 뼈가 아닌 목검의 검신이었지만.

파악!

어깨를 내리침과 동시에 두 동강이 난 목검의 윗부분이 허공에서 회전하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 “……?!”

정식 성기사가 아닌 탓에 버프를 받을 일이 없었던 후보생의 입장에선 보고도, 아니, 직접 당하고도 믿을 수 없는 신기한 체험이었다.

“자, 이제 뭐가 달라졌는지 확실히 알겠지?”

부러진 목검을 바닥에 버린 게르딘이 놀란 후보생의 어깨에 남은 잔해들을 무심하게 털어주며 물었다.

- “네. 버프를 받기 전엔 맞은 부위가 너무 아파서 계속 문지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목검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맞았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냥 목검이 어깨에 닿았다는 느낌 정도? 아무튼 신체 보호라는 측면에 있어선 플레이트 아머보다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버프라는 신세계를 경험한 후보생이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간증을 하듯이 말했다.

“좋아. 그럼 달라진 게 느껴졌다니 버프를 받기 전과 마찬가지로 3대1 대련을 재개하겠다.”

- “네.”

버프를 받은 후보생이 게르딘의 지시에 자신 있게 응했다.

바로 그때.

- “이야!”

탁! 탁! 탁! 탁!

다수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무릎 꿇었던 후보생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기세로 자신을 에워싼 세 명의 후보생들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 “야! 너 왜 이렇게 세!”

어찌나 힘이 강해졌는지 목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버프를 받지 않은 후보생들의 손이 강하게 울렸다.

- “아! 내 목검!”

- “야! 살살해!”

심지어 목검을 손에서 떨어뜨리거나 싸우는 액션만 취할 뿐 제대로 접근조차 못하는 후보생들도 보였다.

“그만.”

버프의 위력을 제대로 확인한 게르딘이 대련을 중단시킨 뒤 피렐레를 돌아봤다.

“잘 봤습니다. 피렐레 사제님.”

“후우, 감사합니다.”

그제야 긴장감이 풀린 피렐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껴뒀던 미소를 드러냈다.

“자, 그럼 세 사람에 대한 검증을 모두 마쳤으니 자네도 어서 출발 준비를 하게.”

테스트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주교가 현장을 정리하는 멘트와 함께 게르딘을 재촉했다.

“예, 주교님. 지금 바로 떠날 채비를 마치겠습니다.”

주교를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인 게르딘이 최정예 성기사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숙소로 달려갔다.

“그럼 부디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도하겠습니다.”

태주에게 슬그머니 다가간 주교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기도 약속과 함께 의미심장한 눈인사를 건넸다.

“네. 믿음대로 되실 겁니다.”

주교와 눈이 마주친 태주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허허, 그럼 전 이만 예배당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태주의 말에 또 다른 믿음을 얻은 주교가 공유할 수 없는 기대감을 안고 조용히 훈련장을 나섰다.

‘으음. 일단 여기서 한번 끊고 갈까?’

본격적인 출발을 앞둔 태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테테에겐 피렐레와 게르딘을 설득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두 번째 서브 과제를 보는 순간, 팀워크 지수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서로를 인정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점수에서 딱 5점만 떨어져도 바로 불안 단계인데…….’

태주의 우려대로 피렐레와 게르딘의 거부 반응이 생각보다 심할 경우, 그래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불안 단계를 넘어 위기나 적대 단계까지 단숨에 내려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F를 받을 순 없지.’

팀워크 지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고민의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은 태주가 잠시 미뤄둔 휴식의 시점을 설득 이전으로 앞당겼다.

▶ 조별 과제를 중단하고 현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 (Y/N)

‘예.’

Y로 시선을 옮기자 과제의 중단을 알리는 강렬한 빛이 태주의 시야를 가렸다.

▶ 현실로 돌아갑니다.

*

*

*

다음 날.

태주가 레이드의 기초 수업이 진행되는 트레이닝 돔 지하에 도착했다.

‘역시 안 왔네.’

강의 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지만, 함 교수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물론 함 교수의 성향을 일찌감치 파악한 일부 학생들도 덩달아 배짱을 부리며 수업에 늦기 시작했지만.

“태주야, 안녕.”

지난 시간, 태주가 구제해준 9명의 공대원들 중 한 명이었던 A급 전사 엄득구가 반갑게 손인사를 건넸다.

“어. 일찍 왔네?”

“집에 있어 봤자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득구가 태주의 형식적인 질문에 머쓱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 삼겹살집에서 공대원 모임 있는 거 알지? 어제 재룡이가 단톡방에 다 올렸는데.”

“어. 봤어. 근데 재룡이는 아직 안 왔나 봐?”

태주가 주위에 있는 동기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 재룡인 오늘 아버지 사업 때문에 좀 늦는다고 했어.”

“아버지 사업?”

재룡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태주가 득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