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05화 (105/242)

105. 조 편성 (7)

“안녕하세요. 전 신태주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보르가넨 씨와는 잠시 후에 비테론으로 떠날 예정이죠.”

“네?! 비테론이요?!”

두 사람의 행선지에 놀란 피렐레가 예배당 전체를 울릴 만큼 격양된 목소리로 태주에게 되물었다.

“네. 벨지오스와 그 하수인들을 모두 제거한 뒤 비테론 성채를 탈환할 겁니다.”

“오, 주여.”

탈출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피렐레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짧은 기도를 드렸다.

“죄송하지만, 형제님들께선 왜 그런 위험한 행동을 자처하는 겁니까?”

피렐레가 근심 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만류하듯이 물었다.

“사제가 되어 신을 섬겨야 하는 이가 있듯 사지로 가서 운명을 시험해야 하는 이도 있죠.”

태주가 피렐레와 상반된 표정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분명 주의 뜻이 아닐 겁니다.”

“아아, 신의 뜻……. 보르가넨 씨와 똑같은 대답을 하시네요.”

조원 후보에게 동일한 목표가 부여되었다는 시스템의 설명이 무색하게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피렐레의 입장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네?”

보르가넨을 힐끗 쳐다본 피렐레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보르가넨씨도 처음엔 벨지오스에 대한 두려움을 자연의 섭리와 같은 거창한 단어로 포장했었거든요. 사제님이 조금 전에 신의 뜻이 아니라는 거룩한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보르가넨에게 그랬듯 피렐레의 합류 의사를 가늠해보고 싶었던 태주가 두려움 속에 감춰진 복수의 의지를 끄집어내기 위해 다소 민감한 부분들을 파고들었다.

“…….”

태주의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보르가넨이 피렐레를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순교를 각오하고 택한 사제의 길에 두려움 따윈 없습니다.”

태주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던 피렐레가 단호한 어조로 반박했다.

“아, 그래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이때다 싶었던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죽음마저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순교의 자세가 동료들에게 큰 힘이 될 겁니다.”

“죄송하지만, 순교의 의미는 믿음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는 것이지 신앙과 무관한 싸움에 휘말려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닙니다.”

피렐레가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태주의 첫 번째 합류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닌 만큼 거절에 대한 대응책 또한 충분히 마련해두고 있었지만.

“신앙과 무관한 싸움이라……. 그럼 주교나 사제들, 다시 말해, 비테론 교회의 구성원들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성채를 빠져나온 겁니까?”

“하아……. 아닙니다.”

벨지오스의 하수인들에게 희생된 사제들의 참혹한 모습이 떠오른 피렐레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사제님이 날마다 축복을 빌어주던 형제님과 자매님들은요? 그분들은 모두 무사히 성채를 빠져나왔습니까?”

“…….”

태주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피렐레가 처음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네. 당연히 아니겠죠.”

대화의 주도권을 잡은 태주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을 피렐레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사제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한 순간부터, 그로 인해 교회가 흑마법사의 지배하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신성 모독은 시작된 겁니다. 사제님이 살아남았다고 해서 신앙과 무관한 싸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렇지만…….”

“그런 의미에서 신성 모독의 과오를 범한 벨지오스를 처단하고, 교회를 되찾는 건 사제의 소명이자 순교를 각오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피렐레의 말문을 막았던 태주가 이번엔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한마디 대꾸마저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사제님의 손으로 직접 비테론 교회의 신성함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선택은 오롯이 피렐레의 몫이었지만, 생지옥과도 같았던 그날의 악몽을 또 다시 마주해야 된다는 생각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보게 피렐레. 나도 처음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누구보다 두려웠네. 하지만 이 친구를 통해 두려움과 마주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지.”

피렐레의 갈등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본 보르가넨이 태주를 거들어 합류를 종용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한 곳으로 정하지 못한 피렐레가 진정성이 느껴지는 보르가넨의 설득에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아니. 주교가 자네에겐 비밀로 했겠지만, 사실 약 2년 전, 멜라임과 함께 교회를 방문했던 진짜 이유는 자네가 보인 뛰어난 마나 운용 능력 때문이었네.”

“……?!”

보르가넨의 생각지도 못한 고백에 피렐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린 자네를 사제가 아닌 법사로 육성해야 한다고 설득했었지. 물론 서품까지 받은 상황에서 신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는 주교의 말에 결국 발걸음을 돌렸지만……. 그래서 자네와는 인사만 나눈 것이었네.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야.”

‘괜히 조원 후보로 지목된 게 아니었네.’

보르가넨과 피렐레의 첫 만남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있던 태주가 알림이 뜬 이유를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되었다.

“더구나 기도밖에 할 줄 모른다는 자네의 말과 달리 교회 내에서만 전수되는 특별한 마법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네. 성스러운 빛을 원천으로 한 신성한 힘. 특히 자네와 같이 마법에 재능이 있는 사제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수련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

노출이 금기시되는 비밀까진 아니었지만, 도움이 될 수 없음을 핑계로 태주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던 피렐레의 입장에선 보르가넨의 폭로 아닌 폭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담을 줘서 미안하네만, 피렐레, 우리에겐 자네의 힘이 필요하네.”

태주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설득하던 보르가넨이 피렐레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하아…….”

선택의 기로에 놓인 피렐레가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보다 더 고민스러운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에 떠나신다고…….”

고심을 거듭하던 피렐레가 태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늦어도 내일 새벽까진 선발대와 합류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선발대도 있나요?”

“네. 저와 뜻을 함께하기로 한 첫 번째 동료입니다. 전사로서의 자부심과 실력을 두루 갖춘 듬직한 녀석이죠.”

여전히 오크라는 사실은 숨긴 채 클래스 정도만 밝힌 태주였다.

“근데 두 번째 동료인 나도 아직 만나보진 못했네.”

베로닌에서 합류한 보르가넨이 세 번째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피렐레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럼 그 첫 번째 동료도 비테론 사람입니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피렐레가 태주에게 물었다.

“아니요. 아직 동료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아마 비테론 출신은 두 분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형제님을 비롯해 벨지오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료분들은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비테론으로 향하는 거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럴 만한 이유요?”

“예배당이라는 동일한 장소에 모여 똑같은 모습으로 기도를 해도 응답받고 싶어 하는 내용은 모두 제각각이니까요.”

“……?!”

사제라는 직업을 고려한 태주의 맞춤형 예시에 피렐레의 질문이 그쳤다.

“함께 기도하러 가시죠.”

피렐레에게 악수를 청한 태주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기도가 응답받을 거라 확신하십니까?”

태주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피렐레가 결단을 앞둔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간절함의 차이겠죠.”

간절함을 논하기엔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벨지오스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피렐레에겐 오히려 그러한 자신감이 선택을 앞당기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사제인 저보다 더 믿음이 좋으시네요.”

“법사보다 더 법사 같은 사제도 있는데요 뭐.”

“후우, 이 만남이 부디 그분의 뜻이길…….”

허공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한 피렐레가 혼잣말을 하며 태주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바로 그때.

▶ 새로운 멤버가 조원으로 합류하였습니다.

도적과 더불어 합류의 어려움이 예상됐던 사제 클래스의 물음표가 피렐레의 이름으로 채워졌다.

【조원 리스트】 (4/6)

1. 전사 (티마란)

2. 기사 (???)

3. 법사 (보르가넨)

4. 궁수 (신태주)

5. 사제 (피렐레)

6. 도적 (???)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이렇게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형제님께 큰 힘이 되진 못할 겁니다.”

“아니요. 뜻을 함께 해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인사를 나눈 지 고작 몇 분 만에 이루어진 피렐레의 빠른 수락에 태주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교회에 속한 몸인 만큼 주교님께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맞잡은 손을 거둔 피렐레가 태주에게 시간적인 양해를 구했다.

“게다가 빈손으로 쫓기듯이 도망친 터라 장비를 빌릴 시간도 좀 필요하고…….”

피렐레가 법사로서의 모습을 갖춘 보르가넨의 지팡이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근데 형제님께선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계십니까?”

무기는커녕 제대로 된 방어구 하나 없이 장신구만 몇 개 착용하고 있는 태주의 모습이 피렐레의 눈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전 궁수입니다.”

“뭐?! 법사가 아니라 궁수라고?!”

태주를 법사로 착각하고 있던 보르가넨이 뜻밖의 대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럼 활은 숙소에 두고 오신 겁니까?”

피렐레가 태주의 허전한 차림새를 보며 물었다.

“아니요.”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가 인벤토리 안에 있던 활을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처음으로 꺼내들었다.

“어!”

고위 법사나 쓸 법한 인벤토리 능력을, 심지어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손쉽게 사용하는 태주의 모습에 보르가넨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아니, 이러고도 법사가 아니라는 건가?”

티마란이 그랬듯 보르가넨 역시 한 가지 클래스로 특정할 수 없는 태주의 남다른 능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놀랍네요.”

사제로서의 경건함을 잃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있던 피렐레마저 활을 쥔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벌써부터 놀라시면 좀 곤란한데.”

궁수임을 밝힌 태주가 활을 집어넣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기사만 찾으면 되는 건가?”

태주로부터 기사와 사제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보르가넨이 피렐레의 합류를 기뻐하며 예배당을 나서려 했다.

“어디 가세요?”

태주가 보르가넨의 의욕적인 발걸음을 불러 세웠다.

“어디긴. 피렐레가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기사를 찾으러 가야지.”

“아니요. 기사는 여기서 찾을 겁니다. 성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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