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83화 (83/242)

083. 조별 과제 (5)

사실 크기를 떠나 거미 몬스터를 잡는 것 자체는 태주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은밀히 적을 제거하는 스나이퍼처럼 현재의 위치에 숨어 화살만 쏘면 그만일 뿐.

때문에 태주는 이 기회를 꼬꼬로의 폭렙 계기로 삼아 2단계로의 진화를 완성시킬 계획이었다.

“꼬꼬로, 내가 좀 이따 저 왕거미를 빈사 상태로 만들 건데, 이번 작전의 핵심은 네가 막타를 치는 거니까 그냥 아까처럼 가서 박치기만 한 번 하고 오면 돼. 어때. 참 쉽지?”

지레 겁을 먹을까 최대한 별게 아닌 것처럼 심플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초대형 거미 몬스터의 무시무시한 첫인상을 목격한 꼬꼬로의 몸은 이미 거미줄에 감긴 먹잇감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야, 꼬꼬로, 너 그 반지인지 뭔지는 안 찾을 거야? 왜 대답이 없어?”

꼬꼬로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시각적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앞으로 있을 더 강한 몬스터들과의 대결에서도 딜탱펫으로서의 역할을 200%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냉정하지만, 빠져나갈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태주였다.

“…….”

뻣뻣하게 굳었던 꼬꼬로가 이젠 짧은 다리를 벌벌 떨며 태주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알았어. 그럼 네 마음대로 해. 근데.”

바닥에 엎드려 있던 태주가 구멍 밖으로 뛰어내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동행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아, 네가 말한 그 반지는 퇴사 선물로 줄게. 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싸늘한 표정으로 주종 관계의 해소를 암시한 태주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꼬꼬로를 뒤로한 채 거미 소굴로 몸을 던졌다.

꼬꼬로의 용기와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테스트.

태주는 거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위기에 처한 뒤, 그 광경을 목격한 꼬꼬로의 선택을 통해 펫으로서의 자격을 시험할 작정이었다.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경사진 벽을 타고 내려가던 태주가 양손으로 거미줄을 헤치며 신속하고 은밀하게 이동했다.

‘거참 더럽게 끈적거리네.’

지하철 노선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거미집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마치 도로 구획을 한 듯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일단 초대형 거미 몬스터가 뽑아낸 소나무 굵기만 한 거미줄이 동굴 내부 전체를 가로지르며 뼈대를 형성하고 있었고, 다음으로 지름이 두루마리 휴지만 한 거미줄이 가지를 치듯 뼈대가 된 거미줄로부터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빨랫줄이나 실처럼 가는 거미줄들이 빈 공간을 메꾸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거미집들이 태주의 정수리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지면을 이동하는 동안에는 끊어진 거미줄 정도만 걷어내면 그만이었지만.

▶ 상태 이상(마비)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지면에 다다른 태주가 도발 스킬을 사용할 만한 대상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보이는 거라곤 거미랑 거미 알집밖에 없네.’

거미 몬스터에게 사냥된 먹잇감들이 거미줄에 칭칭 감겨 있긴 했지만, 최소한 숨은 붙어 있어야 어그로를 끌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막 거미줄에 걸린 게 아닌, 언제 잡혔는지도 알 수 없는 고치 상태의 피식자들에게 쿨타임만 5분인 스킬을 무작위로 시험해볼 순 없었다.

‘거미줄 몇 개 건드렸다고 바로바로 오네. 예민한 것들.’

거미줄이 끊어지면서 생긴 약한 진동을 감지한 거미 몬스터들이 태주가 있는 곳으로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 만난 물고기라는 말이 있듯 거미줄 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오직 거미뿐, 태주처럼 접촉하는 족족

거미줄이 들러붙는 자는 힘들게 친 거미집을 망가뜨리는 불청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뭐, 애초에 곱게 돌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파이어 애로우를 선택한 태주가 초대형 거미 몬스터를 향해 해충 박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쉬이익!

5초간의 차징으로 화염 효과가 발동된 불화살이 수십 수백 겹의 거미줄을 불사르며 무서운 속도로 솟구쳤다.

푹!

거미줄에 가려진 시야 때문에 정교한 조준은 어려웠지만, 목표물의 몸집이 워낙 크다 보니 발사 방향만 잘 잡아도 명중은 시킬 수 있었다.

화르르.

커다란 배의 아랫부분에 화살을 맞은 초대형 거미 몬스터가 파이어 애로우의 뜨거운 맛에 놀란 나머지 크레인처럼 생긴 8개의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거대한 구멍 속으로 몸을 피했다.

‘자, 일단 보스는 쫓았으니까. 꼬꼬로의 막타를 방해하지 못하게 잔챙이들부터 처리해야겠다.’

왕거미 몬스터의 반응을 지켜보는 사이, 침입자를 잡기 위해 모인 수많은 거미 몬스터들이 태주를 향해 일제히 거미줄을 발사했다.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축포라도 터진 것처럼 정신없이 날아드는 거미줄의 향연.

한 가닥만 얼굴에 닿아도 저항 스킬이 발동되는 상황에서 태주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은 무한 점멸을 활용한 치고 빠지기 전략이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거미인지 개미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달려들고, 또 달려들었다.

그나마 일일 과제에 대한 보상으로 차근차근 늘려 둔 마나와 체력 덕분에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크게 밀리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단순 노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복적인 공격 패턴에 살짝 지루함을 느낀 태주였다.

‘시승식이나 한번 해볼까?’

경사진 동굴 벽 중에서도 거미의 밀집도가 가장 적은 위치를 물색하고 있던 태주가 사거리 확보용이 아닌 무임승차용으로 점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태주의 타깃은 공격에 관심이 없고,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그러면서도 사람 한 명이 올라타도 움직이는 데 큰 영향이 없는 사이즈의 거미 몬스터였다.

‘찾았다.’

적합한 매물을 발견한 태주가 경사면을 딛고 점프한 뒤,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던 거미 몬스터의 머리가슴 위로 허락도 없이 올라탔다.

“자, 출발!”

거미의 경우 머리와 가슴이 합쳐진 머리가슴과 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태주는 거미의 이러한 구조상 특징을 이용해 머리가슴과 배가 만나는 홀쭉한 부분을 다리로 꽉 조이면서 앉은 뒤, 뚱뚱한 배를 등받이 삼아 하나의 살아 있는 이동 수단으로 타고 다닐 작정이었다.

‘오우, 승차감이 장난 아닌데?’

태주의 펜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20대 여배우인 서혜린이 태워줬던 페라리 스파이더보다 더 역동적이고도 창조적인 드라이빙 퍼포먼스가 가능한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이런 게 진짜 자율주행이지.’

갑작스러운 말뚝박기 공격에 당황한 거미 몬스터가 무려 8개의 바퀴, 아니, 다리로 태주가 갈 수 없던 거미줄 위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오, 이거 완전 롤러코스터잖아?’

화가 난 거미 몬스터가 태주를 떨어뜨리기 위해 뒤집어진 상태로도 거미줄을 올라봤지만, 이미 두 다리로 거미 몬스터의 몸을 단단히 조이고 있는 상태라 여간해선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꼬꼬로…….”

구멍 안에 숨어 로데오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꼬꼬로가 태주를 태운 채 적진을 누비고 있는 거미 몬스터의 눈부신 활약에 묘한 질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 비켜!”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본의 아니게 역주행을 하게 된 태주가 길막을 하고 있던 녀석들을 향해 신들린 무빙샷을 날렸다.

푹! 푹! 푹! 푹!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상황에 따라 적절히 교체되는 아이스 애로우와 파이어 애로우가 태주의 손끝을 떠날 때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거미 몬스터들이 동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내가 비키라고 했지?”

바닥에 널린 거미 몬스터들의 사체를 한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던 태주가 이번엔 곳곳에 달려 있는 알집들을 다음 타깃으로 삼았다.

‘본디 후사를 제거해야 뒤탈이 없는 법.’

재방문 의사는 없었지만, 거미 몬스터의 개체수를 통해 번식 속도를 가늠해 본 결과, 후환을 없애기 위해선 새싹 밟기를 하는 편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쉬이익! 푹! 화르르.

추수가 끝난 논밭에서 볼 수 있는 곤포 사일리지, 일명 마시멜로처럼 생긴 거미 몬스터의 거대한 알집들이 파이어 애로우의 화끈한 화력에 속절없이 타들어갔다.

‘이제 반자율 주행모드로 변경해볼까?’

활시위를 당긴 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태주가 좌회전을 하고 싶을 땐 불꽃이 맺힌 화살촉을 거미 몬스터의 오른쪽 뺨에, 우회전을 하고 싶을 땐 왼쪽 뺨 가까이에 갖다 대는 방식으로 주행 방향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 안으로 피신해 있던 초대형 거미 몬스터가 멸종 선고와도 같은 태주의 무자비한 양학 모드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보스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던 태주가 꼬꼬로의 거동을 살피기 위해 함께 몸을 숨기고 있던 구멍을 슬쩍 곁눈질했다.

‘여전히 개입할 생각은 없어 보이네.’

태주의 시점에선 얼굴만 빼곰 내밀고 있는 꼬꼬로의 모습이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딜탱펫으로서 태주가 타고 있는 거미 몬스터의 역할에 자극을 받아 뛰어들 타이밍만 엿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바쁘게 돌아가야 할 머릿속은 자신의 몸에 난 털 색깔만큼이나 새하얗게 변해 있었지만.

‘꼬꼬로가 막타를 칠 수 있게 슬슬 양념이나 쳐볼까?’

동족들의 죽음을 목격한 거미 몬스터들이 자신에게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태주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마지막 스킬, 간파를 사용하기 위해 초대형 거미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 스킬 『간파』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간파 스킬의 경우 대상의 급소, 약점, 손상 부위 등과 같은 공략 포인트를 시전자의 머릿속에 데이터처럼 전송해 주는데, 발동 조건에 반경 20미터 안이라는 제한이 있어 스킬을 사용하는 입장에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간파할 대상을 3초간 바라보십시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거미 몬스터를 몰고 돌진하던 태주가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보스의 다리 하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바로 그때.

슈우욱!

복수를 꿈꾸고 있던 왕거미가 끝이 뾰족한 앞다리를 작살처럼 내리 찍으며 태주의 머리를 위협했다.

▶ 스킬 『간파』가 발동되었습니다.

‘됐다.’

그 사이, 간파 스킬의 도움으로 보스의 약점이 눈이라는 것과 파이어 애로우로 인한 내상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 등을 파악한 태주가 점멸을 이용해 왕거미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푹!

물론 미처 피하지 못한 태주의 첫차는 왕거미의 뾰족한 앞발에 관통되어 뽑은 지 채 한 시간도 안 돼 폐차 처리 되었지만.

‘이거 찻값도 받아내야겠네.’

체이싱 애로우를 장착한 태주가 초대형 거미 몬스터가 가진 여러 개의 눈들 중 하나를 노리며 활시위를 당기던 바로 그때.

‘어?!’

천장에 매달린 채 내려오던 거미 몬스터 한 마리가 꼬꼬로가 숨어 있는 비밀 구멍을 발견하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가늘고 긴 다리를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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