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82화 (82/242)

082. 조별 과제 (4)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꼬꼬로의 돌발 행동에 어리둥절해진 태주가 하는 수 없이 점멸로 뒤를 쫓았다.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이런 씨.’

꼬꼬로의 광휘 스킬만 쫓아가다 보니 아직 제거하지 못한 거미줄들이 태주의 신경을 또 한 번 거슬리게 했다.

▶ 상태 이상(마비)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반면 바닥으로부터의 높이가 낮은 꼬꼬로는 태주와 달리 거미줄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뭔가 패시브 스킬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것 같긴 한데…….’

사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꼬꼬로의 입장에선 몸소 스킬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긴 하지만, 준비 시간에 비해 결과물이 초라할 경우 태주가 느낄 실망감과 허무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더 이상 모험을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튜토리얼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은 황금 호각으로 꼬꼬로를 불러들이면 그만이었지만.

‘어?!’

동굴의 중심부로 들어서자 수많은 거미 몬스터들이 태주의 등장에 맞춰 살금살금 벽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꼬로! 일단 뒤쪽으로 빠져!”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꼬꼬로의 의사를 존중해 묵묵히 뒤를 쫓고 있던 태주가 위험을 직시하는 순간 리더십을 발휘, 꼬꼬로를 앞질러 선봉장의 포지션을 잡았다.

이번에도 역시 선택은 아이스 애로우.

물론 거미와 거미줄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파이어 애로우나 정확도를 높인 체이싱 애로우도 나쁘진 않았지만, 화살에 맞는 순간 체액을 쏟아내며 떨어지는 녀석들을 피하면서 싸우는 것보단 핀으로 고정시킨 곤충 표본들처럼 동굴 벽에 박아 체액까지 동시에 얼려버리는 것이 더 깔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꼬꼬로의 돌진 스킬을 전력에서 배제한 태주가 수많은 거미 몬스터들의 몸통 하나하나에 아이스 애로우를 꽂아 넣기 시작했다.

푹! 푹! 푹! 푹!

그야말로 원 샷 원 킬.

물론 몬스터의 숫자가 적었다면,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꼬꼬로와의 협력 플레이를 통해 경험치를 올려줬겠지만, 몬스터들의 간격도 좁았을 뿐더러 돌진 스킬을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 또한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태주 홀로 급한 불을 끄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거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네.’

차징이 아닌 속사를 통해 적의 개체수를 급격히 줄여나가긴 했지만, 눈치 없는 몬스터들은 동굴 벽에 난 크고 작은 구멍들을 통해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었다.

‘그냥 꼬꼬로를 회수한 다음에 점멸로 정면 돌파를 시도할까?’

해결책을 강구하는 와중에도 손에선 활시위를 놓지 않았지만, 필사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태주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야. 어차피 메인 과제도 아니니까 일단 후퇴를…… 어?’

한눈팔 틈도 없이 전투에 몰입하던 태주가 꼬꼬로를 회수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던 바로 그때.

‘없다.’

자신이 등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꼬꼬로의 불빛이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야! 꼬꼬로!”

태주의 격양된 목소리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니, 이 자식이 대체 어딜 간 거야?’

책임을 묻는 건 나중 문제라고 여긴 태주가 꼬꼬로를 자신의 앞으로 강제 이동시키기 위해 인벤토리 안에 보관 중이던 황금 호각을 꺼내 들었다.

바로 그때.

“…….”

꼬꼬로가 한쪽 동굴 벽에 난 작은 구멍 안에 숨어 목소리가 아닌 몸에서 나는 불빛으로만 자신의 위치를 조용히 알렸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호각을 입술 앞까지 가져갔던 태주가 황당한 표정으로 꼬꼬로를 쳐다봤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꼬꼬로가 마치 빨리 오라 손짓하듯 오른쪽 앞발로 바닥을 긁으며 태주를 재촉했다.

‘뭐야, 설마 저런 개구멍으로 도망가자는 거야?’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심지어 거미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를 수상한 구멍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꼬꼬로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에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근데 이것들이 진짜!’

잠시 꼬꼬로에게 집중하는 사이 거미 몬스터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있었다.

▶ 상태 이상(마비)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사방에서 뿜어내는 거미줄을 신경질적으로 떼어내던 태주가 결국 얻을 것 하나 없는 무의미한 소모전을 중단한 채 꼬꼬로가 있는 구멍 안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이거 인간적으로 너무 좁은데?’

무릎으로 기어갈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활한 이동을 위해선 허리를 굽혀 몸을 기역자로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바로 그때.

헤드 랜턴의 불빛이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 거미 몬스터들이 태주가 들어간 구멍 안으로 하나둘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것들 은근히 끈질기네.’

점멸로 도망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한 태주가 입구 쪽을 향해 몸을 돌린 뒤 한쪽 무릎을 꿇어 화살을 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었다.

‘그래. 빨리 빨리 들어와라.’

아이스 애로우를 선택한 상태에서 당긴 활시위를 5초간 버티자 서리가 내린 것처럼 생긴 차가운 화살촉 주위로 작은 눈보라 같은 것이 일기 시작했다.

아이스 애로우의 차징 효과인 블리자드.

앞 다투어 밀려드는 거미들의 몸이 뒤엉켜 병목 현상을 유발할 때까지 기다렸던 태주가 서늘해진 공기를 느끼며 활시위를 놓았다.

쉬이익!

순간, 강력한 눈보라를 동반한 아이스 애로우가 구멍 안에 들어찬 거미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얼리면서 지나갔다.

‘역시 스치기만 해도 못 움직이네.’

특히, 특정 대상을 노리기보단 엉켜 있는 거미 몬스터들의 긴 다리 사이로 난 공간을 노려 최대한 화살이 멀리 날아가도록 유도했는데, 이는 블리자드의 강력한 빙결 효과를 최대한 확산시키기 위한 태주의 계산된 노림수였다.

‘이 정도면 못 따라오겠지?’

거미들을 얼려 입구를 막아버리는데 성공한 태주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꼬꼬로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분후.

신기하게도 꼬꼬로가 가는 길엔 거미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이어진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양 갈래, 세 갈래로 나눠진 길을 마주했을 때도 꼬꼬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진, 또 전진했다.

‘패시브로 보유한 탐색 스킬이 길 찾기 능력이었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토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해본 태주가 어느덧 베테랑 가이드와 동행한 관광객처럼 꼬꼬로의 뒤를 의심 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

굽어진 이동 자세에 슬슬 불편함을 느낄 무렵, 앞서가던 꼬꼬로가 드디어 발걸음을 멈췄다.

‘출구다.’

헤드 랜턴으로 전방을 비춰 본 태주가 허리를 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서둘러 좁은 통로를 빠져나갔다.

“꼬꼬로, 탐색 스킬이 돼비, 아니, 내비게이션이었어?”

“꼬꼬로.”

오랜만에 성대를 쓴 꼬꼬로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좋은 건 아니지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꼬꼬로의 침묵이 떠오른 태주가 주위를 경계하며 물었다.

“…….”

태주의 질문에 또다시 분주해진 꼬꼬로가 이번에도 몸소 시범을 보이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또 어딜 가는…… 어?’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태주가 갑자기 뒷발로 일어나 앞발로 동굴 벽을 긁고 있는 꼬꼬로의 이상 행동을 목격했다.

‘저기도 구멍이 있네?’

꼬꼬로가 서 있는 곳의 위쪽을 비춰 보니 바닥으로부터 약 3미터 높이의 지점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크기는 육안상 조금 전 지나온 통로보다 살짝 좁아 보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꼬꼬로 혼자선 오르기 버거워 보였다.

“꼬꼬로, 혹시 이것 때문에 날 여기로 데려온 건가? 저 구멍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태주가 동굴 벽을 오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꼬꼬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꼬꼬로.”

태주를 이해시켰다고 판단한 꼬꼬로가 벽에서 내려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별로 들어가고 싶게 생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탐색 스킬로 찾은 경로니까 안전하긴 하겠지?’

잠시 구멍을 올려다보던 태주가 파크루를 하듯 3미터 높이의 벽을 가볍게 뛰어올랐다.

“꼬꼬로, 잠깐 들어와 있어.”

그리곤 튜토리얼 퀘스트에서 배운 방식대로 표식이 있는 손바닥을 뻗어 꼬꼬로를 회수한 뒤 곧바로 통로 안에 소환시켰다.

“꼬꼬로!”

자신이 구멍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지한 꼬꼬로가 소환과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잠시 후.

조금 전과 같은 난관을 몇 번 더 반복한 태주가 드디어 꼬꼬로가 가고자 했던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뭐야 이게?’

물론 그곳이 태주의 마음에 들 것이라곤 딱히 암시한 적이 없었지만.

“…….”

태주가 생선대가리 카레를 본 듯한 살벌한 눈빛으로 꼬꼬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

그러자 태주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꼬꼬로가 모른 척 구멍 밖으로 얼굴만 빼꼼 내민 채 필사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야, 됐으니까 일단 광휘부터 꺼.”

헤드 랜턴을 끈 태주가 꼬꼬로의 새하얀 털을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앞서 지나온 곳과는 달리 곳곳에 박혀 있는 수정 형태의 거대한 광물들이 동굴 안을 푸르게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많던 거미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제야 알겠네.’

학교 옥상 정도의 높이에 난 구멍 안에 숨어있던 태주가 눈앞에 펼쳐진 절망적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고척돔을 닮은 압도적인 크기와 중심부에 뚫려 있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멍.

거기에 하나의 그물처럼 얽혀 있는 초대형 거미집과 세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거미 몬스터들의 바글바글한 움직임까지.

‘여기가 보스방이구나.’

아직까지 보스로 보이는 녀석은 없었지만, 구멍 안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이 녀석의 위치를 짐작하게 했다.

“꼬꼬로, 근데 넌 여기 와본 적도 없으면서 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거야?”

자신의 기여도가 99%라고 여긴 태주가 동굴 벽조차 오르지 못했던 꼬꼬로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꼬꼬로.”

그러자 나란히 누워 있던 꼬꼬로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태주의 왼쪽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앞발로 콕콕 건드렸다.

“뭐야, 반지?”

태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꼬꼬로의 앞발로 향했다.

“글쎄. 안 될 것 같은데…….”

발굽의 사이즈를 확인한 태주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젓던 바로 그때.

‘……?!’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강력한 마력에 태주의 시선이 저절로 돌아갔다.

‘우와…….’

중심부에 난 거대한 구멍에서 올라오는 검고 기다란 다리들.

대형 크레인만 한 다리로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녀석의 섬뜩한 눈을 마주한 태주가 꼬꼬로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것만 잡으면 한 방에 진화시킬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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