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레이드의 기초1 (5)
인기와 실리.
실상은 가식과 독식.
방출된 아이들을 공대원으로 선택한 결과, 팀원들로부터는 고마움과 충성심을, 동기들로부터는 소외된 동료를 외면하지 않는 진정한 리더로서의 호감을 얻게 되었다.
실리를 추구하며 독식을 일삼는 자에겐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지만, 가식적이고도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 관리를 통해 그러한 반발심을 최소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조.”]
대기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출발을 재촉하는 함 교수의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엔 별도의 개입 없이 관찰만 할 계획이었지만, 첫 번째 공대의 충격적인 광탈에 위축된 학생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시간만 죽이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함 교수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장비를 점검하는 척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섀도…….]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인 함 교수의 한 마디에 아이들의 발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 “저희 조가 먼저 하겠습니다!”
- “아니요! 안 그래도 지금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CCTV를 향해 손을 번쩍 든 아이들이 모의 던전 입구로 앞다투어 뛰어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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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 “이젠 뭐, 놀랍지도 않네.”
대기실 화면을 주시하던 아이들이 남의 일처럼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만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지는 순간, 생존에 대한 의지마저 증발되었기 때문이다.
- “근데 이번이 몇 번째지?”
- “7번째. 시간으로 따지면 한 10분 정도?”
- “와…… 벌써 11팀 중에 절반 이상이 떨어졌네.”
나름의 전략을 갖고 들어갔던 팀들이 하나둘 아웃되자 대기실의 분위기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아니, 어떻게 한 명도 2분, 아니, 1분 30초도 못 버티지?”
- “그러게. 태주가 들어가도 똑같으면 진짜 답이 없는 건데.”
회의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아이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곳으로 모아졌다.
- “태주야, 이번엔 너희 조가 들어갈래?”
- “그래. 너만 괜찮으면 우리 공대에 있는 힐러들도 붙여줄게. 어차피 우리끼리 들어가 봤자 결과는 뻔하니까.”
태주의 주변으로 슬금슬금 다가온 아이들이 팀원을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부탁에 가까운 제안을 건넸다.
의지(意志)에서 의지(依支)로.
자신의 의지(意志)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아이들이 유일한 가능성이자 믿는 구석인 태주의 힘에 의지(依支)하기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물론 자신을 향한 동기들의 의존적인 태도를 이끌어낸 건 함 교수를 비롯한 모두의 기대감과 칭송을 독차지하겠다는 태주의 확고한 의지(意志)가 반영된 결과물이었지만.
“…….”
마지막 차례를 염두에 두고 있던 태주가 고민을 하는 척, 대답에 뜸을 들이고 있던 바로 그때.
“아니. 우리가 먼저 들어갈게.”
태주를 둘러싼 아이들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창민아…….”
- “뭐야, 너희 조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태주와 창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아이들이 옆으로 물러나며 길을 터주었다.
“괜찮지?”
28기 차석이자 S급 전사인 허창민이 태주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질문의 뉘앙스만으로는 캐치하기 힘든 강한 질투심과 자신이 먼저 던전을 클리어 하겠다는 조급함이 담긴 눈빛으로.
‘허창민도 저런 면이 있네.’
회귀 전, 한국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재능이자 인기투표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허창민은 단 한 번도 열등감이 묻어나는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긴, 그땐 저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2인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그래서 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만 여겨졌던 허창민의 견제에 태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경쟁자의 조바심에서 오는 우월감.
이와 같은 우월감은 허창민에게 집중됐던 관심과 찬사를 모조리 앗아갔다는 증거였다.
“얼마든지.”
테스트의 대미를 장식할 참이었던 태주가 8번째 입장을 흔쾌히 양보했다.
‘어차피 넌 안 되거든.’그 당시, 동기들 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기는 했지만,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허창민 역시 2분을 넘기지 못한 채 탈락했다는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자, 가자.”
태주의 허락과 동시에 발걸음을 돌린 허창민이 공대원들을 이끌고 모의 던전 입구로 향했다.
- “어? 이러다 허창민이 먼저 깨는 거 아니야?”
- “그러게. 뒷모습에서부터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데?”
- “에이, 설마.”
- “근데 클리어까진 아니어도 마의 2분은 넘기지 않을까? 명색이 S급 전사인데?”
- “야, S급이고 뭐고, 9명이 들어가도 1분 컷인데, 혼자서 무슨 수로 2분을 버텨. 안 그래?”
- “으음. 내가 봤을 때도 2분은 좀. 솔직히 7팀 모두 몸빵하던 전사들이 제일 먼저 죽었잖아.”
-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렇게 자진해서 들어가는 거 아닐까?”
대기실에 남겨진 아이들이 허창민의 당당한 걸음걸이에 다양한 해석을 제기했다.
물론 허창민의 자신만만해 보이는 뒷모습이 자신을 향한 일종의 시위이자 허세라는 걸 태주는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
*
*
[증강현실이 구현됩니다.]
허창민을 리더로 한 8번째 공대가 모의 던전 안으로 들어서자 특수 고글의 전원이 커지며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
[피해가 누적되면 테스트가 중단됩니다.]
이번엔 플레이어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 위치에 스톱워치가 표시됐다.
[00:00:01]
“지금부터는 각자도생이다.”
공대장을 맡은 허창민이 뒤따라오던 팀원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앞선 도전자들의 사망 시점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동시에 죽는 경우가 50%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어설픈 대형을 유지하는 것보다 개인플레이를 펼치는 쪽이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오케이.”
- “우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아니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네?”
- “그래도 우리 조만 힐러가 3명이라 간격이 조금 벌어져 있어도 서포트의 문제는 없을걸?”
- “하긴, 딜러 2명당 힐러 1명씩 붙은 다음에 삼각 편대로 움직이면 9명이 3개의 조로 나뉘어서 유기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으니까.”
- “한마디로 솔플인 듯 솔플 아닌 솔플 같은 전략이네?”
- “오오, 이러다 진짜 우리 조만 살아남는 거 아니야?”
- “뭐, 창민이가 있으니까 기대해볼 만도 하지. 솔직히 태주만 없었으면 창민이가…….”
“조용히 좀 가자.”
태주와의 비교 자체가 불편했던 허창민이 자신을 치켜세우려는 동기의 말을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 “어? 어, 알았어. 미안.”
클리어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발을 치던 팀원들이 허창민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입을 닫았다.
- “근데 왜 아직도 몬스터들이 안 보이지?”
- “그러게. 벌써 30초나 지났는데.”
동굴 형태로 구현된 좁은 통로를 걷던 아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바로 그때.
- “어! 저게 뭐야!”
공동으로 들어선 아이들의 눈앞에 머리가 셋 달린 레드 드래곤이 나타났다.
- “아니! 시작부터 보스전이라고?!”
- “이래서 1분 컷이었구나.”
- “창민아! 이제 어떡하지?!”
끝판왕의 등장에 당황한 아이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허창민을 찾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저건 그냥 허상이야!”
레드 드래곤을 겨누며 검 끝을 세운 허창민이 호통을 치듯 동요하는 팀원들을 진정시켰다.
“흥분하지 말고, 계획대로 행동해! 침착하게!”
물론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 건 허창민도 마찬가지였지만.
- “어! 알았어!”
- “야! 이쪽으로!”
- “오늘 일 한번 내보자!”
공격을 주저하던 아이들이 사전에 모의한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바로 그때.
크아아아아!
침입자들을 발견한 레드 드래곤이 허공을 향해 포효했다.
- “야 이 씨! 저걸 어떻게 이겨!”
도전자들보다 큰 송곳니와 불꽃을 머금은 목구멍에 아이들의 전투 의지가 또 한 번 꺾였다.
‘이런 씨.’
개인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삼각편대 전술을 지시했던 허창민이 전투 시작 10초 만에 실패를 직감했다.
우측, 좌측, 중앙.
3명씩 짝을 이룬 아이들이 세 갈래로 나뉘어 뛰는 순간,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3개의 머리가 역할 분담을 하듯 각각의 삼각편대를 노리며 입을 벌렸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목표물을 따라 돌아가던 레드 드래곤의 긴 목이 트림을 참듯 꿀렁댔다.
“조심해!”
그 모습을 목격한 허창민이 긴박한 목소리로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드래곤 브레스다!”
허창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드 드래곤의 입에서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 “으아악!”
- “안 돼!”
분사된 화염에 휩싸인 공대원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몬스터로부터 심각한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누적된 피해가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사망으로 간주하여 테스트가 종료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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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1. 허창민 (전사) 00:01:27 (×)]
최후까지 항전하던 허창민의 생존 시간이 멈췄다.
- “마의 2분은 결국 못 넘겼네.”
- “그래도 1분 27초면 최고 기록 아니야? 다른 애들은 거의 1분 10초도 안 돼서 죽었잖아.”
- “그나저나 허창민이 들어가도 결과는 똑같네.”
- “내가 아까부터 그랬잖아. S급이고 뭐고, 이 정도 난이도면 그냥 죽으라는 소리라고.”
- “와…… 힐러가 셋이나 있어도 소용이 없네.”
- “아무리 증강현실이라고 해도 생존율 0%면 선을 넘은 거지.”
- “이거 혹시 교수님이 수업하기 싫어서 더 빡세게 설정한 거 아니야? 빨리빨리 죽인 다음에 일찍 끝내려고?”
- “으음. 첫날부터 지각하신 걸 보면 그럴지도.”
대기실에 남아 화면만 주시하고 있던 아이들이 별반 다를 게 없는 8번째 공대의 행보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 “근데 이런 근본 없는 난이도면 태주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 “하긴, 이번 테스트는 실력이 없어서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
예정된 실패를 합리화하기 위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아이들이 이젠 함 교수에 대한 음모론을 넘어 태주의 탈락까지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그래. 계속 그렇게 떠들어라.’
물론 기대감이 낮을수록 놀라움이 커진다는 걸 아는 태주는 동기들의 근거 없는 의심마저 관대하게 즐기고 있었지만.
바로 그때.
[“하암.]
- “어? 뭐지?”
- “야, 이거. 하품 소리 아니야?”
- “뭐야, 설마 교수님이 낸 거야?”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함 교수의 적나라한 하품 소리가 아이들의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더럽게 지루하네.]
재방송을 보는 듯한 획일적인 결과물의 연속.
참을성이 없는 함 교수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야, 신태주.]
‘다음 조’라는 말만 반복하던 함 교수가 처음으로 특정 학생을 지목했다.
[“그냥 파리 목숨들 빼고, 너 혼자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