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레이드의 기초1 (3)
태주의 선택은 다른 공대의 편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태주를 넣기 위해 한 자리를 비워둔 상태로 편성 시간이 마감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태주의 공대를 제외한 모든 공대가 9명으로 맞춰져 버렸기 때문이다.
- “뭐야, 그럼 총 11팀이 생겨버린 거네? 태주네 조만 10명이고, 나머지 10팀은 다 9명이니까?”
- “어?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10팀 중에 한 팀이 해체한 다음 나머지 9팀으로 한 명씩 들어가면 되지.”
- “근데 기껏 맞춰둔 밸런스를 깨고 싶은 팀이 있을까? 그것도 자진해서?”
- “안 되면, 뭐, 한 명씩 대표로 나와서 가위바위보라도 해야지. 안 그래?”
- “그건 그렇고, 태주는 왜 저런 불안한 조합을 택한 거지?”
- “그러게. 솔직히 전사 8명에 궁수 2명은 아무리 봐도 개오바인데.”
- “그냥 노빠구 닥공메타로 뚫어버릴 건가 보지 뭐.”
- “딜러만 있는 것도 그렇지만, 힐러가 없는 게 제일 크지 않나?”
- “뭐, 그렇긴 한데, 엄밀히 따지면, 태주가 아니라 다른 공대원들이 문제지.”
- “하긴, 태주야 뭐, 입학시험 때도 힐러 없이 솔플을 했으니까.”
- “그럼 저 팀은 태주 하나 때문에 언더독에서 우승 후보로 급부상한 건가?”
- “뭐, 교수님의 평가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순위 경쟁으로 들어간다고 치면 아무래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되겠지.”
태주의 이례적인 선택을 두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특히 근거리 딜러 8명과 원거리 딜러 2명으로 어떠한 해법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추측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반응들 역시 태주의 예상 범위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었다.
- “근데 방금 전에 ‘10명 끝’이라고 할 때 좀 멋있지 않았냐?”
- “어! 너도 그랬어? 나도 아까 방출된 애들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서 어깨동무할 때 완전 소름 돋았어.”
- “와…… 내가 쟤네들 입장이었으면 진짜 태주한테 충성을 다한다.”
- “역시 진정한 리더란 저런 것인가.”
- “근데 우리만 쓰레기 된 거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이 조금씩 걷히자 이번엔 태주의 행동에 대한 감정적인 평가들이 쏟아졌다.
- “저, 교수님, 저희가 아직 10명을 다 못 채웠는데요?”
“…….”
태주에게 시선이 고정된 함 교수가 학생의 질문을 한쪽 귀로 흘려들었다.
- “저, 교수님, 저희가…….”
자신의 질문을 못 들은 것이라고 착각한 학생이 함 교수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가 목소리를 높이려던 바로 그때.
“그냥 해.”
학생이 다가오는 것을 원치 않았던 함 교수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오직 신태주.
물론 매직 아처의 소문에 대해 모르고 온 건 아니었지만, 직업 탐구1의 엄 교수가 그러했듯 함 교수 또한 실제로 마주한 태주의 의외성에 점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어? 조금 전엔 분명 구성은 자유지만, 인원은 10명이라고 하셨는데요?”
함 교수의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질문자가 눈치 없이 질문을 이어 갔다.
“한 명 더 있으면 뭐가 달라?”
- “네?!”
함 교수의 냉소적이면서도 회의적인 대답에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안하면 다른 공대랑 같이 들어가든지.”
함 교수에게 있어 공대원의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머릿수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다시 말해, 전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녀석들의 합류는 오히려 레이드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강한 녀석들끼리 뭉치라는 함 교수의 지시에 방출까지 불사했던 아이들이 일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바로 그때.
드르르르르르!
모의 던전 안에서 들려오는 바퀴 소리에 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수업의 진행을 도와줄 조교 2명이 카트를 밀며 나타난 것이다.
“입시 때 써봤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고.”
카트 안엔 증강현실을 구현해주는 특수한 고글이 들어 있었다.
“테스트가 시작되면, 고글에 스톱워치가 표시된다.”
고글에 대한 사용법은 가볍게 생략한 함 교수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스톱워치는 곧 생존 시간. 한마디로 명줄이 긴 놈이 승자다.”
단체 미션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공대의 편성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개별적이고도 일차원적인 평가 방식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지, 그 멍청한 눈빛들은?”
함 교수가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의아한 시선을 한심하게 받아들이며 말했다.
“설마 협동심이나 동료애 같은 걸 기대했던 건가. 쯧쯧.”
입꼬리가 내려간 함 교수가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혀를 끌끌 찼다.
‘역시 엄 교수님하고 안 맞는 이유가 있었어.’
엄승준 교수와 함희준 교수는 서로의 상반된 수업 방식을 두고 잦은 마찰을 빚고 있었다.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엄 교수와 달리 함 교수에게 있어 동료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대의 형식을 취한 건 현행법상 그 어떤 헌터도 단독으로 게이트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태주의 경우 입학시험 당시 1차 테스트에 해당하는 단체 미션을 혼자서 치른 경험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지문 총장의 허락과 모의 던전이라는 장소적 허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했다.
“강한 녀석들끼리 뭉치라고 한 건 팀원들을 이용해 생존 시간을 늘리라는 의도였고.”
- “하지만 교수님,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팀원을 방패로 삼는 건 너무 이기적인 발상 아닙니까?”
공대 편성의 취지에 반기를 든 학생 한 명이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걸 왜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함 교수가 반발심이 느껴지는 질문자의 어조에 가소롭다는 듯이 반문했다.
- “네? 아, 뭐, 그야 당연히 혼자만 살겠다고 동료를 앞세우는 건 희생정신이 결여된 비겁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틀린 구석 하나 없는 정석적인 대답에 동기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물론 가치관의 변화 없이 수년째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온 함 교수의 입장에선 매학기 들어봤을 똑같은 패턴의 반박이었지만.
“당연히라…… 단정적인 표현을 아주 쉽게 쓰네. 경솔하게.”
질문자의 답변을 곱씹어보던 함 교수가 헛웃음을 띠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스윽!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은 함 교수가 조교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을 향해 광역 마법을 시전했다.
“섀도 오브 데스.”
순간, 그림자마다 솟아난 검은 형체가 아이들의 몸을 뒤에서 스르륵 껴안았다.
- “흐억!”
- “꺄아악!”
곳곳에서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웁! 우웩!”
심지어 정신력이 약한 일부 학생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토사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죽음의 그림자.
극한의 공포를 느끼도록 만드는 이 잔인한 마법은 상대를 일정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물론 방어를 해제시키는 효과까지 있었다.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희생정신을 운운하다니. 역시 경솔해.”
학생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덤덤하게 지켜보던 함 교수가 찬찬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그때.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인 태주의 눈앞에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 상태 이상(공포)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다행히 몬스터가 아닌 학생들을 상대로 죽음에 대한 경각심 정도만 일깨워주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함 교수의 약화된 공격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함 교수의 절제된 마법만으로도 거의 모든 학생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
▶ 목걸이의 효력이 발동되었습니다.
▶ 상태 이상 대미지가 5% 감소하였습니다.
저항 스킬과 더불어 목걸이에 붙은 옵션까지 발동하자 태주의 정신력을 지배하고 있던 막연한 공포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와…… 내가 이걸 버티네.’
당시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공포로 굽어졌던 허리를 곧게 편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음?!”
함 교수가 공포에 빠진 학생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태주의 온전한 모습에 흠칫 놀랐다.
저벅저벅.
학생이 다가오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다가가는 것도 원치 않았던 함 교수가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태주를 향해 어색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무엇 하나 흥미롭지 않던 무료한 일상에 나타난 최초의 동기부여.
오래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교육자로서의 욕심을 자극하는 눈부신 재능의 등장에 반쯤 감겨 있던 함 교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처음이다. 함 교수님의 저런 진지한 눈빛은.’
회귀 전, 태주를 공기보다 더 투명하게 취급했던 함 교수가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오롯이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 보 앞까지 다가왔다.
“…….”
그리고 이어진 잠깐의 정적.
평소, 말수가 적기로 유명한 함 교수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굳게 다문 입이 호기심으로 근지러워 보였다.
바로 그때.
- “크윽.”
공포 효과에서 풀려난 아이들이 하나둘 식은땀을 닦으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하아…… 진짜 심장 쫄려서 죽는 줄 알았네.”
- “야 이 씨, 난 바닥에 토까지 했다고!”
-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 “난 땀 때문에 속옷까지 다 젖었어.”
1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체감상으론 15분 이상 공포에 시달린 것 같은 불쾌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 “아니, 세상에 어떤 교수님이 학생들한테 공포 마법을…… 어? 근데 교수님이 언제부터 저기 계셨지?”
- “어? 그러네. 태주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학생들이 함 교수의 위치 변화에 의문을 품었다.
- “야, 근데 태주는 왜 이렇게 멀쩡해 보이냐?”
- “그러게. 아무리 봐도 우리만 헥헥거리는 거 같은데?”
- “뭐야, 그럼 혼자만 마법에 안 걸렸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 “아니야. 지금 생각해 보니까 새터 때 있었던 장기자랑. 그때도 방어력 종목에 나가서 우승했었잖아. 일명 속성 공격 랜덤 버티기.”
- “뭐야, 그럼 속성 공격뿐만 아니라 상태 이상 공격까지 견딜 수 있다는 거야? 그것도 궁수가?”
- “마법 내성을 갖춘 매직 아처라…… 대체 어디까지 성장하려고 그러지?”
- “와…… 이쯤 되니까 좀 무서워지려고 그러네.”
속단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태주의 상식을 벗어난 각성 수준이 동기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의미의 두려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생각할수록 짜증나네.”
침묵 끝에 입을 연 함 교수의 첫마디는 짧고 강렬했다.
“날 의욕적으로 만들지 말라고 이 짜증나는 새끼야.”
물론 태주를 향해 독한 말을 내뱉는 함 교수의 입가엔 기대감으로 가득 찬 미소가 서서히 번지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