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직업 탐구1 (7)
“교수님, 이건…….”
“그래. 슈팅 글러브다.”
소파에 한껏 기대어 있던 엄 교수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한 번 껴봐.”
“아, 네.”
심박수가 증가한 태주가 봉지 안에 든 레이드 장갑을 아기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꺼냈다.
바로 그때.
[피닉스의 집요한 발톱]
- 등급: 전설
한 짝으로 구성된 슈팅 글러브를 오른손에 착용하는 순간, 태주의 시야에 장비의 스펙이 떠올랐다.
‘뭐?! 전설?!’
희귀 등급의 장갑을 노리고 있던 태주가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는 아티팩트의 등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와…… 이건 진짜 디자인부터 미쳤네.’
태주가 받은 슈팅 글러브는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세 손가락(검지, 중지, 약지)만 끼는 형태였는데, 손끝을 감싼 부분이 맹금류의 발톱처럼 생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 근력 100% 증가
- 공격력 150% 증가
- 치명타 확률 50% 증가
- 치명타 대미지 150% 증가
- 명중률 75% 증가
- 속성 대미지 150% 증가
희귀와 전설은 고작 한 등급 차이였지만, 성능에 있어서만큼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넘사벽.
물론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물건과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유물의 가치를 저울질한다는 것부터가 그릇된 접근법이었지만.
‘이 정도 구성이면 폭딜도 가능하겠는데?’
공격 관련 수치에 편중된 탓에 버프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지만, 능력치의 증가율면에선 기존의 보유한 장비들을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무려 전설 등급이다. 내가 S급 던전에서 얻은 최고의 전리품이지.”
▶ 착용한 아이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근데 이걸 왜 저한테…….”
엄 교수의 과감한 결정에 의문이 생긴 태주가 장갑의 표면을 매만지며 물었다.
“베팅이다. 블랙홀 게이트를 클리어 할 확률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에게 거는 내 소중한 판돈.”
태주를 바라보는 엄 교수의 눈빛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부담을 가질 것까진 없다. 너도 알다시피 베팅의 책임은 언제나 돈을 건 쪽이 지는 거니까.”
큰 짐을 떠넘긴 것 같은 미안함에 거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지만, 전설 등급의 장비를 내어줄 만큼 간절한 엄 교수의 바람이 오늘따라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자, 이제 내 볼일은 다 끝났으니 그만 나가봐.”
민망함을 느낀 엄 교수가 벤치프레스로 다가가 원판을 끼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베팅 대신 투자라고 해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태주가 교수실 문을 나서기 전, 엄 교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박은 불확실한 확률에 기대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별로…….”
“…….”
어깨를 풀고 있던 엄 교수가 1일 차 신입생의 패기 넘치는 제안에 스트레칭을 멈췄다.
“장갑 잘 쓰겠습니다. 그럼.”
슈팅 글러브를 낀 손을 들어 보인 태주가 엷은 미소를 끝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
*
CCTV가 없는 빈 강의실로 이동한 태주가 문을 걸어잠근 채 인벤토리를 열었다.
[방어구용 희귀 강화석 A형]
- 근력을 비롯한 공격력 수치 강화
- 강화 성공률 15~25%
가격은 희귀 강화석이 훨씬 더 비쌌지만, 성공률은 고급 강화석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 『희귀』 등급을 지닌 『방어구』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종강 시점을 고대하고 있던 태주는 희귀 등급의 장갑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강화석을 미리 구매해둔 상태였다.
‘일단 시도나 해보자.’
물론 전설 등급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로 인해 희귀 등급의 강화석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 정도만 해볼 생각이었다.
▶ 아이템의 강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N)
강화석을 움켜쥔 태주의 시선이 예스로 옮겨졌다.
▶ 강화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상대로 강화 가능 목록은 떠오르지 않았다.
태주가 확보한 유일한 희귀 등급 방어구인 과잠은 아직 제작 중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첫 번째 실험을 접은 태주가 이번엔 이종도 교수로부터 받은 고급 등급의 활을 강화해보기로 했다.
▶ 강화 대상을 선택해주세요.
무기용 고급 강화석 A형을 소환하자 해당 강화석을 소비할 수 있는 아이템의 목록이 바로 떠올랐다.
【강화 가능 목록】
1.
[고급]
고뇌하는 하급 정령의 활
태주가 활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 준비한 강화석의 종류는 목걸이 때와 마찬가지로 4가지 유형이었다.
공격력과 관련된 A형과 방어적인 부분을 개선시켜주는 B형, 거기에 신체적인 능력을 높여주는 C형과 마법 항목의 수치를 증가시키는 D형까지.
▶ 『고뇌하는 하급 정령의 활』을 강화하시겠습니까? (Y/N)
물론 과부하를 걸어주기 위한 구성이라 강화 자체를 불안정하게 할 순 있었지만, 이전처럼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개입해준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 강화를 시작합니다.
지난 번 강화에선 목걸이가 지닌 행운의 효과로 강화 성공률이 증가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체적인 효력이었을 뿐, 아쉽게도 다른 아이템의 강화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윙! 윙! 윙! 윙!
허공으로 떠오른 강화석이 저절로 나타난 활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기 시작했다.
파앗!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던 강화석이 강렬한 빛을 발산하며 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 『근력』과 『치명타 대미지』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 『공격력』, 『치명타 확률』, 『명중률』, 『화살 속도』가 증가하였습니다.
‘일단 시작은 좋고.’
1단계 강화를 마친 태주가 곧이어 두 번째 강화석을 꺼내들었다.
그로부터 약 3분 후.
마지막 4번째 강화석이 활에 스며드는 순간, 반가운 메시지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 강화 대상의 수용 능력이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강화 과정에 개입합니다.
그와 동시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빛이 활 전체를 타오르듯이 휘감았다.
▶ 아이템의 등급이 상승(고급→희귀)하였습니다.
‘그렇지.’
[고뇌하는 하급 정령의 활]
- 등급: 희귀
등급이 바뀌었다고 해서 하급 정령이란 이름까지 상급으로 바뀌진 않았지만, 기존에 비해 2배나 많아진 옵션과 눈에 띄게 증가한 활의 성능을 본 태주의 표정만큼은 환하게 바뀌어 있었다.
- 근력 10% 증가
- 공격력 40% 증가
- 치명타 확률 15% 증가
- 치명타 대미지 10% 증가
- 방어력 10% 증가
- 민첩성 10% 증가
- 지력 10% 증가
- 명중률 40% 증가
- 화살 속도 20% 증가
- 속성 대미지 60% 증가
‘굿 잡.’
또 한 번 헤파이스토스의 도움을 받은 태주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
▶ 『일반』에서 『고급』으로, 『고급』에서 『희귀』로의 강화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 이건 또 뭐지?’
빈 강의실을 나서려던 태주가 자신의 궁금증을 콕 집어 알려주는 시스템의 설명에 신기하면서도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 『희귀』에서 『전설』로 가기 위한 초월 강화의 경우 강화석이 아닌 『전설』에 해당하는 아이템(들)을 희생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희귀 등급의 활을 전설로 강화시키려면, 전설 등급의 장비 하나를 재료로 써야 한다는 거네.’
태주가 지닌 전설 등급의 물건은 슈팅 글러브가 유일했다.
‘으음. 슈팅 글러브는 궁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니까 나중에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장비가 생기면, 그때 강화를 시켜야겠다.’
던전보단 트레이닝 돔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태주의 입장에선 전설 등급으로의 초월 강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 『전설』에서 『재앙』으로의 강화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원칙적으로라는 건 예외도 있다는 건가?’
▶ 단, 헤파이스토스의 『망치』와 『집게』, 그리고 『모루』를 사용해 강화를 진행하면, 『재앙』으로의 초월 강화도 가능합니다.
‘망치, 집게, 모루? 모루면 대장간에서 쓰는 받침대인데…….’
초월 강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일명 헤파이스토스의 3종 세트를 모으는 방법에 대해선 막막할 따름이었다.
물론 태주가 5년 전으로 돌아간 회귀자인 건 맞지만, 헤파이스토스의 애장품에 대한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갈수록 흥미로워지는데?’
강화의 성공과 함께 중요한 정보까지 획득한 태주가 가벼운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나섰다.
*
*
*
잠시 후.
“한국대 병원으로 가주세요.”
택시에 오른 태주가 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진우야. 나 이제 막 끝나고 가는 길인데, 혹시 뭐 필요한 거 없어?】
[진우는 좀 전에 잠 들었네.]
【아, 죄송합니다. 전 회장님 휴대폰을 아직 진우가 가지고 있는 줄 알고……】
협회장의 답장에 당황한 태주가 얼른 대화체부터 바꿨다.
【그나저나 진우는 좀 어떻습니까?】
[ㅋㅋㅋㅋ 형, 나야. 진우 ^^ 완전 속았지? ㅋㅋㅋㅋ 나 이제 완전 괜찮아졌어. 의사 선생님 말로는 내일 오후쯤 퇴원해도 된대.]
【아니. 내가 봤을 땐 며칠 더 입원해야 될 거 같은데?】
태주가 주먹 모양의 이모티콘을 진우에게 전송했다.
[아, 미안 ㅋ 내가 쓰러질 때마다 머리를 부딪혀서 판단력이 많이 흐려졌나 봐 ㅋ 형도 알지? 나 머리에 흉터 많은 거 ㅋ]
우스갯소리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 진우의 몸에선 낙상으로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협회장님께선 옆에 안 계셔?】
[할아버지는 병원장님 만나러 가셨어. 뭐, 보나마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소리만 듣고 오겠지만 ㅋ]
전설 등급을 지닌 영약까지 구해 꾸준히 먹여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진우의 증상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혹시 각성자가 되면 나아지려나? 형이 기껏 살려줬는데 허무하게 죽으면 어떡하지? ㅠㅠ 나 아직 모태솔로인데……]
【어차피 살아 있다고 다 커플 되는 거 아니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눈곱이나 떼고 있어. 나 한 10분 뒤면 도착하니까.】
나약한 마음이 진우의 증세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태주가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적당히 말을 돌렸다.
바로 그때.
▶ 일일 과제가 도착하였습니다.
이젠 일상이 되어 버린 퀘스트 화면이 태주의 눈앞에 떠올랐다.
▶ [일일 과제] 아이스 애로우 입문.
‘얼음 화살이라…….’
[23:59:57 (정지)]
과제가 뜨는 시간은 일정치 않았다.
어떨 땐 아침에, 어떨 땐 저녁에.
그러다 보니 마감 시간의 기준도 과제가 뜬 날 자정이 아닌 타이머에 따라 결정됐는데, 다행히도 F학점을 받거나 제출 기한을 넘겨 페널티를 받은 적은 없었다.
‘과제를 완료하면 새로운 화살을 주는 건가?’
현재 보유한 화살은 노멀, 체이싱, 파이어가 전부였지만, 물음표 상태로 남아 있는 빈칸의 개수가 많아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다.
[N]
[C]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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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 수행을 위해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강화를 마친 활과 슈팅 글러브의 성능을 시험해보기로 한 태주가 강렬한 빛과 함께 던전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