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수강 신청 (2)
▶ 과제 수행을 위해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늘 그랬듯 과제를 수락한 태주의 눈앞에 강렬한 빛이 나타났다.
▶ 과제를 시작합니다.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며 특이점을 확인했다.
‘와…….’
태주가 서 있는 곳은 대규모 전투가 펼쳐졌던 전장 위였다.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병사들의 시신이 사방에 널려 있었는데, 높은 곳에 올라서지 않는 이상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하네.’
코를 훌쩍거리던 태주가 난생 처음 맡아보는 역한 악취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살아나는 건가?’
태주가 CSI요원은 아니지만, 시체의 부패 정도로 보아 최소 일주일 이상은 넘게 방치된 것처럼 보였다.
‘근데 이걸 언제 다 처리하지?’
태주의 머릿속은 이미 하얘져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군단에 버금가는 적들을 혼자서 상대하는 건 벅찰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제를 위해 소모된 시간과 스탯은 현실에 반영되지 않지만, 과제의 완성도가 낮거나 미션에 실패할 경우 페널티를 받을 수도 있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가 신성력이 깃든 행운의 목걸이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 착용한 아이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목걸이를 목에 걸자 옵션에 부착되어 있던 버프들이 동기화되듯 적용됐다.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능력치를 5배로 증폭시키는 것 또한 빼놓지 않았다.
바로 그때.
▶ [경고] 죽은 병사들에게서 악한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 [경고] 썩어 들어가는 육신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경고 메시지가 뜨자 거짓말처럼 시체들이 꿈틀거렸다.
▶ [경고] 언데드로 변한 이들이 생전의 역할에 따라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으어어어…….
좀비처럼 일어난 녀석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무기를 집어 들며 음울한 신음을 내뱉었다.
‘몬스터랑 붙는 게 싫어서 궁수를 택한 건데…….’
좀비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도 적들의 간격이 좁고, 지형 자체가 평지라 엄폐물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 언데드 군단을 일으킨 네크로맨서들(0/10)을 찾아 모두 제거하시오.
‘뭐? 네크로맨서?’
장기전을 예상했던 태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행히 10마리만 잡으면 끝이네.’
조기 퇴근의 희망을 얻은 태주가 재빨리 활을 꺼내들었다.
▶ 제한 시간 60분.
일일 과제치고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어디 숨어 있나…….’
[00:59:59]
타이머가 떠오른 것을 확인한 태주가 반경 5미터 안에 있는 적들부터 빠르게 처치했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일일 과제를 통해 틈틈이 연습해둔 속사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파앗!
4번째 화살에 맞은 좀비의 몸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눈과 입은 물론 몸에 난 구멍과 벌어진 상처 틈마다 강렬한 빛이 발산됐는데, 주변에 있던 녀석들까지 그 빛에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저게 바로 신성 공격?’
30%의 확률로 발동한다던 신성 공격이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에게 추가 대미지를 입힌 것이다.
펑!
빛이 새어 나오던 녀석의 상반신이 흉갑과 함께 흔적도 없이 터져버렸다.
철퍼덕!
몇 발자국도 채 떼지 못한 녀석의 두 다리가 언데드란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며 힘없이 쓰러졌다.
‘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목걸이에 대한 검증은 확실히 마칠 수 있었다.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쉬이익!
급한 대로 주변을 정리한 태주가 5초간의 차징을 통해 화염 효과를 발동시켰다.
화르르!
활에 붙은 속성 대미지 버프로 인해 불길이 더 세차게 일어났는데,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불화살이 전방에 있던 적들을 불사르며 길까지 터주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포위망이 좁혀 오는 것에 압박을 느낀 태주가 미리 뚫어놓은 탈출구를 통해 위치를 옮겼다.
바로 그때.
으어어어…….
좀비 병사 하나가 태주의 등을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이런 씨.’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검을 가까스로 피한 태주가 녀석의 등 뒤로 이동해 화살을 꽂아 넣었다.
쉬이익!
활과 목걸이에 붙은 공격형 버프가 폭주 스킬로 증폭시킨 근력을 만나 믿을 수 없는 파워를 만들어냈다.
텅! 텅!
플레이트 아머의 등판을 종잇장처럼 찢고 들어간 화살촉이 좀비의 흉갑마저 가볍게 뚫고 나왔다.
화르르!
으어어어…….
온몸에 불이 붙은 좀비가 다른 녀석들에게까지 불씨를 옮기며 작렬하게 소멸됐다.
‘근데 이것들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화살이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는 와중에도 태주의 시선은 네크로맨서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일당백의 전투를 벌이고 있던 태주를 향해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좀비 궁수들이 발사한 화살이 태주가 떠난 자리에 화망을 형성하며 꽂혔다.
‘그래. 형체가 아닌 마력으로 찾아내자.’
바쁘게 눈동자를 굴리던 태주가 정신을 집중하여 마력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좀비가 된 시체보다 수십, 수백 마리의 언데드 부대를 조종는 네크로맨서의 마력이 더 강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
대략적인 방향을 읽어낸 태주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물론 수많은 좀비 병사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그 너머에 있을 네크로맨서의 기운이 태주의 움직임을 바쁘게 만들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좀비들의 공격을 피해 나아갈수록 태주가 느끼는 마력의 세기도 점점 강해졌다.
바로 그때.
‘찾았다!’
좀비 병사들 틈에 숨어 있던 네크로맨서가 두 팔을 휘저으며 흑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으어어어!
태주와 눈이 마주친 네크로맨서가 좀비 병사들의 전투 의지를 광전사만큼 증폭시켰다.
태주가 공격과 회피에 정신이 팔려야 자신이 있는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친.’
버서커 모드에 들어간 좀비 병사들의 공격이 더욱 매서워졌다.
심지어 롱소드를 든 녀석들은 태주를 공격하려다 아군의 몸까지 베어내고 있었는데, 적들이 밀려드는 속도가 워낙 빨라 차징은커녕 점멸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궤적이 단조로운 파이어 애로우를 쓰기엔 고기 방패들의 압박이 커 황급히 화살의 종류를 바꿨다.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신성 공격이 발동될 타이밍을 계산한 태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네크로맨서의 머리를 노리며 활시위를 놓았다.
쉬이익!
시야에서는 이미 네크로맨서가 사라졌지만, 태주의 손끝을 떠난 화살은 좀비 병사들의 동선보다 더욱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곡예비행을 하고 있었다.
푹! 푹!
목표물을 발견한 화살이 도망치던 네크로맨서의 머리를 완벽하게 관통하며 박혔다.
그어어어억!
네크로맨서의 비명이 좀비들 너머로 선명하게 들려왔다.
‘잡았다!’
파앗!
신성 공격을 받은 네크로맨서의 머리가 섬광과 함께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 네크로맨서(1/10)를 처치하였습니다.
순간, 남은 네크로맨서의 숫자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네크로맨서의 죽음으로 언데드 군단의 힘이 약화되었습니다.
으어어어…….
철퍼덕! 철퍼덕! 철퍼덕! 철퍼덕!
네크로맨서를 처리하자 녀석이 조종하고 있던 수백 마리의 좀비 병사들이 전장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하……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반경 50미터 이상의 거리를 확보한 태주가 활시위에서 손을 뗀 채 잠시 숨을 돌렸다.
물론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조종하는 좀비 병사들이 그 공간을 빠르게 메우고 있었지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제거 요령을 터득한 태주가 두 번째 네크로맨서를 찾아내기 위해 감각을 끌어올렸다.
잠시 후.
▶ 네크로맨서(5/10)를 처치하였습니다.
절반의 성공을 달성한 태주가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00:42:50]
‘이거 생각보다 금방 끝나겠는데?’
그나마 죽은 네크로맨서들이 조종하던 녀석들을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재활용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과제가 아닌 실제 던전이었다면 언데드란 속성을 이용해 끊임없이 부활을 시켰겠지만.
▶ 위기를 느낀 네크로맨서들이 좀비 병사들에게 더 강력한 힘을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본게임은 지금부턴가?’
게임 속 보스의 페이즈가 바뀌듯 좀비 병사를 이용한 네크로맨서의 공격 패턴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 [경고] 좀비 병사들의 위액이 역류하고 있습니다.
‘뭐? 위액?’
알 수 없는 경고 메시지에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때.
컬럭!
마주오던 좀비 병사의 입에서 토사물처럼 보이는 노란 액체가 발사됐다.
‘추균성이야 뭐야.’
술롱도르 결승전을 떠올린 태주가 산개하는 방울들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치이익.
자신이 있던 곳을 돌아본 태주가 위액에 맞아 녹아내리고 있는 좀비 병사들의 갑옷을 확인했다.
‘갈수록 가관이네.’
냉병기의 경우 상대방의 공격 루트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사방에서 변칙적으로 발사되는 위액은 분산 범위가 일정치 않아 완벽히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컬럭! 컬럭! 컬럭! 컬럭!
치이익.
태주의 팔에 튄 위액이 겉옷을 태우며 들어갔다.
‘이런 씨.’
기분 나쁜 통증이 지속되며 태주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바로 그때.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 상태 이상(맹독, 부식, 화상, 출혈) 공격의 대미지가 80% 감소되었습니다.
▶ 목걸이의 효력이 발동되었습니다.
▶ 치명상 확률이 20% 감소하였습니다.
▶ 상태 이상 대미지가 5% 감소되었습니다.
▶ 방어력이 5% 증가하였습니다.
저항 스킬과 목걸이에 붙은 옵션들이 위액의 공격력을 급감시켰다.
▶ 체력 회복 속도가 10% 증가하였습니다.
물론 100%의 방어력을 보인 건 아니었지만, 미약하게나마 힐의 효과까지 부여함으로써 상처의 치유를 돕고 있었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가 파이안 한 병을 꺼내어 단숨에 들이켰다.
체력적인 여유는 충분했지만, 과제에 사용된 아이템들은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다시 채워졌기 때문이다.
▶ 체력이 10% 회복되었습니다.
구멍난 옷은 그대로였지만, 화상을 입고 패인 상처는 말끔히 치료되어 있었다.
물론 태주의 체력 수치가 워낙 높아 최고급 회복 포션을 사용해도 10%의 회복력밖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컬럭! 컬럭! 컬럭! 컬럭!
‘이건 뭐, 접근할 틈이 없네.’
네크로맨서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좀비 병사들부터 떼어낼 필요성이 있었다.
‘어그로를 끌어볼까?’
▶ 스킬 『도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도발의 효과는 광범위 했지만, 지목된 대상에게 적의를 가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쉽게 말해, 좀비 병사나 네크로맨서를 지목해 도발을 걸어도 같은 편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어그로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주변엔 시체밖에 없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태주가 빗발치는 위액을 피하려던 바로 그때.
까아악! 까아악!
머리 위에서 태주를 부르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