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7화 (27/242)

027. 새터 (13)

- “공은 어느 조부터 뽑는 건가요?”

슈퍼 부전승을 노리는 신입생들의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추첨 순서를 정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될 경우 나중에 뽑는 조가 불만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공은 신입생 대표로 나온 한 명이 계속 뽑는 걸로 하겠습니다.”]

- “그럼 누가 대표로 나가는 거죠?”

[“그 또한 공정성 의혹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대표의 역할을 수행한 적이 있는 신입생이 추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신입생을 대표한 적이 있다면 설마…… 신태주?”

- “맞네. 안 그래도 입학식 때 신입생 대표로 나와서 선서를 한 적이 있잖아.”

- “하긴, 태주가 아니면 28기를 대표할 사람도 없지.”

어느 조에서 대표가 나오든 반발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그 대상이 태주라면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신태주 후배님?”]

사회자가 결국 아이들의 예상대로 태주를 지목했다.

“네.”

태주는 자신의 이름이 불릴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에도 논란을 잠재우고 싶었던 사회자가 수석 합격자인 허창민을 대표로 선발했었기 때문이다.

- “역시 태주였어.”

- “야, 사회 보는 선배도 어지간히 욕먹기 싫었나 보다.”

- “그러게. 또 9조만 이득을 보는 거 같아서 뭔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긴 한데, 상대가 신태주라 딱히 할 말이 없네.”

술렁이던 아이들이 사회자의 부름에 일제히 태주를 바라봤다.

- “설마 자기 조만 E를 뽑진 않겠지?”

- “글쎄. 그걸 조절하면서 뽑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막말로 구멍이 너무 작아서 자기 손도 안 보일 텐데.”

대표의 자격에 대해선 민감한 반응을 보였지만, 정작 추첨 확률에 대해선 별다른 의심 없이 운명에 맡기는 분위기였다.

물론 과거의 후회를 바로잡고 있는 태주에겐 이마저도 통제할 수 있는 운명이었지만.

[“앞으로 나오세요.”]

“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태주가 앞을 가로막고 있던 수많은 아이들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 “와…… 저건 진짜 아무리 봐도 신기하지 않냐?”

- “그러게. 새벽에 화장실 갈 때 엄청 편하겠다.”

[“자,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안엔 총 10개의 공이 들어 있습니다.”]

덜그럭! 덜그럭!

사회자가 상자를 흔들어 공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들려줬다.

[“어느 조의 공부터 뽑을지는 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인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겠습니다. 자, 각 조의 조장들은 지금 바로 추첨 순위를 정해주세요.”]

사이드로 빠져 있던 조장들이 사회자의 지시에 동그랗게 모였다.

- “가위! 바위! 보!”

- “예!”

- “아 나 왜 이러지?”

조장들의 표정이 곧 조원들의 표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1분 후.

[“자, 그럼 순서는 7, 1, 8, 3, 2, 5, 10, 6, 4, 9로 하겠습니다.”]

- “우리 조장이 제일 똥손이었어.”

- “와…… 어떻게 한 번을 못 이기지?”

- “꼴등이면 그냥 남은 공을 가지는 거니까 딱히 추첨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 “진짜 우리상조란 이름처럼 초상집 분위기네.”

9조에 속한 아이들이 미안함에 고개를 못 들고 있는 지희의 정수리를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 “이야 9조가 꼴등이네?”

- “어? 그럼 E를 뽑을 가능성도 거의 없는 거 아니야?”

- “뭐, 앞쪽에서 다 뽑으면 그렇겠지?”

- “게다가 같은 조원인 태주가 뽑는 거니까 이상한 게 나와도 원망을 못 하겠네.”

- “조장은 부조리에 설사병으로 잘리고, 부조장은 똥손에 피구하는 것도 안 알려주고…… 솔직히 태주만 없으면 저기가 제일 떨어지는 조 아니냐?”

- “하긴, 사람이 어떻게 지름길로만 가겠어. 태주도 한 번쯤은 돌아가는 맛이 있어야지.”

반면 다른 조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순위보다 9조의 꼴찌 사실에 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그럼 7조가 들어갈 위치부터 뽑아주세요.”]

상자 앞을 지키고 있던 사회자가 태주에게 자리를 내어줬다.

“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정면을 응시한 태주가 오른손을 상자 위에 뚫린 구멍 안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바로 그때.

▶ 접촉한 대상을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인벤토리】

324.

[일반]

A공 (×2)325.

[일반]

B공 (×2)326.

[일반]

C공 (×2)327.

[일반]

D공 (×2)328.

[일반]

E공 (×2)

상자 속에 있는 공을 인벤토리 안으로 모두 옮겨버린 태주가 눈앞에 뜬 목록을 보며 적당한 공 하나를 선택했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태주가 B라고 적힌 공부터 소환해 움켜쥔 뒤 나머지 공들을 상자 안으로 되돌려 놨다.

덜그럭! 덜그럭!

공을 쥔 손을 열심히 휘젓고 있던 태주가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팔을 빼냈다.

[“자, 과연 7조는 어느 대진에 들어가게 될…… 어! 지금 막 첫 번째 공이 나왔습니다!”]

태주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사회자가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확인시켜줬다.

[“B! B가 나왔습니다!”]

- “아…….”

E가 나오길 고대했던 7조의 아이들이 노골적인 아쉬움을 드러냈다.

- “예!”

물론 당첨 확률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지만.

[“자, 그럼 이제 1조. 1조의 추첨이 이어지겠습니다. 후배님?”]

“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태주가 사회자의 안내에 또 한 번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아! 드디어 부전승 대진에 해당하는 E가 나왔습니다!”]

다섯 번째 공을 넘겨받은 사회자가 아이들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 “이야!”

- “예! 슈퍼 부전승!”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2조의 아이들이 태주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뛸 듯이 기뻐했다.

[“자, 이제 딱 절반의 공을 뽑았는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B를 뽑은 7조와 3조는 1회전 대결이 확정됐지만, 아직 A를 뽑은 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A/A]

[7/3]

[8/C]

[1/D]

[2/E]

대진표의 상황을 설명하던 사회자가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던 알파벳 E를 지우고 숫자 2를 표시했다.

- “아……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네.”

- “근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쫄리지?”

- “좋아! 아직 확률은 1/5이다!”

기대에 부푼 아이들을 바라보던 태주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수학적인 확률을 계산하며 희망고문을 해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금 전에 E가 나온 것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조작 의혹을 피하려는 태주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결승까지 박 터지게 올라와야 돼.’

바로 옆에 있는 사회자의 눈까지 감쪽같이 속인 태주가 사심 없는 연기를 하며 여섯 번째 추첨을 시작했다.

잠시 후.

[“아! 이제 단 두 조만 남았는데요! 과연 마지막 부전승의 주인공은 4조가 될지 9조가 될지!”]

[5/A]

[7/3]

[8/10]

[1/6]

[2/E]

[“자! 이제 아홉 번째 공을 뽑는 순간, 나머지 한 조의 위치도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마지막 추첨을 앞둔 사회자가 E공의 행방을 놓고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야, 인간적으로 9조가 E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가뜩이나 핸디캡도 없어서 펄펄 날아다닐 텐데.”

- “그래도 어쩌겠냐. 잘나가는 놈이 운까지 좋다는데. 우리 같은 애들은 그냥 2등을 목표로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

- “하긴, 고작 3분 늦게 출발하는 건데, 설마 10개나 되는 보물을 그 안에 다 찾겠어?”

- “게다가 꽝도 엄청 많아서 종이를 펴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대.”

- “그래!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태주의 승승장구를 부러워하던 동기들이 본게임이라 할 수 있는 보물찾기에서의 일발역전을 기대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물론 태주의 노력으로 반사적 이익을 얻게 된 9조의 조원들마저 출발 순서와 관계없이 빈손으로 돌아갈 판이었지만.

[“자! 그럼 이제 4조의 공을 뽑아주세요!”]

【인벤토리】

324.

[일반]

A공 (×1)325.

[일반]

E공 (×1)

태주가 매크로처럼 된 구분 동작에 따라 A공을 움켜쥔 뒤 E공을 남겨뒀다.

[“과연 어떤 알파벳이…… 어! A가 나왔습니다! A!”]

아홉 번째 공을 인계받은 사회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4조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 “으악!”

- “말도 안 돼!”

50%의 확률을 날려버린 아이들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절규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그럼 9조는 자동으로…….]

이번엔 사회자가 직접 상자 안에 손을 넣었다.

[“네! 역시 남은 공은 E였습니다!”]

- “와!”

노 핸디캡에 슈퍼 부전승까지 얻게 된 9조의 조원들이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

*

*

약 1시간 후.

[“네! 드디어 죽음의 대진을 뚫고 3연승을 달성한 노오력의 상징 5조와 단 1승만으로 결승에 진출한 행운의 아이콘 9조의 최종 대결이 성사되었습니다!”]

♩! ♪♬! ♩♪!

- “뭐야! 결승전엔 브금도 깔아줘?!

- “어? 이거 그 피구 만화 주제가 아니야? 주인공 아빠가 금 밟아서 죽었다는?”

- “야, 근데 BGM이 깔리니까 기분이 묘하지 않냐?”

- “그러게. 뭔가 가슴이 웅장해지는데?”

조기에 탈락한 아이들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적절한 배경 음악에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자, 양 팀의 선수들이 일렬로 입장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가관이네.’

귀마개와 헤드폰을 착용해 어떠한 소통도 할 수 없는 빨간색 머리띠와 한 발로만 서 있는 노란색 머리띠, 거기에 안대를 착용한 파란색 머리띠와 펭귄 옷을 입은 보라색 머리띠까지.

정상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건 남색 머리띠밖에 없었지만, 다른 핸디캡들이 워낙 강하다 보니 한 손만 사용해야 하는 주황색 머리띠나 공격 자체를 할 수 없는 초록색 머리띠가 상대적으로 괜찮아 보일 정도였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5조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 “자! 간다!”

남색 머리띠를 한 5조의 선수가 9조의 에이스인 태주를 향해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진정한 맹수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공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자신의 모든 능력치를 5배로 증폭시켰다.

턱!

팔짱을 끼고 있던 태주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강력한 슛을 한 손으로 잡아냈다.

- “야! 어떻게 됐어!”

안대를 쓴 녀석이 흥분한 목소리로 결과를 물었다.

- “이런 씨. 야! 다들 알아서 피해!”

공격을 시도했던 상대방이 위험을 알리며 재빨리 물러났다.

[“아! 1회전을 단 1분 만에, 그것도 퍼펙트 스코어로 끝낸 신태주 선수가 또 한번 양학모드로 들어갔습니다!”]

중계를 겸하게 된 사회자가 반쯤 쉬어 버린 목으로 열변을 토했다.

‘보여주마. 진정한 클래스의 차이를.’

공격권을 얻은 태주가 손아귀에 든 공을 터질 듯이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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