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새터 (10)
- “어! 신태주가 사라졌다!”
현장에 있던 아이들이 태주의 점멸에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태주가 사라지자 태주의 어깨를 짚고 있던 균성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철퍼덕!
- “으악!”
관객들이 자신의 토사물 위로 엎어진 균성의 처참한 최후에 비명을 질렀다.
- “홀리 쓋!”
- “새끼, 진짜 가지가지 하네.”
- “어우 씨, 나까지 토할 것 같아.”
비위가 약한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리는 순간.
- “어! 신태주다!”
관객들이 등지고 있던 맞은편 벽에 신태주가 서 있었다.
- “뭐야! 언제 저기로 갔지?!”
- “순…… 순간 이동이다!”
태주를 발견한 아이들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어! 또 없어졌다!”
화들짝 놀란 아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야! 저기 있다!”
- “어! 어디! 어디!”
또 한 번 자취를 감춘 태주가 이번엔 사회자 곁에 나타났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태주가 바닥에 넘어져 있던 사회자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일종의 이미지 관리.
최고의 신입생을 노리는 태주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위장 신입생 2명에게 자신의 인성을 어필했다.
[“어. 고…… 고마워.]
태주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사회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야, 좀 전에 태주가 보여준 게 법사들이 쓰는 블링크 마법이냐?”
- “어? 난 어쌔신들이 사용하는 은신인 줄 알았는데.”
- “뭐야, 그럼 매직 아처인 태주가 다른 직업의 고유 스킬을 썼다는 거야?”
- “아니. 내가 봤을 때 저건 우리가 아는 블링크나 은신이 아니야.”
- “그럼 뭔데?”
-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둘 중에 뭐가 됐든 지금처럼 아무런 준비 동작 없이 연속적으로 쓸 순 없거든.”
태주의 점멸을 두고 아이들의 의견이 갈렸다.
- “근데 블링크나 은신이라고 해도 4차 각성 이상에 성공한 S급들만 가능한 거 아니었어?”
- “그러게. 협회에서도 태주는 2차 각성자라고 했는데.”
- “그야 모르지. 정확히 말하면, 측정기가 부서지는 바람에 이례적으로 인정된 거니까.”
- “어? 그럼 태주의 마력이 실제론 더 크다는 거야?”
-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솔직히 S급부터는 N차 각성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라 차수가 같은 각성자끼리도 능력치가 다르잖아.”
- “하긴,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를 우리 기준에서 판단할 순 없지.”
한마디로 어나더 레벨.
태주의 행보는 이미 상식의 수준을 넘어 개척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우이 씨. 야! 술 가져와 술! 우웩!”
자신의 토사물과 부비부비를 하던 균성이 재차 속을 게워냈다.
[“하…… 그냥 죽일까?”]
균성을 내려다보던 사회자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야, 그냥 놔둬.”]
고약한 술버릇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던 사회자가 균성의 뒤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막아섰다.
[“속 쓰려 뒤지든 말든 절대 힐도 걸어주지 말고, 지금 저 모습 그대로 찍어뒀다가 잘못된 음주의 예로 단톡방에 뿌려. 아주 쪽팔려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게.”]
균성을 본보기로 삼으려는 사회자의 단호한 대처에 학생회 선배들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물론 그러한 지시가 내려지기 전부터 아이들은 촬영된 영상을 편집하여 人수다에 올리고 있었지만.
‘굳이 내가 안 찍어도 되겠네.’
복수의 마침표를 찍은 태주가 남몰래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자, 승자는 이미 결정됐지만, 이런 상황에선 도저히 시상식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나머지 식순을 이어가겠습니다.”]
안내 방송을 마친 사회자가 태주와 함께 악취로 가득한 방을 빠져나갔다.
*
*
*
잠시 후.
[“자! 28기 술롱도르의 수상자! 신! 태! 주!”]
- “와!”
- “신태주! 어이! 신태주! 어이!”
시상식을 위해 모인 아이들이 태주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신태주 선수, 혹시 태주의 주가 술 주(酒)자는 아니죠?”]
“네. 아쉽게도 기둥 주(柱)자입니다.”
[“아, 기둥 주. 그거 이렇게 쓰는 거 맞죠?”]
장난기가 발동한 사회자가 검지를 허공에 휘갈기며 아는 척을 했다.
“…….”
[“네! 뭐, 아무튼 오늘 너무 축하드립니다.”]
태주의 눈치를 살피던 사회자가 미적지근한 반응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사실 술롱도르의 수상자에겐 이 배지가 주어지는데요.”]
사회자가 주머니에 있던 술병 모양의 배지를 들어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저희가 병에 든 술까지 잔으로 환산해본 결과! 역대 최고 기록인 22잔을 넘어! 무려 27잔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 “와!”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태주를 향한 박수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다 먹먹할 지경이었다.
[“따라서! 신기록을 갈아치운 신태주 후배님에겐 이런 평범한 배지가 아닌!”]
탁!
손에 든 배지를 바닥에 집어던진 사회자가 진행 요원으로부터 작은 케이스 하나를 건네받았다.
[“순금으로 제작한 한정판 배지를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케이스에서 꺼낸 황금 배지를 태주의 옷에 직접 달아주었다.
- “우와! 저거 진짜 금이야?!”
- “어? 금이면 술값 없을 때 맡겨도 되겠는데?”
황금 배지를 본 아이들의 고개가 거북목처럼 앞으로 늘어났다.
[“아, 물론 50%라고 했던 인근 술집의 할인율도 무려 80%로 대폭 확대됩니다!”]
- “뭐?! 80%?!”
- “한마디로 소주값 4천 원만 내면 16000원짜리 안주가 공짜로 따라오는 거네?”
- “오 완전 개이득!”
10주년 이벤트보다 더 파격적인 추가 혜택에 애주가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선배님! 특별 안주는 안 주나시나요!”
태주를 응원하러 온 우리상조 조원들이 먹다 남은 과자 봉지를 번쩍 들어 보이며 물었다.
[“아, 특별 안주는 시상식이 끝나는 대로 세팅이 될 겁니다.”]
- “오예!”
- “태주야 잘 먹을게!”
- “나도!”
사회자로부터 확답을 받아낸 조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태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사회자가 신호를 주자 이번엔 제약회사의 로고가 찍힌 선물 상자가 등장했다.
- “어? 저건 또 뭐지?”
- “그러게. 선배가 말한 선물은 이미 다 나왔는데.”
상자의 내용물을 추측하던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태주는 선물의 정체를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지만.
[“놀라지 마십시오! 신영제약에서 협찬한 최고급 회복 포션 ‘파이안’을 무려 20개나 드립니다!”]
목소리가 반쯤 쉰 사회자가 포션 상자를 태주에게 전달했다.
[“아, 참고로 내일모레 풀리는 따끈따끈한 신약이라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신영제약? 그런 데도 있었나?”
- “그러게. 새로 생긴 회사인가 본데?”
- “근데 ‘파이안’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치유의 신 아니야?”
- “이름은 뭐, 그럴듯한데, 포션은 역시 일류제약이지.”
- “그냥 출시하기 전에 홍보용으로 뿌린 건가 봐.”
- “협찬이 다 그렇지 뭐.”
생소한 회사명을 접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태주에겐 균성에 대한 복수 다음으로 중요한 미션이었지만.
‘하긴, 너희들이 뭘 알겠냐.’
포션을 받아든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당시엔 신영제약이 신생 기업이자 포션 사업의 후발주자였지만, 파이안의 대성공으로 일류제약을 꺾고 업계 1위가 된다는 건 태주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바로 고급 정보지.’
더구나 태주는 이미 초우량주가 될 신영제약의 주식을 꾸준히 사 모으고 있는 상태였다.
[“자! 이렇게 준비된 시상식을 모두 마치게 되었는데요. 신태주 선수, 끝으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리 멘트를 하던 사회자가 양손 가득 선물을 든 태주의 입 앞에 마이크를 갖다 댔다.
“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론 적당히 마시겠습니다.”
▶ 획득한 물품을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두 손을 가볍게 만든 태주가 황금 배지를 만지며 환하게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태주가 획득한 특별 안주로 새벽까지 달리던 조원들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물론 패시브 스킬로 살아남은 태주는 여전히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신태주]
[게시물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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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인)수다를 켠 태주가 균성과 관련된 게시물을 검색했다.
‘오 있다.’
생각보다 많은 영상이 올라와 있었는데, 게시물마다 균성의 술버릇을 지적하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 졸라 진상이네.
┗ 아니, 처먹으려면 곱게 처먹을 것이지 왜 갑자기 사람을 때리지?
┗ ㅇㅈ 혼자 급발진 ㅋㅋㅋ┗ 심지어 맞은 사람이 1년 선배라고 함.
┗ 으 생각만 해도 소오름!
┗ 학교생활 개꼬였네.
= ㅆㅂ 얼굴에 비비고 있는 거 설마 그거임?
┗ ㅇㅇ 나 지금 아침 먹다가 조용히 숟가락 내려놓음.
┗ 이 정도 흑역사면 그냥 술을 끊어야 되는 거 아니야?
┗ 제발 올리기 전에 [극혐] 표시 좀.
화면을 밀어 올리던 태주가 사람들의 일침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 영상도 한번 찾아볼까?’
이번엔 검색어를 바꿔 자신에 대한 반응을 살폈다.
= 와……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 무지개토 맞기 직전에 순간 이동한 거 찐이냐?
┗ 야! 활쟁이가 순간 이동까지 쓰면 반칙 아니야! 어! (지나가던 E급 궁수)┗ 이 장면은 팬티 3장으로도 부족하네요.
= 술을 물처럼 마시는 당신은 도덕책.
┗ 신태주가 할 땐 쉬워 보여서 소주로 따라 해봤는데, 바로 천국 문 두드림. @[email protected]┗ Don‘t try this at home.
┗ 솔직히 물도 저렇게 마시기 어려움.
┗ 저러다 술 광고 들어오겠는데?
균성과 달리 태주와 관련된 게시물엔 호의적인 댓글밖에 없었다.
‘광고 좋지.’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댓글을 확인하던 태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포션 상자를 꺼냈다.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포션을 노린 결정적인 이유, 광고.
태주는 세계 시장을 강타할 파이안의 전속 모델 자리를 꿰참으로써 자신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한층 더 끌어올릴 작정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남한테 양보할 순 없지.’
초창기엔 네임드 헌터를 섭외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호도가 낮았지만, 파이안의 대성공 이후, 당대 최고의 헌터들만 찍을 수 있는 상징적인 광고로 변모해 있었다.
찰칵! 찰칵!
빈병들을 배경으로 포션을 마시는 모습을 연출한 태주가 솔깃한 문구를 덧붙여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나쁘지 않네. #파이안 #최고급회복포션 #신영제약]
잠시 후.
人수다에 올린 복용 후기에 ‘좋아요’를 누른 신영제약으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신영제약의 홍보팀장 안상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