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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산비둘기 (6/32)

궁귀검신(弓鬼劍神)-제6장-산비둘기

  장백산의 여름은 짧았다. 여름이라야 일년 중 고작 3개월에 불과하고 나머지는겨울이

었다. 9월말이면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녹아 내를 흐르게 되는 것은 5월이되어서였다. 딱

히 봄이라거나 가을을 규정하기는 어렵고 그저 며칠 봄이려니 가을이려니 하는 것이전

부였다.

여름의 끝에 접어든 장백의 풍경은 가히 볼만했다. 천지 주변에서 불타오르기시작한

단풍은 그 범위를 점차 넓히더니 지금은 온산을 붉은 빛으로 도배를 해버렸다.혹자는

해동 금강의 경치가 천하제일이라 했으나 금강을 비롯하여 조선에 솟아오른 모든명산

들의 기운이 장백산으로부터 시작하니 그 으뜸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산에 자라는 식물이나, 살고 있는 동물들이 오래되거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예

로부터 사람들은 장백을 신령스런 산으로 여겼다. 당연히 장백에서 나는 모든것들을 두

려워하며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 그토록 신령스러운 산에서 감히 불경스러운 짓을하

는 놈이 있었으니....

   “퍽퍽”

겉을 갑옷처럼 탄탄한 껍질로 무장한 소나무의 밑둥이 을씨년스럽게 옷을 벗고있었

다.

   “휘익...퍽!”

소문의 손에 들린 도끼가 한번씩 춤을 출 때마다 소나무의 밑둥을 보호하던 옷은얇아

져 갔다.

   “꽈지직.....”

마침내 하늘을 바치고 있던 기둥이 무너지는 양 소나무는 그 거대한 크기에 알맞게엄

청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주위의 작은 나무들은 소나무의 거대한 감당하지못하고 맥

없이 쓰러져 갔다.

   “빌어먹을 놈. 누구처럼 나이만 쳐먹어서 그런지 질기기가 고래 심줄 갔구나.암튼 내

가 이겼다. 이놈아. 카카카! 오! 신이시여........ 이 일을 정녕 제가 했단말입니까?”

소문은 쓰러진 나무 옆에서 도끼를 하늘 높이 쳐들더니 발악적으로 외쳐 댔다.나무는

그 길이가 족히 10여장은 되었고 두께만 해도 장정이 서넛은 되어야 그 두께를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큰 기둥에서 옆으로 뻣어나간 잔가지라 해도 그 하나 하나가어른 몸

통보다 큰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소나무였다.

그런데 이처럼 큰 나무가 어째서 땅바닥에 누워야 했는가? 그 까닭은 간단했다.소문이

기를 쓰고 이 나무를 잘랐던 것은 그 말도 안되는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벌써며칠

째 주린 배를 안고 겨울 땔감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처럼 큰 나무는 땔감으로 효용이 없었다. 물론 알맞은 크기로자르기

야 한다면 바랄 나위 없이 최고의 땔감이 되겠지만 쓰러뜨리는데만도 하루가 꼬박걸렸

는데 어찌 그것을 알맞은 크기로 자를 수 있을까? 시간이나 많으면 몰라도 소문은그토

록 많은 시간을 투지할 이유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그럼에도 소문이 이나무를 찍어넘

긴 까닭은 어설픈 잔머리의 소산이었다.

땔감을 하려고 산에 올라온 소문은  처음에는 이나무 저나무 열심히 잘라댔다.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땔감의 양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하기도 싫은 걸 억지로하

는데다가 능률도 오르지 않으니 짜증만 났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이방법

이었다. 일타 쌍피가 아니라 일타  수십피....

  소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큰 나무가 아니라 그 주변에 작은 나무들과 수없이 뻗은가지

들이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이넘의 나무를 자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었다.

보통의 애들과는 다른 상당한 힘으로 찍어대는 소문의 도끼질에도 끄떡하지 않고소문

을 비웃고 있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성공의 대가가 너무나 달콤했기에하루종일

이를 악물고 도끼질을 해댔다.

   "흠... 이눔하고 주변의 나무만 손질하면 올 겨울은 까딱 없쓰렸다. 역시 나의뛰어난

머리는 알아주어야 한단 말야,,,,흐흐흐"

쓰러진 나무에 걸터 앉아  엉성하게 만들어진 물통에서 물을 마시며 자화자찬을하던 소

문의 머릿속은 온통 복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흥. 빌어먹을 할배 같으니라고...가문의 하나뿐인 74대 독자를 이리 괄시를하다니...

어디 두고보라지... 내 그넘의 ‘포두이술'을 하루라도 빨리 익혀 이날의 설움을반드시 갚

으리라...."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자유자재로 활을 쏘는 자신,,,,할아버진 옆에서 감탄의감탄을

하고 있고,,,,

   “자자. 빨리 하고 활연습이나 해야겠다. 그날의 영광을 위하여,,,,"

흐르는 땀을 식히며 엄한 생각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소문은 우선 주변에 쓰러진나무

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잔가지는 준비한 낫으로 쳐내고 기둥만을 따로 추려냈다.

땔감으로 쓰이는 장작이이 갖추어야 하는 최고의 미덕은 ‘은근’과 ‘끈기’다.겨울철의

긴 밤을 버텨야 하는 장작은 은근히 타면서도 화력이 좋아야 하는데 보통 기둥에서뻣어

나간 잔가지는 잘 타기는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장작은 그 나무의기

둥이 쓰였다. 그런 이유로 소문은 잔가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쳐내곤 했다.

큰 나무를 자르느라 시간을 워낙 많이 소모해서인지 주변의 나무중 이제 서너개를수습

했는데도 벌써 날이 저물어왔다. 소문은 할 수 없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돌아가

야 했다.

   “에고 지겨운거...이짓을 언제 까지 해야 한다....삭신이 안 쑤시는데가없네..."

두자 남짓한 도끼를 오른쪽 어깨에 매고, 왼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슨 낫을빙글빙글 돌

리며 걷고 있던 소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은 자신이 잘라놓은 그 큰나무의 끝

을 막 지날 때였다.

   “뭔소리랴?”

귀찮기도 했지만 궁금도 해서 소문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문이발길

을 멈춘 곳에는 한 마리의 새가 날개를 퍼덕이고 바위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엇다.어디

에 큰 상처를 입었는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소문이 다가오자 날개를 퍼덕이며날아오

르려 했다.

   “꺼루룩....”

잠시동안 퍼덕이며 요동치던 새는 마침내 포기를 했는지 날개짓을 멈추고 소문을가만

히 쳐다보았다. 비록 상처를 입고 땅에 떨어지기는 했어도 그 모습이 웬지 심상치않았

다.

상처입은 몸으로 인간을 앞에 두고도 동요하지 않는 이 새는 까치나 비둘기보다는약

간 컸고, 매나 수리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소문은 이 새를 보자마자 산비둘기라고단정

지었다. 비둘기치고는 제법 그럴듯하게 생겼으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꼬라지는 영맘

에 안들었다.

   “이눔의 비둘기새끼가 감히 누굴 노려보고 있어,....헤헤...암튼 횡재했네.금식이 풀리

는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포식이나 하라는 하늘의 선물이네... 하하하...하늘도나의 처

지를 이해하고 있었구나.....”

자신이 베어 넘긴 나무가 쓰러지면서,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다가... 숲속의 먹이를노리

며 하강하는 해동청을 내리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소문이었다. 맨 끝의여

린 가지들에 맞아서 그나마 이 정도지 몸통에 맞았음.. 그 자리에서 죽었을해동청이었

다.

소문은 해동청에게 재빨리 다가가더니 이미 기력이 다해 날개짓도 하지 못하고반항도

못하는 몸체를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는 휘파람을 불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소문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이었다. 싱글벙글 하면집안

으로 들어서자 그때까지 마루에서 잠을 자던 할아버지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하아아아.....에구 자도자도 졸리는 구나,,,,어라....소문이 아니냐? 어째벌써 돌아오

는게냐? 땔감은 다 마련하였느냐?”

   “아직 끝마치지 못했지만...날이 어두워서 내려왔습니다.”

   “에라이 이눔아. 오늘이 벌써 며칠째냐? 게다가 날이 이리 밝은데도 일도 하지않고 이

리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냐....맨날 땔감이나 해라. 이 눔아....그리 해보거라...100년

1000년이 지난들 무공을 완성할 수 있을 줄 아느냐.... 어림도 없지,,,,암!!”

할아버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소문이 미쳐 대문을 지나기도 전에 소리를질렀다.

그러다가 우물쭈물 서 있는 소문의 손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려 있는 것이 눈에띄었다.

   “그게 무었이냐”

   “산비둘깁니다.... 내려오다가 주었습니다”

   “그래? 이리 가져와 보너라”

소문은 절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동청을 할아버지에게 넘겨 주었다.물론

의심이 듬뿍 가는 눈치를 보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과거 자신이 사냥한 것들을이런

식으로 빼앗긴 것이 어디 한둘이던가....

   ‘하지만 이번만은 안되지....며칠만에 밥을 먹는 건데....저건 하늘이 주신선물이야....

암...하늘의 선물을 .빼앗겨서는 안되지...’

   “딱”

소문이 필승의 의지를 다짐하기가 무섭게 날라 오는 건 예의 그 곰방대였다.

   “악! 왜 때려요?”

졸지에 별을 본 소문의 말은 당연히 항의 조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랭한할아버지

의 말이었다.

   “뭐라? 비둘기?....허...나참...니눔은 이게 고작 산비둘기로 밖에 안보이냐?그런 썩어

빠진 눈으로 제 딴에는 사냥을 하겠다고 설쳐대는 꼬라지 하고는.....”

아까 처음 볼 때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저 종류가 다른 산비둘기려니 했다. 헌데그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소문의 생각을 지배한 것은꼬투

리를 잡기 시작한 할아버지에게 밀리면 저 새가 할아버지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그

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었다.

   “그게 비둘기건 아니건 뭔 상관이 있어요...암튼 그거 제가 잡았으니주시지요....”

최강의 수였다. 소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했다고 확신했지만 이번역시

상황 판단을 잘못하고 말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나타난 곰방대가 소문의몸

이곳저곳을 두들겼다. 곰방대의 무차별 적인 역습에 소문은 결국 백기를 들고말았다.

   “가지시지요”

   ‘내 비둘기.....흑흑...하늘이시여,.,,,’

   “이놈아 너는 이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영물인지 모르느냐? 이것이 하늘의제왕이라

는 ‘해동청’이다....

    ‘해동청’

해동청을 ?송골(松?)매?라 하기도 하는데 ,해주목(海州牧)과 백령진(白翎鎭)에 매

가 많이 나며 전국에서 제일이었다. 고려 때에는 응방(鷹坊)을 두어 원나라에세공으로

보내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중국은 이 매를 ‘해동청(海東靑)’ 또는보라응(甫羅鷹)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냥에 많이 쓰이나 때로는 군에서 통신용으로 쓰기도 했다. 다른매들에

비하여 그 크기는 작으나  비상력이 강하며, 사냥감을 발견하면 공중에서 날개를접고

급강하하여 이를 차서 떨어뜨린 다음 잡는 모습에서 감탄한 사람들이 비록 다른매보다

덩치는 작아도 ‘하늘의 제왕’ 이라는 별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소문이 잡아온(사실은 줏어온) 이 해동청은 일반적인 해동청보다 더욱 작은 것을보니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새끼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빛깔은 등면이 청회색이고가슴에 흑

색의 굵은 세로무늬가 있으며 뺨에는 흑색의 줄무늬가 있는 전형적인 해동청의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해동청을 보고 비둘기라 했으니 할아버지가 화낼 법도 했다.  그러나할아버지

는 비둘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소문에게는 어디까지나 그건 핑계이고 자신은며칠만에

먹는 저녁의 맛있는 반찬을 빼앗긴 불쌍한 신세였다. 또 비둘기면 어떻고해동,,,,거.. 머

시기면 어떠랴...

어차피 죽기 일보직전이고 죽으면 밥상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반찬이라니...하늘의 제왕이라는 해동청도 소문에게는 그저 한끼 식사도 안되는비둘기

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새는 해동청이라고 하는 매의 일종이다. 네놈이 보기에는 몸집이 다른맹금(猛禽)

에 비하여 작아 보일런지 모르겠으나 용맹으로 치자면 당할 새가 없다. 또한 한번주인

을 따르면 죽을때까지 그 주인을 따르는 충성심이 아주 강한 새이다. 그런데 이런영물

을 비둘기라? 아니지 비교하는데 더해 반찬으로 먹을 생각을 해...허허.,,..하늘도무심하

시지...이런 무지한 놈이 내 손자라니...말년이 걱정되는구나....”

  소문의 귀에는 할아버지의 호통도 푸념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비둘기(소문은절대 매

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다)기를 수중에 넣기는 요원했다. 소문이 걱정한 것은 그것이아

니었다.

   ‘이걸 핑계로 또 금식을....? 그 동안 전력을 감안할 때 가능성이농후한데....아니지 거

의 틀림이 없는데....제기랄 또 산에서 풀뿌리나 캐먹어야 하나.....’

과거 소문이 할아버지의 금식명령에도 불구하고 산에서 몰래 산짐승을 잡아먹은적이

잇었는데 그때마다 어찌 알았는지 할아버지는 소문에게 더욱더 강한 처벌을 내렸다.한

번은 비오는 날 자신의 옷에서 먼지가 풀풀 나는 것을 목격하고는 다시는 이같은시도

를 하지 않았다. 다만 풀뿌리며 산 과일을 먹는 것은 알고도 모른척 했기에 금식때만

풀로써 연명을 했다.

   “두 가지 제안을 하마....굶을래....살릴래?”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귀까지 쳐먹었느냐? 한...보름정도 굶을래...아님 이 해동청을 살릴래?“

  할아버지의 제안에 소문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름이라....한여름이면 어찌 버티겠으나 지금은 보름은 무리이고,,,,살리자니저눔의

비둘기가 죽기 일보직전이라.....영...’

그래도 당장 굶기는 싫어서인지 비둘기를 살려보려는 마음으로 기울었지만비둘기가

혹여 죽기라도 한다면 그 뒤에 따라올 할아버지의 꼬장을 감당할 엄두가 나질않았다.

하지만 질문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저 잠시 잠깐 생각을 한 것 뿐이었다.

   “살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소문의 말에 이미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해동청을 소문에게 건네주었

다.

   “잘 살려보거라.....정성을 다하면 살릴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꼭살려야,,,할...것이

다....”

저승사자의 말이 이보다 더 소름이 끼칠까....소문은 머리칼이 쭈뼛

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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