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마왕성에 납치되어 용사의 구원을 기다리던 제냐. 십 년이 흐른 뒤 제냐의 앞에 나타난 용사, 루미에르는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만을 보여주는데.
“제냐, 배가 조금 아픈 것 같습니다.”
그의 입가에서 흐르는 피는 검붉다 못해 시커멨다. 깜짝 놀라 그녀에게로 쏟아지는 커다란 몸뚱이를 받아드는데 루미에르가 피가 줄줄 흐르는 입술을 매끄럽게 올리며 물었다.
“그러니 또 함께 있을 수 있겠죠?”
독초 탓에 장기가 실시간으로 녹아내리는 중인데도 함께 있을 수 있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제냐는 뭔가 잘못돼도 아주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제냐, 제가 필요하면 저를 더 아껴주세요.”
해치우라는 마왕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그녀에게 과한 집착을 보이는 루미에르.
제냐는 십 년간 바란 대로 예언의 주인공인 용사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
“그래서 제레미야랑 놀고 있었어요?”
차갑다 못해 살을 엘 것 같은 눈빛에 루미에르가 입 안의 살을 깨물었다.
“그, 그게 제가 부른 게 아니라 자기가 찾아온 겁니다. 아니, 황녀가…….”
“루미에르는 억지로 만난 사람한테 그렇게 예쁘게 웃어 줘요?”
우물쭈물 입을 열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데, 옆에서 한심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리 났다. 난리 났어. 그냥 사귀라니까. 아주 잘 어울리는데…….”
“입 좀 닥쳐!”
루미에르는 얼굴에 닿는 매서운 시선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제냐가…….’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결국 루미에르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