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설정만 짜 둔 소설 속, 가문에서 구박받는 영애로 빙의했다. 다행히 세세한 설정 덕분에, 나는 작가의 친구라는 이점을 톡톡히 누리면서 가문 몰래 억만장자로 잘 먹고 잘 살 길을 마련해놨다. 이제 성인이 될 때까지 2년간 구박만 잘 버티면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한테 괴롭힘당하던 조그마한 실뱀을 주웠다. “너, 지금 나 위로하는 거야?” 나를 위로한답시고 제 머리로 내 손가락을 쓰다듬는 이 실뱀을, 나는 ‘샤샤’라 이름 붙이고 소중하게 키우기로 했다. * 이곳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내 샤샤를, 가문 사람들이 죽였다. 성인이 되면 그냥 조용히 가문을 떠나려던 내 계획은, 샤샤가 죽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그동안 소심한 연기만 해와서 내가 만만한 모양인데……. 당신들은 내 샤샤만큼은 건들지 말았어야 했어.” 성인이 되기까지는 2년. 나는 그 긴 세월을 기다리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돈으로 가문을 조종하여 괴물 대공에게 청혼을 넣었다. 성인이 되기 전이더라도, 결혼식을 올리면 가문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오직 가문에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베일에 가려진 대공과 결혼했다. 그런데……. “부인님께선 뺨을 비벼드리면 기분이 나아지시지 않습니까.” 왠지, 내 남편이 된 이 남자에게서 내 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종교 및 지명과 인명은 모두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