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출나게 큰 키와 촘촘히 짜인 복근, 싹둑 자른 짧은 머리카락.
악명 높은 도적단 ‘펠런’의 에이스이자, 유일한 여자 단원인 발레리는
‘1년 뒤 황녀를 납치해 오라’는 엄청난 임무를 띠고 황궁에 남자로 입대한다.
몰래 목욕하러 나온 냇가에서 시비 걸던 놈을 좀 손봐준 것뿐인데.
결과는 사, 사형?
“황태자이신 줄 정말 몰랐다고요!”
재수도 없지. 하필 상대가 황태자인 테렌스였다.
지하 감옥에서 인생 종 치나 싶었는데, 황태자가 대뜸 꺼내 주며 하는 말이…
“오늘부로 널 특수 보직에 채용한다. 넌 이제부터 황녀의 검술 스승이다.”
납치 표적인 황녀, 그러니까 제 여동생한테 검술을 가르치란다.
옳거니. 이참에 몸 좀 사리면서 납치를 계획하려 했는데,
쥐뿔도 관심 둔 적 없는 황태자가 자꾸만 다가온다.
***
한때 목에 칼을 들이대던 남자가, 이젠 입술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불장난이 촉발한 본능의 소용돌이가 자꾸만 이성을 마비시켰다.
“신분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저는 최악의 선택지예요.
나중엔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인생의 오점이 될 거라고요.”
이쯤 되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그가 단념하고 물러나길 기다려도 봤지만,
“…결말은 가봐야 아는 거 아닌가? 난 이미 널 선택했어.
그 대가와 책임은 전부 내 몫이다.”
그러니까 그 대가와 책임을 왜 당신이 지냐고요?!
죄는 내가 지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