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소설에 빙의했다.
악당 대공의 두 번째 아내로.
악당 대공 말룸 발타사르는 신이 빚은 것처럼 아름다운 데다 시종일관 다정한 남자였지만,
아내를 희생해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악독한 뱀 괴물이었다.
그가 퇴치당하는 것은 세 번째 아내가 등장한 이후로,
두 번째 아내인 나는 말룸에게 잡아먹히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어떤 수를 써서든 도망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 너무 상냥하고 애틋하다.
***
“오필리아, 아, 해봐요. 수프 끓여 왔습니다.”
나는 천둥 소리에 놀란 것처럼 반응하지 못했다.
독이라도 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어서요.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걱정 말고 한 입만이라도 먹어 봐요. 제 요리 실력이 엉망은 아닙니다.”
말룸이 연신 재촉했다. 수려한 사내가 애탄 얼굴을 했다.
“꼭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아픈 아내에게 수프 끓여 주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룸 발타사르는 자신이 직접 끓여 온 수프를 손에 든 채 훌륭한 남편 행세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