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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웠더니 짐승-81화 (81/121)

# 81

#81화

블론디나는 꽉 눌린 압박감이 힘겨워 몸을 움찔거리며 바르작거렸다. 숨이 막혔으나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드는 품이었다. 그의 뜨거운 체온도, 둘 사이에 맴도는 분위기도, 감각을 내달리는 아찔함도 선명했다.

그녀의 움직임을 다른 의미로 착각한 걸까.

“도망가지 마, 응?”

입술로 슈미즈 자락을 끌어 내리던 에이몬이 그녀를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블론디나는 그의 품에 푹 파묻혀 손가락만 움찔거렸다.

쪽, 쪽, 조용한 공간에 입술 맞닿는 젖은 소리가 울렸다. 블론디나는 심장 부근에 손바닥을 올려 꾹 눌렀다. 에이몬이 입 맞추는 소리보다 제 심장 소리가 더 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소리가 들리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 한 행동이었는데, 어쩐지 에이몬은 더욱 오해한 것 같았다.

쇄골 위에 혀를 미끄러뜨리며 에이몬이 중얼거렸다.

“도망가는 상대를 보면, 난 사냥하고 싶어져. 짐승이니까.”

“……읏…….”

쇄골을 부드럽게 핥으면서도 이따금 충동이 치미는지 이로 아프게 물기도 했다.

“오늘은 마음껏 하게 해줘. 응?”

에이몬이 무언가를 물어 오는 것 같은데 쇄골이며 목덜미며 가슴골에 끊임없이 입 맞추는 그의 행동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대답 대신 신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슈미즈 위로 에이몬의 얼굴이 닿았다. 얇은 슈미즈 위로 젖은 혀가 미끄러졌다. 등골을 찌릿 관통하는 낯선 감각에 블론디나는 가쁜 숨을 삼켰다.

“아……!”

무슨 감각인지 모를 간지러움이 아랫배를 타고 올라서, 블론디나는 열에 단 얼굴로 에이몬의 어깨를 밀었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손은 그의 묵직한 몸을 조금도 밀어내지 못했다. 아마, 힘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절 덮친 그를 밀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에이몬…… 잠깐만…….”

할딱거리는 숨을 내쉬며 흔들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슈미즈가 사락사락 스쳐 내려갔다. 맨살에 와 닿는 밤공기가 서늘하다. 살갗 위로 한기가 돌았다.

에이몬은 블론디나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는 가쁘게 달싹이는 가슴에 달라붙었다.

마치, 제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냥감을 달래듯 억눌린 접촉이 이어졌다. 에이몬의 뜨거운 숨결이 소름 돋은 블론디나 피부 위를 부드럽게 맴돌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데, 눈앞의 블론디나가 도망갈까 두려워 에이몬은 차근차근 다가섰다. 달콤한 설탕 과자가 바스러질까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아…… 음…….”

블론디나는 에이몬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제 몸 위를 배회하는 그의 머리카락이 간질간질하다.

그녀의 허리를 붙든 에이몬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블론디나는, 그의 우악스러운 힘보다 다정하게 이어지는 입술이 더욱 선명히 느껴졌다.

틈 없이 맞닿은 몸, 아래에 닿는 묵직한 부피감이 뜨거웠다. 에이몬의 숨소리가 탄식처럼 맴돌았다. 둘의 몸이 더욱 붙었다.

“브리디, 브리디…….”

그의 부름에, 블론디나는 겨우 “응…….” 하고 힘겨운 대답을 내뱉을 수 있었다. 느릿한 물살에 정신없이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블론디나는 에이몬에게 파묻히듯 짓눌려 힘겹게 흔들렸다.

“아! 읏……!”

그의 몸에 덮여 숨을 허덕였다.

“미안해, 브리디. 울지 마. 응……?”

사나운 몸짓과 달리 아주 다정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하지만 블론디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압박감으로 숨조차 간신히 삼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미안하다면서도 그의 격정적인 몸짓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얼굴을 푹 묻은 새하얀 베개보다 그녀의 낯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고통에 가까운 감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달아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더욱 힘겨웠다.

울음에 가까운 신음이 흐느끼듯 새어 나왔다.

“으흑, 읏, 흑……!”

제 몸을 단단히 옭아맨 힘이 너무도 억세서, 블론디나는 제대로 된 반항 하나 하지 못하고 힘없이 휘청였다.

망가진 인형처럼 흔들렸다. 감각을 파고드는 아픔과 쾌감으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으읏…….”

곧 꿈결같이 눈앞이 흐릿해졌다.

배 속을 가득 채운 열기가 뿌리를 박고 줄기를 뻗어 몸 이곳저곳을 가시처럼 쥐었다. 아릿한 열기가 피를 타고 돌아 제 몸을 불태우는 것만 같았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동이 터 오고 있다.

“아……!”

블론디나는 그의 품 안에서 몸을 늘어뜨렸다.

이제는 몇 번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없이 닥쳐온 쾌감 속에서 블론디나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에이몬을 붙들고 신음을 터뜨리느라 목이 쉬어 버린 탓이다.

블론디나는 눈물 젖은 얼굴로 허리를 비틀었다. 반복된 자극에 민감해진 몸이 무너져 내렸다.

“에이몬, 에이몬…… 흑…….”

에이몬은 대답 대신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제 욕망을 쏟아부은 뒤임에도 몸을 떨어뜨리는 대신 그녀의 눈가를 핥고 달래듯 키스했다.

블론디나에게서 울음기 섞인 애원이 흘러나왔다.

“그만 떨어져…….”

쉬다 못해 갈라진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릴 지경이었다. 힘없이 에이몬을 밀던 손은, 에이몬이 꿈쩍도 하지 않자 힘없이 툭 떨어졌다.

에이몬은 눈가를 지분거리던 입술을 내려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비스듬히 고개를 숙여서 달래듯 혀를 섞었다. 느릿하게 들어온 살덩이가 촉촉한 소리를 내며 나른히 엉겼다.

힘겨울 만큼 몰아붙이던 짐승이 아주 다정해지자 블론디나의 몸이 다시 녹았다.

“으응…….”

에이몬은 고개를 기울여 입 맞추면서 눈물에 젖은 그녀의 뺨 위에 제 뺨을 비볐다. 마치 그녀가 사랑스럽고 애틋하여 참을 수 없다는 듯 살갗을 붙였다.

삼키지 못한 블론디나의 신음이 입속에서 흩어졌다. 몸이 절절 끓다 못해 아예 녹아 버린 기분이었다. 그에게 안겨 축 늘어진 몸이 힘겨웠다.

블론디나는 가느다란 신음을 뱉으며 에이몬의 어깨를 힘없이 두드렸다. 이어지는 키스에 숨이 막혔다. 그녀의 헐떡임을 눈치챘는지 그제야 두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블론디나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에이몬이 속삭였다.

“브리디, 미안해.”

“뭐가……?”

“아마 많이 아플 거야.”

“응?”

블론디나는 하도 울어 발갛게 달아오른 눈을 겨우 떴다. 희미한 시선 끝에 진심으로 절 걱정하는 듯한 에이몬의 얼굴이 보였다.

“뭘 걱정하는데?”

더듬더듬 희미하게 묻자 그가 어린아이 달래듯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각인은 이 몸으로 할 수 없거든.”

“각인?”

뒤이어 몸을 뒤덮는 압박감과 짐승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잃었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던 새벽빛으로 물든 창밖. 제 시야를 한가득 채우던 거대하고 새까만 짐승.

눈물로 두 뺨을 뜨겁게 적시며 그를 밀어냈던 것 같기도 하고, 결국엔 다시 매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결국 제게 몸을 묻는 표범을 끌어안았던 것 같기도.

피 한 방울 한 방울, 세포 하나하나에 인이 박혀 몸이 절절 끓었다.

발끝부터 손끝까지 타고 오르는 작열감에 몸을 비틀다가 안을 가득 채우는 압박감에 혼절하듯 눈을 감았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와중에도, 절 걱정스럽게 부르며 미안하다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브리디, 미안해. 브리디…….」

제 이름을 불러 오는 에이몬의 부름을 자장가 삼아 그대로 늘어졌다.

애타게 절 부르는 음색이 안타까워서 힘없이 늘어지는 와중에 손을 들었으나, 에이몬의 털 하나 스치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마주 안아 주고 싶었는데.

***

눈가와 뺨을 스치는 익숙한 온기에 언뜻 정신이 들었다.

블론디나는 부어오른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하도 울어 그런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프다. 땀이 날 정도로 열이 올랐던 것 같은데 몸은 말끔한 걸 보니 그가 닦아 준 모양이었다.

“브리디.”

부드러운 손길이 눈가를 매만져 왔다. 나직한 속삭임같이 이름이 불리자 블론디나는 비로소 긴 숨을 내쉬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그의 부름으로 비로소 깨어난 기분이었다.

깜빡깜빡.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자 에이몬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한가득 걱정을 담아 에이몬이 물었다.

“몸은 괜찮아?”

블론디나는 대답하려 입을 벌렸으나 목이 잠겨 제대로 대꾸할 수 없었다. 에이몬이 블론디나를 찬찬히 일으키며 입에 물잔을 대주었다.

그녀의 입술 틈으로 흘러드는 물과 꿀꺽 넘어가는 목울대. 눈을 질끈 감은 블론디나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에이몬은, 마치 어린아이의 보호자라도 된 것 같았다.

블론디나가 물을 다 마시자, 컵을 침대 맡 테이블에 대충 놓은 에이몬은 고개 숙여 그녀의 물방울 맺힌 입술을 핥았다.

“차갑지 않아? 따뜻한 물로 갖다 줄까?”

물은 미지근했다. 블론디나를 위해 뜨겁게 데워 두었으나 그녀가 깨지 못하는 사이 식은 모양이다.

블론디나는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에이몬.”

이제야 겨우 대답이 나왔다. 예상대로 목소리는 깊이 잠겨 있었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사실 목소리는 그날 밤부터 쉬어 있었다.

에이몬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미안해. 각인만 하고 끝내야 했는데, 내가 절제를 못 했어.”

처음 맛본 달콤함에 이성을 잃었다. 억눌리고 숨겨 왔던 본능이 터져 나와 상대가 인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지독하게 괴롭히고 몰아붙였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애타게 참고 절실하게 기다렸던 탓일 것이다. 블론디나는 꿈에도 모르는, 필사적으로 눌러 왔던 충동.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앓아누운 블론디나였다.

블론디나는 절 찬찬히 다시 눕히는 에이몬의 손길을 느끼며 작게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고작 하룻밤 보냈다고 앓아눕다니…… 무슨 이런 일이 있담.’

창밖을 응시했다. 석양빛 내려앉은 나뭇잎이 보였다.

‘새벽에 잠들었으니까 반나절 정도 기절했나 보네.’

자신이 생각해도 잠은 아닌 것 같고, 기절이란 표현이 적당한 것 같았다.

“나 저녁 될 때까지 잔 거야?”

쥐어 짜낸 목소리로 간신히 묻자 에이몬은 살짝 머뭇거렸다.

곧 그가 블론디나의 손가락을 매만지며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지금이 저녁이 된 게 맞기는 한데. 이틀 지난 저녁이야.”

“응?”

난처한 눈빛으로 에이몬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원래 각인하면 좀 열이 나고 그렇긴 하지만……. 미안해, 브리디. 다음에는 자중할게.”

큰 잘못을 저지른 소년처럼 꼬리를 말고 중얼거렸다.

말꼬리를 흐리는 모습 뒤로 보이지 않는 꼬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아마 표범 모습이었다면 블론디나 앞에 바짝 엎드려 낑낑거렸을 게 분명했다.

블론디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틀. 이틀이라……. 숫제 다음이 두렵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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